공용 키친 / 이원
여기는 세 면이 유리다. 지나가면 환히 보인다. 긴 직사각 식탁 끝에 또는 중간에 앉아 혼자 밥을 먹는 존재를 서로서로 거울처럼 볼 때가 많다. 식탁 너머에는 싱크대 싱크대 한쪽에는 인덕션 인덕션 너머에는 냉장고가 있다. 양문형 공용 냉장고는 한 사람에게 한 칸이 배당된다. 자신의 이름을 쓴 메모지를 붙이는 방식. 두번째 칸의 새송이 버섯에 참숯으로 구운 햄에 열 개짜리 달걀 꾸러미에 같은 이름이 반복됨으로써 그것은 그 이름의 것이다. 그리고 이름이 불여지지 않은 것과 에브리원 칸에 든 것은 모두의 깃이다. 에브리원 칸에는 잘린 곳이 검어진 양배추와 당근이 듬성듬성 뒹군다. 에브리원 칸 안에 들어 있거나 에브리원의 것은 이름을 붙일 수 없다. 에브리원의 세계는 누군가 많이 먹으면 나머지는 못 먹는 구조다. 며칠이 지나도 줄지 않는 식빵이 있다면 누가 배려한지 모르고 먹는 구조다. 냉장고를 열면 각자에게 할당된 칸과 각자의 이름이 붙은 재료보다 이상하게 에브리원 칸을 먼저 보게 하는 구조다. 재료 앞에서 머뭇거리는 것이 모두를 위한 기도로 간주되지는 않는 구조다. 손대지 않고도 이름이 붙은 재료를 썼나 서성거림이 어김없이 발생하는 구조다. 자신이 쓴 그룻은 자신이 씻어놓는, 사용한 흔적이 없도록 치우는 것까지가 규칙인 이곳에서 의자들은 금방 돌아올 것 같은 모양으로 빠져나와 있고 똑같은 무늬와 사이즈의 슬리퍼들은 겹쳐지고 뒤집어지고 몇 개는 멀리 던져져 있다. 발이 슬리퍼를 빠져나오기 전까지가 공용 키친인 것이다.
- 시집 『브로콜리 산양 작은 사람』(문학과지성사, 2026.07) -------------------------------------
* 이원 시인 1968년 경기 화성 출생. 서울예술대 문예창작과 및 동국대 문예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 1992년 《세계의문학》 등단. 시집『불가능한 종이의 역사』『사랑은 탄생하라』『나는 나의 다정한 얼룩말』『브로콜리 산양 작은 사람』외 산문집 『물끄러미』외 현대시학 작품상, 현대시 작품상, 시작 작품상, 시로여는세상 작품상, 형평문학상 수상
************************************************************** 우리는 ‘에브리원’이나 ‘공동체’, ‘모두’와 같은 말을 자주 쓰지만, 그저 허공에 흩어지는 구호에 그치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진정한 공동체는 거대한 이념이나 말뿐인 선언에서가 아니라, 타인을 향한 작은 배려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일 겁니다.
- 주영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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