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새신자 입장에서 배려하십니까?
처음부터 ‘예수님을 만나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교회를 찾은 새신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 가족이나 이웃의 애걸(?)에 못 이겨 왔다, 억지로 왔다, 과거에 다녔던 교회의 향수에 젖어 얼떨결에 오게 되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왔다는 표현이 그들에게는 더 잘 어울린다. 한국 교회 전체 평균, 새신자 중에 정착하는 정식 등록 교인 수는 10% 정도라고 한다. 이 안타까운 통계를 빌리지 않더라고 새신자 정착에 어떤 걸림돌이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거의 모든 교회가 교회 성장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특별히 새신자에게는 온 정성을 쏟는다. 새신자 담당자들이 친절하게 주차를 해주고, 예배 시간에는 전교인의 따뜻한 환영과 목사님의 축복 기도, 선물 증정, 그리고 예배 후에는 교회 안내, 예배 안내, 선교회 소개, 새신자 교육에 이어 점심 식사까지 대접을 한다. 교역자가 즉시 심방을 가고, 속회(구역, 순)예배를 함께 드린다. 그렇듯 교회마다 나름대로의 방침을 세우고 노력을 들이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몇몇 교회를 제외하고는 성장률이 저조하다.
어떤 교인은 ‘목사님의 설교 말씀에 문제가 있다’ ‘ 목회 방침이 문제다’ ’건축 헌금이나 십일조를 지나치게 강요한다‘ 등의 이유를 내세우며 목회자에게 책임을 돌린다. 실제로 그런 이유 때문에 새신자가 발길을 돌리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새신자가 떠난 이유가 “나 때문에…”라고 말하는 교인은 거의 없다. 정말 교인들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일까? 큰맘 먹고 교회에 첫발을 내딛은 주일 아침, 그러나 아주 작은 문제 때문에 발길을 되돌리고 만다. 주차 문제로 다투는 교인(성도라 하기엔 미숙한). 남의 차에 박치기해 놓고서도 메모 한 장 없이 슬쩍 도망가는 사람, 예배 중에 의자 안쪽으로 좀 들어가 달라고 하면 ‘늦게 온 주제에…’라는 듯 인상 팍 쓰는 사람(결국 마지못해 엉거주춤 일어나 그 사람이 좁은 틈을 비집고 안으로 들어가게 만든다). 예배 끝날 때까지 옆사람과 소곤대는 사람, 껌 씹는 사람, 팔짱 낀 사람, 다리 꼬고 앉아서 앞좌석에 흙 묻혀 놓는 사람, 예배 잘 드려 놓고 식당 가서는 새치기하는 사람, 옆사람은 찬송가가 없어서 멀뚱하니 서 있는데 같이 보자는 말 한마디 없이 혼자 목청 터져라 찬송 부르는 사람, 상하좌우로 목운동하며 열심히 졸다가 가끔 깨서 “아멘”하는 사람, 말씀은 안 듣고 주보에 낙서만 하는 사람, 다른 책보고 있는 사람, 향수를 들이붓고 왔는지 두통까지 몰고 오는 사람(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앉는 교회에 향수를 너무 많이 뿌리고 오면 옆사람이 얼마나 고역인지 이 기회에 알리고 싶다). 유아실이 있는데 굳이 자녀를 예배실에 데리고 와서 시끄럽게 만드는 사람, “화장실이 더럽다. 교회 내부가 깨끗하지 않다. 실내가 어둡다. 유아실이 지저분하다. 교회 학교 선생님이 아이들을 괜히 혼낸다…” 하면서 불평하는 사람 등등 예를 들자면 끝도 없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간단한 이유에서 시작하여 엄청난 이유들이 쏟아진다. 우리들 평신도의 부주의가 새신자가 교회에 들어선 첫날 발길을 돌리게도 만들고, 첫날 각인된 좋지 못한 첫인상이 그들로 하여금 몇 주일 씩 등록 결정을 미루게도 만든다. 절에 다니는 사람과 교회 다니는 사람이 똑같은 잘못을 저질러도 세상 사람들은 “절에 다니는 사람이 왜 그래!”라고 말하는 법이 없다. “교회 다니는 사람이 왜 그래!”라고 말은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데 말이다. 은연중에 ‘교회 다니는 사람은 좋은 사람일 것이다’ 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막연히 ‘이 교회 교인들은 좋을 것 같다’는 기대를 가지고 찾아온 분들에게 첫날부터 실망을 안겨 주어서야 되겠는가?’
전도를 통해 처음 교회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부터 양육은 시작된다. 어찌 보면 전도보다 더 힘든 것이 양육이다. 열 달의 임신 기간이 아무리 힘들다 해도 출산 직후부터 맞닥뜨리게 되는 자녀 문제가 훨씬 더 신경 쓸 일이 많듯이. 잠시 관심을 두지 않는 사이에 한두 번 다니다 그만두는 사람, 잘 다니다가 중간에 엉뚱한 이단으로 빠지는 사람 그나마 자기 혼자 가면 좋겠건만 물귀신 마냥 단체로 사람들을 끌고 나가는 사람 등등 별의별 사람이 다 있다.
그들을 어찌 그냥 내버려둘 수 있겠는가. 갓난아이를 돌보듯 정성을 다해 그들이 스스로 제 구실을 할 때까지 성심 성의껏 돌봐 주어야 한다. 그게 양육이다. 사실 한두 명 전도할 때는 양육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몰랐다. 새로 지은 아파트 입주자들을 전도해서 새신자가 갑자기 늘어났을 때 나는 양육에 대한 심각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인도 할 수 있는 직분자는 단 두 명이었는데 속회는 무려 여섯 속이었다. 인도자 부족으로 어쩔 수 없이 다섯 속을 인도하게 되었다. 새신자는 인도자의 관심이 조금이라도 덜하다 싶으면 교회를 바꾸기도 하고, 아직 미성숙하여 문제를 일으키고, 속회에도 나오지 않았다. 섬기는 교회와 거리가 먼 지역일수록 양육 대책은 더더욱 중요하다. 이 현상은 양적으로 팽창하는 교회가 겪는 심각한 문제이다. 그러나 전도로 인해 양적으로 급성장했을 때 노련하지(?) 못한 인도자에게는 새신자를 양육하는 것이 마치 난생 처음 갓난아기를 다루는 것처럼 힘들 수가 있다. 속회가 급성정할 때 인도자가 부족하여 궁여지책으로 새신자만 모아서 속을 만든 적이 있다. 놀랍게도 새신자끼리 모여 있는 속이 훨씬 믿음도 순수해서 빠르게 신앙이 성장하는 것을 체험했다. 인도자가 새신자만 맡은 경우, 양육을 책임지게 된 사람의 절대적인 헌신이 필요하다. 속회 모임의 장소도 돌아가면서 모이는 것에 부담 느끼지 않도록 인도자 집에서만 모인다든가 중간중간 전화 심방, 가정 심방을 통해 새신자의 신앙 생활을 잘 보살펴야 된다.
새신자 속을 인도할 지도자는 속회 장소를 늘 제공할 수 있는 성도로서 베푸는 것과 봉사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며 성경을 쉽게 가르칠 수 있는 양육자여야 한다. 새신자가 새신자 속회에서 6개월 정도 양육받은 후에 기존 속회에 섞이면 별무리 없이 잘 성장하는 것을 본다. 양육을 책임 맡은 평신도 지도자의 역할과 교회안의 가장 작은 단위인 속회의 바른 양육을 통해서, 새신자의 믿음이 교회 안에서 깊이 뿌리내리고 놀랍게 성장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도자가 양육까지 책임을 진다면 금상첨화다. 그러나 전도 잘하는 사람 따로 있고 양육 잘하는 사람 따로 있다. 둘 다 잘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다행히 현대 사회는 세분화되어 있다. 전도자와 새신자 속회 양육자를 이원화하여 전문적인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아마 더 좋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새신자 입장에서 배려하고 있는가?’이다.
예1> 예배 순서에 따라 새신자 환영을 위해 새신자를 그 자리에 일어서게 한다든지 목사님 앞으로 나오라고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어색하고 생소한 분위기와 많은 사람의 시선을 받는 것이 쑥스러워서 앞으로 나가는 것은 고사하고 일어서지도 않으려는 사람이 꽤 많이 있다. 그러한 입장을 고려하여 새신자가 누구인지 미리미리 파악해서 예배 후 목사님과 따로 인사를 나누고 기도를 받게 하는 교회도 있다.
예2> 새신자 교육받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도 있다.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나왔기 때문에 새신자 교육으로 장시간 교회의 지체하기가 곤란한 사람도 있다. 이런 분들을 위해서는 집 근처의 양육자가 일대일로 양육을 시키고 문서로 통신 교육을 받게 하는 것도 좋다. 성경, 찬송에 대해 전혀 모르고 주기도문, 사도신경이 무엇인지 모르는 새신자가 눈치껏 1시간 이상을 앉아 있어야 한다. 그들 스스로 깨닫고 터득하여 적응할 때까지의 기간이 새신자에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전도하면서 새삼 느꼈다. 얼마 동안(2주에서 1개월 정도) 새신자를 위한 예배 장소를 따로 마련해 주는 것도 좋을 것이다. 찬송은 부르기 쉬운 것으로 두 번 정도 반복해서 불러 익숙해지게 하고, 기도는 짧게, 말씀은 쉬운 내용으로, 그리고 시간은 40분 정도로 하여 예배가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어야 한다. 새신자 예배실에는 성경과 찬송을 비치해 두고 새신자가 궁금해하는 질문에 설문 형식의 답변서를 작성해서 나누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예배 후 30분 정도 성경 신구약 찾는 법, 주기도문, 사도신경, 성부 성자 성령에 대한 것, 기도하는 법(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렸습니다, 아멘’으로 기도를 끝맺어야 하는지), 많이 쓰는 용어(아멘, 할렐루야 등)설명, 그 외에 구원에 대해, 예배, 헌금, 교회 생활 등 새신자 양육에 필요한 것을 교육한다면 도움이 많이 될 것이다. 새신자 예배, 교육의 총 시간을 대예배 시간과 맞추어서 예배 후 평신도와의 교제 시간을 배려하는 것도 좋겠다.
예3> 신앙이 다른 부모님 몰래 교회에 갔는데 교회에서 집으로 환영 카드나 환영 전화를 해서 곤란을 겪는다던가, 미리 약속도 하지 않고 불쑥 심방을 와서 시부모님과 맞닥뜨려 낭패를 보는 경우가 있다.
예4> 너무 무관심해도 곤란하지만 반대로 너무 자주 연락해서 피곤하게 만들어서도 안된다.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새신자에게 간단한 설문으로 본인의 의사를 묻는 것도 중요하다. (본인이 작성해도 되고 전도자가 작성해서 제출해도 된다.)
눈높이 교육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는 시대이다. 교회의 새신자반 운영을 오랜 신앙 경력의 직분자들이 계획하는 일이 많다. 그분들 대다수가 모태 신앙이나 어려서부터 신앙 생활을 하신 분들이라서 ‘어른이 되어서 교회에 처음 찾아온 새신자의 입장’을 얼마나 이해하고 계획하시는지 퍽 궁금하다. 대부분의 교회엔 새신자 담당자가 있다. 환영, 안내 등의 외형적 담당도 중요하다. 그러나 새신자 상담실을 운영하여 새신자가 궁금해하는 질문에 답해 주는 소책자나 신문(p. 23의 보기 참조)을 만들어 나누어준다든가, 수평 이동 신자가 교회를 옮기게 된 개인적인 사정을 듣고 정착할 수 있도록 따뜻하게 맞아 주는 실질적인 도움도 필요하다. 사도 바울도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라고 말했다. 정말 새신자의 눈으로 보고 배려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