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하나님의 딸로 또 현숙한 여인으로 크게는 지혜로운 여인이 되는 방법을 알고자 하시는 분이면 당연히 알고 가야할 말씀 길다고 안 읽으시면 평생 후회....
함께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샬 롬!!
사무엘상(1 Samuel) 25장 23절∼33절
23 아비가일이 다윗을 보고 급히 나귀에서 내려 다윗의 앞에 엎드려 그 얼굴을 땅에 대니라
24 그가 다윗의 발에 엎드려 가로되 내 주여 청컨대 이 죄악을 나 곧 내게로 돌리시고 여종으로 주의 귀에 말하게 하시고 이 여종의 말을 들으소서
25 원하옵나니 내 주는 이 불량한 사람 나발을 개의치 마옵소서 그 이름이 그에게 적당하니 그 이름이 나발이라 그는 미련한 자니이다 여종은 내 주의 보내신 소년들을 보지 못하였나이다
26 내 주여 여호와께서 사시고 내 주도 살아계시거니와 내 주의 손으로 피를 흘려 친히 보수하시는 일을 여호와께서 막으셨으니 내 주의 원수들과 내 주를 해하려 하는 자들은 나발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27 여종이 내 주에게 가져 온 이 예물로 내 주를 좇는 이 소년들에게 주게 하시고
28 주의 여종의 허물을 사하여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반드시 내 주를 위하여 든든한 집을 세우시리니 이는 내 주께서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심이요 내 주의 일생에 내 주에게서 악한 일을 찾을 수 없음이니이다
29 사람이 일어나서 내 주를 쫓아 내 주의 생명을 찾을지라도 내 주의 생명은 내 주의 하나님 여호와와 함께 생명싸개 속에 싸였을 것이요 내 주의 원수들의 생명은 물매로 던지듯 여호와께서 그것을 던지시리이다
30 여호와께서 내 주에 대하여 하신 말씀대로 모든 선을 내 주에게 행하사 내 주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신 때에
31 내 주께서 무죄한 피를 흘리셨다든지 내 주께서 친히 보수하셨다든지 함을 인하여 슬퍼하실 것도 없고 내 주의 마음에 걸리는 것도 없으시리니 다만 여호와께서 내 주를 후대하신 때에 원컨대 내 주의 여종을 생각하소서
32 다윗이 아비가일에게 이르되 오늘날 너를 보내어 나를 영접케 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33 또 네 지혜를 칭찬할지며 또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오늘날 내가 피를 흘릴 것과 친히 보수하는 것을 네가 막았느니라
사무엘의 죽음은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큰 충격이 되고 ‘정말 이제 우리 나라의 큰 별이 떨어졌구나. 이제 우리는 누구를 바라보며 살아갈까?’하는 아득함도 있었지만, 가장 큰 충격을 받아 휘청거린 사람은 다윗이었습니다.
다윗은 자기를 왕이 되게 기름 부으시고 늘 기도해 주시는 사무엘이 라마 나욧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했는지 모릅니다. 정말 어려운 고비 때마다 라마 나욧을 생각하며 그쪽 하늘을 보면서 ‘하나님의 귀한 선지자 사무엘이 나를 위해 기도하고 계시는데….’하면 얼마나 위안이 되었겠습니까?
그런데 그가 세상을 떠났으니 얼마나 아찔하겠습니까?
저는 언제나 저의 어머니가 장수하시기를 바랍니다. 그저 길이길이 오래 사시기를 바랍니다. 저를 위해 가장 간절히 기도해 주시는 어머니가 오래오래 사시기를 원합니다.
만일 어머니가 돌아가신다면 제가 휘청할 것입니다.
아마 다윗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보다 더 휘청거렸을 것입니다.
더구나 사울은 언제나 사무엘을 두려워했습니다.
‘사무엘의 기도가 있어서 내가 다윗을 건드릴 수가 없구나.’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사무엘이 죽었으니 사울이 이제 더 좋지 않은 쪽으로 용기를 낼지도 모릅니다.
‘이게 네 음성이냐? 내 아들아, 나는 네게 악을 행했으나 너는 내게 선을 행하는구나. 너는 나보다 더 의롭구나.’하고 사울이 울면서 갔지만 또 언제 다시 자기를 죽이러 올지 모른다고 다윗은 생각했습니다.
사실, 사울은 곧 다시 추격해 왔습니다.
엔게디 바위에 다시 쳐들어 와서 굴마다 기름 나무를 넣고 불을 지르면 타 죽지 않습니까? 사울 왕이 아예 다윗을 죽이려고 굴마다 나무를 넣고 기름을 부어 태우면 질식해서 다 죽지 않습니까?
그래서 다윗은 멀리 아라비아 사막 남쪽 지역 바란 광야로 도망을 갔습니다. 피해 갔습니다.
물론 아라비아 사막이지만 전체가 바닷가처럼 모래로 덮인 것은 아닙니다. 간간이 거친 풀과 나무가 있어서 산양들이 그 풀을 뜯어 먹기도 합니다.
그런 곳에서 어렵게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온에 양 삼천 마리, 염소 일천 마리를 가진 한 큰 부자가 있었습니다. 양 삼천 마리와 염소 일천 마리를 가진 것이 무슨 큰 부자냐고 할지 모르지만,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실 때도 양 일백 마리를 말씀하셨습니다. 보통 양을 치는 집의 양이 백 마리인데 양이 삼천 마리이고 염소가 천 마리니 보통 집보다 사십 배나 잘 사는 큰 부자입니다.
그 사람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나발입니다. 그런데 제 생각으로는 이 이름이 호적에 올라간 이름은 아닐 것 같습니다. 나발은 ‘미련하다’는 뜻인데 어느 아버지가 자기 아들 이름을 미련하다고 짓겠습니까?
아마 나발은 이름이 아니라 별명일 것입니다. 호적에는 다른 이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악하고, 성격이 포악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의 부인의 이름은 아비가일입니다. 아비가일은 ‘아비를 기쁘게 하는 자, 아비의 즐거움’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자녀 된 모든 사람은 부모의 근심이 되면 안 됩니다. 부모의 즐거움이 되어야 합니다. 할렐루야!
어떤 면에서 목사는 믿음의 아버지입니다. 여러분은 목사의 근심 거리가 되지 말고 목사의 기쁨과 즐거움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목사도 교우들에게 기쁨과 소망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교인들도 목사에게 근심을 끼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늘 즐거움과 기쁨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아비가일은 용모가 아주 아름다웠습니다. 성경에 아름답다고 했으니까 뛰어나게 아름다운 여자임이 분명합니다. 또 지혜롭기가 한이 없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부부가 되었을까요?
제 생각에는 아비가일 집이 가난해서 그녀의 아버지가 비록 사람은 미련하고 악하지만 큰 부자이기 때문에 나발에게 시집을 보낸 것 같습니다.
나발의 집은 마온에 있었지만 갈멜에서 목축업을 했습니다. 갈멜은 십 황무지와 마온 사이에 있는데, 그 지역이 팔레스타인 지방이기 때문에 나귀와 소, 딸린 약대 같은 것도 많았을 것입니다.
여러분, 수천 마리의 짐승이 풀을 뜯어 먹으면 감당하기가 어렵습니다.
스위스는 전 국토가 초지입니다. 길 모퉁이의 땅에도 풀을 기릅니다. 그래도 풀이 모자라 옥수수를 길러서 그것을 따지 않고 그대로 기계로 다 썰어서 사료로 사용합니다. 소들이 먹는 양은 엄청납니다.
사천 마리, 오천 마리의 짐승이 뜯어 먹으면 몇 만 평의 초장도 잠깐입니다. 그러니까 이쪽에서 저쪽으로 초장의 풀을 다 먹으면 사막에까지 가서 거친 풀도 먹게 합니다.
그러다 보니 나발의 양들과 염소들도 다윗과 600명이 있는 곳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다윗과 600명은 지금 겨우 양식을 먹고 사는데 수천 마리의 양들이 기어다니는 것을 보니 어떤 생각이 나겠습니까?
부하들이 “다윗 대장, 저것들 중에 몇 마리를 잡아 먹읍시다.”라고 아주 보챘을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 앞에서 사는 다윗은 안 된다며 그 짐승들을 보호해 주었습니다. 600명이 한 마리씩만 훔쳐 먹어도 600마리가 없어지는데 그것을 다 막아 주었습니다. 또 양 도둑도 많은데 도둑도 다 막아 주었습니다.
욥기 1장 14절, 15절을 보면, 스바 사람들이 욥의 소와 나귀를 습격해서 종들을 죽이고 다 빼앗아 갔습니다. 17절에 보면 갈대아 사람들이 쳐 들어와서 약대를 훔쳐 갔습니다.
이렇게 도둑떼가 있었습니다.
특별히 당시에는 아말렉 도적이 유명했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읽어보면, 여러 차례 도적떼가 온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600명이 딱 진을 치고 있으니까 엿보지 못하고 그냥 가곤 한 것 같습니다. 다윗의 600명이 담이 되어 준 것입니다.
나발의 목동들은 다윗과 600명 때문에 든든한 마음으로 편안하게 양과 염소를 쳤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어 양털을 깎았습니다.
여러분, 삼첨 마리의 양털을 깎으면 그것이 산더미 같습니다. 그 양털은 비쌉니다. 고운 물을 들여서 파는데 돈 덩어리입니다. 산더미만한 양털이 다 돈 덩어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양털을 깎을 때는 큰 축제를 벌입니다. 형제와 친구, 이웃 사람들을 다 불러서 융숭한 대접을 합니다. 짐승도 많이 잡고 포도주와 무화과, 건포도 등 좋은 것을 다 내어 놓고 잔치를 합니다.
압살롬이 양털을 깎을 때 왕자들을 다 초청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때가 되어서 갈멜에서 양털을 깎았습니다. 그러니 그 큰 부자가 큰 잔치를 벌였습니다.
그 때 다윗이 600명을 생각하고 나발에게 부하들을 보내었습니다. 부하들이 그렇게 고기가 먹고 싶어서 “다윗 대장, 몇 마리 좀 잡아 먹읍시다.”라고 간청하는 것을 막은 것이 마음에 걸리고, 또 지금 먹을 것이 너무 없으니까 부하 열 명을 보내었습니다.
“나발에게 내 이름으로 문안하게. 그리고‘어르신 댁에 복이 임하기를 빕니다. 어르신 댁에 평강이 있기를 빕니다. 어르신 댁의 소유와 모든 것에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원합니다.’라고 인사하게. 그리고 양털 깎는 좋은 날에 우리가 왔으니 무엇이든지 음식을 좀 달라 하게.”
다윗의 부하 열 명이 나발에게 가서 그대로 말했습니다.
그런데 나발이 “아니, 다윗이 누구며 이새의 아들이 누구냐? 요즘 주인 몰래 도망쳐 나오는 종들이 많다고 하더라. 내가 어찌하여 내 떡과 물과 내 목동을 위해 잡은 고기를 어디서 왔는지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주겠느냐?”하면서 냉대했습니다.
우리 어른들 말에 동냥은 주지 않더라도 쪽박은 깨지 말라는 말이 있는데 참으로 나발은 쪽박까지 깨어 버린 것입니다.
열 명의 부하가 모욕을 당하고 다윗에게 가서 그대로 보고했습니다. 다윗은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이백 명은 소유물을 지키고 어른들을 잘 돌보게 하고, 사백 명은 칼을 차게 했습니다. 다윗도 칼을 차고 말했습니다.
“가자! 내가 저들의 소유를 지켜 주고 저들의 담이 되어서 재산을 보호한 것이 하나도 가치가 없구나. 내가 그렇게 선으로 대했는데 그는 나를 악으로 대하는구나. 가자! 가서 그와 그의 집안의 모든 남자를 다 죽여 버리자. 내일 아침까지 남자 하나라도 남아 있으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그래서 나발이 죽게 되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한 사환이 나발의 부인 아비가일에게 말했습니다.
“마님, 큰일 났어요. 다윗과 그 부하들이 우리를 이렇게 도와 주고 우리의 담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잔치를 벌이는 날 그들 중에 열 명이 와서 음식을 청했는데 우리 주인께서 냉대하고 모욕해서 보냈습니다. 다윗이 그것을 못 참아 400명과 함께 무장하여 주인과 주인 집을 멸하러 옵니다. 어떻게 합니까?”
그 때 아비가일이 얼마나 지혜롭게 행동하는지 모릅니다.
잔치 때의 떡 이백 덩이를 준비합니다. 또 제일 좋은 포도주 두 가죽 부대를 마련합니다. 그리고 양 다섯 마리와 볶은 곡식 다섯 세아(한 세아는 7.3리터)
, 그리고 건포도 말린 것 백 송이(이스라엘 포도는 한국의 포도와는 다릅니다. 포도 송이에 송이가 달리고 또 달려서 이스라엘 백 송이는 한국 송이로는 칠백 송이나 팔백 송이에 해당됩니다.), 무화과 이백 뭉치를 빨리 준비해서 나귀에 싣고 다윗이 오는 길목에 나가 있게 했습니다. 그리고 아비가일은 나귀를 타고 조심스럽게 갔습니다.
다윗이 400명을 거느리고 달려오고 있습니다.
아비가일은 나귀에서 뛰어내려 얼굴을 땅에 대고 말했습니다.
“장군이여, 내 남편의 죄를 내게 돌리소서. 내 남편의 이름이 나발인데 이름처럼 미련한 사람입니다. 장군께 무례하게 행한 것을 알지만, 장군뿐만 아니라 원래 누구에게나 미련하게 대합니다. 그러니 개의치 마시고 용서하소서. 나는 장군의 집을 하나님께서 든든히 세우실 것을 압니다. 하나님께서 장군을 생명싸개로 보호하시기 때문에 아무리 원수들이 해치려고 해도 헛수고가 될 것도 압니다. 장군을 해치려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그냥 돌처럼 던져 버리실 것도 압니다. 그리고 훗날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장군을 이 나라 지도자로 세우실 것인데, 그 때 장군이 무죄한 자의 피를 흘렸다는 소리를 들으시면 안 되지 않습니까? 또 장군께서 친히 보수하셨다는 말을 들으시면 마음에 걸리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 모든 물건을 받으셔서 부하들에게 주시고 내 남편의 잘못을 용서해 주소서.”
그 때 다윗의 마음이 차분하게 되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하니 잘못한 것은 나발 한 사람인데 나발 집의 남자를 다 죽이면 자기도 잘못하게 됩니다. 또 왕이 되었을 때 지장이 됩니다. 자기 동족을 죽인 소문이 나면 얼마나 손해가 되겠습니까? 다윗이 아차 하고 깨달았습니다.
“부인을 내게 보내어 내가 오늘 피 흘리지 않도록 해 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리고 아비가일에게 말했습니다.
“오! 부인의 지혜가 놀랍습니다
부인 때문에 내가 오늘 피를 흘리지 않았으니 정말 고맙소.”
다윗은 선물을 받아서 진지로 돌아가고 아비가일은 집으로 갔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교훈은 아무리 하나님의 귀한 사람이라도 실수를 한다는 것입니다. 옥에도 티가 있습니다.
다윗이 얼마나 귀한 사람입니까?
자기를 죽이려고 추격하는 사울 왕에게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그 악을 선으로 갚고, 죽일 수 있는데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피 흘리지 않으려고, 부하들이 사울을 죽이려고 할 때에도 죽이지 못하게 하고 차분하게 하나님 앞에서 귀하게 산 다윗이 나발에게 모욕을 당하니 칼을 뽑아 들고 사백 명의 군사를 이끌고 나발만이 아니라 그 집의 남자들을 다 죽이겠다고, 아이라도 남자는 다 죽이겠다고 혈기를 부렸습니다. 죽여서는 안 될 자기 동족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얼마나 큰 실수입니까?
만일 아비가일이 그렇게 지혜롭게 막지 않았으면 다윗의 일생에 오점을 남겼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비가일을 통해 다윗이 실수하지 않도록 막으신 것입니다.
그렇게 귀한 다윗도 실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다 부족합니다.
터어키에서 처음으로 자동차를 만들었을 때 모두 기뻐하며 1호차에 대통령이 타고 테이프를 끊었습니다. 그 나라의 특등 기사가 운전을 하는데 차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액셀레이터를 아무리 밟아도, 핸들을 아무리 돌려도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보니 기름이 없었습니다. 대통령을 모시고 온 국민이 보는 앞에서 시범 운전을 하는 차에 기름을 채우지 않은 것입니다.
그 회사에서 얼마나 신경을 썼겠습니까? 그런데 기름 넣는 것을 잊어버렸던 것입니다.
사람은 이렇게 부족합니다. 완벽하다고 하면서 부족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우리의 부족을 알고 겸손히 살아야 합니다. 우리 약점을 알아야 합니다.
한 나라 왕이 아름답고 귀한 도자기와 무늬가 새겨진 유리 병을 받고는 너무 좋아서 그 사람에게 큰 상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조금 후에 신하들이 보는 앞에서 깨어 버렸습니다.
“폐하, 이렇게 귀중한 것을 왜 깨어버립니까?”
“내가 나를 아오. 이것을 고이 진열해 두다 보면, 일 하는 아이가 혹시 실수로 이것을 깨는 날이 올 거야. 그러면 귀한 것을 깼다고 당장 죽여버리라고 할 거야. 그래서 도자기 때문에 사람을 죽이게 될 거야.”
도자기 때문에 사람을 죽일까봐 도자기를 깨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 왕은 훌륭한 왕입니다.
자기 약점을 미리 안 것입니다.
사람마다 약점이 다 있습니다. 다윗에게도 약점이 있었습니다. 모세도 혈기를 부렸습니다.
우리 모두 자신의 약점을 알고 조심해서 살기를 바랍니다.
항상 ‘하나님, 하나님.’하며 살아야 합니다.
다윗도 잠시 하나님께서 붙잡아 주시지 않으니 그렇게 큰 살인극을 벌일 뻔했습니다.
“주여, 저도 늘 잡아 주세요.”
이 지용수도 붙잡아 주셔야 합니다.
여러분도 하나님께서 붙잡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항상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역대하 16장 9절에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도와 주세요. 도와 주세요.” 하면 피곤해 합니다.
제 책상에 항상 ‘도와 주세요. 도와 주세요.’하는 편지가 있습니다. 여러 기관에서, 여러 교회에서, 여러 고아원에서 자꾸 도와 달라는 편지가 옵니다. 도와 줄 힘도 없는데 그것을 읽으면 힘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도와 주세요. 도와 주세요.’라고 할 때, ‘좋아, 좋아.’라고 하십니다. 이상합니다.
따라 합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다르시다.”
순간순간 의지하는 자를 사랑하시고 축복하십니다.
늘 의지하며 겸손히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지혜가 얼마나 중한지 모릅니다. 지혜는 죽을 사람을 살리고 망할 사업을 일으킵니다. 할렐루야!
나발만 죽는 것이 아니라 나발의 남자들이 다 죽게 되었습니다. 망하게 되었는데 아비가일 한 사람의 지혜로 온 집안 사람이 다 살았습니다. 아비가일이 얼마나 지혜롭게 말합니까?
장군, 장군 하면서 그 마음을 다 풀어주는 선한 말을 지혜롭게 했지 않습니까? 그래서 멸망할 집안이 살았습니다.
잠언 14장 1절에 『무릇 지혜로운 여인은 그 집을 세우되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자나 남자나 다 지혜를 얻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기도도 지혜롭게 하는 기도는 제가 들어도 힘이 납니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도도 지혜롭게 해야 합니다. 오늘 제가 길에서 보았는데, 예쁜 여 청년이 길 가는 잘 생긴 청년에게 “예수 믿으세요.”하면서 양곡말씀을 주니까 꼼짝 못하고 받았습니다. 그러나 만일 여 청년이 미친 여자의 모습으로 예수 믿으라고 했으면 받았겠습니까?
전도를 해도 지혜롭게, 품위 있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구두를 닦는 소년들이 있었는데,
한 아이는 늘 구두를 닦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했는지 아십니까? “구두 안 닦으세요?”
그런데 한 아이는 늘 손님이 많아서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 아이는 “구두 닦으시지요?”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안 닦으세요?” “그래, 안 닦는다.”
“닦으시지요?” “그래, 닦자.”
말의 지혜가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쌀 가게를 해서 성공한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은 기계로 돌을 없애지만 옛날에는 손으로 돌을 다 주워내었습니다. 그러니까 밥을 먹다가 돌을 씹곤 했는데, 하필이면 돌이 손님 밥에 잘 들어갔습니다. 제가 심방을 가면 제 밥에 꼭 돌이 들어 있었습니다.
기계가 없던 시절에 돌 때문에 가정 주부들이 얼마나 고생했습니까?
그 때 한 사람이 ‘어떻게 하면 쌀 가게가 성공을 할까?’를 고민하다가 ‘옳지, 모든 주부들이 돌 때문에 고생을 하는데 ….’하며 밤새도록 돌을 제거했습니다. 그리고 손님이 올 때마다 말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돌 하나 없습니다. 돌이 나오면 돈을 받지 않겠습니다.”
가정 주부들이 돌 때문에 시아버지와 남편에게 어려움을 당하는데 이 가게에서 쌀을 사서 밥을 하면 돌이 없으니 마음 놓고 쌀을 샀습니다.
‘돌이 없는 쌀이다.’는 소문이 나서 대성했다고 합니다.
같은 쌀 장사를 해도 지혜가 있으면 대성합니다.
그래서 잠언 3장 15절에서 18절에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그 우편 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 좌편 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 첩경은 다 평강이니라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할렐루야!
지혜가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그러면 이 지혜를 어떻게 받습니까?
내가 열심히 공부해서 얻는 것은 지혜가 아니라 지식입니다. 지혜는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하나님께 구하면 받습니다.
야고보서 1장 5절에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역대하 1장을 보면, 솔로몬이 왕이 되었는데, 백성을 다스릴 지혜가 없어서 일천 번제를 드립니다.
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드릴 때 그 번제를 받으시고 하나님께서 물으십니다.
“솔로몬아, 무엇을 원하느냐?”
“지혜를 원합니다.”
그래서 지혜를 얻었습니다. 지혜를 얻으니 최고의 왕이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구해야 합니다.
어느 회사에 세일즈맨 150명이 있는데, 그 150명을 교육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한 지도자가 왔습니다. 회사에 온 지도자는 그 회사에서 가장 뛰어난 세일즈맨 다섯 명을 뽑아 달라고 했습니다. 항상 성공적으로 판매하는 가장 유명한 세일즈맨 다섯 명의 명단이 나왔습니다.
그 다섯 사람은 회사의 모든 사원들이 알고 있습니다. 매달 최고의 실적을 발휘하기 때문입니다.
그 지도자가 다섯 사람을 앞에 세워 놓고 150명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중에, 성공적으로 판매를 하는 이 다섯 분에게 왜 그렇게 판매를 잘하는지 비결을 알려 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는 사람은 손을 들어 보십시오.”
150명 중에 단지 세 명만 손을 들었습니다.
“왜 당신들은 이렇게 잘하는 분이 있는데 그
비결을 알려 달라고 요청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이렇게들 대답했습니다.
“내 일이 너무 바빴습니다.”
“내가 요청한다고 알려 주겠습니까?”
“나는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뛰어난 다섯 사람은 무언가를 알고 있습니다. 판매의 노하우를 갖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판매를 잘하는지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매달 성공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그 비결을 알 수 있을 텐데 묻지 않았습니다. 성공적인 다섯 사람이 있는데도 조금도 도움을 받지 못하고 달마다 손해를 보며 어렵게 장사를 했던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오늘도 예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을 믿으면서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지 않고 자기 머리로 사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 하나님께 구하여서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죄는 남의 등 쳐 먹는 지혜입니다.
뉴욕의 한 큰 보석 가게에 한 신사가 나타났습니다.
“내 아내에게 보석을 선물하고 싶으니 귀한 보석을 주시오. 돈은 상관하지 않아도 되오. 나는 텍사스의 석유 재벌이기 때문에 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오. 비싸고 귀한 보석이면 됩니다.”
제일 비싼 보석을 내 놓았습니다.
“오천 불입니다.”
그 당시 오천 불이면 엄청나게 큰 돈인데, 두말하지 않고 오천 불을 주고 갔습니다.
일주일 뒤에 그 사람이 또 나타났습니다.
“선생님, 어서 오세요.”
“이 보석이 좋다고 내 아내가 하나 더 사오라고 했소. 귀걸이를 만드다고 하오.”
귀걸이를 만들려면 보석이 두 개이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똑같은 것이 없었습니다.
“꼭 이런 것을 구해 주세요. 어디서든지 수소문을 해서 구해 주세요. 돈은 문제가 아니오. 이만 오천 불이라도 줄 터이니 꼭 구해 주세요. 내 아내가 원하는 것이니 꼭 구해 주세요.”
그래서 보석상의 주인은 신문에 광고를 냈습니다. 그와 똑같은 보석을 고가에 사겠다고 광고를 하고 기다렸지만 아무도 가지고 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얼마 뒤에 시카고의 한 부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보석을 갖고 있는데 얼마를 주겠소?”
“이만 불 드리겠습니다.”
그 부인에게 이만 불을 주고 그 보석을 샀습니다.
이제 그 신사가 오면 이만 오천 불을 받고 팔면 오천 불의 이익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신사가 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습니다.
보석상의 주인이 신사에게 속은 것이었습니다. 신사가 그 보석을 오천 불에 사서 이만 불에 판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지혜가 아니라 마귀의 지혜인 것입니다. 그런 지혜는 결국 남을 울리고 자기는 도둑놈이 되고 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자기도 잘 되고 남도 살리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런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그리고 지혜를 얻었으면 지혜를 활용해야 합니다.
10년 전에도‘지혜를 주세요.’ 5년 전에도 ‘지혜를 주세요.’ 오늘도‘지혜를 주세요.’ 77세 때에도 ‘지혜를 주세요.’죽을 때도 ‘지혜를 주세요.’라고 기도만 하면 지혜는 언제 활용합니까?
제가 잘 아는 대학 교수 부부가 있는데 부부가 다 똑똑합니다. 그 부부의 딸이 여중 1학년인데 평균 40점을 받았답니다. 남편도 머리가 비상하고 부인도 유명한 교수입니다. 그런데 딸은 40점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번은 딸을 앉혀 놓고 말했답니다.
“딸아, 너는 하나님의 딸이야. 네 안에 성령님께서 계셔. 성령님께서는 너를 도와 주셔. 성령님이 네 지혜야. 너는 할 수 있어. 이제는 이렇게 해라.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나는 하나님의 딸이다. 내 안에 성령님께서 계신다. 하나님께서 내게 지혜를 주신다.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신다.’이렇게 말을 해라. 그리고 학교에 가라.”
그랬더니 그 다음 학기에 수학을 85점, 영어를 95점, 국민윤리를 75점 받아 왔더랍니다. 한 학기 사이에 그렇게 성적이 오른 것입니다.
‘아,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신다. 내게 지혜를 주셨다. 내 안에 하나님의 영이 계신다.’라고 했더니 성적이 그렇게 올라가더랍니다.
우리 모두 그 교수님의 비법을 활용해 봅시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딸이다. 내 안에 성령님께서 계신다. 하나님께서 내게 지혜를 주셨다.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신다. 나는 잘할 수 있다. 나는 성공할 수 있다.’
아침마다 큰 소리로 이렇게 말합시다. 그러면 아침이 달라질 것입니다.
지혜를 구했으면 활용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아비가일처럼 가정을 살립시다.
그리고 아비가일은 얼마 후에 왕비가 되었습니다. 지혜로우니 최고의 여자가 된 것입니다.
이 밤에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에게 지혜를 충만히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이글은 저희교회 목사님의 설교 말씀입니다.
글을 읽고 단 한 사람이라도 은혜로왔다면
전 이글을 올린 보람이 있습니다.
사실 통신상으로 올려지는 글들이 길다는 것때문에
잘 앍혀지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이거든요.
여러분 늘 승리하시는 하나님의 딸.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