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山日記- 벚꽃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 (櫻花散考)
‘강가에서’ 님의 ‘벚꽃은 피고 또 지는데...’를 읽은 탓일까. 요며칠 아침저녁, 집 앞의 정발산 자락 도로변에서 만나는 벚꽃 群落이 유난히 눈에 띠었습니다. 일산은 서울과의 기온 時差가 대략 4~5일 정도라서 그런지 늦게 피어난 벚꽃 잎이 엊그제부터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피고 지는 벚꽃들을 매일 보게 되니 자연히 이런저런 雜想이 떠오르지만, 되돌아보면 사실상 벚꽃에 얽힌 개인적 추억은 거의 없는 듯싶습니다. 유년 시절을 보낸 고향에는 벚꽃 나무가 없었습니다. 초가집들의 낮은 담장 너머로 피어나던 복사꽃 살구꽃, 혹은 집 뒤 선산(뒷메)에 흐드러지게 피어나던 진달래의 화사함은 아직도 선명하게 그려지는데 벚꽃은 기억 속에 없습니다.
서울에 올라와서도 거의 마찬가지였습니다. 창경원의 벚꽃을 한 두 번 찾아 가 보긴 보았던 것 같은데 한 시절 요란 떨던 ‘밤 벚꽃 놀이’를 ‘연인과 팔짱끼고’^-^ 즐기는 호사는 누려보지 못했습니다. 여의도 윤중로의 벚꽃 핀 길을 찾아 걸어본 일도, 진해의 벛꽃 축제도 가본일이 없습니다.
벚꽃은, 말하자면 나에게 관념으로 파악되는 자연현상의 하나였을 뿐입니다. 마음속 미적 정서가 함께하는 玩賞의 대상이 아니었다고나 해야 할까요.개인적 추억 속에 벚꽃이 不在한다는 사실로만 미루어 보더라도 내 젊은 날의 정서가 얼마나 메말라 있었던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관념으로서의 벚꽃은 일본 체류기간에 더욱 굳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도쿄의 우에노(上野) 공원은 봄이면 벚꽃 군락이 말 그대로 장관입니다. 도쿄에 체류했던 1970년대 중후반, 4월 초가 되면 우에노 공원에는, 좀 과장해서 표현하면 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만큼 행락객이 몰려든 다는 걸 신문지면이나 TV 화면을 통해 확인하곤 했습니다. 우에노 공원 벚꽃 놀이는 그처럼 일본 서민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遊樂이었습니다. 그러나 내 감성을 특별히 자극하는 광경은 아니었습니다.
일본에는 각계 저명인사로 구성된 ‘벚꽃을 바라보는 會'라는, 이상한 이름의 모임도 있는데 올해는 지난 9일 도쿄 신주쿠교엔(新宿御苑)에서 개최됐다고 합니다..61번째인 올해 모임은 아베 (安倍晋三) 수상이 주최했고 일본사회에서 내노라하는 지도층 인사 1만6000명이 참석했다는 소식입니다. 한가한 나라라고 해야 할까, 단결 잘하는, 그래서 무서운 사람들이라고 해야 할까.
벚꽃은 일본의 나라꽃(國花)도 아닙니다. 일본은 나라꽃이 따로 지정돼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일본을 상징하는 꽃은 황실의 문양인 菊花입니다.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Ruth Fulton Benedict: 1887~1948)가 써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일본論의 제목이 ‘菊花와 칼’인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벚꽃 완상모임을 총리가 주최할 정도로 일본인의 벚꽃 사랑이 유난스런 배경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일본인의 성정은 평균적으로 한 순간에 피었다가 빠르게 낙화하는 벚꽃을 닮았다는 俗說이 있습니다. 아니 羞恥를 견디지 못하는 일본인의 기질이 깨끗하게 피고 지는 벚꽃의 속성을 좋아하게 된 것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우리의 나라꽃 무궁화의 속성과는 반대입니다. 무궁화는 천천히 피어 느리게 시들고 서서히 집니다. 이른바 ‘은근과 끈기’로 고난의 역사를 견디며 살아온 한국인의 기질이 무궁화를 닮았다는 해석은 그래서 나옵니다.
어느 쪽이 좋은가. 아니 인간의 삶에 대해 어느 쪽이 더 겸허한 태도인가. 생각 나름, 해석 나름입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벚꽃과 무궁화의 속성을 통해 청소년 시절에 누구나 한번쯤 고민해 보기 마련인 두 갈래의 稚氣어린 인생관- 바로 삶의 족적을 분명하게 남기고 빠르게 사라질 것이냐,아니면 그저 그런 삶을 길게 이어갈 것이냐-에 대한 성찰을 반추해 볼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그야말로 부질없는 散考에 불과하겠지만...
이쯤에서 벚꽃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을 최근에 접한 주변얘기로 이어가겠습니다. 바로 이웃 가정의 사연입니다. 우리 집 맞은쪽에 있는 하얀 단독 주택 마당에는 네그루의 벚꽃나무가 낮은 담을 끼고 서 있습니다. 나무 높이 3~4미터, 줄기 폭 2미터 쯤 되는 이 벚꽃나무는 올해 유난히 곱게 피었습니다.
그 집 주인은 50대 중반쯤인데, 세속적 욕망의 찌거기를 완전히 걷어내지 못한 나의 시각으로는 그는 참으로 부러운 일상을 보내는 사람이었습니다. 20여년을 이웃으로 사는 동안 따로 직장에 나가지 않는 그를 보면서 나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철마다 잔디를 가꾸고 멀끔하게 생긴 애완견을 마당에서 조련시키는 것이 그의 유일한 일인 듯 보였습니다.
그는 출신 환경이 시쳇말로 ‘금수저’였던 모양입니다. 듣기로는 부친으로부터 물려 받은 빌딩 한 채가 서울에 있고 그 임대료가 엄청나 따로 직업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자주 바뀌는 부부의 자가용은 현재 각각 BMW와 폭스 바겐입니다).‘無爲徒食’은 그 의미에 부정적 이미지가 짙지만, 평생 밥벌이에 매달려온 입장에서 보면 사실상 부러운 인생 아닌가- 라고 나는 가끔 생각했습니다.
지난 해 가을부터 그는 전혀 집 마당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몇 달 전부터 가끔 마당 한 쪽에 놓인 의자에 앉아 심한 기침을 하던 그를 떠올리며 장기 입원중일 거라고 지레 짐작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지난 토요일, 잠시 집 문밖을 나왔다가 벚꽃이 화사하게 피어난 마당에서 잔디에 물을 뿌리는 그 부인을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정말 조심스럽게 남편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부인이 실낱같은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죽었어요, 작년 11월에...”- 말을 잊지 못하는 부인의 눈시울이 젖었습니다.
폐암이었다고 합니다. 발병사실이 늦게 발견되어 수술도 못한채 입퇴원을 반복하다가 어느 날 하루 입원한 후 갑자기 숨을 거두었다는 겁니다. 20여 년 동안 이웃으로 산 사람의 죽음을 거의 반년 가까이 까맣게 모르고 지낸 것입니다.고인의 향년은 56세, 부인은 고인 보다 5세 연하라고 했습니다.
고인이 집을 신축한 후 처음 마당에 심은 나무는, 지금의 벚꽃나무 크기보다 조금 작은 매화나무 세 그루였습니다. 해마나 진홍의 꽃이 아름답던 그 매화나무가 어쩐 일인지 4~5년 전에 벚꽃나무로 교체되었습니다. 벚꽃도 아름답긴 하지만 나는 “집 뜰 안에 벚꽃을 키우는 게 아닌데...”라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나 혼자만의 미신일지언정 빠르게 散花하는 벚꽃의 속성이 떠오르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출근길에 집을 나서며 보니 그 집 마당의 벚꽃도 거의 잎이 떨어졌습니다. 흰색과 연분홍이 섞인 꽃잎들이 마당 밖 도로에 속절없이 흝어져 있었습니다. 꽃을 피어낸 봄볕이지만 그 꽃들을 오랫동안 나뭇가지에 잡아 두지는 못하는 구나- 잠시 그런 엉뚱한 상념에 젖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봄볕은, 봄바람은 꽃을 피우고 결국에는 꽃을 지게 합니다. 상념을 확대하면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의 봄볕쯤으로 상징될 수도 있는 경제적 여유는 개인에게 행복을 위한 조건의 하나이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인간의 생명이 담보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웃 '벚꽃 나무 집' 주인의 죽음이 이를 새삼 일깨운 듯 싶습니다.(덧붙임: 귀가길 정발산 자락 포도에는 벚꽃 잎이 눈 발처럼 흩날리고 있었습니다- 4월 12일 저녁 시간에)
첫댓글 일본사람들의 민족성이 말씀하신대로 염치에 대해서 병적으로 집착하니 남태평양에서도 패전이 가까우면 한 번에 자살 했다고 합디나. 한번에 피고 한 번에 지는 벚꽃이 자기들 성정을 닮아서 좋아하는 건가요? 그런데 일본사람들은 삼국시대부터
최근까지 우리를 너무나 잔인하게 대했드군요. 이웃집 얘기를 그리는 것을 읽으며 오 헨리의 작품을 읽는 느낌이었어요.
뒤늦게 나마 그 이웃집 남자의 訃音을 듣지 않았다면 벚꽃을 소재로 삼은 위 글을 쓰지 않았을 겁니다.
벚꽃과 일본인 등에 대해 횡설수설했지만 그냥 세상살이의 무상함에 대한 감상적 에세이라고 이해하시길!
. . . 벗꽃이 일본 국화가 아닌것도 모르고 아는 척 말해서 죄송합니다.
그런데 그 이웃의 얘기 - 우리의 인생도 잠간 핀후 떨어지는 벗꽃 같으니 !
진달래 만발한 능선 걸으시며 - 모두들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
사꾸라가 일본 국화가 아니고
왈캇 성질 냈다가 왕창 수그러드는 그들의 급한 성격(성질?)을 나타낸 꽃이군요.....ㅎㅎㅎ
櫻花散考중에 성도 이름도 모르는 이웃집 중년의 죽음소식이 마음을 숙연케 합니다.
벚꽃 하면 6.25 나던 해 우리 가족(아버지,어머니,나, 누이동생 둘)이
덕수궁 가서 벚꽃 구경하고 분수대 앞에서 사진 찍은 생각이 납니다.
근데 며칠전 우리집 앞 마당에 있는 벚꽃 가지 두개를 톱으로 잘라 버렸습니다.
이유는 벚꽃 가지가 너무 높이 무성하여 그 아래있는 소나무 가지를 말려 죽이기 때문이지요.
잘한 짓인지 못한 짓인지 잘 모르겠지만...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