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구 정릉교회 반지하에 독서실로 개방한 곳. 하교 후 매일 다니던
중학교 2학년 무렵. 입구 관리실 일부에 대여하는 책들이 있었는데, 화보판
천지창조, 출애굽기 류와 박목월, 김형석에세이 류 전집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철학자라니... 당연히 경외감이 들어 전집 열 권을 모두 읽으며 탄복했으나
지금 기억에 남는 것은 없다. 그때 이미 철학박사님의 연세가 50세.
박선화
4일 ·
가방 끈 늘이며 많은 박사/교수들 만나봤는데, 대개 자기 분야 말고는 잘 모른다.
사실 박사란 단어는 그리 적절치 않다는게 내 생각이다. 석/박사 학위란게 “수리 부엉이 발톱 모양 연구” 같은
참으로 협소한 지식들에 평생을 바치는 것이라, 넓을 박자를 사용하는 박사보다는
협(좁을 협)사나, 심(깊을 심)사 라고 부르는게 맞지 않나 라는 생각도 한다.
넓이만큼 깊이 또한 중요한 것이고, 깊이의 누적없는 넓이도 공허한 것이라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박사고 교수라는 이유로, 자신이 경험하지도 못하고 제대로 만나보지도 못한 수 많은 이들의 삶,
더 깊은 지식이 필요한 분야들을 다 아는 척하고 함부로 가르치려 하는 오만을 경계해야 한다는거다.
의사도 법조인도 예술가도. 어떤 직업도 자신이 모든 것을 안다고 나대지 않는데,
신기하게도 가장 다양한 이들을 덜 만나고 특정 분야, 지위의 사람과 자료만 들여다 본 이들일수록
자신감이 넘친다.
요즘 페북에 자주 못들어와 뒤늦게 비판받고 있는 100세 노인 김형석 교수의 칼럼 글을 봤다.
한국 사람들이 너무 일을 안하려 한다고, 노조가 문제라고, 자신의 일제 시대 유학기 일본인의 근면성을
그리워 하는 글이었다. 윤정부의 노동시간 연장에 힘을 실어주고픈 정성스런 마음이 담긴 글이었다.
100세 교수님 역시 인생을 열심히는 살아 오셨겠지만, 격동의 근대사 속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안일하게 살아온 자신들이 어떤 이들의 희생과 고혈 위에서 그것을 누려온 것인지 미안함도 모르고,
세상이 어떻게 변화해 왔고 어떤 구조로 발전해 가는지 경제. 사회학의 기본과 보통의 노동자들의
현실조차 모른채, 좁은 종교관과 문자향의 세계 속에서 여전히 한 세기 전의 가치관을
용감하게 주장하는 것을 보며, 그저 책상머리서 책,자료 많이 뒤적여 지식인/스승 노릇 하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 믿는 삶이 얼마나 큰 교만인가 생각하게 된다
몸 고생도 없이 이리 맘도 편하시니 장수하시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