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철 사건' 계기로 살펴본 선진국의 학교 치안] 학부모라도 함부로 교내출입 못하게 통제
조선일보 | 채성진 기자
12세이하 '홀로 등교' 금지 출입구는 하나로 단일화… 교장·교직원 수시로 순찰
작년 7월 미국 연수를 다녀온 직장인 김모(43)씨는 "미국 초등학교는 외부인의 교내 출입을 지나치다 싶을 만큼 엄격하게 통제한다"며 "주민들에게 '열린 공간'을 제공한다는 명분으로 교정을 개방하는 한국과는 달랐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4학년이던 김씨 딸은 노스캐롤라이나주 채플힐(Chapel Hill) 에스테스(Estes) 초등학교에 다녔다. 김씨는 학부모라도 안내 데스크에서 인적사항과 용무를 밝히고 임시 출입증을 발급받아야 학교에 들어갈 수 있는 시스템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안내 담당자가 몇 학년 몇 반 어느 학생의 부모냐고 묻더니,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곤 이름과 얼굴 사진이 인쇄된 명함 크기의 스티커형 임시 ID카드를 가슴에 붙이라고 하더군요."
김씨는 "교사(校舍) 배치도 외부인이 함부로 교내에 출입할 수 없게 돼 있다"고 했다. 김씨가 보여준 학교 배치도는 학교 건물과 담장이 가운데 정원을 둘러싸고 있는 폐쇄형 구조였고 학교 출입은 정문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정문은 등·하교 시간에만 열리고 나머지 시간에는 굳게 닫힌다. 김씨는 또 "12세 이하의 어린이는 혼자 등교할 수 없게 돼 있고 이를 어기면 부모가 처벌을 받는다"고 말했다.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등교시간에 어머니가 학생 손을 잡고 학교 문을 들어서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에선 학부모나 친지 등 미리 지정된 사람이 아니면 학교를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다. /AFP
김씨 딸은 지금은 서울 송파구 한 초등학교에 다닌다. 김씨는 "가끔 딸아이가 다니는 학교 운동장을 산책하곤 하는데 한 번도 제지를 받은 적이 없다"면서 "교내 후미진 곳에서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는 중·고생들도 적잖이 봤다"고 말했다.
초등생 자녀와 함께 프랑스에서 살다 귀국한 직장인 정모(38)씨는 "파리에선 교사와 사전에 약속하지 않으면 학부모도 학교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정씨는 "아이들 등·하굣길 통제도 엄격하다"며 "학부모나 친척 등 미리 지정된 사람이 아니면 수업을 마친 아이들을 넘겨받을 수 없다"고 했다. 정해진 하교 시간이 지나도 부모가 데리러 오지 않는 학생은 경찰에 인계한다고 했다.
호주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주 주도(州都) 퍼스에 1년 동안 연수를 다녀온 직장인 김모(42)씨는 초등학교 2학년 큰딸이 놓고 간 준비물을 갖다주러 학교에 갔을 때의 기억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탁 트인 교정에 띄엄띄엄 건물이 서 있어 별다른 제지 없이 교실에 들어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교문을 지나자마자 건장한 남자 교사가 다가오더니 신분과 방문 이유를 꼬치꼬치 따져 물었던 것이다. 김씨는 "학부모라고 신분을 밝히자 교실까지 안내한 남자 교사는 내가 담임교사에게 준비물을 넘겨주고 교문 밖을 나설 때까지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봤다"고 했다.
그는 아침 일찍부터 교실에 들어갈 수 있는 한국 학교와 달리 호주 학교는 등교 시간으로 정해진 오전 8시 30분이 돼야 교실 문을 열었다고 했다. 김씨는 "우리나라 학교는 사설 경비업체와 무인(無人) 보안장치에 아이들의 안전을 떠맡기고 있지만 호주 학교는 교장 이하 교직원들이 학교 안팎을 수시로 순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그는 아이들의 안전 관리에 대해 학교장의 '무한 책임'을 제도적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했다. 김씨는 "작은딸이 다니는 서울 서초구의 초등학교는 외부인 출입이 자유로운데 어느 정신이상자가 교실로 들어와 흉기를 휘둘러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떨린다"고 했다.
일본 도쿄 신주쿠에 사는 홍모(45)씨는 올 초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홍씨는 "수업을 마친 아이들은 운동장에 모여 함께 집으로 가는 '단체 하교'를 한다"고 했다. 같은 지역에 사는 아이들을 몇 개 그룹으로 묶어 함께 가도록 하는 것이다. 홍씨의 딸은 1학년임을 나타내는 노란 모자를 쓰고 사는 지역을 가리키는 분홍색 리본을 매단다고 했다. 아이들은 위급한 상황일 때 잡아당기면 경보음이 나는 목걸이를 걸고 다닌다. 홍씨는 "학기 초 2주일 동안 교사들이 그룹의 아이들을 이끌고 집까지 일일이 데려다 주었다"며 "화장실이 급해 단체 하교에서 빠진 아이라도 절대 혼자 보내는 적이 없고, 학부모나 미리 지정한 보호자가 오기 전까지는 학교에서 보호해 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