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이루신 일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마태 21,42)
오늘은 연중 제27주일이자 제56회 군인 주일입니다.
‘軍’이라는 특수하고 특별한 환경에서도 많은 젊은이들이 하느님을 찾고 가까워질 수
있도록 기도와 후원으로 함께 해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요즘 군대가 많이 좋아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가정과 사회에서 부족함 없이 지내오던
많은 젊은이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지난해 해군사관학교 생도들, 승조원들과
9개국 10개 항, 4만여 킬로를 항해하는 110일간의 순항 훈련에 함께하고
돌아왔습니다. ‘군’이라는 낯선 환경에 나름 적응했다고 생각했지만 성당을 떠나
‘배’라는 또 다른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고, 제가 머물렀던 성당의 교우 분들과도
떨어져 있어야 했으니 요즘 군에 입대하는 친구들의 마음과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때문에 110일의 항해 기간이 쉽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하느님을 체험하고
돌아올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기도 하였습니다. 홀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하느님을 섬기는 것보다 익숙한 수백 명의 젊은이들 한 가운데에서 처음에는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처럼 홀로 미사를 봉헌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24시간 흔들리는 배 안에서, 각자의 어려움을 안고 의지할 곳은
하느님뿐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갔습니다.
오늘 복음의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마태 21,42)라는 환호를
체험했던 시간이었습니다. 풍랑에 흔들리는 배에서 제구들을 붙들고 미사를
봉헌해도 하느님을 바라보는 사람들과 함께 있기에, 다른 세상 이야기가 아닌
하느님의 사랑을 이야기할 수 있기에 감사하고 또 행복했습니다.
온갖 시련이 도사리고 있지만 하느님을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광야를 통과한 마냥,
우리는 가장 어려운 공간에서 시간을 보냈지만, 그곳에서 하느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광야에서 ‘내버려졌던 돌’ 같이 보였던 우리의 신앙이
어느새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어 있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하늘과 땅, 바다라는 광야에서 고생하고 있는 수많은 군인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군종 사제들은 이 광야가 사람들을 힘들게만 하는 장소가 아닌
하느님을 체험하는 장소임을 증거하기 위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군인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칠 수도 있는 오늘이지만, 지금도 평화의 파수꾼으로
땀 흘리고 있는 군인들을 잠깐이나마 기억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 군인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알려주시기 위해 늘 애쓰시는 군종교구장님과 모든 군종 사제들이
지치지 않고 주님을 전할 수 있도록, 또 수많은 젊은이가 군 복무 기간을 힘들고
어렵게만 보내지 않고,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필리 4,6)하며
하느님을 만나며 지낼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주시길 청합니다.
글 : 김완수페르펙토 신부 – 군종교구 진해해군성당 주임
보편된 교회를 믿습니다
보편된(카톨릭, catholic) 교회’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여기에서는 일반적 의미를
담은 고유명사로서 ‘가톨릭교회’라는 말과 구분할 것인데, ‘보편적 교회’는
‘가톨릭교회’라고 할 때보다 더 많은 것을 설명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카톨릭(catholic)’’이라는 말은 어원으로 볼 때는 ‘전체성’을 가리키는데,
충만함이라는 의미에서 전체성입니다. 신약성경에 직접적으로 이 단어가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그 의미는 나타납니다. “과연 하느님께서는 기꺼이 그분 안에 온갖 충만함이
머무르게 하셨습니다.”(콜로 1,19) 교회와 관련하여 이 단어가 처음 나타난 문헌은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의 서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곳에 가톨릭교회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의 충만함이고, 교회가 그리스도의 그 충만함에
참여하는 한, 교회는 보편적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시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실 수 있도록 할 때, 거기에 구원의 충만함이 있고,
그럴 때 그 교회는 보편적 교회인 것입니다.
교회의 특징인 보편성이 이렇게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의 충만함에 관련된 것이라면,
보편성은 신앙의 정통성과 관련 있는데, 올바른 진리가 선포되는 곳에 구원이
실현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신앙의 정통성은 신앙 교리의 정통성과 관련 있습니다.
5세기에 레랭의 빈첸시오 성인은 “어디서나, 항상, 모든 이에 의해 믿어지는 것이
보편적(catholic)이다.”라고 말합니다. 또한 신앙의 정통성은 사랑의 정통성과
관련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랑 없는 신앙이란 가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보편성을 사랑의 충만함으로 보았습니다.
한편 보편성이라는 말에는 ‘전 세계에 퍼진’이라는 의미도 들어있습니다.
2세기에 폴리카르포는 가톨릭교회가 하나인 교회로서 ‘온 지상에 퍼져있는 교회’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교회의 보편성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점을 생각하게 합니다.
온 세상에 퍼져있다는 것은 교회가 다양한 문화, 민족, 사람들 속에 있다는 것을 의미
합니다. 가톨릭교회는 이런 다양함이 온 세상에 있는 지역 교회들의 분열 원인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의 풍요로움이 비롯되는 원천이라고 가르칩니다. 물론 그런
다양함 속에서 교회는 일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같은 신앙 안에서 이루는 일치,
같은 사랑 안에서 이루는 일치, 같은 희망 안에서 이루는 일치, 같은 성사 안에서
이루는 일치가 있어야 하고 그 일치의 원동력은 성령이십니다. 일치 안에 다양함이
있고, 다양함으로 풍요로워지는 일치가 있는 그곳에 보편적 교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보편적 교회란 모든 시대와 공간 안에서,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이 그
충만함을 보존하는 곳에 존재합니다. 또, 모든 백성과 모든 문화 안에서
모든 인간을 위하여 그 진리를 증언하는 곳에, 신앙이 인간의 모든 차원과 관련해서
총체적으로 존재하는 그곳에 존재하며, 일치 안에서 최대한 다양성이 있을 공간을
주는 곳에 존재합니다. 그리고 성령 안에서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함을,
항상 새롭게, 항상 더 위대한 것을 듣고 배울 준비가 되어 있는 그곳에 존재합니다.
그래서 교회의 보편성은 거룩함처럼, 하느님의 선물이자 과제입니다.
글 : 최현순데레사 – 서강대학교 전인교육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