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탄핵 표결은 무산되었지만...
12월 3일 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국민 여러분께 호소드린다”는 말로 시작한 윤석열 대통령의 ‘긴급 대국민 특별 담화’로 포문을 연 계엄 선포에는 대통령의 ‘울분’이 담겨져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야당이 정부 출범 이후 22건의 정부 관료 탄핵 소추를 발의했고, 22대 국회에서만 10명째 탄핵을 추진 중이라는 등의 이유를 들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문제는 계엄 선포에 사용된 말이 ‘범죄자 집단의 소굴’ ‘패악질을 일삼은 망국의 원흉’ ‘반국가세력의 준동’처럼 매우 감정적인 표현으로 들린 놀랄말한 말이었다. 그것은 ‘괴물’이나 ‘척결’ ‘처단’ 같은 말은 국가의 공적인 통치행위에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야당의 행동이 도를 넘었다는 것도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자유민주주의 국가 국민들의 기본권인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제약하는 명분이 되기에는 적절치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야당이 “헌정질서를 짓밟고, 내란을 획책하는 명백한 반국가 행위”를 했다는 합리적인 근거나 논리적인 설명은 빈약할 수 밖에 없었다.
대통령의 격한 말들은 국가 헌정 체제를 뒤흔들 결정이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이성이기보다는 감정에 휘둘려진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극단적인 '계엄 선포'라는 결정이 나온 이유도 이해하기가 어렵다.
독일의 법학자이자 정치학자인 '칼 슈미트'가 '정치신학'에서 “통치자란 예외 상태를 결정하는 자”라 한것은 전쟁이나 계엄 같은 중요한 사항을 결정하는 지도자에게는 남다른 통찰력과 진중함을 말하는 것인데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를 보면 그것과는 동떨어진 느낌이든다.
살펴보면 이번 대통령의 계엄선포 처럼 즉흥적으로 이뤄지게 된 데는 대한민국 정치사에는 뿌리가 깊다. 왕정이 아님에도 역대 대통령의 ‘심기’ 맞추기는 주요 정책 결정의 근거가 돼 왔다. 객관적 근거에 기인한 냉철한 이성보다 리더의 주관적 판단에 맞추는 우를 많이 범한 것이다.
결과의 사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은 눈에서 레이저를 쏘는 것으로 그려졌고, 문재인 전 대통령 재임 기간엔 통수권자의 ‘격노’ ‘격앙’ ‘대노’라는 말을 많이 들렸다.
윤석열 대통령도 주변의 말은 듣지 않은 채 혼자서 얘기를 쏟아내고 듣기 싫은 말에는 역정부터 낸다는 얘기가 취임 초부터 있었다. 이번 계엄 선포를 하는 과정에서도 계엄을 반대하는 대다수 국무위원의 의견은 묵살됐다.
국정은 냉철한 판단력과 치밀하고 신중한 분석에 바탕을 둬야 하는 고도의 통치 분야일진데 하물며 계엄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라면 국정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이 통제되지 않은 '분노'나 '울분' 같은 감정에 휘둘려 이뤄진 모습으로 비춰진것은 많은 국민을 착잡하게 했고 실망스럽게 했다.
누구보다 냉철해야 할 대통령이 격정에 휘말린듯 더구나 충동적인 결정을 한 것으로 국민들에게 비춰진것이라면 과연 어떻게 받아드려야 할까?
지도자가 확고한 정치 철학과 소신 원칙의 토대 없이 ‘자신만의 왕국’에 갇혀 자신의 감정대로 ‘판단 착오’를 하고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결정을 내린 대가의 결과는 가장 ‘비정상적 정치 행위’인 대통령 탄핵 표결로 귀결된것이지만 첫 탄핵 표결은 무산되었다.
그리스 신화 속 ‘아테’는 사람의 눈을 가리는 미망의 여신이다. 흔히 대지가 아니라 사람들의 머리를 밟고 다니면서 해 끼치는 저주받은 존재로 영웅이나 군주라고 하더라도 그의 거센 발길을 피할 수 없었다.
거침없이 사람을 쓰러뜨리고 다니는 아테 여신은 맹목성에서 오는 판단 착오를 상징한다. 어리석은 결정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아테 여신이 방문했다’고 표현했던, 미망에 빠지는 순간은 어떻게 찾아오는 것일까? 사람이 잘못된 길을 가게 된 근원에는 ‘욕심’과 ‘분노’가 자리 잡고 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 속 그리스군 총사령관 '아가멤논'은 '아킬레스'가 얻은 ‘전리품’에 눈이 멀어 미망에 빠졌고, 최고의 영웅 '아킬레스'는 ‘정당한 자기 몫’을 '아가멤논'에게 뺏긴 분노에 합리적 판단을 잃어버린다.
“모욕을 받아 가며 그대를 위하여 부와 재물을 쌓아줄 생각은 없다”고 '아킬레스'가 부르짖는 장면은 분노 탓에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미망에 빠진 순간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모든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자세는 대의명분을 갖고 정도의 길을 걷는 것이다. 독일의 법률가요 정치인에 정치 경제 사회 학자였던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소명을 이야기한다.
직업정치가가 권력에 수반되는 책임을 제대로 감당하려면 열정과 책임감, 균형감을 갖춰야 하는데 열정은 대의명분에 대한 헌신이라는 것이다.
헌법학자와 법률가들은 이번 사태를 위헌이자 위법한 행위라고 말하는 사람도있고 아니라는 사람도있다. 위헌이자 위법한 행위이든 아니든 이번 사태를 통해 여야 정치인들이 지녀야 할 대의명분, 걸어야 할 정도에서 벗어나려 한다면 국민적 저항과 심판을 받을 것이다.
'분노'든 '울분'이든 그로 야기된 계엄 선포는 탄핵 표결로 이어졌고 표결은 무산되었지만 앞으로 넘어야 할 격랑의 파고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야권은 지금까지 그러했듯 이 또한 끊임없이 재시도할것이다.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이제 권력을 향한 전쟁은 시작됐다. 그들에게 국민을 생각하고 민생을 걱정한다면 결코 이러지는 말아야 한다. 이 모든것을 잠재울 수 있는 단 하나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집단지성이다. 이제부터는 제대로 보고 냉정하게 판단하자 국가의 명운이 풍전등화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