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13: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여기서부터 12절까지는, 이 세상에서 신자들이 받는 하늘 나라의 지식이 부분적의 것인 사실을 밝힌다. "온전한 것이 올 때"는 내세가 완전히 나타나는 때를 이름이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는 내세가 부분적으로만 알려진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이렇다.
(1) 이 세상은 죄악 세상이니, 죄 많은 인생이 내세의 형편에 대하여 모르는 것이 없을 수 없다. 죄는 곧, 어두움이다. 죄 있는 인간으로서는 별 수 없이 내세에 대하여 전적 이해를 가질 수 없다. 그는 이와 같이 어두움의 벌을 받아야 합당하다. 이 어두움은 그의 성결이 진보함에 따라서 조금씩 벗어진다. 그는 하늘 나라에 대하여 좀 더 알기 위하여 더욱 착한 일을 힘쓰며 성결을 힘쓴다.
(2) 죄 있는 인생으로서는 완전한 계시의 빛을 감당하지 못한다. 예수님께서 거네사렛 호수에서 베드로를 지도하시어 고기를 많이 잡도록 하셨을 때에, 베드로는 말하기를,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하였다 불완전하고 죄 많은 인생은 완전한 지식을 감당하지 못한다.
그는 그런 지식으로 인하여 유해 무익한 반응을 가지게 된 것이다. 가령 우리가 별세할 날자를 알고 살기가 좋을까? 차라리 그 날자를 모르고 사는 것이 좋다. 하나님에게 속한 높은 지식은 도리어 이 세상에 사는 우리에게는 너무 밝은 때문에 가리워져 있다. "하나님은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신다"고 하였으니
어찌 불완전하고 죄 많은 인생이 내세의 전체적 나타남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나님은 사랑이시나, 그 사랑의 어떤 방면은 지금 땅위의 사람으로서 감당하기 어렵다. 병아리가 바깥 세상의 공기에 견딜만치 털이 자라나기 전에는 달걀 껍질 속에서 나오지 못한다. 그것이 바깥 세상에 나온 때엔 물론 바깥 세상이 그에게 유익하고 편리하다.
(3) 인생은 현세에서는 믿음을 연습하기 위하여 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상대하고 움직인다. 롬 8:24에 말하기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라고 하였다. 하나님과 신자의 관계는 영원토록 믿음의 관계니(고전 13:13), 신자로서는 땅위에서 믿는 일을 전무하여야 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 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하였다. 보이지 않는 것을 상대로 하고야, 믿음의 연습과 연단은 생긴다. 벧전 1:7에 말하기를,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