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비봉산(531m)은 충주호(제천에서는 청풍호라고 부름)와 주변의 월악산, 금수산 같은 산악지대를 한 번에 볼 수 있는 대단한 전망대다. 정상 전망대까지 모노레일이 나 있어 편하게 올라갈 수 있다. 뾰족한 첨봉의 정상에 서는 순간, 감탄과 탄식을 금할 수가 없다. 실로 장쾌한 조망의 발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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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봉산에서 바라본 월악산. 석양의 호수에는 황혼이 드리워지고, 하늘에 떠 있는 듯한 전망대 데크는 고도감이 대단하다
할 말을 잊었다. 동작도 잊었다.
눈앞에, 발밑으로 펼쳐진 일대 장관을 믿을 수가 없다. 전국을 숱하게 돌아다니고 온갖 산과 전망대를 가보았지만 이런 곳은 없었다. 그동안 전국 최고의 전망대라고 주장해 왔던 몇 곳들이 갑자기 초라하게 느껴졌다. 거짓말을 했다는 자책감도 밀려왔다. 좁다는 이 땅을 수십년 동안 돌아다녔지만 아직도 모르는 곳이 이렇게 많다는데 경악했다. 나는 지금 충북 제천의 비봉산(飛鳳山, 531m) 정상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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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쪽 방면. 비봉산보다 살짝 더 높은 대덕산(572m) 무릎 즈음에 그 유명한 532번 지방도 호반길이 등고선으로 하얗게 흐른다. 오른쪽 멀리 제천시내가 보인다
제천은 내게 아주 익숙한 곳이다. 그냥 수없이 다닌 정도가 아니라 2008년에는 제천시 의뢰로 <제천의 MTB 코스> 책을 내기도 했다. 그때 제천 일대의 산악지대와 시골길, 오지를 숱하게 누비고 다녔다. 이 비봉산 아래의 이국적인 호반 구릉지도 코스로 소개했지만 산이 너무 급준해서 자전거로 오를 생각은 하지 못했다. 비봉산은 이름처럼 봉황이 날개를 펼치기 직전의 모습처럼 고고한 독립 첨봉을 이뤄 천연의 전망대를 타고 났지만, 접근이 힘들다면 의미는 반감된다. 그런데 이 비봉산을 편하게 오를 수 있는 길이 생겼다. 정상까지 쉽게 갈 수 있는 모노레일이 조성된 것이다.
충주호의 미학
사실 이곳이 목적지는 아니었다. 태백과 영월을 오가는 길에 문득 비봉산에 모노레일이 조성되었다는 조용연 님의 ‘한국의 강둑길’(2014년 10월호) 글이 생각나서 한번 타보고 싶었다. 귀경하는 길이라 오후 늦은 시간이었고 곧 해가 질 참이었다. 드물게 뾰족한 침봉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충주호의 경관은 어떨까, 호기심을 자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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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동쪽 조망. 바로 아래에 청풍대교와 청풍문화재단지가 있고, 그 뒤로 깊은 골짜기와 가파른 능선을 가득 거느린 금수산(1016m)이 우뚝하다. 오른쪽 멀리 빨간 트러스 구조의 옥순대교가 보인다
우리나라는 산이 많고 강이 발달해 자연 호수가 드물다. 평야지대에 수없이 많은 저수지와 산간지대에도 흔하게 있는 호수들은 대부분 둑이나 댐을 쌓아서 생겨난 인공호수들이다. 산악지대의 호수는 특히 경치가 아름다운데, 국토의 한 가운데 내륙 깊숙이 자리한 충주호는 전국을 통틀어 단연 경치가 빼어나다. 호수 주변으로 월악산과 금수산 같은 바위산들이 포진하고 있고 인구밀도가 적어 자연이 잘 보존된 덕분이다. 호수의 규모도 엄청나다. 1985년 완성된 충주댐으로 인해 생겨난 호수는 면적이 울릉도와 맞먹는 67.5㎢에 저수량은 27억5천톤으로 국내최대의 소양호(29억톤)에 버금간다. 충주댐에서 호수의 끝자락이라고 할 수 있는 단양까지 물길이 무려 60㎞에 달한다.
충주호는 물도 맑다. 호수의 상류는 오염되지 않은 강원 내륙지방이고, 주변에는 큰 도시가 없어 항상 맑은 물이 유입되기 때문이다. 호수 근처에는 도시는 고사하고 마을도 드물어 고즈넉한 느낌마저 준다.
호수 주변으로 월악산(1094m)과 금수산(1016m) 같은 바위산들이 포진하고 있어 山·水가 어우러진 실로 진경산수화를 빚어낸다. 제천시 금성면에서 충주시 충주호리조트까지 이어진 41㎞의 호반길은 전국의 호반길 중 가장 길고 아름답다. 절반은 비포장 상태여서 자연스럽고 정겨운 분위기도 뛰어나다.
호수의 이름은 조금 난감하다. 공식적인 명칭은 충주호지만, 호수의 2/3 정도가 포함된 제천시는 ‘청풍호’를 고집해서 지역 갈등의 소지가 되고 있다.
산과 물만 보이는, 진정한 일망무제
이제, 이 모든 것을 비봉산 꼭대기에서 편안하게 바라본다. 특히 압권은 월악산 방면의 남쪽이다. 호수에 잠긴 낮은 산줄기가 울퉁불퉁 불규칙하게 펼쳐진 모습은 생선 내장처럼 징그럽기도 하고, 동글동글 귀엽고 친근하기도 하다. 이런 풍경의 맨 끝에는 월악산이 하늘을 찌를 듯이 가파르다. 월악산 뒤편으로는 문경새재를 끼고 있는 영남의 관문격인 주흘산(1106m)~조령산(1025m) 능선이 아스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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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쪽 방면 안내판. 마미산, 감악산, 용두산의 위치가 틀렸다. 감악산으로 표시된 곳은 치악산 남대봉(1181m)이다
북쪽으로 호수 건너편에는 호반길 코스로 유명한 532번 지방도가 대덕산 허리를 일정하게 가르며 인공의 등고선을 긋고 있다. 제천시내는 주변에 높은 산들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데, 서쪽(왼쪽)부터 구학산(983m)~감악산(954m)~석기암산(906m)~용두산(871m)~송학산(818m)의 장대한 연봉이 산악지대의 면모를 대변한다. 전망대에는 조망 풍경을 설명하는 안내판이 있지만 일부가 잘못 되어 있다.
다행히 대기가 깨끗해 북쪽 까마득히, 40㎞의 거리를 두고 원주 치악산 비로봉(1288m)을 알아볼 수 있다. 비로봉에서 남대봉(1181m)에 이르는 치악산 주능선 왼편에는 제천에서 가장 깊고 넓은 백운산(1087m)이 둔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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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상 서쪽 방면으로 설치된 행글라이더 이륙장. 남자 뒤편은 충주 방면의 면위산(780m)이다
동쪽으로는 제천 최고의 명산인 금수산(1016m)이 빼어난 자태를 드러내고, 그 아래로는 단양 방면으로 이어지는 물줄기가 산협의 틈을 비집는다. 가까이는 하얀 사장교를 이룬 청풍대교가, 멀리는 새빨간 철교인 옥순대교가 협곡을 건넌다.
한껏 내려선 태양 때문에 서쪽은 시야가 가렸다. 저 어디쯤인가 충주시가 있을텐데 시내는 물론 충주의 장벽이 되어주는 계명산(774m)과 금봉산(남산, 636m)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윽고 태양은 호수를 황금빛으로 물들이며 하룻밤의 이별을 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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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쪽 도곡리에서 바라본 비봉산. 이름처럼 봉황이 날개를 펼친 듯 하고, 정상은 날카로운 첨봉을 이룬다
스릴 만점의 모노레일
비봉산을 오르는 모노레일도 흥미진진하다. 모노레일이라고 하면 최첨단 분위기를 풍기지만 급경사를 오르기 위해 기어가 맞물려 움직이는 전동식 레일 시스템과 반쯤 카울을 씌우고 말처럼 가랑이에 끼고 앉는 객차는 다소 조악한 느낌을 준다. 6명이 탈 수 있는 객차는 놀랍게도 거의 절벽처럼 느껴지는 50도 경사를 잘도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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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명이 탈 수 있는 모노레일 객차는 가파른 경사면을 천천히 오르내린다. 1.5㎞ 편도구간에 23분 걸린다
1.5㎞ 구간을 오르는데 23분이 걸리니 속도는 시속 4㎞를 겨우 넘지만 뒤로 넘어갈 듯 가파른 오르막과 앞으로 쏟아질 듯한 내리막은 롤러코스터 못지않게 스릴 넘친다.
정상의 전망대 옆에는 행글라이더 이륙장이 마련되어 있다. 산록의 경사가 급하고 뾰족한 침봉이어서 몸으로 느껴지는 고도감이 상당하다.
산정에서 얼마나 서성였을까. 봉황 머리 꼭대기의 신선놀음에 세속의 시간을 잊었다.
찾아가기
수도권에서는 중앙고속도로 남제천IC에서, 남부지방은 북단양IC에서 빠져 청풍문화재단지 방면으로 가면 된다. 두 IC에서 비봉산을 오르는 청풍호 관광모노레일까지는 각 20㎞ 정도. 중간에 거쳐 가는 청풍문화재단지 일대에 숙식 장소가 많다.
※ 청풍호 관광모노레일(비봉산) : 충북 제천시 청풍면 청풍명월로 869-17
문의 043-642-3304, 3326. 성인 왕복 9천원. 09~18시 운영(동절기 17시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