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 풀어낸 무용지용의 조형미학
(예원 박영란 작가의 작품세계
정태수(한국서예사연구소장)
꽃은 예로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화가들이 즐겨 그린 주제였다. 특히 동아시에서는 꽃과 풀을 소재로 삼은 ‘화훼화’라는 독특한 양식의 그림이 전해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꽃그림에 등장하는 꽃에는 상징적인 의미가 내함되어 있다.
꽃의 상징성을 전하면서 화려한 색채를 가미한 그림으로 자신만의 조형언어를 굳건히 다져가는 예원 박영란 작가. 작가는 각종 공모전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작가로서 이름을 알렸고, 꾸준한 창작활동과 독특한 꽃그림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면서 주목받고 있다.
근작에서는 봄과 여름에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꽃 중에서 목단, 연꽃, 장미, 등꽃, 해바라기, 능소화 등을 선보이고 있다. ‘夏心’과 ‘더불어 함께’란 시리즈를 통해 계절의 미감과 작가의 마음을 등치시킨 상징적 조형언어는 작가의 성숙된 조형세계를 보여준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 말처럼 아무리 화려한 꽃도 열흘을 넘기지 못할 정도로 꽃이든 사람이든 영원한 존재는 없다. 작가는 이렇게 짧은 한 계절-여름날 혹은 봄날-에 잠시 우리 곁에 머물다 가는 꽃을 기억하면서 우리에게 그 꽃이 지닌 상징성과 의미를 그만의 조형언어로 감상자들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몇 작품을 통해 작가의 조형메시지를 읽어보자.
예컨대 모란은 꽃 중의 왕 (花中之王)이라 일컬어질 만큼 모양이 아름답고 훌륭하여 부귀화(富貴花)라 불린다. 건강과 부귀는 보통사람들의 꿈이다. 이런 소박한 희망을 화폭에 옮겨 감상자의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건 화가의 몫이다. 화면 중앙에 기댄 듯 두 송이 모란이 위를 향해 수줍은 자태를 드러낸다. 하나와 하나가 모여 둘이 된다. 둘은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부족함을 채워나간다. 화면 위로 치솟은 가지도 서로를 마주보게 배치하여 공간경영을 함으로써 하나로 마음을 모아 부귀장수를 추구하려는 작가의 화의가 엿보인다.
연꽃은 순결이란 꽃말을 지니고 있다. 유가에서는 연꽃을 그 고결한 자태로 인해 혼탁한 세태에 물들지 않는 고고한 군자의 풍모를 가지고 있다고 하여 시인 묵객들이 즐겨 그렸다. 연꽃의 속성 가운데 불여악구(不與惡俱)란 말이 있다. 연꽃잎에는 결코 한 방울의 오물도 머물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슬이나 빗방울이 잎에 모여도 잠시 후면 흔적도 없이 쏟아버린다. 바로 악에 조금도 물들지 않은 청정한 삶을 비유한 것이다. 작가는 화면 좌우에 만개한 연꽃 두 송이와 가운데 막 피려는 한 송이를 배치하였다. 꽃잎은 몇 개의 선으로만 묘사하고 연밥과 연꽃만 색으로 채웠으며 배경의 담채 연못에는 이백의 시 ‘파주문월(把酒問月)’ 구절을 전서로 써놓았다. “하늘에 달 있은 지 그 언제부터던가/나 이제 술잔 멈추고 달에게 묻노라/사람은 저 달 잡을 수 없지만/달은 도리어 사람을 따르는구나...”달의 영원성에 비겨 인생의 무상을 은유적으로 드러낸 시가 그림과 어울려 그 고아한 풍모를 잘 살려내는 듯하다.
해바라기는 순결, 기다림이란 꽃말이 있다. 해바라기는 하루 종일 태양의 움직임을 따르다 줄기는 해가지면 다시 동쪽을 향해 다음날 태양을 기다린다. 이런 속성으로 인하여 긍정과 기쁨과 따뜻한 부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중국에서는 충절, 장수, 행운을 상징한다. 작가의 작품에서는 강렬한 색채와 수많은 영적, 철학적인 조형어법으로 의경을 확장하고 있다.
능소화(凌霄花)는 하늘을 업신여기며, 하늘을 능가하는 꽃이란 의미가 있다. 열정, 용기, 소원, 그리움이란 꽃말처럼 강렬한 여름에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꽃이다. 전설에 소화란 궁녀가 임금의 사랑을 받아 빈에 올랐는데 모함으로 임금의 총애를 잃어버리고 임금을 그리워하며 쓸쓸히 생을 마감하며 담장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생을 하직한다. 그 뒤 해마다 여름이면 고운 자태로 꽃을 피운다고 한다. 화면의 하단부 푸른 하늘에 상단부에서 세 무더기로 드리워진 붉은 능소화가 드리워져 음양이 조화되고 여백이 극대화된다. 색채감과 여백 그리고 꽃말이 주는 중의(重意)의 상징과 은유는 감상자의 가슴과 눈까지 시원하게 한다.
이와 같이 작가는 평범한 꽃이나 식물을 화면에 옮겨 그만의 조형어법으로 의경을 넓혀나가고 있다. 이는 <장자>의 「인간세(人間世)」에 나오는 쓸모없는 걸 쓸모있게 하는 무용지용(無用之用)의 미학세계와 유사하다고 여겨진다. 붓으로 표현한 먹선에 여백의 공명이 더해진 작가의 화면은 필묵의 본질을 견지하면서 담채의 기량이 얹혀 기운생동이 생성된다. 화면에 보이는 건 꽃이지만 꽃의 이면에 내포된 작가의 조형언어를 눈여겨보아야 그의 진면목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작가는 흔히 동양화론에서 언급하는 그림의 세 단계, 상형(常形-사물을 그대로 그리는 것)을 넘어 상리(常理-일상의 이치)를 화면에 표출하고 있으며, 조만간에 상외(象外-일상을 벗어난 초극)의 경지를 향해 나아갈 것으로 살펴진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늘 앞을 보고 쉼없이 걸어가길 응원한다.
2023. 8. 1.(681)
日損齋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