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갤러리메르헨, 김영빈 개인전 '고요한 잔상'
유형 : 대전전시회
날짜 : 2026년 3월 26일~4월 7일
관람시간 : 10:30 ~18:00
장소 : 갤러리메르헨, 대전 유성구 대덕대로 556번길 87
문의처 : 갤러리메르헨 042-867-7009
[전시회소개]
사라진 시간과 남겨진 사물의 표면을 흐르는 빛과 침묵의 결을 기록한 전시에 초대합니다.
이 전시는 공간에 응축된 기억의 온도와 낮은 호흡으로 흐르는 시간의 밀도를 조용히 마주하는 자리입니다.
김영빈 - bryond, 100×150cm,pigment print,2023
김영빈 - bryond, 100×66cm,pigment print,2022
김영빈 - bryond, 100×66cm,pigment print,2022
[김영빈 작업노트]
고요한 잔상 Quiet Afterimage
반복된 노동의 일상이 지속되던 이곳은 우리 기억에서 잊힌 채, 시간의 결을 고스란히 축적하고 있다. 부서진 벽과 바닥, 녹슨 구조물들은 시간의 흔적을 증언하듯 현재의 시간과 뒤엉켜 퇴적되며, 과거의 시간을 오늘의 얼굴로 드러낸다.
공간의 골조와 벽면에 새겨진 미세한 흔적들은 한때 이곳을 채웠을 노동의 강도와 시간을 암시하며, 형체 없이 배어 있는 이름 모를 존재들의 손길과 숨결은 여전히 이곳에 잔존하는 듯, 나의 시선 속에 머무는 이 모든 것은 이미 소멸한 대상이 아니라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존재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리하여 이 공간은 나에게 적막함보다는 차분함으로, 차가움보다는 오히려 따뜻한 온기로 감각된다.
비록 텅 빈 곳일지라도 그 안에서 삶을 이어갔던 존재의 흔적을 감지하는 순간에 나의 작업은 단순히 ‘과거를 재현하는 일’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잊히고 지워진 누군가의 존재와 그들이 통과한 시간을 현재로 호출하여 이를 시각적으로 표상하는 과정이다.
사진 속에는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어렴풋한 빛과 기능을 잃어버린 공간의 구조, 빛바랜 표면과 남겨진 사물들이 그 자리를 채운다. 이 비어 있음은 부재의 증명이 아니라, 오히려 이곳을 거쳐 간 수많은 존재를 역설적으로 환기하고 있다. 결국 나의 사진은 이곳에서 삶을 이어갔던 이들의 흔적과 소멸한 존재의 잔여를 추적하는 시도이다.
나는 그들의 노동과 피로, 희망과 좌절, 안정과 불안이라는 인류 보편의 감정을 묵도한다. 산업화의 거대한 서사는 흔히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지만, 그 이면에는 개인의 희생과 침묵의 서사가 공존한다. 기록되지도, 진술되지도 못한 채 남겨진 침묵을 통해, 과거의 시간이 현재의 공간 안에서 어떻게 지속되고 있는지를 탐색하는 것이 이 작업의 핵심이다.
결국 이 작업은 한 시대를 구성했던 가치와 의미가 오늘날 어떤 방식으로 다시 해석되고 생각되어야 하느냐는 질문을 던지는 일이다.
김영빈 - bryond, 40×26cm,writing prompt box,2022
김영빈 - bryond, 50×33cm,pigment print,2024
김영빈 - bryond, 50×33cm,pigment print,2025
글/ 박이찬 (사진매체 편집자)
한때 기계의 소리와 사람들의 발걸음이 쉼 없이 교차하던 이 공간은 이제 정지된 채, 빛과 먼지, 그리고 사물의 표면 위에 쌓인 시간만을 남겨 두고 있다. 그러나 김영빈의 <고요한 잔상> 전시는 폐허의 풍경만을 그리지 않고 있다. 작가는 붕괴의 현장을 사실적으로 부각하기보다도 그 안에 응축된 시간의 밀도를 그녀만의 낮은 호흡으로 드러내며 시선 또한, 외부에서 내부를 응시하는 관망자의 위치가 아니라, 공간 안으로 들어가 그 공기와 같은 높이에서 숨을 고르는 태도가 이 작업의 출발점이다.
낡아 버려진 피아노 건반은 이미 소리를 잃었지만, 그 위에 스며든 얼룩과 빛의 얇은 막은 한때 울려 퍼졌을 음의 잔상을 떠올리게 한다. 건반의 수평적 리듬은 안정된 구조를 보이며 표면 위를 가로지르는 시간의 자국과 색의 농도는 시간의 침식을 증언하고 있다. 이때 그녀의 사진은 사물을 사실적으로 고발하지 않는다. 오히려 표면에 남겨진 흔적을 통해, 소리를 잃은 악기가 어떻게 기억의 장치로 변모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작업에서 전반적으로 보이는 낮은 채도는 감정을 자극하기보다 가라앉히며, 관람자를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깊숙이 가라앉아 숨는 ‘침잠’의 상태로 이끈다. 이는 김영빈의 시선에서 사건은 부재하지만, 시간은 농밀하게 존재한다고 말하는 사진적 태도이다.
창을 향한 또 다른 장면에서도 우리는 작가의 시선이 지닌 윤리적 태도를 더욱 또렷하게 감지할 수 있다. 덩굴이 시간의 흔적을 남기며 벽을 타고 오르고, 역광 속에서 형체가 분명하지 않은 실루엣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인물 없이 오브제가 등장하지만, 그 인물의 부재는 강한 존재감을 형성하는데 이는 공간을 대상화하거나 외부의 시선으로 판단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처럼 작가는 바깥에서 안을 훔쳐보지 않는 대신 그녀는 내부에서 창을 마주하며, 빛과 그림자가 이루는 관계 속에서 사라진 존재의 시간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 작업에서 빛은 그녀의 시선에서 극적이지는 않는다. 단지 버려진 사물과 벽, 먼지와 균열을 부드럽게 감싸는 매개로 기능한다. 낮은 온도의 햇살은 공간을 찢지 않고, 오히려 그 안에 남아있는 미세한 온기를 드러내고 있다. 곰팡이가 핀 벽과 낡은 집기, 먼지가 쌓인 바닥은 파괴의 증거라기보다 시간의 축적을 보여주는 표면으로 전환 시키며 작가는 그 표면 앞에서 오래 머무르고, 오래 바라보며, 사물이 긴 세월 그녀들의 이야기를 스스로 말하도록 기다리고 있다. 기술적으로는 얕은 심도를 활용한 레이어의 중첩이 화면을 구성하고 있다. 전경과 후경은 명확히 분리되지 않고, 또렷함과 흐릿함이 서로 스며들며 시간의 층위를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이 중첩은 계산된 효과를 드러내지 않으며 초점의 선택은 과장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동하며, 기억이 떠오르는 방식과 닮은 구조를 만들고 있다. 그녀의 사진에서 선명함은 언제나 부분적이며, 흐림은 결핍이 아니라 또 다른 존재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김영빈의 이러한 사진적 태도는 산업화의 거대한 서사를 직접적으로 비판하기보다도 그 안에서 소리 없이 흘러간 개인의 시간을 조용히 호출하는 방식으로 드러난다. 성장과 발전의 언어가 찬란하게 기록된 자리에서 작가는 말해지지 못한 감정과 침묵의 기억을 더듬고 있다. 그녀는 폐허를 미학적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으며, 잔해를 통해 인간의 존엄을 기억하기를 바라는 미적 언어이기에 과거를 복원하려는 시도가 아니며 과거가 현재의 감각 안에서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지를 묻고 있다. 이는 삶의 시간이 정지된 공간, 그 안의 시간은 여전히 흐르고 있음을 빛과 사물, 흐림과 초점의 관계 속에서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따라 걷게 된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작가의 시선은 언제나 낮은 자리에서 조용히, 그러나 흔들림 없이 존재의 흔적을 바라보고 있다.
김영빈 - bryond, 80×53cm,pigment print,2022
김영빈 - bryond, 80×53cm,pigment print,2024
문화가 모이는 곳 "대전공연전시" http://www.gongjeo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