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시시인회 신작발표회 제290호 개최…봄날의 시심, 스승을 기리다
서울 인사동의 한 식당에서 11일 오후 3시, 청시시인회(廳詩) 신작발표회 제290호가 열렸다. 매달 둘째 주 토요일마다 이어져 온 이 모임은 시를 사랑하는 문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작품을 발표하고 낭독하며 서로의 감성을 나누는 자리로, 이날 역시 봄기운이 완연한 가운데 깊은 울림과 교감의 시간이 펼쳐졌다.
청시시인회는 고(故) 김송배 시인의 제자들이 중심이 되어 이어오고 있는 문학 공동체다. 생전 김 시인은 계간 『시원(詩苑)』의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활동하며 수많은 후학을 길러낸 한국 시단의 숨은 스승이었다. 조용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제자들을 지켜보던 그의 모습은 여전히 참석자들의 기억 속에 또렷하다.
이날 발표회는 스승을 기리는 낭독으로 문을 열었다. 김송배 시인의 「봄 볕」이 낭송되자, 참석자들은 잔잔한 호수 위로 내려앉은 봄빛처럼 따뜻한 정서를 함께 나눴다. 시는 겨우내 얼어붙었던 마음을 녹이며 새 생명의 환희를 노래했고, 그 울림은 고인의 문학정신을 다시금 되새기게 했다.
이어 참석한 정순영 시인은 「입 맛」을 통해 삶의 고단함 속에서도 자연과 소박한 음식이 주는 위로를 담담히 풀어냈다. 지리산 화개골의 봄나물과 막걸리 한 사발로 되살아나는 삶의 기운은 참석자들에게 깊은 공감을 안겼다.
이 밖에도 강명숙 시인의 「봄 소풍」, 권용익 시인의 「봄맞이」, 김미외 시인의 「나도 너처럼」, 김태수 시인의 「풀꽃의 언덕」, 박호식 시인의 「춘삼월이면」, 박후자 시인의 「자유의 고향」, 방지원 시인의 「초록의 문턱」, 이순재 시인의 「서울 남산」, 임길성 시인의 「정동진역에서」, 최명숙 시인의 「백미」, 황인선 시인의 「도시의 봄」 등 다채로운 작품들이 발표되며 봄날의 정취를 한층 풍성하게 했다.
특히 이날은 ‘이생진 시인 탐구’ 시간도 마련돼 의미를 더했다. 평생 바다와 섬을 노래하며 고독과 가난 속에서도 시인의 길을 걸어온 이생진 시인은 지난해 향년 96세로 별세했다. 그의 대표작 「술에 취한 바다」가 낭독되자, 담백하고도 진솔한 시어 속에 담긴 삶의 본질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꾸밈없는 독백체로 인간과 자연의 경계를 허무는 그의 시 세계는 세대를 넘어 깊은 공감을 이끌어냈다.
참석자들은 “이생진 시인의 시는 화려하지 않지만 삶의 맨 얼굴을 보여주는 진실성이 있다”며 “그의 시가 오래도록 사랑받는 이유”라고 입을 모았다.
한편, 이날 발표회는 봄비가 지나간 뒤 벚꽃이 지고 연둣빛 잎새가 돋아나는 계절의 변화 속에서 진행됐다. 자연의 순환과 생명의 근원을 되새기는 이들의 시심은 저녁 노을처럼 잔잔히 번져갔다.
청시시인회 관계자는 “이 모임은 단순한 창작 발표를 넘어 스승의 문학정신을 계승하고 서로의 삶을 나누는 공동체”라며 “앞으로도 시를 통해 사람과 사람을 잇는 따뜻한 자리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박호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