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2일(토) 에스더 6:10-14 찬송 315장
10. 이에 왕이 하만에게 이르되 너는 네 말대로 속히 왕복과 말을 가져다가
대궐 문에 앉은 유다 사람 모르드개에게 행하되 무릇 네가 말한 것에서
조금도 빠짐이 없이 하라
11. 하만이 왕복과 말을 가져다가 모르드개에게 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
성 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되 왕이 존귀하게 하시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니라
12. 모르드개는 다시 대궐 문으로 돌아오고 하만은 번뇌하여 머리를 싸고
급히 집으로 돌아가서
13. 자기가 당한 모든 일을 그의 아내 세레스와 모든 친구에게 말하매 그 중
지혜로운 자와 그의 아내 세레스가 이르되 모르드개가 과연 유다 사람의 후손이면
당신이 그 앞에서 굴욕을 당하기 시작하였으니 능히 그를 이기지 못하고
분명히 그 앞에 엎드러지리이다
14. 아직 말이 그치지 아니하여서 왕의 내시들이 이르러 하만을 데리고
에스더가 베푼 잔치에 빨리 나아가니라 (개역 개정)
오늘 말씀은 스스로 자신을 높이던 하만은 낮아지고
묵묵히 기도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던
모르드개가 가시적으로 높아지는 반전의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어제 말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자기 착각 속에 빠져
모르드개를 높이는 역할을 자처하게 된 하만은
아하수에로 왕의 명령에 따라 모르드개가 탄 말의 고삐를 잡고
성안의 거리를 다니며 모르드개의 공적을 칭송하는 일을
떠맡을 수밖에 없었다.(10-11절)
이와 같은 수치를 당한 하만은 번뇌하면서 집으로 돌아온 후에
즉시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의 사정을 하소연하였지만
더 이상 그들은 하만에게 아부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마 그들은 모르드개의 격상된 위치를 보고
그를 처형시키도록 부추긴 자신들의 처사로 인해 위기 의식을 느껴(5:14)
재빨리 모르드개의 편을 들기로 작정한 것 같다.(12-14절)
이러한 내용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푸른 초장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며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신다는 사실을 교훈 받을 수 있다.(시23:1-6)
우리들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 하지 않는 것은
바로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해 주시며
수치를 당하지 않도록 해 주시기 때문이다.(시25:1-3, 사29:23)
또한 우리는 생각지도 않은 시점에 생각지도 않은 방법을 통해
당신의 백성을 높이시는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를 신뢰함을 통해서
언제·어떤 상황 속에서든지 담대한 믿음의 자세를 지닐 수 있다.(사43:1-2)
12절) 「모르드개는 다시 대궐 문으로 돌아오고 하만은
번뇌하여 머리를 싸고 급히 집으로 돌아가서」
모르드개는 다시 대궐 문으로 돌아오고
하만은 번뇌하여 머리를 싸고 급히 집으로 돌아갔다.
두 사람의 아주 대조적인 모습이다.
하만은 자기가 왕후 에스더의 잔치에 초대받아
갔다 돌아왔을 때만 해도 친구들을 모아 자랑하고 기고만장했다.
그런데 그러한 기세가 일거에 꺾이자 그만 심히 낙망하였다.
하만의 감정의 기복이 대단히 심함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모르드개는 전혀 예기치 못한 큰 영화를 입었지만
가정으로 돌아가지도 않고 친구들을 불러모으지도 않았다.
그는 본래의 자기 자리인 대궐문으로 돌아갔다.
성경은 그가 어떤 기분이었는지 일절 말해 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자기의 본래의 자리로 돌아왔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그는 큰 영광과 명예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들뜨지 아니하고 차분함을 유지하였음이 분명하다.
사실 사람이라면 모르드개의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 때
기분이 들뜨지 않을 수가 없다.
일개 신하된 자가 왕의 옷을 입고 왕의 말을 타고 성안을 돌아다녔다.
즉 왕과 같은 영예를 누린 것이다.
더욱이 그것은 자기만 존귀케 된 것이 아니라
자기의 원수를 수치스럽게 만든 일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분이 들뜨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모르드개의 감정은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은 높아졌지만 여전히 하만의 위협 아래 있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장차 있게 될 민족의 진멸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아니다. 그가 이렇게 감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하여 일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이 자기와 자기 민족을
하만의 궤계에서 구원하실 것임을 알았다.
또 원수의 목전에서 의인을 높이실 것도 알았다.
그러기에 그는 왕과 같은 영예를 누리고도 감정이 들뜨지 않았다.
그가 하만으로 인해 유다인 멸절 조서가 반포되었을 때
비록 옷을 찢고 대성 통곡하기는 하였지만
낙담하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섭리를 아는 사람은 환경에 따라 일희 일비(一喜一悲)하지 않는다.
나(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가?
의로운 자를 높이시고 불의한 자를 낮추시며
행한 대로 갚으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를 믿는가?
그렇다면 환경에 따라 일희 일비하지 않아야 한다.
범사에 감사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담담히 자기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질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단3:1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