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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 본 2023년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어느 해 보다 사건도 많고, 그만큼 치열했던 한 해였습니다.
2023년 한해를 돌아보는 의미에서 기억할 만한 일들을 간추려 봤습니다. 한일 간 크고 작은 일들이 있었지만, 우리 밖에서 있었던 일보다는 시민모임 활동을 우선에 두고 정리해 봤습니다. 우선순위는 없습니다. 가능하면 시간차 순서대로 정리해봤고, 이것도 지나가면 하나의 기록으로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어느 해보다 분노했고, 어느 해보다 울분과 격정의 한 해였습니다. 그러나 안타까움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윤석열의 저 미친 질주를 막아낸 것은 거의 강제동원 문제 밖에 없습니다. '역사정의 시민모금' 운동은 우리의 의지가 어떻게 역사를 만들어 내는가를 보여준 또 하나의 역사적 승리로 기록될 것입니다.
변함없이 함께 손을 잡아주시고 격려해 주신 회원 여러분께 다시 한번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성난 민심 '거리로, 거리로' ... 굴욕해법 저지 투쟁(1~4월)
윤석열 정부는 1월 12일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12일 외교부 주최로 ‘강제징용 해법 논의를 위한 공개토론회’를 개최했다. 요식행위에 불과한 토론회에 시민모임은 불참을 선언했다.
정부의 대일 저자세 굴욕 행보가 가시화되면서 전국 대학 교수진, 종교계를 중심으로 굴욕외교를 규탄하는 시국선언이 줄을 이었다. 강제동원 굴욕 배상안에 반대하며 2월15일과 16일 양일간 전국 500곳 연대 시위가 펼쳐졌다.
시민모임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기자회견, 범국민대회 개최 등으로 1주일이 멀다 하게 상경 일정이 이어졌다. 서울시청 앞 3.1절 행사에는 상경 버스를 조직했다.
정부는 최종 발표를 앞두고 피해자들을 만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면담을 거듭 요청해 왔다. 시민모임은 ▲양금덕 할머니의 인권상‧국민훈장 수상 방해에 대한 박진 장관의 공개 사과 ▲민원 질의에 대한 외교부 회신 ▲TV 공개토론회 개최를 역 제안하며 제의를 물리쳤다. 숨 가쁜 일정 속에 시민모임은 전국 연대기구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의 중심에 서서 모든 역량을 이 싸움에 투여했다.
■"다 퍼줬다"...윤 정부, 강제동원 제3자 변제 굴욕해법 발표(3월)
정부는 3월 6일 박진 외교부 장관 발표를 통해, 일본기업 대신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출연금을 모아 2018년 대법원에서 승소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판결금과 지연이자를 대신 지급하는 소위 제3자 변제 해법안을 공식 발표했다.
발표 직후 시민모임은 5.18 민주광장 앞에서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게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해법은 대한민국 사법주권을 포기한 ‘제2의 을사늑약’이다”고 규정했다. 다음 날 국내 주요 일간지는 다른 사진을 제치고 광주에서 가진 규탄 기자회견 사진을 1면으로 다뤘다.
윤석열 정부의 강제동원 굴욕 해법 발표의 뒷면에는 한미일 군사동맹 체제의 완성을 위해 한일 간 역사문제를 조기에 봉합하고자 했던 미국의 요구와 압력이 있었다.
■2차/3차 소송 원고, 미쓰비시에 국내 자산 추가 강제집행 착수
2018년 대법원 강제동원 확정판결 사건의 피해자 대리인단은 3월 15일 미쓰비시중공업이 국내 거래업체로부터 받아야 할 자산에 대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추심금 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은 미쓰비시중공업의 손자 회사인 국내 법인 엠에이치파워시스템즈코리아 주식회사가 가지고 있는 채권으로, 대리인단은 2021년 9월경 이 사건 자산을 압류한 뒤 추심명령까지 받아 효력이 발생한 상황. 현재 재판 중.
한편, 대전지방법원은 4월 3일 근로정신대 2차 소송 원고 김재림, 양영수, 오철석과 3차 소송 원고 이경자 등 4명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신청한 국내 특허권 4건에 대해 압류를 결정했다. 압류 대상은 원고 1명 당 미쓰비시중공업 국내 특허권 각 1건 등 총 4건. 이로써 강제집행 절차를 밟고 있는 것은 상표권 2건(양금덕), 특허권 6건(박해옥 2건 외 4건) 등 총 8건이다.
■제3자 변제 ‘판결금’ 지급...원고들 명암 엇갈려(4~5월)
정부는 4월부터 ‘제3자 변제’ 방식으로 피해자들을 접촉해 소위 ‘판결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외교부는 “채권 소멸과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2018년 대법원에서 승소한 3개 사건의 피해자 15명(원고 14명) 중, 11명이 결국 ‘판결금’을 수령했다. 원고 중에서는 고 김중곤 유족, 고 이동련 유족 등이 제3 변제에 동의하였다. 제3자 변제 거부 입장을 밝혔던 김성주 할머니의 경우, 정부의 집요한 회유와 가족 간 이견 등으로 막판 입장을 선회했다.
‘판결금’ 수령을 거부한 네 분은 생존자 이춘식(일본제철), 양금덕(미쓰비시중공업), 고 정창희(일본제철) 유족, 고 박해옥(미쓰비시중공업) 유족. 특히 양금덕 할머니는 “굶어 죽었으면 죽었지 그런 더러운 돈은 받을 생각은 없다”며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어느 나라 대통령이냐. 옷 벗고 내려와라”며 직격탄을 날려 국민적 관심을 모았다.
■시민모임을 향해 몰려오는 먹구름...조선일보, 검찰 고발, 국민의힘 특위 구성(5월~6월)
5월 들어 검은 먹구름이 시민모임을 향해 한꺼번에 몰려왔다. 보수언론, 보수단체, 국민의힘 등이 합세해 투쟁에 중심적 역할을 해 온 (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에 대한 탄압을 본격화한 것.
<조선일보>가 신호탄을 쐈다. <조선일보>는 5월 23일자 신문에서 2012년 양금덕 할머니 등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의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광주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당시 승소할 경우 20%를 ‘일제 피해자 인권사업’, ‘역사적 기념사업 및 관련 공익사업’에 사용할 수 있도록 기부 약정한 것을 문제 삼았다. 이 보도를 시작으로, <동아일보>, <문화일보> 등이 잇따라 왜곡 보도를 쏟아냈다.
이에 손발을 맞추듯 <국민의힘>은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에 대해 ‘시민단체의 탈을 쓴 국고털이 이익집단’, ‘시민운동을 가장한 비즈니스이자 자신들의 일자리 창출의 도구’, ‘역사의 희생자들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는 시민단체’ 라며 연일 헐뜯기에 나섰다. 이에 더해 <국민의힘>은 가짜 시민단체를 뿌리 뽑겠다며 ‘시민단체 선진화 특별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굴욕외교에 대한 싸늘한 민심을 돌리기 위해 시민단체에 대한 도덕적 공격으로 국면 전환을 모색했다.
고발 전문단체도 가세했다. <자유대한호국단>은 5월 26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김희용 전 대표와 이국언 사무국장을 ‘변호사법’ 위반으로 고발한 뒤, 6월에는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을 비롯해 고발 건을 취재한 기자 2명을 ‘모욕죄’ 혐의로 추가로 고발했다.
‘변호사법’ 위반 건은 담당 광산경찰서에서 ‘불송치(각하)’ 결정되었으나, 검찰이 재수사 지시를 내림에 따라 다시 수사 중에 있다. ‘모욕죄’ 고발 건은 경찰의 ‘불송치’(각하)로 일단락됐다.
■"이런 단체 하나쯤은 우리가 지키자"...탄압에 맞선 회원 배가 운동(6월)
"소위 '시민단체'라는 권력 집단의 '신종' 수익 창출 모텔, 그 노골적 행태에 입이 벌어질 지경입니다. '시민단체'마저 강제징용 피해 어르신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보상금을 빼앗아 간다면, 이것이 조폭들의 보호비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2023.5.23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 페이스북 글)
<시민모임>이 하루아침에 부도덕한 단체로 낙인찍혔다. ‘제2의 윤미향 사건’을 만들려 한다느니, ‘곧 압수수색이 들어 올 것’이라는 얘기가 기정사실로 여겨졌다. 사무실 분위기는 뒤숭숭했고, 회원들 사기도 말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무실로 문의 전화가 쇄도했다. 어떻게 하면 후원 신청을 할수 있느냐는 것. 알고 보니 강정채 전 전남대 총장님이 친인척을 비롯한 지인들에게 후원을 부탁한 것이다. ”이럴때 일수록 더 힘내서 일하도록 우리가 옆에서 지켜주자“는 것.
이에 부응해 회원들도 한 명 한 명 주변 사람들에 대한 후원 권유가 이어지면서 5월 중순에서 6월 중순 사이 신규 후원회원으로 가입한 사람은 90여 명에 이르렀다. 이 중 2명은 추천인을 ‘윤석열’로 적어 눈길을 끌었다. ”광주에 이런 단체 하나쯤은 우리가 지켜야 하지 않느냐“며, 오히려 탄압에 분개해 거꾸로 신규회원이 늘어나는 그야말로 기적같은 일이 벌어진 것.
■"국민들이 함께 싸우겠습니다" ... 역사정의 시민모금 6억 돌파(7월~)
시민단체와 피해자들을 분리시키고자 하는 정부의 의도가 노골화한 가운데, 시민사회의 무거운 고민은 대법원판결의 역사적 성취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에 모아졌다. 정부의 지속적인 회유 속에 원고들이 마음만 바꾸면 3억원 안팎의 ‘판결금’을 손에 쥘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모금’을 통해 국민들이 함께 싸움에 나서는 방법 방법밖에 없었다.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정부가 ‘약정’을 구실로 시민단체에 대한 도덕성 문제를 공격하고 있는 상황에서, ‘모금운동’이 또 다른 탄압의 빌미가 될 수 있는 것. 논의를 거듭한 끝에 결국 정면 돌파해 가기로 했다. 총대는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이 짊어지기로 했다. 정권의 탄압에 직접적 표적이 된 상황에서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이 이 투쟁을 주도해 가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이었다. 목표액 10억원.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은 6월 29일 서울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역사정의를 위한 시민모금’ 운동을 선포했다. 광주에서는 7월 3일 광주NGO지원센터 시민마루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광주전남 시도민의 동참을 호소했다. 특히 강정채 전 전남대 총장을 비롯한 16명의 발기인, 취지에 동참한 88개 시민사회단체가 모금운동의 호소인으로 함께한 것이 눈길을 모았다.
모금운동을 시작했지만 과연 얼마나 호응이 있을 것인가는 미지수였다. 그러나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다. 대중의 힘은 무서웠다. 12월 29일 현재 모금 참여 건수는 8584건에 모금액은 6억 4천여만원 남짓.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은 8월 12일 ‘8.15 범국민대회’에 즈음해 피해자 4명에게 각각 1억원씩 총 4억원을 응원기금 명목으로 지급했다. 광주에서는 8월 14일 광주NGO지원센터에서 양금덕 할머니 및 이춘식 할아버지의 가족이 참여한 가운데 응원기금 전달식을 가졌다.
■십시일반의 힘...감동, 감동사례(7~8월)
지인들로부터 역사정의 시민모금 기부금을 일일이 개별적으로 받아 대신 송금한 영수증
“육당 최남선과 이광수도 일제 36년을 못 견디고 다 변절했는데, 수많은 지식인들에 비하면 70년 넘게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는 양금덕 할머니와 이춘식 할아버지야 말로 대한민국의 넋을 지닌 자랑스러운 어른들이다. 굶어 죽어도 일본의 사죄 없이는 윤석열 정부가 주는 그런 돈 안 받겠다고 하는 양금덕 어머니의 의지를 우리 국민들이 지켜줘야 하지 않겠느냐”
안성례 초대 오월어머니집 관장은 아끼던 금배지를 내놨다. 회원들이 무섭게 움직였다. 광주가 들썩거렸다. ‘에꾸눈 광대’로 잘 알려진 연극인 이지현 선생님은 아끼던 아코디언을 팔아 기부에 참여했고, 예비 신랑신부는 축의금 일부를 모금에 보탰다. 김순흥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장은 근속 기념 금붙이를 비롯해 가족들 것까지 죄다 털어 냈고, 한 카센터 사장님은 돼지 저금통을 통째 기부했다. 그 외 강사료와 상담료를 기부한 분, 용돈을 아껴 모금에 동참한 학생들까지 각별한 사연이 이어졌다.
“그 분이 밤 12시 다 돼서 전화했더군요. 무슨 일이 있어 이 밤에 연락 주셨나 했더니…” 강정채 전 전남대 총장은 지인 수백 명에게 참여를 독려하는 전화와 문자를 보내 모금 참여를 독려했다.
그런가 하면 모금운동을 ‘제2의 독립운동’으로 규정한 박동기 남녘현대사연구소 소장은 300명 넘는 지인을 직접 만났다. 현금을 직접 받아 본인 명의로 모금 계좌에 이체하는 방법을 통해 모금에 동참시킨 것. 송금 업무로 몇 시간째 365 코너를 독점하고 있는 통해 은행원들로부터 의심을 받기까지 했다는 아름다운 후문….
“방송에서 양금덕 할머니의 그런 추잡한 돈은 굶어 죽어도 안 받을랍니다는 말씀에 너무 감동했습니다, 할머니의 말씀이 국민들 자존감을 지켜주었습니다”. 인천에 거주하는 60대 시민이 자필로 쓴 편지에 사연을 담아 ‘역사정의를 위한 시민모금’에 10만원을 기부했다.
이런 감동 사연 속에 모금운동은 시작 닷새 만에 1억원을 돌파한 뒤, 이틀 뒤인 7월 6일 2억원, 7월 19일 3억원, 8월 7일 4억원에 이어 8월 11일 5억원을 돌파했다.
전국적 모금 운동이었지만, 광주의 분노와 결집된 의지가 폭발한 것이라는데 이견이 없다. 회원들은 그야말로 눈물겨울 정도로 온 열정을 모금운동에 쏟았다. 2009년부터 오랫동안 양금덕 할머니의 싸움을 지켜봐 온 광주 지역사회도 이에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나섰다. 특히 대법원 승소를 이끈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이 정권의 표적이 된 것에 대한 반발이 오히려 모금운동에 불을 붙였다.
극히 일부 사례를 제외하면 시민사회가 6억원 넘게 모금한 사례는 좀처럼 찾기 어렵다. 한국 시민운동 역사에 또 하나의 사례가 됐다.
■"정부 스스로 제무덤 팠다"...판결금 공탁에 대한 법원의 '불수리' 처분(9월)
정부는 7월 3일 피해자들의 채권과 관련해 전국 각급 법원에 공탁 절차를 개시한다고 발표했다. 정부의 공탁 시도는 모금운동을 방해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즉 모금운동이 현실화할 경우 피해자들에 대한 설득작업이 더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정부의 의도는 크게 빗나갔다. 정부의 의도가 알려지면서 오히려 모금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자극제가 된 것. 공탁 절차를 개시한다는 소식이 알려진 그 날 밤 모금액 1억원을 돌파한 뒤, 이틀 뒤 2억을 넘어서면서 모금운동에 본격적으로 불을 붙이게 된 것.
그뿐만이 아니었다. 법원 공탁을 시도했던 것이 오히려 정부 스스로 제 발등을 찍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정부가 전국 법원에 제기한 12건의 공탁이 예외 없이 ‘불수리’ 처리된 데 이어, 이에 대한 이의신청마저 모두 ‘기각’된 것. 제3자 변제안은 이로써 사실상 파산선고를 맞게 되었다.
■이금주회장 평전 '어디에도 없는 나라' 발간 ... 재조명 작업 활발
일제 피해자들의 권리회복을 위해 한 길을 걸어온 고 이금주 태평양전쟁희생자 광주유족회장의 발자취가 재조명되는 뿌듯한 한해였다. 3월 이금주 회장의 역정을 담은 평전 『어디에도 없는 나라』(도서출판 선인)이 발간됐다.
12월 17일 2주기 추모제를 겸해 전일빌딩 9층 다목적 강당에서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추모 영상에 곳곳에서 눈시울을 적셨다. 출판기념회에서는 고인의 마지막 공식 행적이자 유훈이 담긴 광주유족회 마지막 229차 회의록(2011.4.10.) 내용이 소개돼 잔잔한 울림을 줬다. 손녀 김보나씨도 오랜만에 참석했는데,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얘기를 들려줘 감동의 시간이었다.
처음으로 실시한 <독후감 대회>에는 광주는 물론 서울, 양평, 부산, 창원, 제주 등 전국에서 총 22편 접수돼, 이금주 상 1명 50만원, 우수상 5명 각 10만원 등 총 6명을 시상했다.
이금주 회장을 주인공으로 하는 창작 오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도 만들어져, 12월 27일 광주예술의 전당 소극장에서 공연돼 감동을 이어갔다.
한편, 8월 11일 놀이패 <신명>은 제43회 정기공연작으로 양금덕 할머니를 소재로 한 마당극 ‘소녀의 꿈’을 광주예술의전당 소극장에서 선보였는데, 마당극, 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에서 예술적 접근이 시도된 한 해였다.
■'너무 늦게 온 정의' ... 대법원 계류 5년 만에 2차, 3차 소송 승소 (12월)
대법원 민사3부는 2023년 12월 21일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최종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2014년 2월 광주지방법원에 소를 제기한 지 9년 10개월 만의 판결. 원고 4명 중 오철석 어르신을 제외한 피해자 심선애(2019.2), 양영수(2023.5), 김재림(2023.7) 할머니 세 분은 이미 별세한 상태.
이어 12월 28일에는 근로정신대 3차 소송 원고(이경자, 김영옥)들도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2015년 5월 소송을 제기한 지 8년 7개월 만의 판결.
1944년 12월 도난카이 지진에서 숨진 최정례의 조카며느리 자격으로 소송에 참여한 이경자 어르신의 배상액은 고작 325만원. 어린 딸을 잃고 돌아가실 때까지 한겨울에도 이불을 덮지 않고 주무셨던 시할머니의 한을 안고 소송에 참여한 이경자 어르신 애절한 사연을 담은 손편지가 심금을 울렸다. 이경자 할머니는 “돈이 목적이 아니라 미쓰비시의 사죄가 우선이다”고 강조했다.
2018년 대법원 판결(원고 5명)에 이어, 2023년 2차(원고 4명), 3차(원고 2명) 근로정신대 소송도 최종 승소함으로써, 중요한 역사적 성취를 또 한번 남겼다.
■정부와 1년 내내 대립...양금덕 할머니 인권상·서훈 수여 문제 끝내 못 풀어
강제동원 해법을 둘러싸고 정부와 소통은 완전히 끊어졌다. 2023년 1월 12일 외교부가 주최한 국회 ‘공개토론회’에 불참하기로 선언한 데 이어 정부가 최종 발표를 앞두고 피해자 면담을 요청한 것에 대해서도 양금덕 할머니 인권상 무산 사태와 관련한 박진 외교부 장관의 사과가 먼저라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양금덕 할머니의 인권상과 서훈 문제로 여러 차례 대립했다. 시민모임은 외교부에 민원질의를 보내 인권상 무산 경위를 따진 뒤, 서훈 절차를 재개할 의향이 있는지 추궁했다. 외교부는 마지못해 2월 14일 고작 달랑 한 문장 답변을 보내왔다.
시민모임은 4월 10일 외교부에 행정안전부 장관의 국회 답변 내용을 근거로 외교부에 서훈 절차를 재개할 의향이 있는지를 묻는 민원을 제출했지만, 끝내 답변조차 하지 않았다. 시민모임은 2023년 9월 외교부에 인권상 문제로 정보공개신청을 제기했으나, 이마저도 비공개했다.
사실상 연초부터 강제동원 문제를 둘러싸고 정면 대립해 오던 상황에서 애초 정부와 대화의 여지는 없었다. 1년 내내 충돌했다.
■"국민의 자존심 살렸다"...양금덕 할머니 응원상 줄이어
▲부산시민평화훈장추진위원회 관계자와 대학생들이 양금덕 할머니댁을 찾아 훈장을 전달하는 모습
“굶어 죽었으면 죽었지 그런 더러운 돈은 못 받는다”
윤석열 정부의 방해로 양금덕 할머니의 대한민국 인권상과 국민훈장 수상이 무산된 것에 반발해 각계 뜻있는 시민들의 응원상이 줄을 이었다.
104주년 3.1절을 맞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범국민대회에서 겨레하나를 비롯한 대학생·청년·시민단체들이 ‘서울시민 평화인권 훈장’ 수여식을 열고, 양금덕 할머니에 평화인권 훈장을 수여했다.
또 부산지역 70여 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강제징용피해자 양금덕할머니 부산시민 평화 훈장 추진위원회'는 7월 20일 오후 광주시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서훈이 취소된 양금덕 할머니에게 순금으로 제작된 평화 훈장, 감사패, 100만원을 전달했다.
광주여성단체협의회는 9월 21일 ‘제31회 광주여성대회’에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에게 '무등여성대상'을 수여했다. 시상금은 300만원.
■광주문화재단, 일본 시민단체와 문화예술 협약...‘봉선화’ 광주공연(2024.2) 추진
광주문화재단은 3월 9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소송을 지원하는 일본 단체와 문화예술 교류 협약을 맺고, 2024년 2월 광주에서 연극 ‘봉선화’ 공연이 차질없이 추진될수 있도록 적극 협조하기로 했다.
협약식에는 다카하시마코토 나고야소송지원회 공동대표, 나카토시 봉선화 총감독, 황풍년 문화재단 대표이사,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 등이 참석했다.
연극 ‘봉선화’는 미쓰비시로 동원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고발극으로 2003년 나고야에서 초연된 뒤, 한국에서의 소송 현황 등 현재의 투쟁 상황을 보완해 지난해 9월 나고야에서 19년만에 다시 무대에 올려져 큰 반응을 모았다. 코로나로 3년 만에 광주를 찾은 다카하시 대표는 지난해 12월 연극 ‘봉선화’를 광주 무대에 올리고 싶다고 의향을 밝혔고, 시민모임은 이 문제에 대해 문화재단 측에 협조를 구했다.
공연 일자는 2024년 2월 24일(토) 오후 3시, 장소는 빛고을시민문화관으로 정해졌다.
■강제동원 구술 사진전 개최/강제동원 피해자 광복절 행사 첫 초청(8월)
시민모임은 78주년 광복절을 맞아 8월 14일부터 25일까지 광주광역시청 1층 시민홀 전시공간에서 강제동원 피해자 구술 사진 전시회를 최했다. 구술 사진전은 2018년~2019년 구술에 참여한 피해자 31명과 <정의기억연대>로부터 소개받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3명 등 모두 34명의 사연으로 구성되었다.
한편, 이춘식 할아버지(1924.1), 이경석 할아버지(1924.7), 양금덕 할머니(1931.2) 오연임할머니(1936.11)는 8월 15일 광주광역시가 개최하는 제78주년 광복절 기념식에 초대되어 참석했다. 강제동원 피해자가 광복절 행사에 정식 초대된 것은 처음.
광복절 기념식을 마친 피해자들은 강기정 광주시장과 함께 1층 시민홀 전시장을 찾아 관람했다. 피해자들의 연령을 생각하면 역사의 한 장면이 됐다.
■광주시, 일제강제동원 대일항쟁 정신계승 협의체 구성(4월)
광주시는 4월 4일 오후 시청 세미나실에서 일제 강제동원 대일항쟁 정신 계승을 위한 협의회(TF)를 구성하고 첫 회의를 열었다. 협의회는 민간 단체와 학계 관계자, 전문가 등 8명으로 구성됐다.
협의회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인권 회복, 대일항쟁 정신 계승 사업을 비롯해, 대일항쟁 역사 자료 보존,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 장소로 활용될 역사관 건립 방안도 검토해 추진할 계획. TF 구성 첫 회의 이후 1년 동안 다음 회의는 열리지 않았다.
■끝내 승소 소식 못 듣고...양영수, 김재림 할머니 잇따라 별세
근로정신대 2차 소송 원고였던 양영수(2023.5), 김재림(2023.7) 할머니가 차례로 별세했다. 양영수 할머니는 광주 대성초등학교 졸업 후 아버지를 괴롭히는 일제의 감시와 압박에 못 이겨 동원됐으며, 화순 능주초등학교를 졸업한 김재림 할머니는 광주 친척 집 가사 일을 돕던 중 미쓰비시로 동원됐다. 5년째 대법원에서 계류 중이던 사건은 12월 21일 대법원에서 최종 원고 승소.
■제3자 변제 무력화 투쟁에 앞장...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잇따라 상 수상
상복이 터진 한 해였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이 제18회 들불상을 수상했다. 시상식은 5월 27일 국립 5·18민주묘지 ‘역사의 문’에서 열렸다. 들불상은 5·18민주화운동 전후로 민중운동의 불씨가 됐던 윤상원 열사 등 7명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상. 정채웅 제18회 들불상 심사위원회 위원장은 “일제 치하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진정한 사과와 책임 있는 배상 요구가 중요한 시대정신이 됐다”며 “시민모임이 14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일관된 활동을 이어왔다”고 밝혔다.
11월 10일에는 임종국선생 기념사업회가 시상하는 제17회 임종국상을 수상했다. 임종국선생 기념사업회는 “2018년 11월 29일 대법원에서 일본 전범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의 손해배상 선고 판결을 이끌어냈으며, 특히 올해 '역사정의시민모금'을 주도해 '제3자 변제안'을 사실상 무력화시켰다”며 수상 이유를 설명했다.
12월 9일에는 (사)한국인권교육원이 주최하는 2023년 올해의 인권상에 이국언 이사장이 선정되는 등 시민모임 활동에 대한 각계 격려가 이어졌다.
■양금덕 할머니, 우리 시대 역사의 캔버스에 기록
▲지리산에 이는 바람. 2023. 광목에 아크릴릭 물감. 400*270cm
▲<선물> 130.3*193.9cm 캔버스에 유채 2023.
김화순 화가가 9월 22일~10월 29일까지 남원 실상사에서 개최된 지리산 프로젝트 2023 생명평화미술에 ‘지리산에 이는 바람’이라는 제목으로 걸게 그림을 출품했다. 그림에는 양금덕 할머니도 등장한다. 작가, 양금덕 할머니, 문정현 신부, 실상사 수지행자, 김복동할머니, 도법스님, 그렡 툰베리, 세월호 유가족 순범 엄마 등이 생명 평화의 상징인 인드라망을 수 놓으며 밝고 환한 표정으로 생명과 평화를 기원하고 있는 그림.
10월 26일 BHC갤러리에서 열린 ‘2023 탕탕전’에는 미쓰비시자동차 광주전시장 1인 시위 장면을 배경으로 양금덕 할머니가 환한 표정으로 한 아름 꽃을 누군가에게 선물하는 모습을 내걸었다. 8월 14일 역사정의 시민모금 전달식에서 어린 소녀같이 밝았던 할머니 표정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이 밖에 10월 16일~10월 28일까지 광주 서구문화센터에 열린 ‘아이고 전 광주-친일과 항일의 100년’ 전시회에는 광주민미협 회원 박성완 작가가 제3자 변제를 거부하고 있는 생존자 이춘식 할아버지와 양금덕 할머니를 굳은 의지를 화폭에 담아 역사로 남겼다.
■투사 양금덕 할머니 병환 깊어져...원고 가족들과 새로운 신뢰 형성
4월부터 입원과 퇴원을 반복해 오던 할머니가 7월부터 셋째 아드님 댁에 거처하시다 11월 말경 광주 한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앞서 시민모임은 ‘역사정의 시민모금’이 본격화되기 전, 양금덕 할머니 치료 및 간병비 명목으로 6월경 3천만 원을 지원했다.
강제동원 해법 문제, 양금덕 할머니 건강 문제 등으로 가족들과 더 긴밀한 소통 관계를 갖는 한 해였다. 이춘식 할아버지 자녀분들과도 어느때 보다 깊은 소통과 신뢰를 다지게 됐다.
■사무실 서구 '화정동'으로 이전...(사)우리민족과 다시 한 둥지(2월)
서구 쌍촌동 사무실 시대를 마감하고, 2월 화정동으로 이전했다. (서구 내방로 324-1 4층). 화정동, 농성동, 쌍촌동에 이어 네 번째 맞는 사무실. 시민모임이 집도 절도 없을 때 의지하던 (사)우리민족과 운명적으로 다시 재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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