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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엘뤼아르
폴 엘뤼아르(Paul Éluard, 1895년 12월 14일 ~ 1952년 11월 18일)는 프랑스의 시인이다. 본명은 외젠 에밀 폴 그랭델(Eugène Émile Paul Grindel)이다. 다다이즘 운동에 참여하고 초현실주의의 대표적 시인으로 활동하였다. '시인은 영감을 받는 자가 아니라 영감을 주는 자'라고 생각했다. '자유'라는 시로 유명한 시집 《시와 진실》, 《독일군의 주둔지에서》 등은 프랑스 저항시의 백미로 알려져 있다.[1]
본명은 Eugéne Grindel. 제1차 대전에 참전하여 싸우면서 처녀 시집 《의무와 불안 Le Devior et l'Inquiétude(1917)》을 내고 전후에 다다이즘ㆍ쉬르리얼리즘을 제창하면서 1936년까지 적극적 추진자로 활약했다. 명랑한 정열적 시풍으로써 국민적 인기를 모았다.
생애
파리 북쪽 생드니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폐결핵으로 공부를 중단하고 스위스 다보스에서 요양하며 청소년기를 보냈다.[2] 1911년 ~ 1913년 요양소에 있을 때 보들레르, 아폴리네르 등 프랑스 시인들과 휘트먼 등 미국 시인들에 자극받아 시를 쓰기 시작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종군하였다가 독가스로 폐를 다쳐 평생의 고질(痼疾)이 되었다. 1917년 러시아인 안내 갈라를 만나 결혼했지만, 그녀는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를 사랑하게 돼 1924년에 그를 떠났다. 1934년 마리아 벤즈와 결혼했지만, 그녀 역시 파블로 피카소와 염문을 뿌렸다.[3] 전후 앙드레 브르통, 루이 아라공 등과 쉬르레알리즘 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에드몽 자베스와 교류하였다. 그리고 이후 스페인 내전 때 인민 전선에 참가하여 레지스탕스로서 활약하였다. 1952년 11월 18일 과로와 협심증으로 숨을 거뒀고, 파리 페르라셰즈 묘지에 안장됐다.
대표 시집은 《고뇌의 수도 (首都)》(1926년), 《사랑, 그것은 시(詩)》(1929년), 《정치적 진실》(1948년) 등이다. 그의 시는 불연속으로 뜻밖의 이미지와 논리를 무시한 교묘한 비유로, 쉬르레알리즘의 강한 특징을 보이면서 어휘는 점차 투명해지고 내면적인 속삭임을 상기시키는 가락으로 변했다. 불안과 고뇌, 또 연애와 전쟁을 주제로 했어도 "한 인간의 지평선은 모든 인간에게 공통한다"라고 그가 읊은 바와 같이 미와 사랑과 인생의 여명에의 신뢰를 언제나 잃지 아니하였던 희유(稀有)의 시인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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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다다이즘 운동에 끼어들고, 이윽고 초현실주의의 대표적 시인으로 활약한 프랑스 시인. '시인은 영감을 받는 자가 아니라 영감을 주는 자' 라고 한결같이 생각했다. 유명한 시 《자유》가 수록된 《시와 진실》,《독일군의 주둔지에서》는 프랑스 저항시의 백미로 알려졌다.
원어명 Paul Éluard
출생-사망 1895.12.14 ~ 1952.11.18
국적 프랑스
활동분야 문학
출생지 프랑스 생드니
주요저서 《고통의 도시》(1926)
본문
파리 교외의 생드니 출생. 젊었을 때 폐병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1911∼1913년 스위스에서 요양생활을 하였다. 제l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전선에 종군하였으며, 그 경험에서 얻어진 평화주의적 사상이 최초의 시집 《의무와 불안 Le Devoir et l'Inquiétude》(1917)에 짙게 나타난다. 그후 J.폴랑, A.브르통, L.아라공, P.수포 등과 알게 되어 다다이즘 운동에 끼어들고, 이윽고 초현실주의의 대표적 시인의 한 사람으로 활약하였다. 이 무렵에는 초현실주의의 원리가 된 꿈과 무의식의 세계나 자동기술법 등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독특한 경지를 개척하였다. 물론 브르통과 공저(共著)로 《무원죄수태(無原罪受胎) L'Immaculée Conception》(1930)를 내어 정신착란이 펼쳐 보이는 새로운 시세계를 실험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걸작의 하나인 《고통의 도시 Capitale de la douleur》(1926)는 초현실주의자다운 언어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우애를 시의 가장 큰 사명으로 삼는다. 이러한 경향은 1936년의 스페인 전쟁을 계기로 더욱 짙어지고, 이 때부터 그의 시는 사랑과 자유라는 두 가지 주제로 일관되었다. 시는 이미 신비로운 꿈을 통해서 밝고 조화된 세계를 계시하기 위해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너와 내가 사랑으로 한몸이 되어 자유와 평화를 향해 굳세게 전진하기 위해 서 있는 것이다. 그의 언어는 날이 갈수록 투명하고 서정적이며 서민적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적극적으로 저항운동에 참여했고 1942년에는 공산당에 가입했지만, 그의 시는 좌우익을 불문하고 프랑스에서 가장 널리 읽히고 사랑받는 시가 되었다.
또한 초현실주의로부터 출발한 모든 시인들 중에서 후대의 시인들에게 그만큼 큰 영향을 준 사람도 드물다. 그것은 '시는 실천적인 진실을 목적으로 삼는다'는 로트레아몽의 말을 자신의 모토로 삼고 '시인은 영감을 받는 자가 아니라 영감을 주는 자'라고 한결같이 생각해 온 그의 투철한 사명감의 당연한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그 유명한 시 《자유》가 수록된 《시와 진실 Poésie et Vérité》(1942), 《독일군의 주둔지에서 Au rendez-vous allemand》(1944)는 프랑스 저항시의 백미로 알려졌으며, 전후에도 《교훈 Une leçon morale》(1949), 《불사조 Le Phénix》(1952)를 비롯한 많은 시집을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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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통행금지
어쩌란 말인가 문은 감시받고 있었는데
어쩌란 말인가 우리는 갇혀 있었는데
어쩌란 말인가 거리는 차단되었는데
어쩌란 말인가 도시는 정복되었는데
어쩌란 말인가 도시는 굶주려 있었는데
어쩌란 말인가 우리는 무장 해제되었는데
어쩌란 말인가 밤이 되었는데
어쩌란 말인가 우리는 서로 사랑했는데
야간통행금지'는 '자유'라는 시와 함께 독일
나치의 침공으로 프랑스가 함락되었을 때 지
하에서 널리 읽힌 시이다. 여덟 번에 걸쳐 반
복되는 “어쩌란 말인가(Que voulez-vou
s)”를 되뇌노라면 그 되풀이는 미묘한 의미
변화를 일으키곤 한다.
불안과 공포 속에서 어쩌지! 하다가, 체념과
용인 속에서 어쩌겠어! 하다가, 고통과 분노
속에서 정말 어쩌라구! 하게 된다. 그러고는
그 절망을 발판으로 삼아 희망으로 튀어 오
르며 어쩌긴? 사랑할 수 있어야지! 하게 된
다. 특히 마지막 행에서 보여 준 시제의 반전
이 “어쩌란 말인가”의 의미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일등공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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