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세운동, 그리고 오늘 우리
태어나서 자란 고향에는 5일장이 열렸던 영해 장(場)이 꽤나 유명했습니다.
영해라는 곳은 조선시대에 부(府)가 있었던 곳으로 경북 북부지역의 요지 역할을 했던 지역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 장날에 구경 간 날은 모든 것이 신기하게 여겨졌고, 모처럼 군것질로 배를 채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영해는 장터가 열렸던 곳으로만 기억했는데, 성인이 된 후 알게 된 사실 가운데 하나는 근대 독립운동사에 있어서도 영해는 한 몫을 했던 지역입니다.
대표적으로 항일 의병 운동사에 중심축 가운데 한분이었던 신돌석 장군의 항거 정신과 3,18 영해 만세 운동입니다.
태백산 호랑이로 알려진 신돌석 장군의 항일 운동은 많은 교과서에도 일제에 맞선 대표적 평민 출신의 의병장으로 소개되었습니다.
반면에 3,18 영해장 만세 운동은 그 지역 출신인 저로서도 수년전에 알 정도로 그동안 별다른 조명을 받지 못했습니다.
영해 3, 18 만세 운동은 영남 지역에서는 최대 독립 만세운동이라는 의의(意義)가 담겨져 있다 합니다. 또한 전국적으로도 장터에서 민초들이 중심이 되어 일어난 최초의 만세운동이라 합니다.
<3.18독립만세운동은 서울에서 일어난 3.1만세의거에 영향을 받아 1919년 3월 18일 영해·영덕 장날을 기해 영덕군 전 지역에서 일어난 조직적인 만세의거다.
그 결과 8명이 순국하고, 196명이 체포돼 185명이 실형을 선고받았을 정도로 독립의 염원이 뜨거웠던 저항운동이었다.>(데일리 대구 경북 뉴스/ 23년 3월 19일 기사 일부 인용)
그런데 아이러니 한 것은 많은 이들은 일본을 극혐 또는 극노하는 것에는 동조하지만, 일본인들의 강점이나 근성을 배우고 그들을 넘어서는데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개인적으로 정치인들에게 이 점이 아쉬운 부분입니다.)
개인이든 단체이든 자기 스스로 자신을 지킬 의지와 힘을 기르지 않으면 언젠가 타인에 의하여 지배당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런 점에서 삼일 만세운동 105주년을 맞이하면서, 노숙자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품고서 그들의 재활을 돕는 귀한 사역을 하시는 이주연 목사님의 글을 인용해 봅니다.
<제가 특별히 겪었던 이전의 대일항쟁의 격한 분위기는 1982년 일본의 교과서 왜곡사건이 터졌을 때입니다. 신군부에서는 극일을 외치며 정치적으로 일정 기간 반일 감정을 이용하였습니다.
당시 담임 전도사 시절이었던 저 역시 애국투사의 마음으로 신군부에 의해 해직당한 존경하던 김용준 선생님(고대 화학과)을 모시고 강연을 들었습니다.
당시 우리들은 대학원생들과 도시 노동자들이 중심이 된 한 줌밖에 아니 되는 작은 개척교회였습니다. 하지만 가슴만은 믿음과 정의감에 뜨거웠던 교회였습니다.
김용준 선생님은 항일감정으로 뜨거워진 우리를 향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금 일본군 정보장교들은 남대문에 와서 한국인 행세를 하며 물건을 깎으며
쇼핑하는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상인들은 그들이 일본인 줄 모릅니다.
우리는 일본에 가서 어떤 훈련을 하고 있습니까? 감정만으로 극일이 될까요?”
당시 김용준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데모하러 나간 학생들을 모두 결석처리하고 혼자라도 강의를 하시겠다는 분이셨습니다. 학생들은 공부하는 것이 애국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데모는 수업 후에 하는 것이라며 데모에 앞장 서셨습니다.
그 일로 해직당하셨습니다.>
애국이란 무엇일까요? 관점이나 생각에 따라 정의가 달라질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목회자 입장에서 가장 효율적인 정치 참여는 목사다움이라 여기는 사람입니다. 목회자가 현실 정치에 참여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기에 자기 자리에서 자신이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현실 참여이고 애국하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점에서 복음광고 3월 현수막 문구를<자유와 독립을 갈망하며 외쳤던 선열들의 만세 운동 정신은, 오늘 삶의 자리에서 구현해 내야 할 책임지는 자유시민의 마음가짐입니다. 국토정중앙교회 482-6691> 로 정했고 3월 4일부터 두주간 읍내 하나로마트에 게시됩니다.
삼일 운동의 주역 33인 가운데 16분이 그리스도인들일 정도로 초기 그리스도인에게 애국과 신앙은 불가불 관계였습니다.
나아가 조국의 교육과 의료, 복지의 토대는 기독교 선교사들과 초기 신앙의 선배분들이 터를 닦았고 발전시켰음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한국사입니다.
반일, 극일 이라는 감정 못지않게 자신의 자리에서 진정한 나라 사랑을 실현해 나가는 이들이 많아지길 기대해보는 삼일절 전야입니다.
여러분 한명 한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첫댓글 영해와 영덕
제가 한 때 직장생횔해서 참 친근한 지역입니다
눈에 선해요
반일을 넘어서야 한다
맞습니다. 우리가
그런 나라를 만들어 나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