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19일 묵상 본문 : 열왕기하 25장 18절 - 30절 - 주 앞에 서기를 힘씀으로 맛을 잃은 소금이 아닌 주의 긍휼과 자비를 전하는 자로 살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최장의 열대야가 속에서도 잘 자게 하시고 새로운 하루를 허락하시니 감사합니다.
좋지 않은 상황과 환경은 불평을 만들지만 그 모든 것도 인간의 욕심 때문임을 고백합니다.
욕심으로 살지 않게 하시고 주를 향한 감사와 찬양으로 사는 자 되게 하옵소서.
어제는 정남현 선교사님 가정이 함께 예배하며 묵상도 나누면서 기쁨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선교사역 가운데 은혜를 더하시고 더욱 많은 영혼을 주께로 인도하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죄와 부정함으로 더러워진 마음과 영혼을 주님 앞에 내어드립니다.
주의 보혈로 정결하게 씻어 주시고 새 영과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서게 하옵소서.
오늘도 주어진 모든 일에 성실하게 하시고 기쁨으로 감당하게 하옵소서.
날마다 은혜와 진리로 붙드시고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18 시위대장이 대제사장 스라야와 부제사장 스바냐와 성전 문지기 세 사람을 사로잡고
19 또 성중에서 사람을 사로잡았으니 곧 군사를 거느린 내시 한 사람과 또 성중에서 만난 바 왕의 시종 다섯 사람과 백성을 징집하는 장관의 서기관 한 사람과 성중에서 만난 바 백성 육십 명이라
20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그들을 사로잡아 가지고 리블라 바벨론 왕에게 나아가매
21 바벨론 왕이 하맛 땅 리블라에서 다 쳐 죽였더라 이와 같이 유다가 사로잡혀 본토에서 떠났더라
22 유다 땅에 머물러 있는 백성은 곧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남긴 자라 왕이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달리야가 관할하게 하였더라
23 모든 군대 지휘관과 그를 따르는 자가 바벨론 왕이 그달리야를 지도자로 삼았다 함을 듣고 이에 느다니야의 아들 이스마엘과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느도바 사람 단후멧의 아들 스라야와 마아가 사람의 아들 야아사니야와 그를 따르는 사람이 모두 미스바로 가서 그달리야에게 나아가매
24 그달리야가 그들과 그를 따르는 군사들에게 맹세하여 이르되 너희는 갈대아인을 섬기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이 땅에 살며 바벨론 왕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가 평안하리라 하니라
25 칠월에 왕족 엘리사마의 손자 느다니야의 아들 이스마엘이 부하 열 명을 거느리고 와서 그달리야를 쳐서 죽이고 또 그와 함께 미스바에 있는 유다 사람과 갈대아 사람을 죽인지라
26 노소를 막론하고 백성과 군대 장관들이 다 일어나서 애굽으로 갔으니 이는 갈대아 사람을 두려워함이었더라
27 유다의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간 지 삼십칠 년 곧 바벨론의 왕 에윌므로닥이 즉위한 원년 십이월 그달 이십칠일에 유다의 왕 여호야긴을 옥에서 내놓아 그 머리를 들게 하고
28 그에게 좋게 말하고 그의 지위를 바벨론에 그와 함께 있는 모든 왕의 지위보다 높이고
29 그 죄수의 의복을 벗게 하고 그의 일평생에 항상 왕의 앞에서 양식을 먹게 하였고
30 그가 쓸 것은 날마다 왕에게서 받는 양이 있어서 종신토록 끊이지 아니하였더라
본문해설
바벨론의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은 성전의 대제사장 스라야와 부제사장 스바냐와 성전 문지기 3명을 사로잡았으며 성에서 군사를 거느린 내시(군인을 관장하는 고위관리) 한 사람과 왕의 시종 5명과 백성을 징집하는 장관의 서기관과 성에 있던 백성 60명을 사로잡게 된다.
이는 성전의 기물뿐만 아니라 성전을 관리하며 반란을 도모할 수 있는 모든 인적 자원을 제거했음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들을 잡아서 립나 바벨론 왕에게 데려갔으며 바벨론 왕은 하맛 땅 립나에서 죽였고 많은 유다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 본토를 떠나게 되는 상황을 맞이한다.
당시 유다 땅에 머물러 있는 백성은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남긴 사람들만 있었고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달리야가 유다 지역을 관할하게 하였다.
그달리야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충고를 따라 친바벨론 정책을 일관되게 유지한 자로써 그 공로가 인정되어 유다의 총독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 것으로 본다.
모든 군대 지휘관과 그를 따르는 자들은 자들은 바벨론 왕이 그달리야를 지도자로 삼았다는 소식을 듣고 느다니야의 아들 이스마엘과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스라야 야아사니야와 그를 따르는 사람이 모두 미스바로 가서 그달리야에게 나아가게 된다.
이에 그달리야는 자신에게 온 사람들과 군사들에게 그들이 갈대아 사람을 섬기는 것에 두려워하지 말고 바벨론 왕을 섬기면 평안하게 지낼 것임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B.C.586년 7월에 왕족 엘리사마의 손자 느다니야의 아들 이스마엘은 부하 10명을 데리고 가서 그달리야를 죽이고 또 그와 함께 미스바에 있는 유다 사람과 갈대아 사람을 죽인다.
이는 그달리야가 친바벨론 정책을 펴는 명분이 명확하지 않았고 자신이 왕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이 당시 왕족들에게는 반역자와 같은 모습으로 지지를 받지 못했음을 의미했다.
그리고 많은 백성과 군대 장관들은 갈대아 사람들을 두려워하며 애굽으로 도망가게 된다.
이는 바벨론에게 멸망하게 하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두려워하는 모습으로 유다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아닌 눈에 보이는 것을 의지하는 불신앙을 보인 것이다.
유다의 왕으로 바벨론으로 잡혀간 여호야긴은 잡혀간 지 37년이 지난 후 느부갓네살이 죽고 에윌므로닥이 즉위한 원년(B.C.562년) 12월 27일에 감옥에서 나오게 된다.
에윌므로닥은 여호야긴의 머리를 들게 하고 좋게 말하며 그의 지위를 바벨론의 왕자보다 높여주고 죄수의 의복을 벗게 하였으며 일평생 왕과 함께 양식을 먹도록 해준다.
그리고 그의 쓸 것은 날마다 왕에게서 받는 양이 있어서 죽을 때가지 끊이지 않게 해준다.
이는 식민지의 왕을 잘 대우하여서 식민지 나라의 국민들로부터 신임을 얻기 위한 조치였다.
나의 묵상
예루살렘 성전이 약탈을 당하고 이어서 성전에 있던 성전 관리들도 모두 잡혀서 바벨론으로 끌려갔으며 죽임 당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는 일을 멈추지 않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던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 상황으로까지 이어지게 되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선지자 예레미야의 충고를 따라 친바벨론 정책으로 일관했던 그달리야는 바벨론이 임명한 총독의 자리에서 유다 지역을 관활하게 된다.
아마도 유다의 백성들은 그달리야가 총독으로 임명 되었기에 그가 유다의 독립을 위해 힘쓰고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진행할 것이라고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달리야가 바벨론에게 충성을 하도록 독려하고 스스로 왕이 된 것처럼 자신을 따르도록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는 2달 만에 그를 죽이게 된다.
그달리야는 유다가 바벨론에게 충성을 해야 하는 이유를 바벨론이 나라를 점령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가운데 된 것이므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라는 명분을 내세워야 했다.
그러나 그런 과정은 없고 바벨론에 대한 충성만 강조하는 그의 모습은 인간적인 생각과 계획에 멈춰버린 모습을 보여준 것이며 스스로의 욕심을 드러낸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결국 유다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얻지 못한 그달리야는 유다의 왕족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그리고 유다 사람들도 이 일이 바벨론 왕의 심기를 건드린 일이 되었기에 바벨론 왕을 두려워하여 모두 애굽으로 도망을 치는 모습을 보인다.
유다 백성들도 하나님을 두려워한 것이 아니라 바벨론의 왕을 두려워했으며 그달리야를 죽인 이유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아닌 자기 감정대로 행한 것임을 보여준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달리야의 죽음을 허용하신 이유는 아마도 유다 백성들이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의지하여 독립하고자 하나님께 나오는 모습을 가지는 지 아니면 바벨론을 두려워하여 도망가는지를 보시기 위함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그리고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멸망의 이유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상황에만 몰두한 그들은 하나님께 나아간 것이 아니라 애굽으로 도망가는 선택을 한 것이다.
유다의 멸망은 국력이 약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떠난 결과라는 것을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었으며 하나님께서 유다를 징계하신 이유와 명분이 머누 선명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백성은 철저히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지고 따르지 않으면 하나님 백성다운 삶을 살 수 없으며 눈에 보이는 것으로 기준을 삼으면 세상으로부터 버림받는 존재가 된다.
이것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가르치셨고 성도가 취해야 할 삶의 태도를 이야기하셨다.
31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 명으로써 저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32 만일 못할 터이면 그가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33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34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35 땅에도, 거름에도 쓸 데 없어 내버리느니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시니라(눅14:31~35)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교회는 환영받는 존재가 아니라 거부하고 싶은 존재로 여겨진다.
교회가 보여준 모습이 이기적이며 세상 사람들보다 더 물질적인 욕심이 많고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세상의 가치로 살아가면서 세상과 다른 것처럼 생각하며 행동하는 모순이 그들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모습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세상의 가치로 자신을 세우려는 성도는 소금이 맛을 잃어버릴 때 버려지는 것처럼 세상으로부터 버려지는 존재가 됨을 의미한다.
그래서 오늘날의 한국의 교회가 이러한 모습에서 멀지 않음을 고백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이런 모습을 회복하는 것은 철저하게 세상의 가치를 버리고 주의 언약을 따라 주 앞에 나아가기를 힘쓰고 주를 의지하여 살아가는 것이다.
진정한 영적 회복은 하나님 앞에 자신들의 비참함을 알고 긍휼과 자비를 구하는 것이며 주의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하는 모습을 가지는 것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성도가 날마다 주님 앞에 서야 할 이유는 세상의 가치로 자신을 세우지 않기 위함이며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바르게 세우기 위함이고 주의 뜻에 순종할 힘을 얻기 위해서이다.
그 모습이 오늘도 이어지고 주님 오실 때까지 믿음을 지키고 살아가는 주의 백성으로 설 수 있기를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오늘도 주의 말씀 가운데 성도가 나아가야 할 길을 찾게 됩니다.
성도가 가야 할 길은 세상의 가치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며 자신의 비참함을 알고 겸손히 주의 긍휼을 구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그 긍휼을 구하며 나아가는 발걸음에 복을 주시고 주 안에 거하는 기쁨으로 하루를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세상은 여전히 교회에 대한 냉랭한 태도를 보이며 맛을 잃은 소금과 같이 대우합니다.
마음을 지켜 세상에 물들지 않게 하시고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연약하여 땅의 것으로 기준을 삼고 살아갈 때마다 일깨우시고 주 앞에 서게 하옵소서.
주의 지체들도 은혜 가운데 지켜 주셔서 믿음의 길에 서는 자 되도록 붙들어 주옵소서.
함께 하시고 은혜와 진리로 날마다 인도해 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