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오스 Chaos / 박정이
- 허공과 혼돈 속에서
가이아 너는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 속에서 아무 형체도 없이
카오스로부터 나온 여자, 뭔가 형체를 가진 여자
태초에 갈라진 틈사이로 넓은 젖가슴을 가진 여자
모든 신들의 어머니 생명의 모태로서
분명 숭배 받던 모계시회의 흔적의 의미지만
어쩌면 나는,
금지된 것을 더욱 갈망하는 칼리굴라처럼Caligula
덧없는 해골처럼, 너, 가이아가 되어
태초의 무대 1막1장으로 오르고 있다
때론, 캄캄한 빈 허공을 에레보스, 그리고 닉스와
함께했던 것처럼
땅속의 어둠을, 빛이 없는 하늘의 어둠을
나는 거울도 없이 Chaos카오스 무대의
깊숙한 곳에서 침묵으로 기다린다
가끔씩, 허공의 한 귀퉁이에 앉아
청동모루를 던지면 구일 만에 지상에 닿고
땅 밑으로 던지면 구일동안 떨어져
타르타로스에 닿는다고 상상하면서 나는,
지금의 내 현실의 삶이 슬픔과 고통으로
가득 할지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며 사랑한다는 신념,
죽음은 단지
본질을 캐낼 수 있는 광맥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서있는 신기루 같은 삶 앞에서도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뒤바뀐 것처럼
의망은 희망으로 남고
현실의 절묘한 한수도 아름다운 허물이 되듯,
지금 나는 태초의 가이아가 되어
허공과 혼돈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시의 시간들』 2026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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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이 시인
서울 출생
2009년 경남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오후가 증발한다』『여왕의 거울』『목성의 춤』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