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인 잠언 8:22-31절은 지혜를 의인화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나’는 바로 지혜(잠8:12)입니다. 이렇게 시작합니다.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참으로 놀라운 진술입니다. 태초 이전에 이미 지혜가 존재했다고 합니다. 지혜의 선재성을, 지혜의 존재론적 능력을 가립니다. 22-26절에서 이것이 반복됩니다. 땅, 바다, 산, 언덕, 들, 진토의 근원이 만들어지기 전에 지혜는 존재했다고 합니다. 이 세상의 시작인 태초(*요1:1 태초(창세전))는 우주물리학에서 120억 년 전입니다. 그때부터 우주에는 무엇인가가 존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전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게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데서 어떻게 무엇인가가 나오느냐는 겁니다. 이 세상의 원리에서 본다면 결과는 원인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방식의 이 세상이 시작하기 전에 이미 지혜가 존재했다면 그 지혜는 이 세상의 것을 근본적으로 뛰어넘는 어떤 능력입니다. 그런 능력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태초 이전에 존재하는 분은 하나님이고, 지혜가 태초 이전에 존재한 능력이라고 한다면 지혜는 하나님이라는 말이 됩니다.
22절은 여호와께서 태초에 일하기 전에 ‘나를 가지셨’다고 했으며, 23절은 ‘내가 세움을 받았’다고 했고, 24절은 ‘내가 이미 났’고, 25절도 역시 ‘내가 이미 났’다고 했습니다. 이런 구절을 표면적으로만 본다면 지혜와 하나님이 구별됩니다. 하나님이 지혜를 만들었다는 뜻으로 새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태초 이전의 차원에서는 주객개념에서 나온 ‘만든다’는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만든다는 말, 또는 피조되었다는 말은 이 세계가 시작된 이후에만 통합니다. 지혜는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태초 이전에 존재하고 있던 어떤 능력입니다. 그렇게 존재하는 지혜는 하나님과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방식입니다. 하나님의 본질입니다.
이런 설명이 좀 복잡하게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에게 친근한 요한복음을 읽으면 도움이 될 겁니다. 요한복음 기자는 다음과 같은 구절로 복음서 쓰기를 시작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여기서 말씀은 ‘로고스’입니다. 로고스는 언어, 이성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로고스가 태초에 존재했다면 로고스는 잠언이 말하는 지혜와 똑같습니다. 요한복음 기자가 말하는 로고스는 물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예수 그리스도, 로고스, 지혜는 일치합니다. 지혜가 바로 하나님과 하나라는 사실에서 본다면 로고스이신 예수님은 하나님과 일치한 분입니다. 이게 과연 말이 될까요? 예수님은 분명히 태초 이후에, 그것도 역사가 한참 흐른 후에 이 세상에서 우리와 똑같은 방식으로 살았던 역사적 인물입니다. 역사의 한계 안에서 살았던 그가 태초 이전부터 존재한 로고스라는 말은 예수가 역사를 초월하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이런 걸 무조건 믿으라고 강요하면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겠지요. 이해가 되어야 믿을 수 있습니다. 믿을 수 있는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성서와 기독교의 가르침은 말도 되지 않는 것을 무조건 믿으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이런 문제를 풀어줄 키워드는 ‘성령’입니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예수님은 그 영을 ‘진리의 영’(프뉴마 테스 알레테이아스)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진리의 성령이 제자들을 진리로 인도할 것이라는 뜻입니다(요 16:13) 진리의 영이라는 말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진리는 말 그대로 참된 것입니다. 진리의 영은 숨어 있던 진리를 밖으로 끌어내는 힘입니다. 예컨대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우주의 역학을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진리의 힘에 의한 것입니다. 원소 주기율표가 있는데, 그런 원소의 속성이 밝혀지는 것도 역시 진리의 힘 때문입니다. 그 진리의 힘이 곧 성령입니다. 요한복음은 그 진리의 성령이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낸다고 말했습니다.(요 16:14) 여기서 예수님의 영광은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가리킵니다. 무슨 말인가요? 부활은 성령의 활동입니다. 부활을 인식하는 것도 역시 성령의 일입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이 성령을 통해서 예수님이 하나님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경험했습니다. 예수님이 태초 이전에 존재한 로고스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경험했습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에게는 이 사실이 바로 궁극적인 진리였습니다. 궁극적인 진리를 알게 하는 성령은 하나님이었습니다. 초기 기독교가 성령의 임재와 성령 경험을 강조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이 아니면 진리를 알지도 못하고 예수님의 부활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에 대한 구약의 다른 용어가 바로 오늘 설교의 주제인 지혜입니다. (인터넷에서 찾은 답)
창조의 영
어떤 기독교인들은 성령은 무조건 열광적인 은사의 차원에서만 생각합니다. 방언, 신유, 입신 등등의 현상 말입니다. 그런 현상들은 성령 임재의 특수한 결과들입니다. 바울은 성령의 은사를 기능적인 차원에서도 설명했습니다. 사도, 선지자, 교사의 일도 은사입니다.(고전 12:28) 이런 은사들은 각자가 섬기는 차원에서 감당하기만 하면 됩니다. 문제는 이런 것만을 성령 임재의 모든 것처럼 주장하는 겁니다. 부분적인 현상을 전체적인 것처럼 오도하는 잘못입니다. 성령은 전체적인 차원에서 지혜의 영입니다. 지혜의 능력입니다. 태초 이전부터 하나님과 하나였던 힘입니다. 지혜가 바로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잠언은 그 사실을 오늘 본문 후반부(27-31)에서 정확하게 짚었습니다. 하나님이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을 만드실 때 지혜가 거기 있었다고 합니다.(27) 구름 하늘을 견고하게 하고 바다의 샘을 힘 있게 하고(28) 바다의 한계를 정하고 땅의 기초를 정할 때에(29) 하나님 곁에 있었습니다. ‘창조자’가 되어 그 창조 행위를 즐거워했고,(30) 사람이 거처할 땅에서 즐거워하고, 인자들을 기뻐했다고 합니다.(31) 이런 표현들은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시고 보기에 좋았다고 한 창세기 1장의 내용과 비슷합니다. 잠언이 말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지혜는 곧 창조자라는 것입니다.
지혜가 창조자라는 말은 참으로 놀라운 진술이지만, 우리의 일반적인 신앙으로는 받아들이기가 간단하지만은 않습니다. 하나님이 지혜롭다거나 하나님에게는 참된 지혜가 있다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지혜가 곧 창조자 하나님이라니요. 이렇게 생각하면 하나님의 권능이, 또는 하나님의 인격성이 훼손될 것 같아서 불편합니다. 불편하거나 이상하게 생각할 거 하나도 없습니다. 이런 불편한 생각은 우리의 선입관 때문에 벌어집니다. 하나님을 구름 타고 다니는 도인처럼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어떤 이는 하나님을 옥황상제처럼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런 생각으로 천국에 가서도 더 좋은 상급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구약성서는 하나님을 형상화하지 말라는 말을 반복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형상으로 만들어 섬기는 것이 곧 우상숭배라는 겁니다.
여러분, 지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본질입니다. 잠언은 지혜라는 말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냐 하는 사실을 정확하게 전한 것입니다. 지혜는 바로 창조자라고 말입니다. 이를 거꾸로 하면 창조자가 지혜라는 뜻입니다. 이게 허투루 나온 말이 아닙니다. 다시 잠언 8:22-31절의 설명을 보십시오. 크게 보면 두 가지 사실을 말합니다. 하나는 지혜의 선재성이고, 다른 하나는 지혜의 창조성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지혜가 창조 사건과 직결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잠언 기자가 전하는 단어를 나열하겠습니다. 태초, 땅, 바다, 큰 샘, 산, 언덕, 들, 진토, 하늘, 궁창, 구름 하늘, 바다의 샘, 바다의 한계, 땅의 기초가 그것입니다. 잠언 기자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세계가 얼마나 장엄한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신비 그 자체입니다. 우주를 가능하게 하는 힘이 무엇인지 그는 알지 못합니다. 그런 것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그런 것이 어떻게 운용되고 있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모든 인식 능력을 뛰어넘는 그 세계의 창조 능력이 바로 ‘호크마’, 즉 지혜라는 겁니다.
첫댓글 하나님은... 육신의 관점으로 해석되거나... 육신의 눈으로... 풀려지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피조물인 자신들과 같은... 육신으로 이해하는 이들이 너무도 많은듯 싶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십계명에도 증거하지만.. 자신에 대한..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라하셨는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된 존재가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창조물인.. 사람들은... 하나님을 우리와 같은 피조물로 그분을 인식하고.. 그분을 제한하는 관점을 가지고 있더라는 거지요... 하나님을 피조물의 관념으로 형상화 한다는 자체가.. 이미 진리가 아닌.. 비진리를 섬기는 우상숭배라는
것을 깨달아야 됩니다.. 십계명에서... 말씀하신.. "나(하나님)를 위해 어떤 형상도(창조물, 피조물) 만들지 말라"하신 말씀은... 물질로 만든 동상이나 우상만을 포함하는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됩니다.. 바벨론 침례파등 바벨론 사상에.. 근원된 모든 비진리는... 하나님을... 유형이든.. 무형이든... 이런 피조물의 어떠함으로 관념하여... 형상화한 십계명에 계시된 그분에 대한 어떠함의 근원을 부정하는 결과를 갖게 하며.. 즉 하나님을 피조물적 형상의 우상으로 인식하게됨으로써... 결론적으로... 예수께서 여호와시라는 진리를 대적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마가복음에 보면...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에 보면...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셨다고"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도 우리 피조물들처럼 하나님 우편에 앉았다가 섰다가.. 앉았다가 섰다가... 그러고 계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까?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육신으로 보니... 이런 우스꽝스런 하나님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두 신들이면... 예수라는 신이... 아버지라는 신의 항상 오른쪽에 있으면서... 앉았다 섰다를 반복하시느냐는 말입니다..
아들이라는 신이.. 아버지라는 신의 외쪽이나 앞쪽에는 가지 않으십니까? 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우냐는
말입니다.. 그러면.. 영이신 아버지 하나님의 오른쪽은 어디가 오른쪽이며.. 왼쪽은 어디가 왼쪽이됩니까? 피조물처럼.. 물질이 존재하는 위치가 있고 그 끝나는 지점에서... 오른쪽이 있고.. 왼쪽이 있는 것이지.. 그림자도 없으신 영이신 하나님에 있어서.. 오른쪽은 어디쯤이고.. 왼쪽은 어디쯤이냐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말씀을... 아무런 생각도 없이.... 육신으로 여겨.. 하나님을... 피조물적인 형상으로 만들어... 십계명을 범하면서.. 우상화 시켜놓으니.. 이런.. 어처구니 없는 우스꽝스런 우상 하나님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말씀을 문자적으로.. 육신적으로만 그대로 암송하고 외우면.. 문제없다고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지혜는 분명히 피조물이라고 했습니다.
억지로 구부려서 지혜가 곧여호와라고?
우기는것은 근원이 성경이 아닙니다.
스테반이 죽을때 하느님우편에 서잇는것은 우리의 이해력을 증진시키는 것입니다,, 잇는 표현 그대로 받아드리십시요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합니다.
영적인 천사들의 세계를 이해못한다면 성경에 나오지 않는 이해력을 억지로 들어서 근원이 하느님도 아닌 영적인것을 들어 스스로 어지럽히지말기바랍니다.
지혜는 피조물이고 태초에 존재햇다면 태초이전에 여호와가 먼져 존재한것입니다.
여호와는 시작이고 마지막...
예수의 시작..마지막은 여호와의 경륜안에서 일과 목적안에서 시작과 마지막입니다.
[고전 1: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잠8:35~36 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
그러나 나를 잃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 자라 무릇 나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느니라
여기서 나는 지혜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우리가 얻어야 하는데,,,,
하나님의 지혜가 의인화 해서 기록한 말은 우리가 이해 하는 범주가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의인화되어 나온것이 많이 있습니다,
땅이 말할수 있습니까 피가 말할수 있습니까....
그렇다고 인격이 첨부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의 지혜라면 하나님의 속성을 말합니다.
지혜는 피조물이라고 하는 것도 우리가 잘못알고 있는 것이지요.
창조되는 것과 하나님의 속성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속성이 피조물이라고 한다면 사랑도 믿음도 긍휼도 분냄도 ,,,,,, 다 피조물이 됩니다.
그러므로 지혜가 여호와는 아닙니다, 속성이기에.....
하나님의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의 원래의 모습을 볼수없고 모르기 때문에 예수님이 직접 자기를 그렇게 소개하고 피조물이라 생각하지말고 그리고 여호와라고 보지말고
아들이라고 보도록 하신것입니다.
칼빈의 삼위일체및신학은 우리가 본받을것이 없다고 보지만
그렇다고 다른 신학자들의 주장도 받을것이 없습니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받는 것이 더 정답입니다.
자꾸 이렇게 속성과 관련하여 주장을 주장하면 서로의 믿음에 금이 갑니다,
내 생각대로 행한다고 할때 생각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닌 나 자신의 모습이며 나의 속성인것을 알면
님의 글을 신학적으로 풀지 마시고
요한복음의 기록을 더 살펴 보시기를 원합니다.
한귀절에 얽매이지 마시고
주어진 문법이 틀려도 에고에이미라고 믿으라고 하지 마시고
그 의미의 전후과정을 보시고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메시야이시며 그리스도임을 베드로처럼 고백하는 분이 되셨으면 합니다
보이는것과 보이지 않는것에 지혜도 포합되지 않나요? 그지혜가 예수이든 그냥 하느님의 속성인 지혜이든
보이지 않는것과 보이지않는것을 예수께서 만들엇다면 모든 것을 창조하신분은 또한 여호와이십니다.
시24:1 {다윗의 시}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모두 여호와의 소유입니다. 또한 창조됫다고 믿는것이 당연한 논리입니다.
사44:6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속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그후지어진 모든것은 여호와의 창조물입니다.
예수를 창조물로 보든 하느님으로 보든 여호와로 보든 믿음이
금이 갈이유가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대속믿음안에 잇다면 말입니다. 혹시 피조물로 보는 이유로 상대의 구원이나 믿음판단 까지 할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럴수 있겠지만 나는 여호와로 보든 피조물로 보든 우리의 구원과는 아무상관없다는 생각입니다.
그것은 지금 아는바와 같이 설득으로 아는것이 아니고 하느님이 관여해야 바로 잡을수 잇는 논리입니다. 감동이 되지않으면 서로 판단할것이 아니고 고무하고 그이유를 서로 따지고 격려할필요는 잇겟지요..끝까지 합쳐지지않는다하여 적대시할필요가 없습니다. 예수의 죽음과 대속이 가장큰 신비요 지혜입니다. 그것을 받아드리기기가 가장 기적입니다.
태초에 존재하면 창조될수 없다고 하니..지혜가 태초에 존재햇지만 창조됬다는 성경증거가 그이론을 반증하는것이고 말씀이 태초에 존재햇어도 그말씀은 창조 됬을수있다는 추리는 당연히 가능합니다.절대 그것을 근거 없는 추리로 묵살할것이 아닙니다.
그럼 말씀이 예수란 단정도 없기에 예수를 말씀이라고 추리도 하지 말아야지요..어떤 추리를 일반화하여 신앙으로 받아드릴지는 각자의 선택입니다. 다만 강요하거나 경멸하는 문법을 쓰는것은 이런 토론에 도움이 안됩니다. 그점을 나는 이만큼님과 공유하고 잇는것이지요..
지혜는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이지 누가 지혜를 창조합니까? 님 자신도 알지 못하는 것을 가지고 남을 가르치려 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가소롭게 보일 뿐입니다.
잠8:22 야훼께서 만물을 지으시려던 한 처음에 모든 것에 앞서 나를 지으셨다.
잠8:23 땅이 생기기 전, 그 옛날에 나는 이미 모습을 갖추었다.
잠8:24 깊은 바다가 생기기 전에, 샘에서 물이 솟기도 전에 나는 이미 태어났다.
잠8:25 멧부리가 아직 박히지 않고 언덕이 생겨 나기 전에 나는 이미 태어났다.
잠8:26 평평한 땅과 땅의 흙을 만드시기도 전에 나는 이미 태어났다.
이렇게 지으셨다고도 되잇고 태어낫다고도 됬네요..
가르치다니요?
성경에 써있네요..
그게 다 은유법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님은 지혜가 창조되었다고 생각하나요? 멍청하긴...
그게멍청한것인가요? 님이 이런 성경구절도 모르던사람이 찾아주면 왜그런지 해설할생각은 하지 않고 멍청하다는 경멸이나 일삼으니..길선님이고 소리사랑님이고 성령이 없이 성경을 해설하겟다고 하는증거가 나오는것입니다.더구나 난 길선 님을가르치려고 한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오해하지말고 길선님이나 나를 가르치려고 한번시도를 해보시지요? 맞으면 받아드릴테니..성경에 잇는 증거로 길선님이 지금 행하는 행태가 진리가 아님을 폭로한것 분입니다. 박살,낸것 뿐이라고요..
말씀을 초등 수학 공식에 대입하려고 하니.. 어찌 풀릴 수 있겠습니까?
성경적이고 논리적인 논증을 하라하기에 계속 찾아증거하는것 뿐입니다.
이런 초등학문적인것도 이해못하면서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를 풀겟다고하는것은 더 앞뒤가 막힌 것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