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20일(화)
* 시작 기도
주님...
사무엘 선지자도 그의 인생 말년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치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이 종 또한 주의 백성들을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도록 나를 붙드소서.
날마다 주의 자녀들을 위하여 주님께 목소리를 아뢰기 원합니다.
단순히 그들의 욕망과 욕구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어찌하든지 주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이루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게 하소서.
주님의 뜻은 오직 영생이오니 땅의 것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저들의 영안을 열어주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이 하루도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어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자 되게 하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우소서.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는 자가 아니라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일은 아들을 보고 믿는 것이오니 육신적 세상적 정욕적인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우리를 장악하여 주소서.
참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오늘도 먹되 그 살과 피의 원형인 주의 말씀을 오늘도 나의 양식으로 받아먹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살전 1:1-10
제목 :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 그리고 소망의 인내를 기억하시는 하나님.
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2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4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5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7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8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9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10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 나의 묵상
데살로니가교회는 바울이 2차 전도여행 중 마게도냐 지방에서 빌립보교회를 개척(행 16장)한 후 두 번째로 개척한 교회이다(행 17:1-9).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한 이후에 바울은 데살로니가로 옮겨와서 복음을 전하였다.
그 때 다수의 이방인 무리들이 회심하게 되었다(행 17:4).
그러나 데살로니가에서의 바울의 사역은 불과 한 달(세 안식일)도 채 되지 못하였다(행 17:2).
그 이유는 복음에 대하여 적대적인 데살로니가에 사는 유대인들의 극심한 박해 때문이었다.
유대인들의 박해로 데살로니가에 더 이상 머물 수 없게 된 바울은 결국 가까운 베뢰아로 피신하였으나 유대인들이 거기까지 쫓아와 바울을 대적하자 바울은 또 다시 아덴으로 피신하였다(행 17:10-15).
그런데 데살로니가를 떠나온 바울은 이제 막 개척하여 탄생한 데살로니가교회가 염려되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몇 번이나 데살로니가를 방문하려고 노력하였지만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에 바울은 아덴에서 디모데를 데살로니가에 보낸다(살전 3:2).
그리고 바울은 곧바로 고린도로 건너가서 복음을 전하였다.
그러던 차에 디모데가 바울에게로 돌아와서 데살로니가교회의 소식을 전하여 준다(행 18:5 ; 살전 3:6).
데살로니가전서는 바울이 고린도에서 디모데로부터 데살로니가교회의 소식을 전해들은 후에 기록한 것이다.
디모데가 가져온 소식은 대체로 기쁜 소식이었다.
바울이 염려했던 것과는 달리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은 환난 중에도 주의 재림을 고대하며 꿋꿋하게 신앙을 지키는 것은 물론 믿음과 사랑이 풍성하였다.
바울은 디모데로부터 이런 소식을 전해 듣고 큰 위로를 받게 되었으며, 본 서신을 통해서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믿음으로 인한 감사와 그들의 믿음에 대한 진정한 칭찬과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오늘 본문 1장에서는 데살로니가교회에 대한 바울의 뜨거운 관심과 애정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바울이 하나님께 기도할 때마다 감사하는 이유는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예수님에 대한 소망의 인내가 중단 없이 이어지는 것으로 인함이다(3절).
또한 바울이 그들에게 전한 복음이 말로만 그친 것이 아니라 능력과 성령과 큰 믿음의 확신으로 된 것으로 바울 일행이 데살로니가 성도들과 함께 생활할 때 정말 잘 대해준 것에 대해서도 감사하고 있다(5절).
무엇보다 성도들이 극심한 가난과 환난 가운데 있지만 성령이 주시는 기쁨으로 복음을 받아서 바울 일행과 같이 주님을 본받는 자 된 것에 대하여 감사하고 있다(6절).
그들이 받은 복음이 그들에게서만 머물지 않고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을 비롯하여 멀리 있는 각 지방에까지 퍼진 것을 들을 때 그것이 가장 감사한 제목이기도 하였다(7-8절).
그들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섬기되 얼마나 잘 섬기는지,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이 다시 오심으로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자신들을 구원해 주실 것에 대한 종말신앙으로 살고 있다는 이야기가 바울에게 들려온 것에 대하여 감사하고 있다(9-10절).
나는 사도 바울과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의 삶을 묵상하면서 너무나 부끄러웠다.
첫째, 바울이 개척한 교회를 사정상 두고 나왔지만 그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지대한 것과 끊임없이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정말 애정을 쏟는 일과 기도하는 일에 한없이 부족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사정상 한국에서 섬기던 늘행복한교회를 사임하고 나와서 지금 베트남에서 선교사의 직무를 감당하고 있다.
하지만 내 안에 남아 있는 감정의 앙금 때문에 첫 번 개척한 교회를 위하여 중심으로 애정 어린 기도를 하지 못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주의 일은 사람의 감정을 넘어서서 감당해야 하는 일인데 말이다.
둘째,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에 비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의 인내와 종말론적 신앙이 한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나는 당시 늘행복한교회를 섬기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나 종말론적 신앙을 증거 하기보다 현재적으로 당하는 고난과 고통을 해결하고자 무진 애를 쓰다가 결국 교회를 사임하게 되었다.
교회를 이끌어가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하는데 나의 뜻대로 이끌어가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 것이었음을 후에 깨닫게 된 것이다.
셋째, 성도들은 극심한 가난과 환난 중에도 성령이 주시는 기쁨으로 복음을 받아서 날마다 주님을 본받는 자들이 되었는데 나는 가난과 환난 등 교회에 어려움이 닥쳤을 때 성령의 기쁨보다는 오히려 낙심과 불평이 많았던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이런 나를 창세전에 아시고 택하여 불러주셨다(4절).
그리고 아무런 가치도 없는 나를 의롭다 하시고 이제 마지막 날 영화롭게 하실 것에 대하여 항상 현재로 거하는 영원의 시간 안에서 또한 영화롭게 해 주셨다(롬 8:30).
그렇게 목사가 되었고 또한 교회를 개척하여 늘행복한교회를 섬기게 하셨으며 지금은 선교사가 되어 어디를 가든지 주의 복음을 증거하고 있다.
지금은 비록 늘행복한교회를 떠났지만, 복음의 씨앗을 심고 떠나왔으니 내가 할 일은 그들에게 심겨진 복음의 씨앗이 잘 자랄 수 있도록 기도하는 일이다.
주님께 감사하는 것은 늘행복한교회에 있을 때 이 복음을 알게 되었고 또한 그들에게 증거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좋아하는 말씀이나, 성도들이 듣기 원하는 말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 증거하기 원하시는 복음의 말씀을 전하는 자로 서게 된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한다.
예배 때마다 복음을 전하며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있으면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져서 복음을 전하게 된다.
때로는 성도들이 피로감에 쌓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정말 성도들을 사랑하는 것은 복음으로 무장된 그리스도의 군사로 만드는 것임을 알기에 거기에 굴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였고 또한 전하려고 한다.
물론 성도들에게 위로와 격려도 필요하다.
그런데 위로와 격려가 주된 사역이 되면, 성도들은 끊임없이 목사로부터 받기만을 원할 것이다.
그러나 복음으로 무장된 그리스도의 군사들이 되면 그들에게 때로는 위로와 격려가 주어질 때, 그 시너지 효과는 몇 배가 될 것이다.
나의 중심을 아시는 주님께서 이 일에 무한한 응원을 주실 것을 믿는다.
아들의 생명은 복음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기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거듭나는 것, 즉 위로부터 오신 아들의 생명을 얻는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이는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이다(벧전 1:23).
인생은 풀과 같고 그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나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는데, 이 말씀이 바로 복음이다(벧전 1:24-25).
* 묵상 후 기도
주님...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복음을 알지도 못했고, 전하지도 못했던 이 무지한 종이 이제는 복음을 알고 그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었나이다.
이것은 오로지 주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영적으로 살라고 강조하면서도, 생각의 끝은 여전히 땅의 것, 만물 안에 있는 것으로 귀결하려고 했던 이 종의 잘못을 용서하여 주소서.
이제는 날마다 복음을 통하여 생명으로 나아가는 삶으로 성령의 기쁨이 되게 하옵소서.
이 복음이 나에게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각 교회와 대한민국 그리고 열방에까지 전파되어 정말 온 열방 가운데 주의 이름이 증거되게 하옵소서.
이 일은 성령으로 주님이 하시는 줄 믿습니다.
가는 곳마다 선포되는 복음의 메시지가 열방 곳곳에 널리 퍼지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주의 영광이 임하길 원합니다.
만물 안 곧 땅에 신앙의 근거를 두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며 살아가는 데살로니가교회처럼 그리스도인들이 정말 하나님의 나라에 소망을 두고 흔들리지 않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붙잡아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