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치플레이션 시대, 서울 ‘구내식당 맛집’ 10곳
[토요기획]런치플레이션 시대, 서울 ‘구내식당 맛집’ 10곳
“물가 너무 올라 점심 사먹기 부담”… 5000~6000원 저렴한 구내식당
기자-전문 리뷰어들 함께 방문… 맛-반찬 종류-분위기 세밀히 따져
외부 식당에서 먹으면 한 끼에 1만 원 넘게 드는 곳이 적지 않은데, 구내식당은 값도 싸고 메뉴도 다양하게 바뀌잖아요. 건강에도 좋고요…”
서울 광화문 회사 주변 식당 점심메뉴 가격이 최근 너무 올라 구내식당을 자주 간다는 한 직장인의 말이다.
직장인들에게 점심값은 민감한 이슈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직장인들은 점심을 매일 사먹어야 한다. 이 때문에 가격 인상에 대한 저항감이 상대적으로 크다”라고 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가 전년 동월 대비 6.0% 상승하는 등 물가 급등이 지속되는 가운데 점심값 부담이 커지자 ‘런치플레이션(lunch+inflation)’이라는 신조어까지 탄생했다. 이에 따라 비교적 저렴한 편의점 도시락이나 패스트푸드를 선택하는 이들과 함께 구내식당을 찾는 이들도 늘고 있다.
구내식당 이용객 증가는 수치로도 나타난다. 국내 한 대형 급식업체의 수도권 오피스 구내식당 4, 5월 매출은 전년 동월 대비 각각 2.5%, 19.4% 증가했다. 업체 관계자는 “4월부터 재택근무에서 출근으로 전환한 회사가 늘었다. 여기에 최근 가파른 물가상승으로 직장인들의 구내식당 이용이 증가한 결과로 분석된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직장인들에게 ‘맛집’으로 이름난 서울의 구내식당 10곳을 7∼13일 방문해 평가해봤다. 각 구내식당들은 위치한 층과 테이블 구성, 창문의 유무 등 공간적 요소부터 반찬의 가짓수나 음식 간의 세기, 식혜 등 후식의 제공 여부 등에서 차별화 요소를 갖고 있었다. 마치 시골집 음식 같은 푸근한 식당이 있는가 하면 간단한 반찬을 여럿 내놓는 데 주력한 구내식당, 반찬의 가짓수를 줄이는 대신 가격대를 5000원 이하로 맞춘 곳 등으로 다양했다.
평가에는 기자와 함께 맛집 평가 애플리케이션(앱) 망고플레이트의 우수 리뷰어 ‘홀릭’ 1∼3명이 동행했다. 평점은 ‘해당 지역 주민이나 직장인들이 오기 좋다’는 ★, ‘가깝지 않은 지역에서도 와볼 만하다’는 ★★, ‘구내식당 수준을 초월했다’는 ★★★ 등으로 매겼다. 물론 기자와 ‘홀릭’들의 주관적 평가다. 또 각 구내식당의 가격과 메뉴 등은 업체 측의 사정에 따라 변동될 수 있다.
세종대 학생회관 식당 4300원 소금구이덮밥-5500원 육회비빔밥 “최고 평점”
○ ‘구내식당 수준을 초월’
여기는 보통의 구내식당이랑 비교하면 안 되겠는데요. 소금구이덮밥은 왜 인기가 많은지 먹어보니 알겠네요. 진짜 맛있어요.”(40대 홀릭 ‘글쟁이’)
광진구 세종대 학생회관 구내식당은 여러 매체를 통해 정평이 난 곳이다. 기자와 홀릭 1명이 모두 별 3개를 줬다. 동행한 홀릭 ‘글쟁이’는 “참신한 메뉴와 착한 가격, 맛을 모두 갖춘 곳”이라며 “푸드코트 형태로 운영되는 매장 4곳에서 다양한 메뉴를 선택해 주문할 수 있는 것도 강점”이라고 평가했다.
‘시그니처 메뉴’로 꼽히는 소금구이덮밥은 4300원으로 저렴한 편인데도 고기 누린내가 없고 간도 입맛을 돋울 정도로 적당했다. 제육덮밥과 불고기덮밥의 중간 정도인 느낌이었다. 육회비빔밥 역시 5500원이라는 가격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고기가 넉넉히 담겨 있었다. 이 식당은 앱으로 주문과 결제가 가능해 키오스크에서 줄을 안 서도 된다. 굳이 단점을 꼽자면 김치나 나물, 장국은 손님이 직접 가져와야 했고, 음식이 비교적 맵고 단 편이었다.
명동성당 가톨릭회관 조미료 맛 안나는 계란찜-미역국… “혀와 속이 편안”
○ ‘혼밥’해도 좋을 편안한 분위기
“밖에서 봤을 때보다 훨씬 쾌적하네요. 구내식당은 지하에 있는 경우가 많은데 1층이라 창밖을 볼 수 있는 것도 좋고요. 맛은 집밥처럼 편안한 느낌입니다.”(20대 홀릭 ‘Nyn’)
중구 명동성당 가톨릭회관 구내식당은 수수한 외관을 닮은 편안한 맛이 강점이었다. 기자와 홀릭 2명으로부터 각각 별 3개, 2개, 2개를 받았다. 성당 부속건물 구내식당인데 비교적 손님의 연령대가 높아서인지 오이지와 계란찜, 미역국 등이 간이 세지 않고 조미료 특유의 맛도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는 평가였다.
홀릭 ‘글쟁이’는 “혀와 속이 편하다”라며 “명동 복판에 위치했는데 이 가격(5500원)에 이 정도 맛은 경쟁력이 충분하다”라고 평가했다. 메뉴는 한식과 일품 두 가지로 운영되고 있다. 외부인은 원래의 점심 시작 시간에서 45분 뒤인 낮 12시 15분부터 이용이 가능한데, 일품의 경우 다 떨어져 주문할 수 없을 때도 적지 않다고 한다.
강남구 학동로 강남세무서 7층 구내식당도 조용히 밥을 먹고자 하는 사람들이 찾기에 적합하다. 20대 홀릭인 ‘Seyeon. Y’는 “동태매운탕 국물이 맑고 깔끔하다. 조미료 맛이 안 나고 재료에서 신선함이 느껴진다”고 평가했다.
강남구 코엑스 구내식당 ‘오크우드 카페테리아’와 서대문구 케이티앤지 서대문타워의 ‘NH 카페테리아’는 주변 직장인이 워낙 많이 찾는 명소다. ‘혼밥’을 해도 전혀 부담이 없다. ‘Seyeon. Y’는 오크우드 카페테리아에 대해 “넓고 부담 없는 분위기에 기사식당 느낌도 난다”고 평가했다.
구로구 ‘행복한 한식부페’ 다양한 메뉴에 후식도 장점… “집밥 느낌 나는 뷔페”
○ 다양한 반찬과 후식
소규모 정보기술(IT) 회사 등이 몰려있는 구로구는 개별 회사들이 구내식당을 운영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 대신 빌딩마다 자리 잡은 최대 300석 규모의 한식뷔페 식당들이 구내식당 역할을 한다. 회사원들은 회사가 식권을 대량으로 구매해 지급하는 식당을 이용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일부는 선호하는 메뉴에 따라 식당을 옮겨 다니기도 한다.
대륭포스트타워 7차 건물 지하 1층에 있는 ‘해피타임’은 기자와 홀릭 3명으로부터 평균 별 2개 반을 받았다. 일단 음식 맛이 전반적으로 좋았다. 30대 홀릭 ‘예랑’은 “50, 60대 이모님들의 손맛이 제대로 느껴지는 식당”이라며 “후식으로 직접 담갔다는 효소 음료를 마련한 것에서도 좋은 인상을 받았다”라고 했다. 다만 대량으로 조리하다 보니 구이나 볶음의 특유의 맛이 다소 부족하고, 고기에서는 약간의 잡내가 느껴진다는 지적도 있었다.
가격(6000원) 대비 푸짐함도 장점이었다. 평가단이 방문한 날 식단은 잡곡밥·백미밥, 삼겹살철판구이, 소떡소떡, 두부조림, 김치콩나물국, 야채스틱과 쌈, 나물, 냉모밀소바, 과일, 포기김치, 그린샐러드, 후식차 등이었다.
구로구 ‘런치투게더’와 ‘행복한 한식부페’도 다양한 메뉴와 후식, 친절한 서비스 등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20대 홀릭 ‘하루별’은 런치투게더에 대해 “씩씩하게 인사하는 사장님과 직원 덕분에 기분이 좋아졌다. 메뉴도 호불호 없이 누구나 좋아할 만한 것들이었다”고 평했다. 홀릭 ‘글쟁이’는 “솜씨 좋은 주부가 만든 것 같은 소소한 가정식 느낌”이라고 했다.
용산고속철도 승무사업소 고슬고슬한 밥맛 일품… “용산역사 전망은 덤입니다”
○ 더 싼 곳 찾기 쉽지 않은 구내식당
용산구 용산역 아이파크몰 5층 주차장 한쪽에는 용산고속철도열차 승무사업소 입구가 있다. 입구로 들어가니 한국철도공사 직원들을 위한 구내식당이 나왔다. 여기서는 외부인도 4800원에 식사를 할 수 있다.
대량 조리의 특성상 구내식당에서는 찐밥이 나오는 게 보통인데, 이 식당은 밥이 고슬고슬한 점이 호평을 받았다. 음식의 간도 자극적이지 않았다. 용산역사 내부가 보이는 좌석에서 식사를 하며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도 신선한 경험이었다. 다만 단가를 맞추기 위해서인지 아무래도 반찬에 고기류가 적었다는 점, 식기 반납 전 흐르는 물에 한번 세척해야 하는 번거로움은 다소 아쉬웠다.
20대 남성 홀릭 A 씨는 “가격대를 생각하면 메뉴 하나하나가 맛이 꽤 좋은 편”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30대 홀릭 ‘써니♡’는 “가격은 착하지만 주 반찬의 양이 너무 적었다”라고 지적했다. 홀릭 ‘예랑’은 “단가를 500∼1000원 정도 올리는 대신 단백질 메뉴를 추가하면 어떨까 싶다”라고 했다.
성동구 성동세무서 구내식당도 4800원이다. 세무서 건물 꼭대기 층에 자리해 전망도 좋고, 조용한 분위기에서 식사를 할 수 있다. 다만 홀릭 ‘글쟁이’는 “스파게티 소스나 크림수프가 너무 묽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권구용 기자, 유채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