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성이씨 이동영이 조선 중기 현종으로부터 받은 생원시 합격교지인 백패.
조선시대 울산 최초 생원시 합격자는 효자 송도선생일까? 학성 이씨 이동영선생일까?
최근 학성 이씨 문중 주손 이 증씨가 이휴정가의 유물 1,600여점들을 울산박물관에 기증하면서 지역 역사학계에서는 이에 대한 의문이 대두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문헌기록상 울산 최초 생원은 송도선생이고, 임금이 내린 합격교지(백패)로 증명하자면, 이동영선생이다.
조선시대 관리의 등용문이었던 과거는 크게 문관을 선발하는 문과와 무관을 선발하는 무과로 나뉜다.
문과는 대과로 부르기도 하는데 대과에 응시하려면 초시와 1차 시험인 생원진사시를 통과해야 했다. 초시 입격자를 초시, 생원진사시 입격자를 생원 혹은 진사라 불렀다. 생원진사시는 대과에 견줘 소과라 부르기도 한다.
울산박물관이 이달 학성이씨 후손 이 증씨로부터 기증 받은 유물은 고서와 고문서 등 모두 1,661점.
이 중 대표 유물로 눈길을 끈 것은 현종이 강희 5년(1666) 2월11일에 생원시에 합격한 이동영[1635 ~ 1667])선생에게 발급한 백패(白牌)다.
이동영선생은 학성이씨 10세, 충숙공의 9대손, 유물 소장자 이 증씨의 10대조로, 이휴정(울산광역시문화재자료 제1호)을 신축하기도 한 인물이다.
이동영이 받은 이 백패는 조선시대 소과(생원시) 합격교지로, 울산박물관은 ‘울산 최초의 소과 입격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고 알렸다.
그러나 이 같은 사실을 담은 보도가 본지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를 통해 나가자, 일부 시민들이 의문을 제기했다. 울산향토사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울산최초의 생원은 효자 송도(宋滔)선생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송도선생은 조선 전기의 울산 출신 효자이며, 본관은 연안(延安)이다. 생원시에 입격해 성균관에서 수학하고 1428년 세종 때 효행으로 정려비가 내려진 인물로 문헌기록상 알려져 있다. 현재 울산 중구 동헌에 정려비가 세워져 있다.
보도를 접하고 한 울산시 문화관광해설사가 한문학자 송수환 박사에게 문의한 결과, “1749년 사찬읍지인 『학성지』, 1786년 『울산여지도』 신편읍지 과목조에 생원 송도선생 기록이 나온다”는 답변을 받을 수 있었다.
송도선생의 효행에 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과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나온다.
울산박물관 관계자는 “울산박물관으로 기증되기 전 이동영선생의 생원시 교지 소장처였던 국학진흥원 도록과 이동영선생의 생원시 합격을 증명하는 유물을 기준으로 판단했다”며 “이후 전시를 한다면 송도선생의 후손인 연안 송 씨와 학성 이 씨 양 문중의 의견을 모두 담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학성 이씨 관계자는 “울산 소과 입격 역사가 조선중기에서 조선 전기로 올라가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울산최초 생원은 송도선생이지만 임금이 내린 합격교지가 남아있는 분이 학성 이 씨 이동영공이라고 울산시민들이 기억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울산최초 대과 급제자는 학성이씨 이근오(1789년)였으며 이후 이석진(1894년), 밀양박씨 박시룡(1890년)과 박시규(1885년)가 급제했다.
출처 : 울산매일 - 울산최초, 최고의 조간신문(https://www.ius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