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출발하기까지
저는 작년 2월 UNC에 1년간 비지팅으로 와 있다가 지난 2월에 귀국하였습니다. 미국생활 초보인데다, 여행을 많이 하겠다고 작정하고 온 것도 아니었는데 주위의 고수분들의 도움과 여행을 좋아하는 애들 덕분에 꽤 많은 곳을 다닐 수가 있었습니다. 특히 작년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 33일간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미 대륙을 관통하여 샌프란시스코까지 갔다가 시애틀, 캐나다 빅토리아, 캐나디안 록키와 옐로스톤을 거쳐 노스캐롤라이나로 돌아왔던 장거리 자동차 여행은 지금도 꿈같은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시간이 좀 지나고 나니 고생했던 것은 다 잊어버리고 좋았던 기억만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시행착오도 많았고 어찌 보면 몇 개의 패키지투어를 부실하게 모아놓은 정도에 불과한데 제가 다니던 교회에 간단한 글을 쓰게 되었고, 그 후 여기저기 물어보시는 분들이 계셔서 조만간 이 사이트에 글을 올리겠다고 말씀드렸었습니다. 그런데 글을 거의 다 쓴 상태에서 좀 급하게 귀국하는 통에 약속을 못 지키고 말았습니다. 벌써 석 달이 지나 버렸네요. 귀국 전날 눈이 많이 와서 비행기가 뜰까 걱정했던 기억이 생생한데, 지금 한국은 여름의 길목으로 가고 있습니다. 아마도 노스캐롤라이나도 절정의 날씨가 계속되고 있겠지요. 노스캐롤라이나 지역은 봄, 여름 두 계절이 가을, 겨울보다 더 좋은 것 같습니다. 다들 좋은 날씨를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약속도 지켜야겠고, 이 사이트로부터 받았던 고마움도 다소나마 갚아야겠기에 늦게나마 글을 올립니다. 깊이 없는 경험이었지만 이번 여름 저와 비슷한 계획을 준비하고 있는 분들이 계셔서 혹시라도 도움이 된다면 다행이겠습니다.
2. 대강의 여행계획
별 준비가 없이 떠난 여행이었습니다. 매일 벼락치기로 시험을 보는 기분이었다고나 할까요. 그러나 여행이란 원래 그런 것 아닐까 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약 40일 정도의 기간에 소화했다면 그런대로 좋았을 일정이었다고 봅니다(그러나 어느 마나님이 40일짜리 자동차 여행계획을 결재해 주겠습니까? 제가 처음 제시한 것은 23일짜리 계획이었습니다. 노스캐롤라이나-샌프란시스코-시애틀-노스캐롤라이나의 여정이었지요). 4월에 비행기로 샌디에고와 LA는 다녀왔고, 이번 여행은 여름이라 더위를 피해 남쪽은 가능하면 제외하는 것으로 했기 때문에 주로 I-40와 I-70을 타고 미 대륙 중간쯤을 관통해서 샌프란시스코까지 가고, 그 과정에서 국립공원들, 라스베가스, 솔트레이크시티 같은 도시들을 둘러보는 것으로 하였습니다. 일단 시애틀까지를 목표로 하지만, 만약 샌프란시스코 쯤에서 더 이상 무리라고 생각되면 되돌아오기로 편하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출발할 때 세세하게 일정을 정하지 않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예상 외로 좋은 볼거리가 나타나거나, 휴식이 필요하면 일정을 쉽게 변경할 수 있으니까요. 아무튼 이번 여행에서는 옐로스톤 정도를 빼고는 대개 하루 또는 이틀 전에 예약을 하게 되었는데, 숙소를 잡는데 별 어려움은 겪지 않았습니다. 초반에 힘든 고비가 더 많았고, 후반에는 생각보다 수월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와 시애틀을 거치면서 주위 분들의 강력한 추천으로 캐나다 빅토리아와 캐나디안 록키를 전격적으로 일정에 추가했습니다. 걱정도 되었지만 결과적으로 아주 잘한 선택이었습니다.
나름대로 생각해 둔 것 하나는 매일 평균적으로 일정한 거리를 소화하지 말고 주요 목적지에서는 이동 없이 2, 3일 머무르자는 것이었습니다. 매일 짐 싸고, 풀고, 차로 이동하고, 숙소 예약하고 체크인, 체크아웃하는 것도 힘들고, 한 곳에서 2, 3일간 지내면 그 동안에는 몸을 가볍게 하여 주위를 둘러볼 수도 있고, 푹 쉬면서 재정비를 할 수도 있으니까요. 우리는 콜로라도 스프링스(3박), 라스베가스(3박), 샌프란시스코(2박), 시애틀(3박), 빅토리아(2박, 숙소는 달랐지만, 한 도시에서 머물렀습니다), 옐로스톤(3박)에서 2, 3일씩 머물렀습니다. 차의 주행거리는 다소 늘어났지만(한 곳에 머무르면 그곳을 중심으로 아무래도 왔다갔다 하게 되지요), 상당히 타이트했던 이번 일정을 무리 없이 마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였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7월 중순 드디어 우리 5명 가족이 캐리에서 서쪽을 향해 출발했을 때 준비된 것은 세인트루이스와 덴버, 불과 두 곳의 숙소예약 뿐이었습니다.
첫댓글 정말 대단하십니다. 귀국 후에도 카페를 사랑하시어 글을 남겨 주시는 군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