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 사이트 담당자가 통보했다. 내 아이디(ID)가 도용 당한 것으로 추정되어 계정을 쓰지 못하게 차단했다는 것이다. 당장 이메일을 쓸 수도 블로그에 들어 갈 수도 없게 되었다. 몇 군데 가입한 문학카페도 입장불가이다. 이유인 즉 내 아이디로 성인 음란 사이트에 59회나 접속한 기록이 나왔다나? 나의 로그인 히스토리로 미루어 수상하기에 그 아이디를 쓰지 못하게 막았다는 것이다.
보호차원에서 차단한 것까진 감사하나 나의 컴퓨터 접속 기록이 모두 저장 되어있다는 게 놀라웠다. 무생물이라 여기고 무심히 다루었던 컴퓨터가 이제보니 유심한 생물과 다름없지 않은가. 하기야 손가락을 통해 문자도 주고받고 화상으로 대화도 오가니 감정이 2% 정도 부족한 생물이라 해도 가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비밀번호라는 게 전화번호에 문자를 보탠다든가 생년월일에 영문을 더한다든가 해서 오롯이 나만 아는 것이라 만들었는데 그걸 해킹하여 성인사이트나 도박사이트에 들어갈 수 있다니 속상하다. 혹시나 별난 사이트에서 내 이름을 발견한 이들이 당황할까봐 지레 부끄럽다.
두 달 정도 지나자 실명을 인증하면 예전의 사이트를 쓰도록 해제해 주겠다고 연락이 왔다. 그땐 이미 난리 법석을 치르고 새 계정을 만들어 쓰고 있을 때여서 아쉽지 않았다. 아는 이들에게 새 메일 주소를 주고 문학카페는 탈퇴한 후 다시 가입하고 블로그는 새로 만들고 등등 스마트 시대에 무척 스마트하지 않은 번거로움을 겪은 후여서 다시 되돌리기도 귀찮았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니 그 전 계정의 메일 안에 나만의 비밀이 저장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어떤 골치 아픈 문제에 엮여서 그걸 해결하고자 오고 간 서류를 다 저장했었다. 주변에 조언을 구하려고 알렸기에 지금에 와선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지만 말이다. '세 사람 사이의 비밀은 모든 사람의 비밀'이라는 말이 있듯이 비밀은 여럿이 공유하면 이미 비밀이 아니다. 가치 없는 비밀은 간직할 필요가 없어서 아쉽지만 예전의 계정을 복구하지 않기로 하였다. 비밀을 지닐수록 마음은 불편하지 않던가.
어떤 호사가는 비밀이 많은 여자는 신비로워 더 매력적이라고 하고 성경엔 부부사이엔 숨길 것이 없어야 한다고도 한다.
비밀은 지키기도 벅차고 떠 벌리기도 주저되는 그 이중성 때문에 비밀이 많을수록 삶은 혼란스럽다. 영원한 비밀은 없을 테니 봉인해제 뒤에 말썽이 없으려면 비밀은 있되 거짓은 없어야겠다.
'만일 바람에게 비밀을 털어놓았다면 바람이 그 비밀을 나무에게 전했다고 해서 원망해서는 안 된다.' 오래전 칼릴 지브란의 시편이니 동서고금을 막론하여 '비밀 지키기'는 어려운 일이었나 보다. 입이 가벼운 이를 위한 면죄부 같아서 위로 받는다.
도대체 나만의 비밀이란 게 요즘 존재 하기는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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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LA 수향 문학회 원문보기 글쓴이: 이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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