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대리 38교를 담당하고 있던 박병호 소위는 북한군의 기습공격으로 소대가 전멸상태에 이르자 책임을 느끼고 자결하기 위해 칼빈총구를 입에 물고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소대선임하사 李중사가 총을 가로채며 「생존자를 구출한 후에도 늦지 않습니다」고 만류하여 생존자 5명을 이끌고 산을 가로질러 탈출하였다.
어언리에서 咸연대장을 만난 朴소대장은 「면목없습니다.」고 보고하자 뜻밖에도 그는 「朴소위가 오랜 시간 버텨냄으로써 예비대를 투입할 수 있었네.」하며 도리어 칭찬해 마지 않았다.
LST에 승선하는 부하들을 정신나간 사람모양 물끄러미 바라보던 白연대장이 허리에서 권총을 빼어 탄약을 재고 있었다. 추측컨데 白연대장의 심정은 옹진을 3일도 지탱하지 못한 것과, 연대철수를 끝까지 남아 엄호하던 정규한중대의 포기, 행방이 묘연한 제1,2대대, 그리고 옹진시민을 적지에 남겨 놓아야 하는 죄책감 등이 엉켰을 것이다.
이를 발견한 朴대대장은 연대장의 권총든 손을 후리치며 「이러시면 개죽음입니다. 어떻든 빠져나가 후일을 도모할 책임이 있지 않습니까. 뿐만아니라 저 부하들이 안전하게 인천에 상륙하는것도 연대장의 책임일 것입니다.」고 역설하여 마지막 남은 조각배에 의지하여 27일 연평도에 상륙했다.
375고지를 점령한 북한군은 육사교도대를 우회하여 도로에 방열한 2문의 105밀리곡사포를 유린하였다. 이에 포를 빼았긴 제2포대장 김남식중위는 자책감을 이기지 못해 수류탄으로 자폭하였다.
청년방위대 고문 안병범대령
서울 피탈 후('50. 6. 29)
한강 도강에 실패한 청년방위대 고문 안병범 대령은 북한군에게 체포되어 치욕을 당하느니 보다 차라리 죽음을 택하기로 결심하고 29일 인왕산에 올라가 할복자결하였다.
제1사단 13연대 소속 월남장병
봉일천에서 철수작전 결정 후('50. 6. 28)
서울 피탈이 확인된 후 사단은 시흥으로의 철수를 결정하였는데, 제13연대의 김호, 김홍주소위와 高모중위 등 10여명의 월남장병들은 실지회복이 어려운 것을 알고 자결하고 말았다.
제1사단 부상자
한강도하철수작전시('50. 6. 28)
행주나루터에서 철수시 지휘통제력을 상실하고, 전장군기를 잃은 상태에서 도하를 단념할 수 밖에 없게 된 부상자들은 「차라리 그놈들에게 죽임을 당하느니 보다 우리를 죽이고 가라」고 아우성 쳤으며 이곳저곳에서는 자결하는 총소리가 들렸다. 눈뜨고 볼수 없는 생지옥이 연출되었다.
김포지구전투사령관 우병옥 중령
김포비행장 탈환전실패 후('50. 6. 29)
김포비행장 탈환 공격이 돈좌되자 참모장 최복수중령은 기관총을 거치한 짚차를 몰고 비행장을 종횡무진으로 질주하여 적을 유린하다 끝내 28세의 젊은 나이로 전사하였다.
김포공격의 실패와 최참모장의 비보를 접한 禹사령관은 패퇴의 책임을 통감하고 원미산에 올라 자결하였다.
고지를 탈취후 남은 병력은 대대장을 비롯해서 중대장, 소대장 그리고 연락병 등 불과 8명 뿐이었다. 대대장은 어제 제1대대를 이끌고 수명의 희생자를 내면서 이 고지를 점령한 것인데 지금 이렇다할 교전도 해보지 못한 채 어처구니 없이 적에게 다시 점령당하게 되니 비통하기 그지 없었다.
대대장은 7명의 대원들을 앞에 놓고 모든 것이 다 자기의 책임이라고 하면서 권총을 뽑아들고 자결할려고 자기를 쏘았다. 그 순간에 그 옆에 있던 연락병이 권총을 잡는 바람에 바로 맞지않고 부상만 당하였다. 그는 후송되면서도 자기는 부하를 많이 희생시켰기 때문에 그 책임을 지고 마땅히 죽어야 한다고 자책하였다.
제8사단 10연대 11중대장 정구정 중위
단양 전투
('50. 7. 10)
제11중대가 치열한 적의 포탄에 분산되어 단양쪽으로 밀리자 연대장은 다시 원진지로 점령하라 호령하였다. 鄭중대장은 원위치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하던중 연대장과 맞닥드렸는데 화가 머리 끝까지 오른 高연대장은 정중위를 향해 「진지 이탈자」라고 소리치며 권총을 난사했으나 치명상은 입지 않았다. 그러나 鄭중대장은 대한민국 만세를 삼창하고 자기 총으로 자결하고 말았다.
제8사단 21연대 3대대 10중대장
황기상 중위
안동철수작전
('50. 8. 1)
선발대로 철수하게 된 제3대대 10중대장 황기상중위는 연락병으로부터 철수명령을 전달받고 「이놈아, 중대는 지금 교전중인데 무슨 잠꼬대같은 소리냐, 다시 대대에 가서 확인해 오라」고 호령하여 되돌려 보냈다.
黃중대장은 개전전에 휴가로 초전에 참전치 못한 죄책감으로 언제나 솔선수범하였다. 그는 곧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접촉하면서 적과 이탈중인 제2대대에 중대를 딸려 철수시키도록 한 자신은 책임을 통감하고 자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