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듬 | |
황길엽 | |
문단에서 남녀의 구분이라는 것이 큰 의미가 없는 요즘 이것을 놓고 '신년, 여성시인들 두각'하는 식으로 일반화하는 것은 무리가 따를 수 있다. 하지만 다양한 시적 시선을 가진 여성시인들이 한두 달 사이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펴낸 신작 시집들을 통해 지역 시단의 풍경과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다는 점은 의미 있는 일이다.
1991년 등단한 황 시인은 '비문을 읽다'를 세 번째 시집으로 내놨다. 쉽게 읽히는 간명한 서정시를 쓰는 황 시인은 이전 시집에서 개인의 내면적 상처와 길 위에서 쓴 일종의 방랑자의 시를 많이 선보였다. '비문을 읽다'에 와서는 시선이 바깥으로도 씩씩하게 열리고 넓어졌다. 여전히 '길'이 들어가는 시들이 많지만 '바다는 지금 외출 중/깊은 바다 속을 항해 중이다/꼼지락 꼼지락/수평선에 흩어지는 햇살/허기진 가슴에 채우고/만선의 기쁨으로 돌아오는 바다/푸르다'('바다는 지금 외출' 중)하고 변화하는 것이다. 이 여성시인이 속으로 다지던 서정을 세상과 더욱 풍성하게 만나는 방향으로 풀어놓기 시작했다는 변화가 비교적 분명하게 느껴진다.
한창옥 | |
이영옥 | |
'명랑하라 팜 파탈'의 시들이 주는 느낌도 그런 흐름 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는 시집 자서에 '발을 헛디뎠다. 이윽고, 돌아왔다'고 썼고 "이해받지 못할 비의로 가득 찼던 시기를 지나가고 있다"고도 밝혔다. "새로운 방향"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깜빡 잠자는 꿈을'('레일 없는 기차' 중) 꾸거나 '그냥 여자도 남자도 아니고 죽은 것도 산 것도'(푸른 수염의 마지막 여자' 중) 아닌 모호한 상황의 시적 화자가 자주 나와 '물속으로 퐁당/…/들리지? 내 목소리, 이리 따라와 넘어와 봐…'('세이렌의 노래' 중)하고 말하는 그의 시들에서는 묘하게 기존 질서를 뭉개는 힘이 느껴진다. 그 힘은 여성(팜 파탈)으로서 시인의 시선과 만나면서 훨씬 강해진다. 두 번째 시집을 계기로 작품 세계의 새로운 방향을 꿈꾸는 김 씨는 2008년의 활동이 더욱 기대되는 시인으로 꼽힌다.
부산의 한창옥 시인과 이영옥 시인은 지난달 각각 두 번째 시집 '빗금이 풀어지고 있다'(한국문연)와 첫 시집 '사라진 입들'(천년의 시작)을 펴냈다. 2004년 '시작' 신인상과 200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한 이영옥 시인의 첫 시집 '사라진 입들'은 최근 나온 시집들 가운데 무늬와 색감이 가장 뚜렷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시의 이미지는 선명하며 서사 속에서는 절실함과 생동감이 살아있는 이 시인의 시들에 대해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남송우 교수는 '비장미를 엿보이는 생명의식'으로 집약했다. 그런 눈을 갖고 보면, 인간의 죽음과 식물의 생태 등을 통해 생명의 의미와 본질을 짜릿하게 잡아내는 그의 시편들은 한층 강렬한 인상을 남겨 보고 또 보게 하는 힘을 발휘한다.
한창옥 시인은 계간 '부산시인'의 편집주간이자 시울림시낭송회의 진행자로서 지역 시단에서 시작뿐만 아니라 문단 활동의 면에서도 한몫을 하고 있다. 한 시인이 두 번째로 펴낸 '빗금이 풀어지고 있다'에 대해 평론가 황선열 씨는 '모성의 따뜻함과 생명을 감싸 안는 모성본능과 여성의 몸과 같은 성담론과 여성의 삶을 포함하는 페미니즘의 시학'을 핵심이라고 평했다.
그런 인식에 걸맞게 이번 시집에서 한 시인은 단풍을 '무르익은 여인 되어 농염한 자태가 여유만만하네요'('단풍' 중) 하고 감각적으로 쳐다보는 여유와 '사방 구멍을 내고/다 비우고 부서지는 어둠 속에서/말랑말랑한 또 다른 생명체를 느낀 걸//이제 쓸개 빠진 여자로 허허 하고 살라하네/미천 척하며 가볍게 살라하네'('상처쯤 생기면 어때' 중)하며 끌어안고 다독이는 모성적인 품을 보여준다. '모성'으로 한결 깊어진 시편들이다.
첫댓글 오~거처가 부산이군요. 두번째 시집발간을 다시한번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미소님, 부산 서울 이중 생활 하고 있답니다...^^
'시는 다독거림이다' 란 구절이 특히 가슴에 와닿습니다. 늦었지만 시집 발간을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