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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리 허타도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신학교 교수로 총장으로 지낸 분입니다. 신약학의 대가로 알려진 이분은 처음으로 기독교인들이 생겨났을 때 이방인들의 눈에 이상한 종교로 비추어 졌다는 사실들을 역사적으로 풀어가면서 쉽고 재미있고 초기교회 모습을 설명합니다. 신학자의 책이어서 조금은 전문적이고 딱딱할 수 있으나 초기교회 역사를 살펴 볼 수 있는 쉽고 재미있어 쓰여진 책이니 기독교의 뿌리를 보게 하는 책입니다. 이어령 교수가 추처한 도서입니다.
책소개
처음으로 기독교인이라 불렸던 사람들기독교 본연의 모습을 찾아 떠나는 여행
저자 래리 허타도
역자 이주만
출판 이와우
책소개
기독교인은 서기 40년경에 1000명으로 시작했지만 100년에는 1만 명, 200년경에는 20만 명으로, 그리고 300년경에는 500~600만 명으로 늘어난다. 당시 로마의 기득권층으로부터 ‘사악한 신종 미신’이라고 치부 받던 기독교의 파격적인 성장, 그 이면에는 과연 어떤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로마 1~3세기까지의 시기를 “기독교 역사를 통틀어 가장 재미있고 흥미로웠던 시기”이자 “서구 역사를 통틀어 가장 파격적인 성장을 보여 준 시기”라고 정의하는 학자가 있다. 래리 허타도 에든버러 대학교 명예교수다. 그는 지난 수십 년간 초기 기독교인들의 삶을 연구한 신학자이자 신약성경 및 사복음서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이기도 하다. 그는 신간 『처음으로 기독교인이라 불렸던 사람들』에서 기독교의 파격적인 성장에 대한 이유를 설명한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저자
래리 허타도
저자 : 래리 허타도
저자 래리 허타도Larry W. Hurtado는 1943년생.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대학교 신약 언어, 문학 및 신학 명예 교수. 사복음서 및 신약성서의 세계적인 권위자다. 에든버러 대학교 신학대학원장(2010년), 동 대학 기독교 기원 연구센터 소장(2011)을 지냈다.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이 지난 수십 년간 탐구해온 주제이기도 하고 동시에 “기독교 역사를 통틀어 가장 재미있고 흥미로운 시기”라고도 칭하는 서기 1~3세기 초기 기독교인들의 세계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역자 : 이주만
역자 이주만은 서강대학원 영어영문과를 졸업했으며, 현재 번역가들의 모임인 (주)바른번역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얼라이언스』, 『다시 집으로』, 『경제학은 어떻게 내 삶을 움직이는가』, 『나는 즐라탄이다』, 『법은 왜 부조리한가』, 『케인스를 위한 변명』 등이 있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목차
서문
들어가는 말
1장 기이한 종교의 탄생
2장 이교도들은 기독교를 왜 위험한 종교로 봤을까
3장 이전에는 없었던 ‘책의 종교’
4장 새로운 삶의 법칙을 말하다
맺음말
부록
참고문헌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책 속으로
타키투스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로마의 역사가 수에토니우스Suetonius는 네로 황제의 통치를 다룬 글에서 기독교인들을 가리켜 “사악한 신종 미신에 빠진 무리”라면서 그들을 처벌한 사건을 간략히 언급하고 있다(『황제 열전De vita Caesarum』 「네로」 16장 2절). 타키투스와 수에토니우스 모두 기독교의 성격을 기술하면서 ‘미신(라틴어로 수페르스티티오superstitio)’이라는 용어를 썼다. 당시 이 말은 대중이 보기에 극단적이고, 거부감이 들고, 심지어 극악무도한 종교적 신앙과 의식을 뜻했다. 여기서 요점은 두 작가 모두 기독교인들과 그들의 종교가 이질적이고 미풍양속을 해친다고 지적하고 있으며, 따라서 기독교를 믿는 것은 당시 로마 시대의 여러 종교나 신앙 중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음을 암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p.41
요컨대 고대 신전은 꽤나 큰 규모의 경제 활동이 이뤄지는 무대였다. 따라서 신들을 배교하거나 제사를 중단하는 행위, 혹은 장차 그렇게 될 가능성이나 불안한 전망에 지나지 않더라도 이는 신전 운영과 관련해 다양한 영역에서 기득권을 누리던 많은 사람들에게 위협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실제로 이 같은 우려가 일찍이 표출된 사건이 「사도행전」 19장 21~40절에 등장한다. 아데미(아르테미스) 여신의 신상 모형을 제작해 팔던 장인들이 바울의 설교를 듣고 큰 소동을 일으켰는데, 이는 그들의 생계가 위협받을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비기독인들이 초기 기독교를 향해 품었던 적대감의 기저에는 경제적 요인이 짙게 깔린 것으로 보인다. p.45
기독교의 개념은 이교도보다는 유대교 전통과 훨씬 유사한 점이 많았다. 유대교에도 직접 교류할 수 있는 초월적 신이 있고, 유일신이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해 그들과 깊은 언약적-사랑 혹은 언약적-신실함을 유지한다는 개념이 있기 때문이다. 로마시대의 유대인들은 그들의 신이 참된 조물주이자 모든 민족의 정당한 지배자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전반적으로 세상과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개념을 초기 기독교인들의 문헌에서 보이는 만큼 힘주어 강조하지는 않았다.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사랑의 윤리love?ethic’에 따라 기독교인답게 처신할 것을 강조하는 가르침은 실제로 기독교의 특색 중 하나가 되었다. 우리에게 알려진 바로는 로마 시대 여러 종교 중에 그 가르침이나 행동 지침에서 초기 기독교처럼 사랑의 역할을 중시하는 종교는 없었다. p.104
실제로 성경 봉독은 적어도 2세기 이후부터 많은 혹은 대다수의 기독교 공동체에서 행해지던 공중 예배의 순서 중 하나였다. 2세기에 로마에 거주했던 기독교 교사이자 작가였던 순교자 유스티누스가 쓴 글에서도 기독교인의 예배에서 “사도들의 회고록이나 선지자들의 글”이 정기적으로 봉독되었다는 사실을 언급한다(『제1 변증서First Apology』 67장 3절). 여기서 유스티누스가 말한 ‘회고록(그리스어로 아폼네모뉴마타apomne?moneumat...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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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평생 초기 기독교인의 삶을 연구한 신학자…
“서기 1~3세기는
기독교 역사상 가장 재미있고 흥미로운 시기”
“처음으로 기독교인이라 불렸던
그들의 삶에는
기독교 성장에 대한 단서가 숨어 있다.”
기독교인은 서기 40년경에 1000명으로 시작했지만 100년에는 1만 명, 200년경에는 20만 명으로, 그리고 300년경에는 500~600만 명으로 늘어난다. 당시 로마의 기득권층으로부터 ‘사악한 신종 미신’이라고 치부 받던 기독교의 파격적인 성장, 그 이면에는 과연 어떤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로마 1~3세기까지의 시기를 “기독교 역사를 통틀어 가장 재미있고 흥미로웠던 시기”이자 “서구 역사를 통틀어 가장 파격적인 성장을 보여 준 시기”라고 정의하는 학자가 있다. 래리 허타도 에든버러 대학교 명예교수다. 그는 지난 수십 년간 초기 기독교인들의 삶을 연구한 신학자이자 신약성경 및 사복음서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이기도 하다.
그는 신간 『처음으로 기독교인이라 불렸던 사람들』에서 기독교의 파격적인 성장에 대한 이유를 세 가지로 설명한다.
첫 번째는 기독교가 당시의 다른 종교와는 다르게 매우 윤리적인 종교였다는 점이다. 사실 종교=윤리의 관점이 현대 사회에 있어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개념 같지만 로마 시대에는 그렇지 않았다. 로마 시대는 ‘신들이 가득한 세계’였지만 신과 종교란 그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대상이었다. 사람들은 어떤 문제에 봉착하면 그 상황에 맞는 관련된 신들을 찾아가 가호를 빌 뿐이었다.
그러나 기독교는 달랐다. 기독교는 기존의 종교와 달리 종교적 책무, 그리고 이를 사회적으로 실천할 것을 강조하는 종교였다. 이런 기독교의 탄생은 새로운 ‘윤리적 종교’의 탄생이었다. 당연히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매우 파격적인 종교의 개념으로 다가왔다. 실제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바울의 서신을 포함해 당시 수많은 문헌에는 올곧은 행동을 공동체 차원에서 실천하고 헌신하도록 신자들을 격려하는 모습이 흔하게 발견되는데, 이런 특징은 윤리적 관점에서 피해를 입고 있었을, 비인간적인 처우를 받았던 수많은 약자와 도덕과 윤리의 개념을 이해하고 설파한 많은 지식인의 마음을 움직였다.
두 번째는 ‘책의 종교’로 대변되는 속성이다. 기독교는 읽고, 공부하고, 수집하고, 유포하고, 의견을 나누는 이른바 텍스트 공동체적 성격이 강한 종교였다. 실제 초기 기독교는 제단도, 신상도, 제사장도, 신전도 없는 종교였지만 믿음을 가진 이들이 모여 예수의 말씀을 읽고 나누는 종교였다.
이러한 결과로 당시의 수많은 문헌이 아직도 남아있는데, 서기 300년 사이에 작성된 기독교 문헌은 알려진 것만 해도 최소 200가지가 넘는다. 이 뿐만 아니라 그 분량 역시 방대한데 심지어 “로마의 기독교인들이 바울의 서신을 처음 받았을 때 십중팔구 편지 내용보다 그 분량을 보고 기겁했을 것”이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실제로 바...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