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선>, 2011년 봄호.
길몽을 위하여 외 1편
맹문재
화장실에서 팬티에 묻은 변 때문에 당황했다
진 빚으로 고통 받거나 남에게 창피를 당하는 흉몽일까?
재물이나 돈이 생기는 길몽일까?
해몽에 고민했지만, 아무래도 흉몽일 것 같았다
길조가 될 만한 투자를 한 적 없고 가진 물건이 없고 행운교(幸運敎)의 신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길몽일지 모른다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새벽 출근하는 샐러리맨들의 발걸음 소리가 천둥처럼 들려왔다
대출 이자 납부일이 떠올랐다
은신처에서
킹콩만한 이자의 발에 짓밟힐까 몸을 숨긴다
여행은 꿈꾸지 못하는구나 친구들에게 안부 전화를 걸 수 없구나 약속한 후원금을 취소할 수밖에 없구나 울음소리를 낼 수도 없구나
이자는 굉음을 지르며 닥치는 대로 부수고 집어던진다
보관하던 나의 통장이며 자료며 계획표며 연락처 들이 찢겨 흩어지는구나 낙방의 슬픔은 약이 될 수 없구나 업무의 피곤은 엄살에 불과하구나 나의 이데올로기는 쓸모없구나 구조를 요청할 데가 없구나
이자가 나의 냄새를 맡고 다가온다면 어떻게 해야 될까?
나는 꺾인 날개를 가지고 있지 않는가?
맹문재
1991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 『먼 길을 움직인다』 『물고기에게 배우다』 『책이 무거운 이유』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