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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전맨
2001/08/10 (02:09) powered by DEFENCE KOREA Article Number : 1174
Access : 1434 , Lines : 51
謹 弔 나는 다시 태어나도 대한민국의 최정예 특전맨이 될 것이다.
謹 弔 나는 다시 태어나도 대한민국의 최정예 특전맨이 될 것이다.
전쟁의 반대 개념은 평화지만,
전쟁이 멈춘 상태가 곧 평화는 아니다.
1976년 8월 18일 오전 10시 30분.
전쟁도 평화도 유보된 판문점에서 도끼로 사람을 찍어 죽여 세상을 경악케한 사건이 북한군에 의해 자행됐고,
그 일촉즉발의 전운 속에 내가 있었다.
사건의 발단은 판문점 「돌아오지 않는 다리」남쪽 공동경비구역 안에서 유엔사 관측소의 시야를 가리는 미루나무였다.
미루나무 가지치기로 자신들의 노출을 꺼리던 북괴 경비병 30여명이 유엔군 경비병 10명과 한국근로부대(KSC)작업요원 5명에게 갑자기몽둥이와 도끼를 휘두른 것이다.
3, 4분만에 끝나버린 기습으로 6백m 밖에서 대기중이던 기동타격대는 출동시기를 놓쳤고, 유엔사 경비대장 보니파스 대위 등 2명이 현장에서 피살됐으며 9명은 중상을 입은 대형사건이었다.
18일 정오. 단순한 유혈충돌의 차원을 넘어 공산주의자들의 극악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으로 전군에 비상경보가 울렸다
당시 우리는 평상시처럼 전대대원이 지역대 전투력 측정에 대비한 수류탄 투척 연습과 태권도 등 체력단련을 하고 있었고, 긴장된 모습으로 허겁지겁 달려 온 대대 작전장교가 전투력이 우수한 요원들로 1개 팀을 편성했다. 편성기준은 태권도, 체력, 담력 등 기타 훈련수준에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요원으로서 장남이나 독자들은 제외시켰다.
이렇게 각 대대당 1개 팀씩 선발된 5개 팀의 특공결사대원들은 즉시 완전군장을 꾸려 봉화관(체육관)에 집결했다.
19시. 경계병들의 삼엄한 경계 속에서 당시 박희도 여단장님의 정신교육이 시작됐다. 갑작스런 집결로 혼란 속에 빠져있던 우리 대원들은 어렴풋하던 작전이 명확해지면서 막중한 임무에 대한 비장한 마음으로부터 배어나온 땀으로 흠뻑 젖었다.
나는 우리 특공결사대원만이 유엔군 및 아군에게 도끼를 휘두른 포악 무도한 그들을 응징할 수 있고, 우리의 손상된 명예를 회복시킬 수 있다는 것을 마음속에 새기면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공수부대의 명예와 필사즉생의 각오를 특별히 강조하며 64명의 특공결사대와 일일이 악수를 나눴던 여단장님의 정신교육이 끝난 후 나는 팀의 선임하사로서 팀원들에게 월남전의 실전 경험담을 들려줬고, 우리는 어떠한 임무를 부여받더라도 기필코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 작전팀 모두는 결의에 찬 얼굴로 굳게 입을 다물었다.
20일 22시 30분경. 밤이 되어도 무더움은 가실 줄 몰랐고, 때마침 달도 없는 그믐이라 칠흑과 같은 어둠 속에서 우리는 이동했다. 64명의 우리 특공결사대는 두 대의 버스에 나눠 탑승했으며, 버스 안의 라디오에선 옛날 대중가요가 흘러 나왔다. 전우들은 서로의 굳은 얼굴만 바라볼 뿐 말없이 침묵만 지키고 있었으나, 모두의 사기는 충천해 있었다.
23시가 지나 약 한 시간을 달리던 버스는 한 낡은 실내 체육관에 이르러 멈춰 섰다.
체육관은 천장이 높고 마룻바닥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요란하게 내면서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특공대장 지시로 미군 전투복으로 갈아 입고, 각 팀별로 다시 최종 출동 준비태세를 점검하자 작전참모로부터 현재 상황은 수 분전에 데프콘2(Defcon2)가 발령되었다는 최초 브리핑이 있었다.
데프콘2에 의거,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가 이미 75대의 전폭기를 싣고 일본을 떠나 동해로 발진했고, 오키나와에서 40대로 구성된 미 공군 전폭기 2개 전대가 한국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또 핵폭탄을 적재할 수 있는 F111전폭기와 B52폭격기가 미 본토 아이다호에서 한국으로 향했다고 했다. 쥐 죽은 듯 고요해진 체육관의 희미한 조명등아래 너나 할 것 없이 담배를 피워댔다. 여기 저기서 빠알간 담뱃불이 타 들어가면서 그 순간 주변을 비추는데, 이리저리 누운 대원 거의 모두가 잠을 이루지 못했고 실내는 마치 연막탄을 터뜨려 놓은 듯 했다.
여기서 당시 여단장이었던 박희도님이 출간한 「돌아오지 않는 다리에서다」라는 회고록의 일부분을 소개한다.
「그 다음 문제는 우리의 무장을 작전 현장까지 어떻게 은폐시켜 반입할 것인가 였다. 나는 우리가 타고 들어갈 트럭의 적재함 양측에 샌드백을 방호벽처럼 쌓아서 전투가 벌어졌을 때 그것에 의탁하여 사격을 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궁리를 하고 있었는데 작전참모와 5대대장이 그 샌드백에 총을 넣어 가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실재로 M-16소총을 이등분해하니까 샌드백에 들어갔고 총구가 약간 튀어 나왔다. 어떻게든 모래를 넣은 샌드백 밑에 이 총들을 감추어야 하겠다고 생각하여 이 문제들을 해결했다. 또 한가지는 우리 대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는 것이었다. 나는 대원들 모두에게 방탄복을 입도록 했다. 태권도를 날쌔게 하려면 엉성하게 부풀어 있는 무거운 방탄조끼는 방해물이 되겠지만 지금 우리는 태권도 약속대련을 준비하는 것은 아니니까 괘념 할 것은 못되었다. 그 방탄조끼 안쪽에 권총과 수류탄을 표시 안 나게 넣도록 했다. 근접전이 될 경우는 소총보다 권총이 유리하다는 이유로 권총까지 휴대할 것을 건의한 것은 5대대장이었다. 나는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특공대는 품안에 수류탄과 함께 권총을 넣도록 했고, M-16 소총만은 따로 가져가기로 한 것이다.
작전 개시 시간은 7시이며 미루나무 절단에 소요되는 예상시간은 5분 정도니까 현장 진입에서 철수 시간까지 시간을 10분 정도 잡는 전격작전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뜻밖의 작전계획이었다.작전시간이 너무 짧았기 때문이다. 5분정도로 그 큰나무를 잘라낼 수 있겠는가 라는 의아심은 둘째 쳐놓고 그 10분이 못되는 시간에 우리가 태권도가 아닌 방법으로 우리의 임무를 전격적으로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할 때 우리의 작전계획을 보다 주도 면밀하게 수립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미군이 5분안에 나무를 잘라낼때 우리도 5분만에 충분히 적군을 격파하고 시설물을 파괴해야 하는데 이것은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가는 예상밖의 짧은 시간이었다. 김대위는 어떻게해서 5분만에 나무가 절단되느냐는 나의 질문에 대해서 확실한 미군측의 답변을 들었다고 했다. 스틸웰 대장이 나무를 자르는 공병대 대장에게 두 번 세번 질문을 하였는데 그 공병대장이 분명하게 5분이면 족하다는 답변을 반복 했다는 것이다. 아마 그의 5분은 스틸웰 장군에게도 의외였던것 같다고 했다. 미 공병측에는 나무 자르는데 있어서 원자 폭탄과도 같은 신종 장비가 있는 듯 싶었다. 또하나 뜻밖의 보고사항을 김대위가 풀어 놓았다. 미루나무 주변은 미군들이 원형으로 둘러 싸고 경계를 할테니까 한국군 태권도 도사들은 몽둥이를 들고 그 바깥에서 군사 분계선까지 나아가 경비를 하라는 것이다. 곧 판문각과 돌아오지 않는 다리의 외곽을 담당하는 일선경계였다. 그리고 한국군은 무기휴대를 금한다는 재차의 다짐을 하였고 규정에 의해 무기는 권총 30정만이 반입이 허용되었는데 그것은 미군이 휴대하겠다는 것이다. 나는 분통이 터져나왔다. 그 같잖은 나무 하나 자르는 데 내 부하들은 맨 주먹으로 있다가 죽어도 좋다는 발상이 아닌가 말이다. 북괴를 응징하겠다는 마당에 그렇게 규정을 준수하기를 신주 모시듯 할 바에는 뭣하러 한국군에게 몽둥이를 주면서 경계는 하도록 하는가. 차라리 도끼를 든 북괴군에게 신사 협정을 지키라고나 할 일이지....
<중략>
나는 특공대장 김소령에게 나의 지침을 세세히 하달하였다. 짧은 시간에 신속히 해치워야 한다. 우리 희생자가 안 생길 수 없겠지만 최소화 하도록 하라 일단 우리 지역내의 적병은 모조리 없애버리고 군사 분계선 근처에있는 놈들은 우리에게 위해를 가할 징후가 보이는 즉시 선제공격으로 격퇴하라 , 모든 책임은 내가진다. 소신껏 하되 미군들과 충돌이 될만한 행위만큼은 해선 안된다. 특히 사격개시 명령에 신중을 기하되 일단 우리가 위험한 상황이 되면 기다리지는 마라, 사격시 까지 우리 무장을 미군들에게 보이지 않도록 유의하라는 등등의 지침을 주고 나는 김소령의 손을 잡아 흔들어 주고 방에서 내보내며, 눈을 좀 붙이라고 말했다.좦
21일 04시 30분. 기상과 함께 여단장님의 훈시가 있었다.
“여러분들은 나라의 명예요, 독수리부대의 명예인 만큼 성공하고 돌아올 수 있도록 하라”는 말씀에 우리 작전팀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으며, 우리 독수리 특전용사는 기꺼이 이 한 몸 바쳐 적을 응징하겠다는 각오로 판문점 공동 경비구역에 도착했다. 사건 당시 투입되었던 한국군 장교와 사병을 만난 자리에서 그들은 “지금이라도 당장 수류탄을 들고 가서 모두 전멸시키고 싶다”며 분개하고 있었다.
21일 오전 7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이 미 제 2사단 작전 담당구역으로 바뀌면서 「미루나무 자르기 작전」이 펼쳐졌다. 연속되는 긴장 속에 대기중이던 우리는 유엔군 1개 소대가 수색한 후 신속히 침투했으나, 적의 경비병들은 모두 후퇴하고 없었다. 우리는 즉시 경계병을 배치하고 미루나무 절단 작업을 실시했고, 사전통보가 없어 이를 예상하지 못했던 북괴군은 「돌아오지 않는 다리」제방에서 우리 쪽으로 총을 겨눴다. 지휘관으로부터 만약 북괴군이 경계선을 넘어서면 즉각 사살하라는 명령이 이어졌고, 숨막히는 긴장의 시간은 계속됐다. 북괴군은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멀리서 지켜보던 몇몇이 그들측의 가건물로 급히 뛰어 들어가 상부에 보고하는 듯 했고, 카메라를 들고 나와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담았다.
잠시 후, 20~30명 정도이던 「돌아오지 않는 다리」 건너편 북괴군은 150여명으로 병력을 증원했다. 하지만 그들은 다리를 건너올 엄두조차 내지 못했으며 만일 건너왔더라면 그들은 정말 영원히 돌아갈 수 없는 다리를 건너게 됐을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작전대로 미루나무 가지는 잘려나가고 있었다.
가지 2개가 잘렸을 때 북괴군 군관(장교) 한 명이 조심스레 우리쪽으로 한발 한발 걸어오기 시작했다. 물론 우리쪽에는 몽둥이를 든 우리 경계팀이 버티고 서 있는 상황이었다. 다리의 중간만 넘어 서면 가차없이 사격할 태세로 모두들 방아쇠를 당길 손가락에 힘을 실었다.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군관은 중간을 넘어서지 못하고 겁에 질린 듯 슬슬 꽁무니를 뺐다. 적의 접근으로 순간 긴장했던 분위기는 역전됐고 우리 요원들은 그를 향해 삿대질하며 소리를 질렀다. “야! 이 간나 새끼야. 이리와 보라우.” “너희 인간 같지도 않은 새끼들 모조리 없애버린다. 좀 와라.” 우리 요원들은 있는 대로 목청을 돋우어 50m 건너편의 북괴군들의 약을 올렸다. 어떤 대원은 다리 앞에서 바지를 내리고 그들을 향해 오줌을 싸면서 소리를 질러댔다.
7시 40분. 드디어 마지막 가지가 잘려 나갈 무렵 특공대장으로부터 “부셔라!”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북괴군 5초소와 8초소가 우리들의 몽둥이 세례를 받고 순식간에 부셔져 나갔고, 초소 안으로 연결된 전선들이 합선되면서 번쩍 번쩍 섬광을 발했다. 우리 대원들 중에는 북괴군 초소내의 커튼처럼 걸려있던 천조각을 찢어 주머니에 넣기도 했다.
7시 46분. 나무는 몸통 밑부분 세 군데가 완전히 잘려 높이 약 12미터였던 미루나무는 밑동만 남았다. 그런데 그때까지도 북괴군 5초소 옆에 있는 차단기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우리 요원들은 트럭을 이용해 그것을 제거한 후 철수하려고 신속하게 움직였다. 그때 미군 중령은 우리 대원들을 만류했고, 미군들은 그의 명령에 따라 트럭을 타고 일부는 벌써 철수했고 나머지도 계속 철수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좥드디어 바리케이드가 모두 부서졌지만 결사대원 몇 명이 트럭을 타지 못한 것을 발견한 우리측 팀장이 트럭을 정지 시켰으나 이를 무시하며 운전병(미군하사)이 출발하려 하자 목에 권총을 들이대 정지시켰고, 마지막 대원까지 모두 싣고 현장을 무사히 벗어날 수 있었다.좦
약 2시간 30분 동안 생사의 기로에서 하나뿐인 목숨을 초개처럼 내던진 용맹스런 특전용사들의 민첩하고 과감했던 작전수행은 가히 한편의 입체적인 드라마였다고 자부한다. 만약 당시 북괴군이 경계선을 침범했더라면 우리는 그들이 저질렀던 만행보다 훨씬 더 무자비하고 잔인한 보복을 가했을 것이다.
당시 여단장으로서 미루나무 제거작업을 총지휘했던 前육군참모총장 박희도님께서 「돌아오지 않는 다리에 서다」라는 생생한 회고록을 출간하여 더욱 감회가 새롭다. 박희도님은 출판기념회에서 전쟁 일보직전까지 내달은 작전을 회고하면서 필사즉생의 각오로 걸어온 군인의 길 가운데 가장 특별한 감회와 의미가 있었던 사건이었다며 화약고의 도화선 같은 현장에서 생명을 걸고 부하들과 임무를 완수했던 상황을 우리들의 지표로 삼아 산 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었다.
이렇듯 군인으로서 최고의 임무는 어떠한 적의 도발로부터도 목숨 바쳐 조국을 수호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직속상관에 대한 충성심은 물론 일사불란한 지휘체계 아래 골육지정으로 굳게 뭉친 최정예 특전부대임을 재인식하고, 「충성」, 「명예」, 「단결」로 언제 어디서 어떠한 임무가 부여되더라도 죽음을 무릅쓰고 책임을 완수하겠다는 굳은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 것이다.
월남 참전, 그리고 지금까지 특전사 생활, 군인의 길로 들어선지도 어느덧 3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대한민국 최정예 특전맨이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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