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불공정함을 인정한 뒤에 오는 것들>
인생이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곱씹어 생각해 보면 역설적이게도 인생은 공정함 그 이상이다.
어찌보면 지금 우리가 삶을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적이다. 우리는 크나큰 상실의
아픔이나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의 순간에도 희망, 신념, 완전함 등 더 좋은 감정을 느끼지 않던가.
인생이 공정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지하면 더 깊이 있게 성숙하기도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인생이
여러 가지 면에서 공정한 것 그 이상이라는 것을 깨닫는 능력이 생긴다. 그뿐 아니라 그런 인생의
면면을 인정하고 음미하고 감사하며 살게 된다.
인생은 일괄거래다. 다시 말해 원하는 것만 주고받을 수 없고 고통이나 슬픔 등도 모두 내가 살고
있는 삶에 포함되어 있으며 내가 이 인생을 사는 한 모두 떠안고 가야한다는 의미다.
인생의 잔인하고 혹독한 불공정함과 놀라운 공명정대함에 모두 마음을 열 때,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삶을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다.
<답은 겸손이다>
역경의 순간에는 항복과 겸손이 최선이자 최고의 도움을 준다. 때로 인생은 우리 모두를 굴복시킨다.
자신의 이해력을 초월한 현실에 휘둘리며 살아가는 인간은 자신을 보잘것없는 미물, 하찮은 존재,
혹은 무력한 존재로 느끼기도 한다. 그러므로 '씩씩하게 견뎌라,' 라든지 또는 주먹구구식의
진부한 말을 자녀에게 가르쳐주기보다는 겸손을 알려 주는 것이 훨씬 낫다.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모든 일을 감수하고 다 받아들인다는 말과는 다르다.
무릎을 꿇는 것은 솟구치는 좌절과 절망을 없애기 위한 행동이 아니다. 내게 닥친 일의 부당함을,
그 광포함을 진정으로 느끼기 위해 잠시 시간을 두는 것이다. 이런 감정을 받아들이고 진정한
낙천주의를 지향한다는 것은 어쩌면 패배감을 받아들인다는 의미인지도 모른다.
<이처럼 한순간에 완전하게 벌거벗은 진실과 마주하는 때가 온다.>
우리는 인생이 우연인지 아닌지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저 더 고차원적인 것, 계획, 질서, 방향 등에
대해 그럴듯한 주장만 있을 뿐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와 정반대의 주장도 있다. 앞으로 우리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언제 어떻게 죽을지 같은 것은 인간이 알 수 없는 능력 밖의 일이라는 것이다.
이런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조차 소용없는 짓은 아닌지, 이것 또한 알 수 없다.
인생은 공정하지 않고 때로는 이별도 삶의 일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인생이 뒤통수를 칠 때 "씩씩하게 견뎌라." "컨에 물이 아직 반이나 남았잖아." 하는 식의 위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순간에 답이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삶이 엇나갈 때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때론 인생이 지옥 같은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우리는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면 그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녀가 있는 사람은 자녀가 당연히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여긴다.
또 하고 있는 일에 온 열정을 바치면 출세하리라고 믿는다.
열심히 일하면 30년 안에 주택 대출금을 다 갚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일은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진짜 분노와 좌절을 만나는 그 지점에서 시작해야 한다.
어찌 됐든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경험을 한 사람이라면 슬픔을 느낄 만큼 느껴야 한다.
간혹 '긍정적인 사고'를 강조하는 집단에서 계속 긍정적인 생각을 하라고 강요하기도
하지만 그런 용기는 그저 겉에서만 맴돌 뿐이다.
무슨 일을 겪든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스스로에게 솔직해야 한다. 이런 감정 처리 과정을 통해 삶은 더욱 깊어지고
굳건해질 수 있으며 우리는 삶을 대하는 진정한 자세를 배울 수 있다.
-좋은 글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