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오늘 하루는 또 어떻게 견디나, 아침부터 걱정이 된다. 덥다보니 입맛 당기는 게 없다. 뭐, 좀 '쌈박한 것' 없나? 제 철을 맞은 하모회와 시원한 물회가 있다. 부산에서 하모를 먹으려면 송도, 물회를 먹으려면 영도인데 어디로 갈까? 고민할 것 없다. 최근 송도와 영도가 남항대교로 연결됐으니 송도에서 하모회를 먹고 영도까지 걸어가면 된다.
#배 위에 올라선 기분 '남항대교'
지난 25일 저녁 부산 송도해수욕장의 한 횟집에서 하모회를 먹고 남항대교 구경에 나섰다. '남항대교도 식후경!' 남항대교에 오르는 승강장 주변 공터에는 더위를 식히러 나온 사람들이 꽤 많았다. 가족들끼리 둘러앉아 싸가지고 온 음식을 먹으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맛집 음식이 뭐 별거인가, 좋은 사람들끼리 둘러앉아 먹으면 그게 맛난 음식이지…."
하늘에 구름이 예사롭지 않은 게 비가 한바탕 쏟아질 것 같다. 다리에 오르는 승강기에는 1, 2층 버튼밖에 없다. 2층이 다리 위, 이렇게 높은 2층은 처음이다. 흔들거리는 느낌에 겁도 약간 난다.
바다 위라 그런지 바람이 정말 시원하다. 하모 요리를 먹으며 흘렸던 땀이 바다 속으로 날아간다. 산책 삼아 다리 위를 걷는 사람들이 많고 한가롭게 낚시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태종대 마라톤 클럽'이라고 적힌 유니폼을 입은 한 마라토너가 송도를 돌아 다시 영도로 돌아간다. 다리가 생기기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다리는 이렇게 문명과 문명을 이어왔다. 송도의 하모회와 영도의 물회가 시속 70㎞(남항대교 속도 제한)로 통한 셈이다.
남항대교는 서구 암남동에서 중구 남포동을 거쳐 영도구 영선동까지 30~40분 걸리던 시간을 2분으로 줄여놓았다. 남항, 자갈치, 용두산공원이 보인다. 빨간색, 파란색 불이 켜진 한 쌍의 등대 사이로 고깃배가 들어온다. 장관이다. 배 위가 아니면 보지 못할 모습이었는데 지금 다리 위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걸어서 영도에 거의 도착할 무렵 시간을 보니 25분이 걸렸다. 그 때 약속이라도 한 듯 갑자기 폭우가 쏟아진다. 할 수 없이 택시를 타고 차가 있는 송도로 돌아왔다. 이날 동행해준 산을 좋아하는 후배가 "그래도 다리 다 건너서 비가 와 다행입니다. 봉래산 산신이 도왔습니다"라고 이야기했다. 듣고 있던 택시기사가 말을 거든다. "아닙니다. 해신이 도운거지예." 누가 도왔을까? 궁금하다.
#송도의 명물 '하모회'
하모의 정식 명칭은 갯장어인데 어째 일본 학명인 하모가 더 친숙하다. 갑자기 독도가 생각 나 화가 난다. 어쨌든 하모라는 이름은 이빨이 날카롭고, 한 번 물었다 하면 잘 놓지 않는 습성 때문에 '물다'라는 일본말 '하무'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이전에는 잘 먹지 않아 일본으로 수출만 하다 2000년대 초반 들어 부산에서 대중화됐다.
지난 1987년 부산에서 하모회를 처음으로 시작해 '원조'라는 태성하모횟집 김실근 사장은 "하모는 육질이 단단하면서도 연한 맛이 있어 여름철 횟감으로 일품이다"고 말했다. 송도해수욕장 일대에는 하모횟집이 20곳도 넘는다. 그 가운데 송하횟집은 붕장어회처럼 물기를 꽉 짜서 담백하게 내놓는다고 소문이 났다. 곤포횟집 소나무횟집도 유명하다. 송도해수욕장 일대에서는 하모 회를 약간 길게 써는 것이 특징이다. 하모 회는 고추냉이 간장이나 양념장, 초고추장에 식성대로 찍어 먹으면 된다. 야채에 쌈을 싸먹어도 맛있다. 하모회를 먹는 다른 방식이 있다. 횟집마다 갖은 양념으로 버무린 초고추장 소스가 나오는데 그 소스에 회를 찍어 양파와 함께 먹는다. 아삭아삭하면서 고소하게 씹힌다. 양파 대신 채를 쓴 각종 야채와 함께 버무려도 먹는데 야채와 어우러진 새콤달콤한 맛이 그만이다.
송도해수욕장과는 조금 떨어진 송도 아랫길 대림아파트 맞은편 미성횟집도 하모 전문횟집으로 소문이 났다. 이곳에서는 회뿐 아니라 데침회도 맛볼 수 있다. 데침회는 흔히 말하는 '샤브샤브'라고 생각하면 된다. 하모 머리와 뼈 등을 고아 만든 육수에 각종 야채와 한약재를 넣고 팔팔 끓인 뒤 촘촘히 칼집을 낸 하모를 살짝 데쳐 먹는다. 이 때 고기 색깔이 하얗게 변하면서 오그라드는데 그 모습이 아름다운 눈꽃을 닮아 이를 '하모꽃'이라 부른다. 초고추장이나 고추냉이 간장에 찍어 먹으면 담백하면서도 혀를 감치는 부드러움이 오래도록 기억된다. 전식으로 나오는 뼈 튀김이나 후식으로 나오는 어죽은 하모만의 특별 보너스이다. 가끔 이것 때문에 먹는다는 생각도 든다.
끝으로 하모회를 먹는 혹은 먹어야 하는 이유를 하나 덧붙인다. 이 갯장어란 녀석은 껍질이 벗겨진 채로 무려 10시간 정도나 견딜 정도로 생명력이 강하다. 또 수컷 한 마리에 암컷 100마리의 성비라고 하니 부러워하실 분이 꽤 있을 것 같다.
#영도의 맛 '물회'
영도까지 갔다면 물회 한 그릇하고 오시라고 권하고 싶다. 남항대교에서 내려가면 바로 영선동 아래로터리에서 자리돔 물회 원조인 부흥식당을 만날 수 있다. 지난번에 취재를 하며 알게 된 이 집 며느리 고명순씨가 아는 체하고 반기는데, 목소리가 쉬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부산일보에 소개 된 뒤 "손님 죄송합니다. 자리가 없어서…" 소리를 하도 많이 해서 그렇단다. KT영도전화국 뒤편 포항물회 골목에는 특이한 이름의 어류인 '눈뽈대' 전문 '영도물회'를 비롯해 물회집 10여곳이 다닥다닥 밀집되어 있다. 박종호 기자 nlead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