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타임즈라는 캠핑을 주제로 창간한 매거진에 필자가 기고한 '8체질과 캠핑' 칼럼을 연재합니다(주원장)
8체질과 캠핑
한의사 주석원(주원장한의원장)
첫째 이야기 캠핑의 추억
나는 지금으로부터 근 30년 전, 20대 초반의 청춘기에 난생 처음으로 캠핑이라는 것을 해봤다. 지금이야 한의대를 나와 이렇게 한의사 노릇을 하고 있지만, 당시 나는 이와는 전혀 관계없는 고려대 기계공학과를 다니고 있었다. 하루는 과 친구 둘이랑 음악다방에서 죽치며 뭔가 재밌는 일이 없을까, 작당을 하다가 동해바다로 가자, 했는데, 이런 저런 안으로 갑론을박을 하다가 결국 동해바다에서 고래를 잡을 수는 없으니 대신 설악산 대청봉에 등정해서 동해바다나 실컷 보고 오자, 이렇게 낙찰을 봐서 설악산으로 가슴 설레는 원정길을 떠났던 것이다. 매년 열리던 연세대와의 운동회 격인 정기전(축구, 야구, 농구, 럭비, 아이스하키의 다섯 종목으로 겨루는 운동시합) 기간에, 모교를 위해 열심히 응원하라고 특별히 면제된 수업의 틈을 교묘히 타, 드디어 나는 한 친구랑 난생 처음으로 1박2일 아닌 3박4일의 여정으로 머나먼 등반을 떠난다. 그 첫 등반에서 캠핑에 문외한이었던 나는 캠핑에 관련된 장비가 아무것도 없다시피 했으므로 대부분의 장비를 그 친구에게 의존해야 했다. 어디서 후질근한 배낭 하나를 구해 몇 가지 먹을 것과 옷가지만 챙겨 넣고 거의 입만 가지고 무작정 그를 따라 나섰던 것이다. 공모한 다른 한 친구도 같이 가기로 했는데, 조용히 갔다 오기로 한 암묵적 규약을 깨고 “요번 정기전에 우리는 설악산에 가기로 했다”고 여기저기서 떠들어대고 다니는 바람에 나와 친구는 녀석을 엄중히 계고한다는 차원에서 떼놓고 새벽에 몰래 가버렸다. 그는 따돌림 당했다는 사실에 치떨리는 분함을 삭이지 못하고 우리 목을 완전히 비틀어버리겠다는 결의를 다진 후, 우리가 떠난 바로 다음 날 우리를 격렬하게 뒤쫓는 분노의 추격자가 되었다. 평소 농구나 축구 등으로 강인한 체력을 다져온 그는 초인적인 불굴의 의지로 상상을 초월한 엄청난 스피드를 내서 피 말리게 우리의 행로를 뒤쫓아 왔지만, 우리 또한, 그의 추적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몰랐음에도, 생각보다 아주 빨리 일정을 소화해 예정보다 하루 단축한 2박3일로 임무를 완수한 까닭에 아름다운 설악의 자락에서는 다행히 그에게 따라잡히지 않았다. 결국 그는 내가 이미 서울에 돌아와 여독에 찌든 곤한 잠을 자던 새벽에야 비로소 나의 하숙방에 사이코패스처럼 쳐들어와 내 목을 인정사정없이 조를 수 있었다. “어떻게 나를 떼놓고 갈 수가 있어?” 나는 방바닥을 손으로 파닥파닥 치며 무조건 항복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땐 참 무모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설악산이란 명산이 해발 1700미터가 넘는 고산인데(대청봉 해발 1707.9m) 사전에 치밀한 준비도 없이 어설프게 객기처럼 뛰어든 것이다. 제대로 된 등산화도 없이 평소 끌고 다니던 운동화로 갈음하고, 배낭도 대충 싸서 좌우 밸런스 틀어진 채 쓸데없이 체력만 잔뜩 소모하고, 술만 먹고 운동은 매양 뒷전으로 해 체력이 사실상 바닥인데도 친구에게 약한 모습 보이지 않으려 악으로 깡으로 그 고산준령을 헤맸다. 희미한 당시 기억을 가까스로 더듬어 보니 마장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털털거리는 시외버스 타고 강원도 인제에서 내려 논바닥에 텐트치고 첫날밤을 보낸 다음, 하얀 서리 으스스 내린 새벽에 엉금엉금 기어 나와, 양구에서 배타고 설악산 입구에 들어서, 백담사 지나 수렴동 계곡 타고, 봉정암에서 두 번째 텐트를 쳤다. 지금은 그냥 줘도 안 가질 군대 야전 텐트 같은 그 구식 텐트는 요즘 흔하디흔하고 편하디편한 돔형 텐트에 비하면 여간 무겁고 설치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실제 유목민들의 원뿔형 텐트 집을 짓는 것과 거의 비슷하다). 금세 들이닥친 심산의 어둠 속에서 헤매며 자꾸 넘어지려는 텐트 폴들을 부여잡고 서로 로프를 잡고 땡기며 어렵사리 겨우 텐트를 칠 수 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노즐 막히는(이때 그을음을 동반한 달갑지 않은 커다란 불꽃놀이를 일으키는데 이러면 실패. 예열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석유버너에 불 붙여 간신히 밥해먹고, 딱딱한 쥐포에 소주 한잔 걸친 다음, 마침내 다사다난했던 하루를 마감하고 칙칙한 쑥색 군용 담요 속에 애벌레처럼 기어들어가 꿀맛 같은 잠을 청했다(당시 오리털침낭은 아직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신세대 캠퍼들에게는 전설 같은 이야기일 것). 한참 곤한 잠을 자는데, 갑자기 청천벽력 같은 따발총 소리에 눈을 떴다. 변덕스런 산악기후가 예보에 없던 억수 같은 장대비로 사정없이 우리 텐트를 두드린 것이다. “아닌 밤에 이 무슨 날벼락!” 사태를 아직 파악하지 못한 채 머리끝까지 담요 둘러쓰고 꼼짝 않고 어찌 해야 하나, 하면서 누워있는데,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지는 서늘한 느낌이 등짝 여기저기로 스멀스멀 기어들어온다. 텐트 주위에 배수로를 파지 않은 바람에 빗물이 그만 텐트 안으로 들어와 깔고 자던 담요를 흥건히 적신 것이다. 좁은 텐트 안에서 쥐새끼처럼 흠뻑 젖은 옷을 입은 채로 척척한 냉기 뼈 속까지 파고드는 담요를 관 삼아 미이라처럼 꼼짝 않고 새벽이 오기만을 이 악물고 기다렸던 기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근 30년이 지난 지금, 그때를 돌이켜보면 항상 내 입가에는 뜻 모를 미소가 번진다. 지금 나는, 공학도로서 첫 캠핑에 임했던 그땐 꿈에도 꾸지 못했던, 한의사로 180도 전향한 삶을 살고 있는 까닭에(인생이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 의료인이라는 관점에서 캠핑이라는 주제를 달리 보고자 한다. 현재 내가 전문으로 하는 ‘8체질의학’의 입장에서 볼 때, 캠핑에서 일반인들이 보이는 전형적 풍속도에, 앞에서 내가 저지른 것과 같은 어처구니없는 실수들이 적잖이 보이기 때문이다. 즐겁고 추억에도 남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건강에 좋은 캠핑이라면 그보다 좋은 일이 없을 것이다. 8체질의학이야말로 그를 위한 가장 적합한 길잡이가 될 수 있다. 그 지혜를 캠핑에 한번 적용해보자. 우리 생애 최고의 캠핑을 위해 우리 8체질에 한번 푹 빠져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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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 하면 누구에게나 떠오르는 것이 수려한 산이나 햇빛 쏟아지는 바다, 또는 수정처럼 맑은 계곡의, 일상의 찌든 삶에서 벗어난 설레는 일탈의 광경일 것이다. 그래서 당연한 것이지만, 캠핑에는 여러 가지 스포츠나 다양한 레저 활동이 동반된다. 사람들은 운동이라면 다 좋은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요즘 보면 건강을 위해 많은 시간과 돈을 운동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부쩍 눈에 띈다. 간혹 운동에 너무 중독되어 심하다 싶을 정도로 탐닉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하지만 지나친 운동은 오히려 몸을 크게 상하게 할 수 있다. 그리고 모든 운동이 그 사람에게 다 좋은 것도 아니다. 사실은 어떤 운동은 맞고, 어떤 운동은 맞지 않다. 그것을 어떻게 하면 알 수 있을까? 물론 직접 해보면 대개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돈과 시간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하므로 그다지 추천할 만한 일은 아니다. 그럼, 해보지 않고도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있다! 뭔가? 그것은 바로 체질이란 것이다. 체질을 알면 내게 좋은 운동이 뭔지, 내게 적합한 레저활동은 어떤 것인지, 내게 좋은 음식이나 건강식품은 무엇인지, 해보지 않고도, 먹어보지 않고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수영이라는 인기 스포츠가 있다. 박태환이라는 기린아를 탄생시킨 바로 그 스포츠. “어렸을 때 천식이 무척 심했어요. 그런데 주위에서 수영이 천식에 좋다고 하는 말을 듣고 시작하게 됐어요.” 감동적인 그의 성공스토리에 비하면 좀 싱겁고 상투적인 느낌이 들 수도 있는 있지만, 그래서 사람들은 그 말이 주는 체질의학적 의미를 잘 알아채지 못하지만, 우리 같은 8체질 전문가의 입장에서 볼 때는 전광석화처럼 머리를 후려갈기는, 조주(趙州)의 방할(棒喝) 같은 확연한 깨달음을 주는 말이다. 혹시 셜록 홈즈 류의 추리소설에 취미가 좀 있는 사람이라면, 무심코 넘어갈 수 있는 그의 수영 입문 동기가 일반인의 상식에 매우 어긋나는 말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천식이란 질병은 기관지가 갑자기 좁아져 숨이 매우 차고, 심하면 호흡곤란으로 절명할 수도 있는 위중한 기도 폐쇄성 폐질환이다. 자칫 입이나 코로 원치 않게 들어오는 물로 인해 숨 쉬기가 곤란해지기 쉬운 운동인 수영이, 멀쩡한 상황에서도 이유 없이 갑작스레 찾아오는 호흡곤란으로 사경에까지 빠질 수 있는 심각한 질환인 천식에 좋다는 것은 모순이 아닌가? 오히려 더 천식이 심해져야 하는 것 아닌가?
내가 현재 임상에서 전문으로 하는 분야는 이미 언급한 대로 8체질의학이라는 것이다. 이 8체질 중에 금양(金陽)체질과 금음(金陰)체질이라는 체질이 있다. 통칭하여 ‘금체질(金體質)’이라 하자(각 체질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다음 글에서 소개한다). 금(金)이란 동양사상이나 전통한의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개 아는 사실이지만, 오행(五行)으로 폐와 대장을 일컫는 상징적 표현이다. 금양, 금음이라 칭한 것은 두 체질 모두 금기(金氣)인 폐·대장이 센 체질이기 때문이다. 금체질은 이렇게 폐를 강하게 타고나므로, 보통사람보다 폐활량이 좋은 사람이 많아 호흡을 길게 참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게다가 폐라는 장기는 인체의 최상부에 위치하여 폐활량이 풍부한 이 체질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부력을 상체에 제공하므로, 이러한 장점이 물속에 몸이 잠기기 쉬운 운동인 수영에서 타 체질에 비해 금체질이 한층 더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게 한다. 수영은 말하자면 금체질에 가장 좋은 운동이라 할 수 있다. 박태환은 그래서, 100% 확언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금체질일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런데 이상하군요. 박태환이 금체질이라면 어떻게 천식이라는 호흡곤란을 주증으로 하는 질병에 걸릴 수 있나요? 천식이 있었다면 폐가 약한 체질이 아닌가요?” 일견 타당해 보이는 질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모든 질병이 약한 데서만 생긴다는 단순한 일반적 통념의 오류의 하나이다. 질병은 너무 약해서도 오지만, 너무 강해서도 온다. ‘갑상선기능항진증(hyperthyroidism)’이라는 요즘 매우 흔한 질병이 있다. 이게 뭔가? 갑상선의 기능이 너무 강해져서 오는 질병이 아닌가? 인체는 여러 장기와 조직들이 그물처럼 얽혀있는 치밀한 협동의 시스템이기 때문에 어느 한 장기나 조직의 독주는 결코 허용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전횡이요, 독재요, 파멸을 가져오는 자폭일 뿐이다. 갑상선기능항진증이란 갑상선의 기능이 너무 광포해져서 인체라는 시스템의 정교한 대사조절 체계가 속절없이 무너진 병리적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이와 같은 이치로, 태생적으로 강한 폐를 가진 금체질의 폐가 어떤 이유로 더욱 더 강해져서 인체라는 시스템이 감당하기에 역부족일 만큼 지나치게 강화되면 오히려 극심한 호흡곤란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금체질에서 나타나는 천식의 병리이다(‘폐기능항진증’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폐가 너무 약해져서 천식이 오기도 한다. 반대 체질인 목체질에서 오는 천식이 바로 이러한 병리―‘폐기능저하증’―를 갖는다. 다시 말하지만 병은 지나치게 약해서도 오지만, 지나치게 강해서도 온다(‘강하면 부러진다’는 속담도 이를 잘 설명하는 경구라 할 수 있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이는 체질의학, 그리고 나아가 모든 의학의 병리를 명쾌하게 설명해주는 명언 중의 명언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수영이라는 운동은 당연히 모든 체질에 다 좋은 운동은 아니라는 사실을 간파할 수 있다. 즉, 특정의 몇몇 체질에만 좋은 운동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앞에서 언급한 금체질에 가장 좋고, 다음으로 수체질(수양·수음체질)에 좋다. 그러므로 캠핑 갔을 때 즐기는 스포츠나 레저활동도 그 체질에 맞게 선택해야 그 효과가 극대화 할 것이라는 결론이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이 대목에서 당연히 ‘체질이란 무엇인가’, 하는 호기심이 발동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쯤에서 체질론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알아봐야 할 것 같다. 간혹 체질에 대해 전문가 못지않게 잘 아는 사람도 있지만, 대개는 체질이란 게 대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체질이란 무엇인가?(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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