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무기 등장배경 : 화약과 야금술
전쟁의 역사를 통 털어서 볼 때 가장 중요한 혁신은 화약의 발명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1250년경까지만 하더라도 화약은 조심해서 취급해야 할 위험한 폭발성 물질로만 여겨져 왔을 뿐, 전쟁 전문가들의 관심을 거의 끌지 못하였다.
누가 맨 처음 화약을 발견했는지 이를 관속에 집어넣어서 발사 법을 고안해낸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화포가 언제 어디에서 처음으로 불을 뿜었는지도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물론 화약은 중국에서 처음 그 제조법을 발견하고 12세기 말경에 이슬람을 거쳐서 서양 세계에 전래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서유럽 지역에서 화약제조 공식을 맨 처음 알아낸 사람은 영국의 수도 성직자로서 당대의 유명한 철학자이자 과학자였던 로저 베이컨(1220~1290)였다. 1260년에 발간된 저술에서 그는 화약을 만들기 위해서는 초석, 목탄 ,유황을 7:5:5로 혼합해서 한다고 적고 있다. 애석하게도 베이컨은 자신이 발견한 화약제조 공식에 대한 교회의 정죄를 두려워하여 이를 암호와 수수께끼와 같은 부호로 적어 놓은 탓에 지속적인 발전을 어렵게 만들었다. 그 탓인지 이로부터 반세기가 더 지난 다음에야 화포가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15세기에 접어들어서 유럽에서 본격적으로 화약무기가 사용되기 시작하였고, 이로 인해 전쟁사에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왜냐하면 밀폐된 공간에서 얻어지는 화약의 폭발력은 엄청난 파괴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화약의 사용과 더불어 개인화기도 등장하였다. 하지만 소화기는 초기에는 기존의 투사무기였던 석궁이나 장궁에 비해 그 효과가 떨어졌기 때문에 조작법이 쉽다는 이점에도 불구하고 기준의 개인용 무기를 대처할 수 없었다. 바야흐로 17세기 말경에 이르러서야 서유럽에서 석궁과 장궁이 군사작전에서 모습을 감추게 되었다.
화약무기 발전에서 빼놓을수 없는 또 다른 요소는 야금술, 즉 철 주조기술상의 진보이다. 최초에 철이 어디에서 만들어졌는지 분명하지는 않다. 고대 중근동 지역이 출토품으로 추정해 볼 때, 기원전 4천년경에 이미 초보적이나마 철을 정련하는 기술이 알려져 있었던 듯 하다. 그 뒤에 제철기술은 히타이트인과 앗시리아인에게로 이어지며 발전하였다. 고대의 제철방식은 작은 노속에 목탄 불을 지펴서 열과 일산화탄소 철판석을 환원한 뒤, 탄소를 잔뜩 머금은 해면상의 철을 끄집어 내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그 상태로는 사용할 수가 없기 때문에 이를 곧바로 쇠망치로 두들겨 규소, 인, 유황 등의 불순물을 제거하고 이를 재차 노에 집어넣어 열을 가하는 과정을 수 차례 반복해야만 했다. 이과정에서 탄소가 이산화탄소로 바뀌어 탄소 분량이 0.1% 이하의 무르고 끈적거림이 강한 철이 생기게 되는데, 이를 연철 또는 단철이라고 부른다. 철광석을 용해시키기 위해서는 다량의 목탄이 필요하였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노는 목탄의 입수가 용이한 산림 속에 설치되는 경우가 많았다.
중세 말에 이르면 제철기술은 노에서 용해시킨 철을 진흙모형 속에 쏟아 넣어서 다양한 형태의 철 제품을 만드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14세기로 접어들면서 유럽에서는 노가 대형화되었다. 이로 인해 노 내부로 흘러 보내는 풍력을 더 이상은 인력으로 감당할 수 없게 되면서, 수차(水車)의 힘을 이용해 풀무를 작동시키는 기술이 개발되었고 이와 더불어 노는 산 속으로부터 강변지대로 옮겨지게 되었다. 그리고 1492년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에 뒤이어 유럽에 상업혁명의 바람이 불면서 제련기술이 보다 발전하게 되었다. 16세기에 이르러 새로운 형태의 고로(용광로)가 개발되었다. 4~5미터 높이의 고로 위에서 철광석을 집어넣는 방식을 이용하면 철은 아래에서부터 일산화탄소에 의해 예열되고, 이 일산화탄소의 탄소 성분은 흡수해 환원된 철은 융점이 내려가 선철이 되었다. 제련술 측면에서 연철은 섭씨 9백도에서 융해된 데 비해, 선철을 얻기 위해서는 1천 2백도까지 온도를 높여야만 하였다.
물론 이보다 더 양질의 철은 섭씨 1천 5백도에서 얻을 수 있는 강철이었지만, 이는 19세기 중엽에 이르러서야 제련이 가능하였다. 이제 유럽에서도 선철 생산이 가능해졌고, 이는 무엇보다도 화포의 제작과 발전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기존의 청동 화포와 더불어 화력이 한층 향상된 선철제 주조 화포가 유럽의 전장의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물론 화포의 탄환도 선철제 철환으로 교체되어 보다 강화된 파괴력을 얻을 수가 있었다.
화약무기의 등장은 이전까지 근력에 의존하던 무기형태를 혁명적으로 변화시켰다. 당시까지 전투는 방어 중시라는 개념에 입각하여 공격해 오는 적을 맞받아치는 형태의 장궁이나 장창과 같은 무기가 발달하였다. 그러나 이제 화약무기의 사용으로 전술 및 교리가 공격 중시로 바뀌게 되었다. 특히 화포는 공성용 무기로 활용되어 성에 의존하던 봉건주의 시대의 전술을 깨뜨렸고, 기사위주로 구성된 중세 중기병대 마찬가지 소화기의 발달에 더불어 쇠퇴하게 되었다. 이후 꾸준한 기술 개발에 힘입어 화약무기는 보다 경량화 되고 발사속도가 증가하게 되었고, 이와 더불어 점차 전장의 주무기로 확고부동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출처:Monthly Magazine DEFENSE & TECHNOLO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