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 있는 동안 인간은 기본적으로 분할되거나 분리된 것이 아니라 단일한 존재다. 인간을 둘로 구분하거나 셋으로 나누는 것은 성경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가능할 것 같지 않다. 살아있는 인간은 영혼과 몸이 하나로 이루어진 존재다. 데일 무디는 원어의 의미를 풀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히브리어 네페쉬(nephesh)는 생명의 원리를 의미하지만, 살아있거나 죽을 수도 있다(레 19:28; 민 6:6). 인간은 영혼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다. 모든 생기있는 생물은 생령으로 묘사될 수 있다. 이 단어는 영어 번역에서 불명확하게 사용되었다. 인간에 관해 사용된 창세기 2장 7절과 동일한 구절이 동물들에게도 창세기 2장 19절에서 사용되었지만 영어 번역은 서로 다른 단어처럼 표현되었다.... 호흡을 가진 모든 생물은 네페쉬(영혼)이다.
이런 해석은 지난 150년 동안 기독교적 인간론을 지배했던 이원론에 대한 신학적 재고를 반영한다. 칼 바르트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인상적인 진술을 남겼다: “인간의 인격은 존재하지 않을 수 있는 육체를 소유한 영혼이 아니라 육화된 영혼이며 영혼을 가진 육체다.” 다만 인간이 생명을 다할 때 일시적으로 영혼과 몸이 분리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어느 정도 전통적으로 받아 들여왔던 견해라 할 수 있다.
데일 무디는 인간의 본질이 서로 다른 요소로 분할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예외적으로 죽음이라는 특별한 환경에서는 몸과 영혼이 분리된다고 보았다. 그는 영혼불멸이 성경에서 “낯선 사상”이며, 바울의 서신들에서 불멸은 “죽음 너머에 계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선물”(고전 15:53-55; 고후 5:4)이고, 오직 하나님만이 “본성상” 불멸하다고 주장했다(딤전 1:17; 6:16). 하지만 그는 죽음 이후에 이 둘이 분리된다고 말함으로써 여전히 영혼불멸설이라는 헬라철학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
오늘날 “통전적 대안”(wholistic alternative)을 찾는 신학자들은 “인간 존재를 복합적인 기능들을 지닌 하나의 존재론적인 통일체”로 파악한다. 그 가운데 “이중양태적 일원론”(dual aspect monism)은 “물질적 차원과 비물질적 차원의 상호작용”을 하나의 실체가 표출하는 두 양태로 보았다. 또한 “단일론적”(unitary) 인간론을 주장한 존 폴킹혼(John Polkinghorne)은 인간존재가 “물리적 세계 안에서 행동”할 뿐 아니라 “관념들과 목적들로 이루어진 지적 세계에도 참여”할 수 있는 “하나의 심신 통일체”(a psychosomatic unity)요, “생명을 지닌 몸”(an animated body)으로 이해했다.
[회중주체적 조직신학], 219-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