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3.15. 보목지를 다녀 왔습니다.
못을 휘익 둘러본 후 우안 중류 부근에 대를 널었습니다.
오후 햇살이 따사로운 우안중류
봄바람이 살랑대어
꽃가루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털에
고운 봄향기 어린다는 시인이 떠올라
두뺨을 부비는 따사로운 햇살
그리고 보들한 바람
한마리 고양이 되면
파릇한 봄기운 한껏 느낄 듯
제방입니다.
먼저 오신 한 분이 제방좌측에서 대편성 하시느라 분주합니다.
"수심이 깊지요??"
"5M 정도 됩니다."
"일부러 깊은 곳에 자리 잡았나 봐요?"
"오늘은 깊은 곳을 노릴려고요."
"손맛 보이소~!!"
우안
좌안
못쫑
무너미
제방에 빨간 깃발을 단 말뚝이 박힌 걸 보니
아마도 제방 보강공사를 할 듯 합니다.
상류
상류를 당겨 봅니다.
상류에서 제방을 바라 봅니다.
참 좋은 곳이자 비교적 깨끗한 곳인데 여기저기 알흠답지 못한 광경도 눈에 띕니다. 에휴~!!!
수심은 평균 2M 정도로 적당한데 입질은 없슴다.
해거름에나 밤에는 입질을 하리라고 믿고 기다립니다.
야산 이마위로 해가 넘어가니 바람도 잠잠해 지네요.
뭔가 기대치가 높아지는 분위깁니다.
미동도 없는 찌를 바라보며 오늘은 제 유년기 마지막 전쟁을 떠올려 봅니다.
어린시절 우리동네는 지금의 읍면소재지 변두리 동네와 비슷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시 대구로 유입되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우리동네는 신암동이 쪼개져서 신암4동으로 분동되었지 싶은데
속칭 새마을이라고 불렀으며 그 새마을 떼떼만대이에 우리 집이 있었지요.
제 유년의 희미한 기억으로는 복이네, 준수네 등 우리동네 부근의 여러 집에서 세들어 살다가
제가 초딩 저학년때 부모님이 조그만 밭떼기를 사서 아버님이 손수 집을 지어신 걸로 기억합니다.
자동차나 구루마가 다니는 큰길이 저 아래 있었고 머지않는 곳에는 금호강이 흐르던
동네 집주변에도 텃밭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었고 마을의 집주변과 길가에도 질경이, 까마중, 비름, 쇠비름,
도토라지 등의 나물과 잡초들 그리고 메추나무,싸리나무, 가죽나무 등의 잡목도 많았으며
메뚜기, 잠자리, 참새, 제비 등도 날아 다녔고
학교가는 길에는 비교적 맑은 물이 흐르던 도랑과 논밭이 있었지요.
어느 날 우리동네 뒷쪽 강가는 길 좌측 야산에 탱크가 오랬동안 왔다갔다 하더니 야산이 깍이고 넓은 공터가
만들어지고 애들이 뛰어놀기 좋은 곳이 생겨서 공놀이하기 좋은 곳이였으니
우린 그 곳을 탱크산이라고 불렀습니다.
당시엔 불도저를 탱크와 비슷하다고 탱크라고 불렀고 큰고개 중간부근에도 우리가 탱크산이라고 부르던
곳이 한군데 더 있었는데 그 탱크산 역시 불도저로 야산을 밀어 대지를 조성했다고
우린 탱크산이라고 했었지요.
뛰어놀기 좋았던 큰고개 탱크산은 나중에 당시 의원이던 2원만 달라했던 이의 별장 비슷한 곳이라는
소문이 돌았었는데 흐름한 야산을 구입하여 불도저로 밀어 평평하게 만들어 되파는 좋게 얘기하면
토지개발이고 나쁜 쪽으로 보면 일종의 부동산 투기였을 듯 합니다.
요즘은 굴삭기(포크레인)를 주로 사용하지만 우리 어린시절에는 포크레인은 없었고
주로 불도저로 땅을 밀어 평탄작업을 했었던 듯 합니다.
포크레인은 프랑스의 굴삭기 만드는 회사이름인데 포크레인사가 만든 굴삭기가 1970년대 중반무렵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와 건설현장에 투입되었는데 그 신기한 모양과 엄청난 작업량에 신선한 충격을 받아
굴삭기로 부르지 않고 아예 포크레인이라는 일반명사화(?)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찌보면 우리나라에서는 일부분이 전체가 된 케이스죠.
이야기가 다른 데로 새네요. 탱크산과 굴삭기 얘기는 여기서 접어두고
새로 생긴 넓은 공터에는 우리동네 애들 뿐만 아니라 윗동네 아래동네 그리고
저 위쪽 성냥공장 부근의 애들도 놀어오는 곳이였죠.
그러다 보니 애들끼리 마찰이 생겨 불미스러운 일들이 많이 발생했었는데
예를 들면 축구하다가 공을 빼았겼다거나 노는데 저쪽 아이들이 태태지기더라 아니면 누구에게 맞았다더라는 등
그런 얘기들을 자주 접하게 되니 동네 고학년이 주축이 되어 회의를 소집한 뒤 그 쪽 동네로 칙사(?)를 보내
좋게 타협을 시도했으나 서로 의견이 팽팽하여 선전포고를 하게 되었지요.
"전쟁이다. 모두 무기를 들고 저 아래 탱크산으로 모여라~!"
나무창, 나무칼, 대나무 장대, 몽둥이, 새총, 작은 도리깨 비슷한 것, 엉성한 활, 소형 자작철퇴, 돌멩이,
자작방패 등의 살상(?) 장비와 방어장비를 갗추고 탱크산으로 가는데
탱크산 아래에서 더이상 갈 수가 없었습니다.
넘들이 이미 탱크산을 점령하여 위에서 아래로 돌멩이를 던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넘들은 높은 곳에 있었고 우리는 아래 쪽이니 우리가 상당히 불리한 상황이였죠.
"X만한 X들아~! 비겁하게 돌질만 하지말고 올라 온나~!"
"야이 X들아~! 위에서 까불지 말고 내려와서 함 붙자~! 박살내주께~!"
그런 상황에서 투석전이 계속되었고 넘들은 높은 곳에서 낄낄거리며 비겁하게 숨어서 돌만 던지지 말고
올라오라고 하면서 약올렸고 우린 정정당당하게 붙자며 내려오라고 고함을 지르는 대치상황이 계속되었슴다.
우리가 절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다보니 우리쪽 사기는 많이 떨어져 모두 풀이 죽어 있을 때
동네 형중 K라는 형이 나무칼 두개를 달라고 하더니 먼저 올라 갈테니 엄호를 좀 해 달라는 겁니다.
엄호란 게 별다른 것이 아니고 집중사격의 표적이 안 되도록 여기저기서 돌맹이를 던지는 것이였죠.
우린 무모하다고 말렸지만 그 형은 밑에서 돌멩이만 잘 던져주면 된다며 뛰쳐 나가더니
언덕위로 돌진하는 것이였슴다.
우린 일렬횡대로 주욱 서서 돌을 던지면서 고함을 지르며 엄호하였습니다.
돌진하는 그 형의 머리위로 장대와 몽둥이들이 날아들었지만 쌍칼로 막고 받아내며 언덕위에 올라서서
장대를 휘두러던 한 넘을 제압한 후 여러 명과 겨루는 걸 보고 우린 환호성을 지르며 돌격했습니다.
의외의 일격에 전의를 상실한 넘들은 도주하기 바빴고 중간중간 넘들의 거칠은 저항이 있었으나
우린 진격에 진격을 거듭하여 탱크산을 거의 점령하였지요.
그 당시 K형의 돌진하는 모습에서 흡사 삼국지의 맹장이 홀홀단신으로 적진을 유린하는 무장의 기상을 느꼈으며
뒤에서 K형의 용기에 박수와 응원의 힘를 보태면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벅참과 전율로
가슴속에서 한웅큼 뭉클한 게 솟아오르는 듯 했습니다.
그건 아마도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였을 겁니다.
지금도 K형이 나무칼로 머리위를 가개로 막으며 언덕위로 돌진하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넘들의 패잔병을 몇 명 잡았고 넘들의 무기도 상당수 회수하였지만 우리측 피해도 있었습니다.
저는 허약체질이라 후위에서 돌 던지는 역할을 해서 괜찮았지만 앞장서서 선봉에 섰던 애들 중
몇 명은 박이 터지고 피멍이 들고 얼굴을 다친 애들도 있었지요.
승전하고 마을로 돌아와 자축을 하고 있는데 포로로 잡혀 온 애들의 엄마나 삼촌 등 어른들이 몰려와서
포로가 된 애들을 데려가서 석방했는데 그 중 한녀석은 모친이 없었는지 계속 포로로 남게 되어
그 넘은 우리들에게 많은 괴롭힘을 당했지요.
얼굴에 그림을 그리고 발가벗겨 고추에 고추가루를 집어 넣어 실로 입구를 묶는 등...... ㅋ~
지금 생각해 보면 같은 동네라고 할 수 있지만 당시 전쟁은 우리동네 애들과 성냥공장부근 애들이
대립하여 발생된 건데 그 외 지역 애들은 아무 곳에나 편 먹으면 되는 그러한 구조의 전쟁이였습니다.
수시로 한번씩 소규모나 대규모로 치고박고 했었지요.
K형의 용기에 뭉클함을 느꼈던 그 전쟁이 아마 제 유년기의 마지막 전쟁이 아니었나 싶네요.
그 후로는 나이가 들어 중학교에 가게 되어 애들과 어울릴 시간이 별로 없었고
어른들의 간섭이 심해져서 동네간의 대규모 전쟁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지요.
어린시절 우리들의 전쟁터였던 강가는 길의 탱크산은 동서시장 끄트머리 사거리를 지나 작은 수퍼가 있는
건물 뒤쪽인데 어느 날 가보니 단독주택이 빼곡한 주택가로 변해 낯설은 느낌이 들더군요.
K형이 나무칼 두자루를 들고 언덕위로 돌진하던 곳이 아마 지금의 수퍼자리였을 듯 합니다.
훗날 삼국지를 읽었을 때 한중전투에서 상산 조자룡이 수십기의 기병으로 정찰중 조조의 대군을 맞아
도망치지 않고 대군속으로 돌진하던 장면에서 K형이 홀로 언덕위로 돌진하던 모습이 떠오르더군요.
K형은 유년시절 오랫동안 이 세상 어느 영웅호걸보다 훌륭한 내마음속의 영웅이자 우상이였습니다.
해거름에 캐미를 꺾어 찌불을 밝히고
물을 끓여 컵라면을 한그릇하고 연타로 빵과 커피를
참 오랜만에 바라보는 찌불입니다.
바라만 봐도 흐뭇한
19시경에 우측에서 세번째 삼육대 찌가 스무스하게 두마디 정도 상승~!
침을 꿀꺽 삼키며 기다렸건만
그기까지 였습니다.
21시경에 좌측에서 세번째 삼삼대 찌가 까박거린 후 서서히 부상합니다.
아름다운 궤적을 그릴 줄 알았는데 멈추네요.
일순간 갈등 그러나 챔질~!
"멜롱~!!"
첫입질에 대한 실망감이 빠른 챔질을 부추긴 듯
"아~! 좀 더 기다렸어야 했는데~!!"
보목지는 괜찮은 싸이즈가 라이징하는 걸로 봐서는 시기가 무르익은 듯 한데
아직도 활성도는 많이 떨어지는 듯 합니다.
초저녁부터 반짝이는 밤하늘의 다이아몬드를 보고 싶었는데
오늘은 구름이 좀 끼어서 별이 보이지 않네요.
22시에 철수했습니다.
꽝입니다요.
감사합니다
첫댓글 수고하셨습니다.우짜던지 좋은못 마니 발굴하셔서 동행출조 함 하입시다.
동출 함 해야죠. 좋은 곳으로
초봄낚시는 역시 꾼들이 드글드글한 곳이 맞나 봅니다. ㅋ~
반갑습니다.^^
드디어 물낚시 스타트하셨군요 ㅎㅎ
바야흐로 봄기운이 물씬 느껴지는 좋은시절이 오고있는듯 합니다.
물비린내 많이 맡으시고
올해도 어복 충만하시길 기원합니다.
반갑습니다. 스타트가 좀 늦은 감이 있습니다.
물가에 앉아 스치는 바람에 양볼을 맡기니 차암 부드럽더군요.
"아주~ 조아~!!" <--- '장발허용' 이라는 눈부신(?) 업적을 남긴 이의 표현입니다. 특별한 치적이 없죠.ㅋ~
낚수시즌이 활짝 열리고 있습니다. 즐낚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