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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마누엘–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마 1:18-25)
할렐루야! 주님이 이 땅에 오신 성탄의 아침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가 없는 크리스마스”라고 말들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온 여러분에게는 “그리스도가 있는 크리스마스”임을 확신합니다.
서로 인사를 나눌까요? “메리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기념일입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의 생일날입니다. 크리스마스는 영어로 그리스도(Christ)의 미사(mass)라는 의미입니다. “X-MAS”라고 쓰는 경우는, X는 그리스어의 그리스도(크리스토스, XPIΣTOΣ)의 첫 글자를 이용한 방법입니다. 크리스마스를 프랑스에서는 “노엘”(Noël)이라고 부르고, 이탈리아에서는 “나탈레”(Natale)이라고 부르고, 독일에서는 “바이나흐텐”(Weihnachten)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크리스마스를 무엇이라고 부릅니까? 다 알고 계시는 것처럼, “성탄절”이라고 부릅니다.
“임마누엘-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올해 성탄절은 주일입니다. 오늘 성탄을 축하하는 감사예배를 통하여, 임마누엘이신 우리 주님이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심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이 이 땅에 아기 예수님으로 오셨을 때, 주의 사자가 미리 오셔서, 요셉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장차 태어날 아기의 이름을 미리 가르쳐 주었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21절)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22-23절)
훗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다음, 승천하시기 전, 마지막 말씀으로 주신 말씀이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는 말씀이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실 때에도, 임마누엘로 오셨고, 가신 다음에도 임마누엘로 계십니다. 한 마디로 주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나와 함께 있다”라는 것은,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우리 주님은 언제나 나와 함께 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언제나 함께 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힘이 납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우리가 잊어버리기 때문에, 때로는 좌절하고, 때로는 절망하고, 때로는 삶을 포기할 때도 있습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사람을 이용하고, 때로는 학대하고,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고, 자기 마음대로 다른 사람을 조종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이 땅에 오셨고, 우리를 위하여 사셨고, 우리를 위하여 대신 죽으셨고, 우리를 위하여 부활하셨고, 우리를 위하여 천국에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이 천국에는 왜 다시 올라 가셨습니까? 우리가 살 집을 미리 장만하시기 위하여, 하늘나라에 다시 올라 가신다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멋진 예수님이십니까?
찬송가 305장인 “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를 작사한 죤 뉴턴은 한때 포악한 노예 상인이었으며, 이름난 탕자였습니다.
그러한 그가 예수 믿고 변화되어 목사가 되어 40년 동안 주님의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죤 뉴턴의 마음 속에는 언제나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주님이 나의 죄를 다 용서 하셨다고 하지만, 나 같은 노예 상인을 용서하셨을까? 정말로 나 같은 탕자를 용서하셨을까?”
문득 문득 과거의 죄가 떠오를 때에는, 온몸에 소름이 돋고, 두려움에, 마음이 떨렸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는 벽에다가, 이사야 43:4절 말씀을 써 붙여 놓고, 그 말씀을 되뇌이며, 위로를 받았습니다.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노라”
그는 일생 동안, 구원 받고, 용서 받은 것을 잊지 않으려고,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했습니다. 그리고 82세에 숨을 거두면서,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지금 하나님 나라로 간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 나라로 가면 아마 세 번 놀랄 것이다. 처음엔 하나님 나라에 오리라고 전혀 기대하지 않던 사람들이 와 있는 것을 보고 놀랄 것이고, 두 번째는 하나님 나라에 가면 반드시 만나리라 기대했던 사람이 안 보이는 것을 보고 놀랄 것이고, 세 번째는 노예 상인인 내가 그 자리에 와 있다는 것을 보고 놀랄 것이다.”
하나님은 포악한 노예 상인과도 함께 하여, 그를 훌륭한 목사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성경 말씀을 기록한 세리 마태와도 함께 하여, 예수님의 열두 제자인 사도 마태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성탄입니다. 성탄은 하나님이 죄인들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어떤 죄인도 품으시고 영접하시고 구원하시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이름은 임마누엘 예수입니다. 임마누엘! 그 이름은 죄와 허무와 고독으로 죽음의 병을 앓고 있는 인생들에게 힘과 위로와 소망을 줍니다.
“임마누엘-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그 이름은 우리에게 임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은혜로운 이름입니다.
“임마누엘-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이 성탄의 메시지가, 지치고, 상하고, 낙심되고, 외롭고, 고독한 이 시대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십니다. 이 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죄악으로 어두운 세상에, 한 아기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기꺼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 죄를 속죄하는 어린양이 되신 하나님의 은혜는, 이 땅의 모든 죄와 사망의 사슬에서, 우리를 건져 내고, 해방시켜 주십니다. 참 자유를 주십니다. 이천년 전,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오늘날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영접하는 이들의 심령 속에, 다시 잉태하시고, 영원히 그와 함께 하여 주십니다.
“임마누엘-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오늘도 임마누엘의 은혜가, 여러분의 생애와 자녀와 각 가정에 임하기를 소원합니다.
다른 교회 목사님이, 우리 교회를 방문해서, 열심히 섬기시는 집사님 한 분에게 물었습니다.
“집사님은 무엇을 믿습니까?”
그러자 집사님께서 당당하게 답변하셨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믿는 것을 믿습니다.”
그러자 그 목사님이 깜짝 놀랐습니다. “와, 대단하시다.”
교회와 하나가 된 신앙의 자세가 감동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질문을 던졌습니다.
“집사님, 교회는 무엇을 믿습니까?”
집사님께서 태연하게 대답하셨습니다. “교회는 내가 믿는 것을 믿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이 매우 의아하게 생각하셨습니다. “도대체, 효성선교교회는 뭘 믿지?”
그래서 세 번째 물으셨습니다. “집사님과 교회가 믿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러자 변함없이, 태연한 모습으로 대답했습니다. “교회와 나는 똑같은 것을 믿습니다.”
이렇게 대답하는 집사님이 계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교회와 하나가 되는 것을 잘 이해한 것 같지만, 사실은 꽝입니다. “집사님과 교회가 믿는 것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면,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하겠습니까?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와 함께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 임마누엘이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이렇게 대답하셔야 합니다.
왜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까? 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일까요?
빌립보서 2:6-8절을 보면,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신 우리 주님은, 죽기 위하여 오셨다고 했습니다. 살기 위하여 오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기 위하여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십자가에서 죽기 위하여 오셨습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다는 이야기는, 창세기 3:15절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나님은 에덴동산에 많은 나무를 심으셨습니다. 동산 중앙에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생명나무를 심으셨습니다. 그리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와와 아담이 뱀의 꾀임에 빠져 따먹고 말았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죄를 범하였습니다. 에덴동산을 잃어버렸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우리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에덴동산을 회복시키고자 오셨습니다. 새하늘과 새땅을 주시고자 오셨습니다. 죄 문제를 해결하고자 오셨습니다. “네 죄를 사하노라”고 말씀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우리의 죄가 사해졌다는 것을 보여주시고자 오셨습니다.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멸시와 천대를 받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사야 53:6절을 보면,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의 죄악을 대신 담당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21절을 보면,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시고, 참 자유를 주시려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과 같이 주무시고, 같이 일어나시고, 같이 잡수시고, 같이 마시면서, 같이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병자를 고쳐 주시고, 슬픈 자를 위로해 주시고, 죄 있는 자를 사해 주셨습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마지막에는 만민의 죄를 대속해 죽으시고, 사흘 만에 또한 다시 사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임마누엘의 주님이십니다. 믿는 사람들과 제자들을 향하여, 늘 하신 말씀은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겠다.”고 하셨습니다. 살아계신 주님께서는 그를 믿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계십니다. 그러므로, 임마누엘은 우리가 약할 때 힘이 되십니다. 임마누엘은 우리가 불안할 때 평안이 되십니다. 임마누엘은 우리가 길을 잃을 때 안내자가 되십니다. 임마누엘은 우리가 죽을 때 영원한 생명이 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때,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합니다.”(고후 4:8-9)
임마누엘 주님을 여러분의 마음 속에 영접할 때, 인생은 승리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 주님의 오심을 축하하는 이 크리스마스에 임마누엘 주님을,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왜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인간으로 오셨을까요? 하나님이 하나님이신 그대로 계셔도, 그분은 분명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신 그대로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인간과 똑같은 모습으로 오시지 않았다면, 하나님이신 그대로도 믿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간이, 정말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잘 믿었겠습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의 마음과 그 사랑을 어리석은 인간들이 더 잘 알고, 더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인간의 몸을 입으셨습니다. 그리고 아기 예수님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와이 몰로카이 섬의 다미엔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다미엔 선교사는 1873년 나병환자 수용소인 몰로카이 섬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은 그야말로 생지옥이었습니다. 중증 나병환자들이, 풀뿌리로 만든 독한 술에 만취되어, 울분을 달래고, 정욕의 노예가 된 남녀가 어울려, 쾌락에 젖어 있었습니다. 정부의 관리가, 선창가에서 던져주는 음식에, 파리 떼처럼 모여들어, 서로 받아먹으려고 싸움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매일 수십 명이 죽어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미엔은 10년을 전도했지만, 아무런 열매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비장한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저를 나병환자로 만들어 주세요. 죄인을 구하기 위해서 죄인되었던 예수님처럼 나병환자를 구하기 위하여 저도 나병환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 기도를 드린 얼마 후, 그는 선교기금을 모금하기 위해 친구와 만났습니다. 친구와 이야기를 하던 중에, 다미엔은 실수로 촛대에 손을 얹었고, 당연히 촛불에 의해 손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살타는 냄새가 진동을 하는데도 다미엔은 모르고 있었고, 이것을 보고 있던 친구는 충격을 받으면서 말했습니다.
“다미엔, 자네도 나병환자가 되었나봐!”
그 후 몰로카이 섬에서는, 새 생명이 급속도로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떨어져 나간 손마디, 빠져버린 눈썹, 흉한 모습을 하고서 그들 앞에 서서 “여러분! 예수님은 나병에 걸린 우리를 사랑하십니다!”라고 했을 때, 그들은 자기들처럼 흉한 나병환자가 된 다미엔을 보고, 전기로 감전 된 듯이 감동을 받고, 예수를 영접했습니다. 단 3년만에 800명을 전도할 수 있었습니다. 1873년 이 섬에 상륙한 다미엔 신부는, 1889년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하늘을 원망하고, 인간을 저주하면서 살아가는 나병환자들의 친구가 되어, 그들의 상처를 씻어 주고, 그 고름을 짜 주면서, 그들을 위로하고,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아기 예수님으로 오신 것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우리로 하여금 주님을 친근히 대하고, 그가 주시는 것을 잘 받아들이도록,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람으로 오신 이유는, 바로 우리 때문이라는 것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고, 그 모습 그대로 지금도 저와 여러분과 함께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들과 꼭 같은 모습을 입고 땅에 오셔서 함께 살고, 함께 있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없이도 얼마든지 잘 살수 있다고 큰소리치다가 나라 잃고 불쌍하고 고통스럽게 살아가던 이스라엘, 아예 하나님도 모르고 아무 것도 모르는 채 우상의 권세 아래 살아가던 온 인류에게, 주님께서 임마누엘로 오셔서 영원히 떠나지 아니하고 계시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도우십니다. 이러한 임마누엘의 신앙이 있다면, 누가 뭐라 해도, 어떤 위험이 있어도 의연하게 여러분의 길을 걸어갈 수 있고, 진리를 고수할 수 있으며, 승리할 수 있습니다.
서울 서초교회 김석년 목사님 설교 가운데, 이런 말씀이 있었습니다. 목사님이 어느 날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오는데, 집 앞에서 목사님의 아들이, 다른 아이들과 싸우고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서로 엎치락뒤치락하더니, 목사님의 아들이 밑에 깔리고, 그 아이가 위에 걸터앉아, 주먹을 불끈 쥐고, 막 내려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때 목사님이 아들을 불렀습니다. “반석아!” 바로 그 순간 아주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순간적으로 때리려던 아이의 얼굴은 하얗게 되고, 아래 깔렸던 목사님의 아들이, 힘을 내고는, 자세가 역전이 되어, 목사님 아들이 그 아이가 했던 것처럼, 주먹을 불끈 쥐고서, 막 내려치려고 씩씩거리는 것을 보셨습니다. 진짜로 내리쳤는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나, 그 뒤에 나오는 목사님의 말씀이 재미있습니다.
“아빠가 그저 한마디 아들의 이름을 불렀더니 승자가 된 것입니다. 아빠가 함께 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놀라운 힘이 솟구친 것입니다.”
인생의 싸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신다.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신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 있으면, 힘이 나고, 어려운 상황을 역전시킬 수도 있으며,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바로 이것을 위하여, 예수님은 임마누엘로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살아계신 주님을 믿고, 힘 있고, 당당하게 살아가라고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 예수님의 이름은 “임마누엘”입니다. 그리고 그는 평생을 임마누엘로 사셨으며, 마지막으로 남기신 약속도 “임마누엘”이었습니다.
마태복음 28:20절에서, 예수님은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즉 영원토록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세상 끝날까지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임마누엘은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 곁에서, 여러분을 위하여, 여러분을 도우시는 주님으로 오신 예수님을 기억하시고, 늘 승리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인생을 살아갈 때에, 무엇보다도 가장 소중한 것은, 돈이나 명예나 권세가 아니라, 여러분들과 함께 계시기 위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을, 계속 유지하지 못하고, 예수님과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하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고민과 좌절에 사로잡혀서, 밤거리를 거닐다가, 가로등 아래에서 발을 멈추고 위를 쳐다보았습니다. 가로등 불빛이 너무 밝아서, 눈을 아래로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가로등을 뒤로 두고, 앞으로 나가면서 보니, 불빛에서 멀어질수록, 그의 그림자는 점점 커집니다. 그러더니 결국엔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는 다시 천천히 가로등 쪽으로 뒷걸음질해서 걸어갔습니다. 그때 자기의 그림자는 점점 작아지더니, 가로등 바로 밑에까지 왔을 때에, 자기의 그림자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네가 지금 하나님의 빛을 떠났기 때문에 고민과 좌절에 사로잡혀 있다”고 하는 음성이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아무개야 내 가까이 있거라. 내 빛을 네 안에 비추게 하라. 네가 내 빛 가운데서 걷는 한 너의 근심과 걱정이 너를 주관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시는 음성을 듣고, 임마누엘이신 예수님과 항상 함께 있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요한 웨슬레는 “인생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함께 계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고, 내가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루돌프 사슴 코는 매우 반짝이는 코 만일 내가 봤다면 불붙는다 했겠지. 안개낀 성탄절날 산타 말하길 루돌프 코가 밝으니 썰매를 끌어주렴. 그후론 사슴들이 그를 매우 사랑했네. 루돌프 사슴코는 길이길이 기억 되리”
성탄절이 되면, 교회에서나, 상가와 거리 어느 곳에서나 쉽게 들을 수 있는 “붉은 코의 루돌프 사슴”이란 노래입니다.
이 이야기를 쓴 미국의 로버트 메이(Robert May)는 괴로운 세월을 보낸 젊은이였습니다. 그는 동화 작가가 되려고, 오랫동안 노력을 했으나, 삼류잡지에서만이 원고를 받아 줄 뿐, 별로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5년 동안 앓아 누워있는 아내는,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938년에는 경제공황까지 겹쳐, 끼니를 잇기가 어려웠고, 어린 딸까지 돌보아야 하는 처지였습니다. 그런데 그 해 성탄을 앞두고 쓴 동화 “루돌프 사슴”이 처음으로 일류잡지인 “워드”사의 인정을 받아 실리게 되었는데, 그는 자기가 쓴 “루돌프 사슴”에 대한 이야기를 잡지사에 제출하기 전에 병상에 있는 아내에게 먼저 읽어 주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다 들은 부인은, “당신 자신의 이야기를 썼군요” 하며,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동화가 활자화되기 전에, 그의 아내는 숨을 거두었습니다. 여러분들도 대충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그 동화의 내용은 이런 것입니다.
루돌프라는 이름의 사슴은 못 생기고, 코까지 빨갛게 부풀어 올라 있어, 늘 친구들의 조롱을 받는 외톨이였습니다. 루돌프는 날마다 괴로움 속에 살았고, 못난 자기를 한탄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산타클로스가 썰매를 끌 사슴을 선발하기 위해서, 사슴 마을을 찾아 왔습니다. 산타클로스는, 그 많은 사슴 중에서, 뜻밖에도, 루돌프를 뽑았습니다. 산타클로스는, 사슴의 강한 다리나 잘생긴 얼굴보다, 콧잔등이 반짝 반짝 빛나는 사슴을 구하러 다녔는데, 마침 루돌프의 코가 빨갛게 빛나는 코였던 것입니다. 루돌프의 빛나는 코는, 희망을 뜻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괴롭고 불행한 환경과 외톨이가 되어도, 잘 참고 극복해 나가는 루돌프는, 희망의 빛을 잃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아기 예수님은, 루돌프처럼 못생기고, 코까지 빨갛게 부풀어 올라, 세상으로부터 버림받고, 조롱받는 외톨이가 된 인간과 같이 계시려고, 하늘의 보좌를 버리고, 낮고 천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루돌프는 빛나는 코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미운 오리 새끼는 자기가 백조인 것을 자기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미운 오리입니까? 아니면 루돌프입니까? 이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나온 삶을 돌이켜 보십시오. 멀리 갈 것도 없이 2011년, 한 해만 되돌아보십시오. 어떻게 살아오셨습니까? 분노와 혈기가 있었습니까? 상처 주고 상처를 받았습니까? 미워했고, 또 미움을 받기도 했습니까?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죄악 덩어리입니다. 험담하고, 상처주고, 분노하고, 관계를 깨뜨리고, 미워합니다. 모두가 자신을 세우려는 욕망 때문에, 나타나는 결과들입니다. 그래서 외롭고 슬픈 인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있고 싶으셔서, 임마누엘의 이름으로 찾아오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 사랑으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시고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습니까? 그런데 왜 낙심하십니까? 왜 좌절합니까? 왜 삶을 포기합니까?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면,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힘들고 어려운 일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다고 할지라도,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데, 당당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주님이 임마누엘로 오셨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 가운데에서도, 임마누엘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지치고 상한 마음 가운데에도 임마누엘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병들고 아픈 육신 가운데에서도 임마누엘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어제도 함께 하셨고, 오늘도 함께 하시고, 내일도 함께 하십니다. 과거도 함께 하셨고, 현재도 함께 하시고, 미래도 변함없는 사랑으로 함께 하여 주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임마누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록펠러는 십일조 생활과 성실한 노력으로, 33세에 이미 100만 장자가 되었고, 43세에 큰 회사를 운영하는 자가 되었으며, 53세에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어, 전 세계에 단 한 명뿐인 억만 장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엄청난 부가 록펠러에게는, 나중에는 불행의 족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는 철저히 십일조생활을 하는 등, 충성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는, 주는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그가 병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악성 피부염에 걸리어, 머리카락이 빠지고, 속눈썹도 빠져 버렸습니다. 최고의 병원에서, 최고의 의사와 약을 사용해도, 전혀 차도가 없었고, 점점 몸이 쇠약해 가지만 했습니다. 수입은 일주일에 100만 달러(우리나라 돈으로 매주 12억)가 되는 사람이었으나, 그가 먹는 것은 고작해야, 비스켓과 우유만 먹는 비참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또 돈을 너무 악착같이 벌다보니, 인심을 너무 잃어서, 그를 미워하는 자들이 너무 많으므로, 경호원들이 없으면, 살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므로 너무 불안하여, 밤에 자지 못하는 불면증에 시달리므로 웃음이 사라졌습니다. 그때에 록펠러는, 사람의 일생이, 돈이 전부가 아님을 크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막대한 재산을 풀어쓰기를 시작했습니다. 많은 어려운 교회들을 돕기 시작하고, 많은 선교사들을 파송합니다. 가난한 자, 불우한 자에게 사랑의 손길을 펴기 시작했습니다. 록펠러 재단을 만들어, 자선사업을 본격적으로 했습니다. 그리고 돈뿐 아니라, 자기 몸으로도 헌신하기 위해, 교회학교에 나가서, 교사의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더욱 피곤하여, 병들어 일찍 죽었습니까? 사업에 열심 하지 않고, 자꾸 돈을 풀어쓰기만 하므로, 사업이 망했습니까? 아닙니다. 기적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잠을 잘 수 있게 되고, 음식도 잘 먹게 되고, 이상한 기쁨이 심령 깊은 곳으로부터 차오르기 시작함으로, 최고의 의사들이 54세 이상 살지 못할 것이라고 진단했으나, 44년을 더 살아서 98세까지 장수하는 복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칙은 절대로 변함이 없습니다. 주는 자가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이 이천년 전에 우리와 함께 임마누엘 하시기 위해서, 낮고 천한 이 땅에 오신 것처럼, 오늘도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임재하셔서, 임마누엘 하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우리와 함께 하기를 원하십니다.
연약할 때나 좋지 못한 환경에서나, 태산 같은 큰 문제 앞에서나, 죽음의 골짜기에 있을지라도, 여러분과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을 믿고, 남은 한 주일 동안, 올 한 해를 잘 마무리하고, 2012년도 새해에는, “임마누엘-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과 매일 매순간 함께 함으로, 말씀에 순종함으로,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큰 은혜와 능력을 체험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기쁠 때나 즐거울 때나, 힘들 때나 어려울 때나, 병들 때나 슬플 때나,
언제나 함께 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올 한 해, 항상 함께 하여 주셨던 것처럼, 우리의 남은 생애도 항상 함께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