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본동초등학교19,20회
 
 
 
카페 게시글
휴게실(詩,음악,그림 등) 스크랩 유문두(55) 성모의원 원장 `귀향` - 2014.5.26.조선 外
하늘나라(홍순창20) 추천 0 조회 65 14.05.27 16:5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癌 투병 속 12권 대하장편소설 쓴… 유문두 성모의원 원장]

 

오늘내일 죽을지 모를 공포… 癌(암)이 내게 대하소설을 쓰게 만들었다


"신문과 문예지에 응모했지만 한 번도 당선된 적 없어
출판사에 원고 보냈으나 모두 퇴짜 맞아"

"저 할배 오좀 시원찮으낀데 한분 잡수보이소
그라몬 오강에 구녕 나끼고 곁에 자던 우리 조모 몬살게 굴어"

 

 

12권짜리 대하장편소설 '귀향'의 머리말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암(癌), 이놈이 나에게 이 글을 쓰게 만들었다. 암이 있기까지 일 년에 책 한 권 읽지 않던 내가 죽음을 앞에 두고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내가 성장한 고향에서 직접 겪었고 보았고 느꼈던 것들을 글로써 표현하는 거였다.'

요즘 세상에 원고지 분량으로 2만장이 넘는 대하소설을 쓴 유문두(劉文斗)는 듣도 못한 무명의 존재였다. 약력은 두 줄. 1959년생, 가톨릭의대를 나와 현재 경남 통영에 있는 성모의원 원장으로 있다는 것. 책 표지나 지질(紙質)에서 가장 적은 비용을 들여 출판한 행색이 드러났다.

그와 통화를 했다.

"신춘문예에 당선해야 작가가 된다는데, 나는 신문과 문예지에 응모도 했지만 한 번도 당선된 적 없다. 당초 서울의 대형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 출판 여부를 물었으나 퇴짜를 맞았다. 소형 출판사에서는 자비 출판 형식으로 너무 많은 돈을 요구했다. 그래서 통영의 친구가 하는 인쇄소에서 30질(帙)을 찍었다. 한 명도 자진해서 이 책을 사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소설에서는 일제와 6 25, 인민군 포로수용소, 새마을운동, 월남 파병, 경제개발 등을 겪으며 변모하는 통영을 무대로 해서 다양한 인간 군상(群像)의 삶과 운명이 그려진다.

그를 직접 만나봐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작품 속 이런 문장들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유문두씨는“나는 죽어가고 사라져가는 우리말들이 너무 좋다”고 말했다. 통영서호시장 입구에서.
유문두씨는“나는 죽어가고 사라져가는 우리말들이 너무 좋다”고 말했다. 통영서호시장 입구에서. /최보식 기자
〈털갈이가 심해 등을 제외한 배와 다리의 짙은 갈색털이 온 몸에 지저분하게 나풀거렸다. 우측 방둥이에 묻어있는 거무레한 배설물에 붙은 깃을 그대로 달고 고샅으로 가던 농우가 짙은 쑥색 똥을 지치자 물 위로 떨어지면서 첨벙첨벙 소리가 나면서 사방으로 튀었다. 고삐로 망둥이를 사정없이 때리자 깜짝 놀란 가축은 항문을 급히 오므리고 허공에다 뒷발질을 했다. 조금 더 걸어가 꼬리를 올리고 항문을 슬슬 열었다. 굵은 주름이 나있는 주먹만 한 쑥색 대변이 보이더니, 점점 항문 쪽으로 나오자 빨간 속살이 나타났다.〉

이날 점심 무렵 고속버스를 타고 통영으로 내려갔다. 여객선 터미널 근방에 그의 개인 의원(醫院)이 있었다. 환자들은 대부분 감기약 처방을 받으러 오거나, 무릎이나 허리가 아파 물리치료를 받기 위해 찾아오는 노인이었다.

―당신도 환자인데, 환자가 환자를 보는가?

"처음에는 찾아오는 단골 환자마다 내 손을 잡아주며 '용기를 잃지 말라'고 했다. 환자가 의사를 위로했으니 거꾸로 된 이다. 이제 7년이 됐다. 암 수술 후 5년이 지나면 일단 완치된 걸로 본다. 지금은 식이요법을 하면서 거의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환자 입장에서는 암 걸린 의사에게 진료를 받는 걸 꺼릴 텐데.

"수술을 받고 석달 만에 다시 진료를 했다. 좁은 바닥에 소문이 돌자 환자들이 절반이나 떨어졌다. 이 원장실에 혼자 멍하니 앉아 있으면 '오늘 내일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가 밀려왔다."

―당시 수술 결과가 좋지 않았나?

"목 부위의 임파절까지 침투한 악성 3기였다. 대학교 동기가 수술을 집도했다. '수술이 잘됐다'고 했지만 반신반의했다."

―의사가 잘됐다고 말했는데.

"(웃음) 의사 말을 어떻게 다 믿나. 나는 젊어서부터 늘 죽음의 공포와 싸워왔다."

―젊어서부터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20대에 집안 내력인 급성간염을 앓았다. 군의관으로 근무할 때는 간경변 진단을 받았다. 아마 군의관이 의병제대한 첫 케이스였을 것이다. 요양을 겸해 통영으로 내려와 개원했는데, 40대 후반에 다시 편도암에 걸렸다. 죽음의 공포를 달고 살았던 셈이다."

책.
그렇다면 죽음의 실체가 무엇인지, 우리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에 대해 분석적으로 생각해보지는 않았나?

"글쎄 그건…, 그냥 막연하게 두려웠다. 두려움에 지배됐을 뿐이다."

―종교나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도움이 되진 않았나?

"절에도 가고 교회에도 갔다. 하지만 내게는 평화를 가져다주지 못했다. 어느 날 나는 '앞으로 길게 살아도 5년이다. 어떻게 보낼까'를 생각했다. 지금까지 아들과 대화를 못 해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살아온 날들을 알려주고 싶었다. '내 고향은 한산도인데 그때는 전깃불도 수돗물도 없었다. 어려웠던 시절에 나는 이렇게 커왔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전까지 전혀 글을 써본 적이 없었다고 했나?

"의대를 다니면서 글 쓸 기회가 거의 없었고 쓰지도 않았다. 일기를 쓴 적도 없었다. 처음 글을 쓸 때는 맞춤법과 문법이 제대로 맞는 게 없었다. 가령 '무렵' '무릎' '무릅쓰다'의 '무릅'을 완벽하게 구분하지 못했다. 컴퓨터에서 틀렸다는 빨간 선이 그어지면 사전을 뒤져 고치기를 반복했다."

그는 무작정 썼다. 순서도 없이 생각나는 대로 그가 살아왔던 얘기를 적어 내려갔다. 그 순간만은 죽음의 공포도 잊을 수 있었고 마음이 정말 편했다고 한다.

"당초 소설을 쓰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내 얘기를 다 쓰고 보니, 이왕이면 내가 들었던 주위 사람들의 얘기도 써보자, 이를 꾸며서 만들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역사적 사건에는 자료를 찾은 뒤 그 속에 허구의 인물을 집어넣었다. 그게 소설이 된 것이다."

―제대로 된 소설을 쓰는 것이 말처럼 그렇게 쉬우면야…?

"처음에는 소설의 구성이 어떻게 되는지, 시점(視點)이라든지 문체에 대해 전혀 몰랐다. 소설 작법에 관한 책을 사서 읽었다. 소설을 쓰는 동안 틈틈이 다른 소설들을 읽었다. 그때야 내가 소설이랍시고 쓴 것이 터무니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고치고 고치고, 또 고쳤다."

―스트레스를 받아서는 안 될 당신에게는 소설 작업은 현명한 선택이 아닌 것 같은데.

"작가들 중에는 글 쓰는 고통이 어떻다고들 하지만 나는 글 쓰는 게 재미있다. 다른 사람은 글을 짜낸다고 하지만, 나는 스토리와 구성이 막 떠오른다. 떠오르는 대로 일단 적어놨다가 나중에 고치고 재구성한다."

―장편소설을 쓰는 데는 엄청난 체력이 요구된다. 전문적인 작가도 일 년에 단행본 한 권 분량을 쓰기도 쉽지 않다.

"나는 3년 만에 이번 작품을 썼다. 그런 뒤 계속 고쳐나갔다. 두 번의 교정과 수십 차례 첨삭을 거쳤다. 하도 많이 읽고 고쳐서 무슨 내용이 어디에 있는지 다 안다."

유문두 성모의원 원장(오른쪽).
대하소설의 존재에 대해 어떻게 알게 됐나?

"수술 뒤 5주간 입원해 방사선치료를 받았다. 병실에서 '토지(土地)'를 읽기 시작했다. 그때 처음 대하소설을 접한 것이다. 그 뒤로는 글을 쓰면서 '지리산' '태백산맥' '혼불'을 읽었다. 몇 년 전 어느 기자가 '우리나라에서는 앞으로 대하소설이 안 나올 것'이라고 했다. 요즘 세상에 누가 대하소설을 읽고 있겠나."

원장실 책상에는 환자 진료를 위해 컴퓨터가 켜져 있었지만, 그 옆에는 민중서림에서 나온 '이희승 국어대사전'이 펼쳐져 있었다. 묘한 풍경이었다.

"작년 한 해 동안 이 사전을 처음부터 다 봤다. 좋은 낱말이 나오면 메모해뒀다가 원고를 수정할 때 바꾸곤 했다."

―젊은 날 이외수도 사전을 달달 외었다고 하더라.

"사전을 보면서 어휘 공부를 많이 했다. 가령 산(山)과 관련된 단어로는 '산돌림' '산머리' '재넘이' '모롱이' '바람꽃' '높드리' 등이다. 바람의 경우에는 '건들바람' '고추바람' '골바람' '하늬바람' '명지바람' '된바람' '날파람' '마파람' '높새바람' '높하늬' '시마' '색바람' '서릿바람' '황소바람' '도지' '성풍' 등이 있다. 이런 단어를 딱 거기에 맞는 문장 속에 집어넣으려고 했다."

그의 작품은 마치 1970~1980년대 대하소설이 부활한 것 같았다. 질펀한 입담에 토속적인 맛이 있다. 한 대목만 소개하겠다.

〈걸때가 좋은 약장수가 와있는 동주 할매집 마당으로 가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앉았다. 구경꾼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자 신이 난 약장수가 계속해서 약 자랑을 해댔다.

"진나라 진시앙이 저~매물도에서 불사약을 구할락고 했던 것보다 더 좋은 약이 바로 이것입니다. 자~아, 저렇게 피부가 거친 낯도 이 약만 묵으몬 양기비 얼굴은 저리 가라 할 끼고, 저 총각 낯판대기에 난 여드름이 우룽시이 겉에도 이 약만 무웃다 하몬 삶은 닥알겉이 보들보들하고 번쩍번쩍해지는 명약이라. 그라고 젊은 색시가 묵은몬 아아를 석루남개 달린 석루 알겉이 올망졸망 가직 끼고, 아아를 놓을 때는 헌 치매에 애(참외) 빠지듯이 잘도 놓을 끼고, 패뿌랑대이 우리 장모 멀카닥도 숱검댕이 데기는 금방이라.

자~아, 저 할배 오좀이 시원찮으낀데 한분 잡수보이소. 그라몬 오강에 구녕이 나 끼고 곁에 자던 우리 조모 몬살게 굴어 '아이구 무시라' 하지만 기분이 좋아 메누리도 달달 볶지도 않을끼고…"〉

―요즘 세상에 이런 고유어와 방언들의 의미가 제대로 전달이 될지 모르겠다.

"진료를 받으러 온 노인들이 쓰는 말을 받아적기도 했다. 낱말에도 생명이 있어 죽고 새로운 것이 태어난다. 하지만 나는 죽어가고 사라져가는 우리말들이 정말 좋다. 가령 '꽃물'이란 단어의 뜻을 아나?"

―'꽃물'이라?

"이는 '아주 중요한 때'를 말한다. 얼마나 아름답나. 좋은 낱말이 나오는 대로 적어뒀다가 교정 과정에서 단어를 바꿔갔다. 하나의 사물을 묘사할 때 딱 맞는 단어는 하나뿐이라고 했다."

―당신의 애초 집필 의도대로 아들은 이 작품을 읽었나?

"두 아들은 초등학교 때 미국으로 유학했다. 둘 다 우리말이 서툴다. 아마 한국어에 익숙해지면 읽을 거라고 본다."

―이제 글에 대한 숙원이 풀렸나?

"다른 장편소설들을 쓰고 있는 중이다. 이제 내 삶에서 의미 있는 일은 글을 쓰는 것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 통영 바다가 어둑해졌다. 그의 작품을 세상에 묻고 싶었다.


 

 

암 환우 웃음 넘쳐난 '웃음보따里' 가을 소풍날 - 2012.10.26.조선 外  http://blog.daum.net/chang4624/5482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