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랑스의 자연 환경은 바로 요리에 있습니다. 프랑스 요리 값이 굉장히 비싸죠, 이유는 거의 모든 요리에 포도주를 넣기 때문입니다. 프랑스는 북유럽과 남유럽이 합쳐져 있으므로 북유럽에서 나지 않는 채소,또한 남유럽에서 나지 않는 채소도 구할수 있으며, 북해에서 잡히는 한류의 해산물,지중해에서 잡히는 난류의 해산물 도 구할수 있고,프랑스의 평야는 아주 기름지고 풀밭에 많은 가축들도 이들의 식 생활을 돕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오래전 부터 여러 민족이 살아와 음식맛을 서로 익혔고, 귀족과 왕족의 까다롭고 호화스러운 입맛이 프랑스 요리를 고급으로 추켜 세웠죠,쩝... 붉은 포도주는 부르고뉴와 보르도산,휜포도주는 알자스 지방것이 고급이죠.그밖에 특산물로는 코냑과 상파뉴가 있는데, 코냑은 말 그대로 '코냑' 이라는 도시에서 생산되는데,그랑 상파니아 라는 분지로써 전국에서 가장 더운 지방이죠. 여름에 45도까지 올라간다니... 아이고~말만 들어도 덥다! 어쨌든 이 포도로 술을 담가서 그 술을 다시 끓여 그 김이 생긴 이슬을 나무통에 담가 3년동안 숙성하면 코냑이 되는데 18년간 숙성한 '나폴레옹 코냑'이 가장 고급이죠. 상파뉴는 동쪽 상파뉴 지방에서 나오는 특산물로써,부드럽고 향기로운 뒷맛으로 세계의 고급 음료로 사랑받고 있죠. 이번엔 식사 차례를 알려드리죠. 기본 식사 순서로는 간단히 입맛을 돋구는 음식->본 요리->프로마주(치즈)->후식 이죠. 그렇다면 정식 식사를 살펴보죠.처음 한 두잔의 술인 아페리티프->앙트레(전채) ->생선->육류->채소->치즈->후식->과일->커피->코냑이죠. 어쨌든 그들의 식생활은 매우 화려하고 웅장하죠. 그렇다면 한번 그들의 생활모습을 보죠. 프랑스 대혁명 아시죠? 자신을 억누르는 귀족들에 대해 목숨을 걸고 시민들이 싸운 봉기... 이 프랑스 대혁명으로 인해 프랑스는 세계에서 으뜸가는 복지 제도를 가지고 있죠. 한번 살펴 볼까요? 사람에겐 일도 중요하지만 그의 못지않게 쉬는 일도 중요 하죠.프랑스는 아주 좋은 휴가제도를 가지고 있는데, 어김없이 근무일중 35일을 쉴수 있고, 임금은 100%로 받을수 있죠. 그것도 자신이 골라서 말입니다. 그러나 이 35일중에 휴일이 있기때문에 사실은 60~70일이나 쉴수 있다는 말입니다! 또 실업자 보조금 이라는게 있는데, 자신이 일할 능력은 있는데, 막상 취직하려고 보니 일자리가 없을 경우 정부에 신청을 해서 일자리를 찾는동안 그때의 첫 봉급 정도의 돈을 주죠, 신청자는 세번 일자리를 거절할수 있으나, 세번 이상 거절하면 실업자 보조금은 받을수 없죠. 최저 임금제는 막일이나 시시한 일을 하는 사람 이라도 인간 생활을 누릴 권리가 있다고 인정해 근로자는 최저 5000프랑을 받죠. 또 연금 제도가 있는데, 근로자는 직장에서 일하다가 나이가 들면 직장을 떠나 은퇴 하여, 나라에서 주는 연금으로 노생활을 편히 즐기죠. 이 연금은 직장을 다닐때의 80%를 받습니다. 하지만 공짜가 어디있나요? 근로자는 일하는 동안 연금보험에서 봉금을 떼이죠. 이 연금은 물가가 오르면 자동으로 오르고, 빚을 많이 졌더라도 연금에는 빚쟁이들이 손을 댈수 없죠. 최저 연금제도는 한달동안의 노후 연금을 최저 3000프랑으로 맞추어, 프랑스 국민이라면 가난으로 고생하는 일이 거의 없죠. 교육 부분을 살펴보죠. 아이가 석달이 되면 맞벌이 부부의 경우, 나라가 운영하는 탁아소에 맡기고 퇴근할때 찾아오는 것이죠. 아이가 두살 반이면 진짜 학교에 다니는 데, 에콜 마테르넬. 어머니 학교로, 우리나라의 유치원과 맞먹죠. 유치원은 의무 교육은 아니지만, 법이 무조건 받아들이라 하기 때문에 아이들 수가 늘어나면 유치원 도 짓게 되고, 공짜이죠. 그래서 프랑스 어린이의 99%가 유치원에 다니죠. 실로 놀라운 일입니다. 만 다섯살이 되면 에콜 프리메르. 초급 학교에 들어가는데, 5학년 까지 있죠.쩝... 아침8시 30분에 시작해 11시 30분까지, 오후 1시 30분부터 4시 30분 까지 수업을 받는데, 점심시간이 두시간이라 집에가서 밥을 먹거나 구내 식당에서 밥을 먹죠. 우리 나라는 1,2학기로 나누는 반면, 프랑스는 3학기로 나누죠. 한 학년은 10월 중순에 시작되어 다음해 7월 중순에 끝나는데, 그 사이를 셋으로 나누고 7월~10월간 긴 방학이 있죠. 중학교는 '콜레주'로써, 여기까지는 의무 교육이랍니다. 중학교 3학년이면 대학을 진학하는 사람과 직업을 가지겠다는 사람 으로 나뉘는데, 실업계(직업을 가지겠다는 부류)는 1~2년간 직업 교육을 받죠. 고등학교는 '리세'라고하여, 3학년때 국가 고시를 보는데, 상당히 어려워서 합격자는 고장 신문에 나올 정도죠. 합격을 하면 자신이 가고싶은 학과로 갈수 있는데, 프랑스 의 대학들은 서로 차이가 없고 명문 대학도 없습니다. 프랑스의 교육은 땡전 한푼 안들이고도 대학 졸업을 할수 있지만, 입학하자마자 공부를 게을리 하면 큰코 다치 죠. 이유는 학년말 고사를 치러서 떨어진 학생은 자기가 불합격한 학과를 다닐수 없 게 되죠.더군다나 시험마다 경쟁률이 20%라서 1,2학년 고사에 모두 합격한 사람은 약 4%이지요. 시험은 단 한번 불합격 되는것이 허락되기 때문에 정말 열심히 공부할 수 밖에요. 이제 정리를 해야 겠군요. 프랑스 사람들은 푸짐하고 고급스러운 식생활 과 자유,평등,박애 정신에 걸맞는 복지 제도를 받고 있죠
2.
프랑스 요리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배경과 함께 미식가와 요리의 발전에 대하여 알아보아야 한다.
현재의 프랑스는 옛날 골 족이 살던 곳이다. 골 족의 입맛은 거칠었으며, 또 그 후에 골에 이동해온 프랑스 족은 그대로 골 인의 음식법을 이어받았다. 그러나 고대 로마 요리의 영향은 피할 수 없는 것이어서, 그 땅의 산물로 고대 로마 문화의 기술을 빌어 만들어낸 것이 프랑스 요리의 출발점이었다. 전쟁과 역경과 기근이 계속된 중세에는 프랑스 요리의 원형이라고 할 만한 것은 수도원이나 승원의 피난처를 찾았다가 그 암흑시대가 사라지자 요리는 승려의 손을 떠나 그 지방 특유의 요리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탈리아 카트린 메디치가 앙리 2세에게 출가할 당시 미개의 나라 프랑스로 솜씨가 뛰어난 조리사를 데리고 간 후부터 이탈리아 요리가 전해져, 프랑스 요리사의 르네상스가 되었다. 그 이탈리아의 조리사에게서 프랑스 궁중의 요리사가 배웠고, 다시 파리에 요리 학교가 생겨 많은 요리사가 양성되었다.
미각이 발달된 인종이었다는 것과 항상 더운 지역과 비교적 광대하고 비옥한 토지에서 생산되는 풍부한 재료와 해산물, 그리고 요리에서 없어서는 안 될 좋은 술이 많은 것과 경제적인 여유 등의 요인들이 겹쳐서 프랑스 요리가 세계 2대 요리로 발달하는 계기가 되었다.
처음에는 이 요리도 궁중 귀족의 것으로서, 일반 서민은 감히 넘겨다볼 수도 없었던 것이었지만, 프랑스 혁명 후 궁중과 귀족들을 위하여 요리하던 전문 조리사들이 시중에 나와 먹고 살기 위해 처음에는 우리나라 포장마차와 비슷한 집을,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돈을 번 후에 레스토랑을 차린 것이 발달의 계기가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17세기 프랑스의 식습관에는 형식, 내용 면에서 모두 큰 변화가 일어났는데, 그 이유는 전 반세기에 앙리 4세의 조리장 라바렌이 출현하고, 후 반세기에 루이 14세가 탄생한 데 있다. 루이 14세는 섬세하고 맛있는 것보다 식욕을 만족시키는 요리를 좋아하여 섭정 시대에 이르러서 프랑스 요리는 완성기에 도달하고, 루이 15세의 친정 시대에도 미식을 좋아하여 왕이나 귀족들이 스스로 요리를 만들기도 하게 되자 요리에 귀족들의 이름이 붙여지기도 했다.
그 다음 시대에 프랑스 요리의 진정한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A. Carem이 나타나 에스코피에가 현대 프랑스 요리의 규범으로 알려진 <요리 안내Le Guide Culinaire>를 출판하여 요리를 근대화시켰다. Carem 이후 프랑스 요리는 간소화되었고, P. 옥타비에 의하여 현대화되었으며, F. 푸앙에 의하여 완성되었다.
1370년 샤를 5세의 요리사인 기욤 티렐에 의해 씌어진 <Le Viander>는 사실 중세 요리의 충체이며, 단지 이 책은 고기 요리에 대한 내용 뿐만 아니라 이름이 뜻하는 대로 전통적인 요리, 식생활 습관에 대한 모든 것이 서술되어 있는 요즘의 요리 백과사전이다. 16세기 초까지 프랑스 요리는 영국의 요리와 마찬가지로 상상력이 없었다. 17세기에는 프랑수아 1세 치하에서 요리 기술이 더욱 발전하여갔으며, 르네상스의 세련미가 요리에까지 파급되어 예술의 경지에 이르기 시작했다.
프랑스 요리의 근대적 발달의 근본은 1553년 오를레앙 공작이 미디치가의 카트린과 결혼하면서부터다. 그때 그녀는 피렌체 출신의 요리사들과 함께 프랑스로 왔는데 메디치가는 향신료의 풍미로 유명했다. 프랑스 요리는 이탈리아로부터 수입된 것이다. 그 당시 대부분의 요리사들은 프랑스 욕리의 커다란 변혁에 접했으나 다른 일부 요리사들은 여전히 과거 전통의 계승만을 중시했다.
루이 13세 시대에는 요리에서 그다지 발전한 것은 없으나 요리의 법칙과 조리법을 체계적으로 기술해놓은 책이 1651년에 바렌에 의해 간행되었는데 이것이 <Cuisinier Francais>다. 이 책을 기본으로 하여 많은 비약적 발전을 하게 되었다. 1654년에 니콜라드 본 퐁스는 <Le Delica de la Champagne>를 썼다. 그는 음식의 맛은 복잡한 조리로 인해 가려져서는 안 되는 아주 단순한 자연적 조리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이 여전히 생각으로만 그쳤으나, 17세기 말에 차, 커피, 코코아, 아이스크림 등의 출현과 더불어 커다란 변혁이 이루어졌다.
특히 포도주의 영역에서 커다란 변혁이 이루어졌는데, 동 페리뇽이 샴페인을 발명한 것이 그것이다. 17세기 생각들이 실제로 실천된 것은 18세기였다.
조리는 단순성을 지향했는데, 말하자면 요즘 우리가 말하는 누벨 퀴진이라고 부르는 것이 그것이다. 이 시기에 최초로 음식을 만드는 여자 요리사와, 무엇인가를 발명할 수 있는 남자 전문 요리사를 구별할 수 있게 되었는데 요리 역사에서 볼 때 큰 변혁임에 틀림없다.
1691년에는 마시알로가 펴낸 <Cuisinier Royal et Bourgeois>가 있었다. 17세기 중기 요리의 유행은 단순해졌고 과도하게 낭비되었던 데코레이션보다도 맛에 치중하게 되었다. 혁명 동안의 반체제 기간이 지나 나폴레옹 시대와 더불어 풍요가 돌아왔다. 탈레랑에 보존되어 있는 테이블에는 그 사치스러움과 배열들의 예술성과 모여 앉았던 사람들로 유명하다.
1755년에 태어난 브릴라사바랭은 조리 변혁에 대해 느끼고 그 변혁을 인정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는 판사이고 유명한 미식가였는데, <미각의 철학>이란 저서를 냈다. 마리 앙투안 카렘은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나 무지했던 사람이었으나, 그는 여러 맛들의 조화로운 배합을 할 줄 알았으며 불필요한 내용물에 대한 조리를 없애는 데 노력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는 가난한 석공의 16번째 아들로 태어나 10살 때 부친으로부터 파리 근교의 작은 요리점에서 마지막 저녁 식사를 얻어먹은 뒤 길거리에 버려졌다. 그 후 그는 작은 요리점을 전전하다가 멘이라는 성문 근처의 한 조리사로부터 조리의 기초를 배워 16세에 파리의 유명한 제과업자들 중 하나인 비엔 가에 있는 바일리 가게로부터 공부를 계속할 수 있게 도움을 받았으며, 특히 왕립 도서관 판화실에 들어가 건축 모형 사본을 뜰 수 있게 허락을 받았고, 그가 만들어낸 모형들 중 어떤 것들은 바일리 가게의 중요한 고객인 나폴레옹 1세로부터 찬탄과 경이에 찬 평을 받았는데, 그것은 피에스 몽테라 불리는 웨딩 케이크 위의 장식용 과자로 당시 연회의 인기 품목으로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또한 그는 유명한 의사인 장 알리스를 만나고 그로부터 조언과 격려를 받아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그의 재능과 근면함으로 그는 단시간에 두각을 나타냈고 그의 유능함을 듣고 있던 바일리 가게의 단골 손님이었던 당시 프랑스 외무대신인 탈레랑으로부터 시중을 들어줄 것을 제안받아, 탈레랑의 조리장을 20년간 지도했는데, 탈레랑은 그가 제공하는 요리의 형태와 호사스러움을 느끼는 감각과 재능으로 외교관들을 위한 식도락을 훌륭하게 만들어냈다. 후에 그는 조지 4세가 된 영국 섭정 왕자와 비엔 궁전, 영국 대사, 베그라시옹 공주, 스튜어트 경을 위해서도 훌륭한 요리를 만들어주었다. 그는 조리사, 제과사일 뿐만 아니라 이론가이기도 했으며 역사에 대한 일가견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말년을 로트시 남작가에서 보냈으며 로랑 타일라트로부터 숯과 고기 굽는 기구로 천재성의 불꽃을 발휘하는 조리장이라는 평판을 들었다.
후에 알렉산드 1세는 탈레랑에게 카렘은 우리가 알지 못하고 먹던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만들었다고 술회했으며 그를 일컬어 왕들의 요리사요 요리사 중의 왕이라고 했다.
그는 <L'art de la cuisine francaise au XIXe siecle>(1681), <Le Patissier royal parisien>(1815), <Le patissier pittoresque>(1815), <Le cuisinier parisien>(1828) 등 요리책, 페스트리책, 요리 이론책을 통해서 요리업계에 커다란 공헌을 했다.
그리고 그는 프랑스 요리의 깊이와 그 예술성에 이르기까지 요리를 통해 그 시대의 분위기에 적합한 화려한 구성, 중심부 장식, 그리고 시간적 연출에 대해 기술했다. 오늘날 그는 고전 프랑스 요리의 창시자로도 추대받고 있다.
그밖에 제일의 미식가 퀴롱스키 외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17세기 말경에는 고전 요리가 유명한데, 고전 프랑스 요리에는 신선하고 우수한 음식 재료, 재능 있는 요리사, 간단하고 예술적이며 완전한 표현 양식, 미묘하고도 균형 있는 맛, 감상할 줄 아는 고객 등 완벽하게 짜인 메뉴들로 이루어졌다. 그 후 여러 사람들의 노력이 19세기까지 이어지고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오귀스트 에스코피에의 출현으로 지금까지의 프랑스 요리가 체계적으로 정리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접하고 있는 주방 시스템 창시자도 그였고, 프랑스 식당의 운영이 부분화되어 있었던 것을 통합 조정 운영을 시도하여 성공한 것도 그의 아이디어다. 뒤부아의 러시아 음식 서비스 방법을 도입하여 현재의 음식 서브 순서를 창안한 사람도 그였다. 고객으로부터 주문을 받은 전표를 3장으로 만들어 한 장은 주방, 한 장은 접객원, 또 한 장은 캐셔에게 돌아가도록 하고, 특별히 전표에 고객의 성명을 적어 그 고객이 재차 방문했을 때 그가 선호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미리 알아타리는 고품위 음식 서비스의 틀음 마련한 것도 그였다.
그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1920년 레지옹 돈뇌르 훈장을 수여받았고, 후에 귀족 단체의 정회원이 되어 모든 조리사의 사회적인 지위와 명예를 높이는 데도 큰 공헌을 했다. 1966년에는 마침내 그가 태어난 집이 조리 예술 박물관으로 개조되기까지 했다. 오늘널 저명한 요리 전문가 및 요리 연구가, 요리책을 쓰는 사람, 그리고 요리를 직접 만드는 조리사까지 그가 만들어낸 조리법을 이용하지 않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에스코피에가 죽은 후에는 요리장의 개인 명함에 표기하는 것 중 가장 권위가 있는 상을 수상하고 표창받거나 훈장을 받았다는 것보다 에스코피에 밑에서 수업을 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고 한다.
오늘날 요리는 점점 더 간편성, 즉 자연적이며 가벼운 음식(비만 방지)을 향해 치닫고 있으며 이 가볍고 자연적이란 말은 알랭 샤펠과 같은 유명한 요리사와 함께 누벨 퀴진이라는 말을 낳았다. 그러나 진정한 요리사는 어떤 경우에도 그들의 경험과 비법, 전통과 함께 지나간 옛 시대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오늘날 요리는 인문, 사회, 과학, 기술, 예술의 진보가 가져다준 혜택의 선물이다. 모든 요리는 요리사가 정성을 갖고, 먹는 사람을 위해 진정한 마음으로 만들어야 한다. 요즘은 알약 하나로도 모든 영양이 섭취될 수 있지만, 맛의 세계에 질서와 미를 추구하면서 미각에 역점을 두어 맛을 창조하는 진정한 지휘자는 요리사들이다. 금방 잡은 생선을 주방에서 더운 요리로 만들어 제공하고 저녁에 예술적인 감각에 가득찬 요리를 전통적인 요리법으로 생산하는 것을 공장에서 기계적으로 대량 생상하는 것으로 대신할 수는 없다. 과학이 발전하고 스피드 시대가 와도 예술의 요리를 감식할 미식가는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3.
프랑스 역사
1946년 프랑스 제4공화정
1949년 나토(NATO) 창설시 가입국
1954년 알제리 전쟁 시작
1958년 드골이 정권을 잡고 프랑스 제5공화정 성립. 유럽경제공동체(EEC) 창설국
1960년 사하라 사막에서 핵 실험 성공
1962년 에비앙 협정으로 알제리 전쟁 종결. 알제리 독립
1964년 중화인민공화국을 승인
1966년 나토 탈퇴
1967년 유럽 공동체(EC) 탄생
1968년 5월 혁명이 발생했으나 실패. 그르노블 동계올림픽 개최
1969년 드골 하야. 조르주 퐁피두가 대통령에 선출
1974년 조르주 퐁피두 대통령 사망(백혈병). 지스카르 데스탱 대통령 선출
1981년 미테랑 대통령 선출. TGV 파리-리옹 노선 개통
1986년 자크 시라크 총리 선출. 프랑스 1차 코아비타시옹(동거정부) 성립
1990년 걸프전 참전
1992년 나토 재가입. 마스트리히트 조약 체결.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개최
1993년 유럽연합(EU) 성립. 2차 코아비타시옹
1995년 자크 시라크 대통령 선출. 남태평양에서 핵실험 강행
1997년 조스펭 총리 선출. 3차 코아비타시옹
1998년 프랑스 월드컵 개최. 프랑스 우승
2003년 미국과 영국의 이라크 공격에 반대 입장 표명
2005년 국민투표에서 유럽헌법 승인안 부결. 이민자들이 중심이 된 프랑스 소요 사태 발생
2007년 사르코지 대통령 선출
미국역사
AD 1492 C. 콜럼버스, 미대륙 발견
1497 이탈리아인 G. 카보토, 북아메리카 북동해안에 도달
1565 에스파냐인, 플로리다에 식민지 건설
1585 W. 롤리, 로어노크섬에서 식민활동, 실패
1607 영국 최초의 영속식민지, 버지니아에 건설
1619 버지니아에서 최초의 식민지의회 개설, 흑인노예 수입됨
1620 필그림 파더스, 메이플라워호(號)로 식민
1636 하버드대학 설립
1664 뉴암스테르담, 영국령 되어 뉴욕으로 개칭
1690 보스턴에서 식민지 최초의 신문 발간
1732 영국령식민지 13개가 됨
1754 식민지대표, 올버니회의 개최
1763 프렌치 인디언전쟁에서 영국이 승리, 캐나다와 미시시피강의 동쪽 지역 획득
1764 사탕조례 제정
1765 영국의회, 인지법 제정. 식민지 불만 증대
1767 타운센드조례 제정
1770 보스턴학살사건 일어남
1773 보스턴차사건 일어남
1774 제 1 차대륙회의 개최
1775 렉싱턴·콩코드싸움. 독립전쟁 발발
1776 <독립선언>을 공포. 연방법 제정
1778 미국과 프랑스, 통상·동맹조약 체결
1781 연합규약 발효. 요크타운전투
1783 파리평화조약 조인, 독립 승인
1787 연방헌법제정회의 개최. 북서부점령지조례 제정
1789 미합중국 정식으로 발족. G. 워싱턴, 초대대통령 취임
1791 합중국은행 설립. 권리장전 발효
1794 제이조약 체결
1796 G. 워싱턴, 해외분쟁 불개입과 중립을 주장
1800 워싱턴시 수도로 됨
1803 루이지애나지방을 프랑스로부터 구입
1807 R. 풀턴의 증기선 발명, 허드슨강을 항행
1808 노예수입 금지
1812 1812년전쟁 시작됨(~14)
1816 최초의 보호관세법 성립
1819 플로리다지방을 에스파냐로부터 구입
1820 미주리협정 성립
1823 먼로주의를 선언
1830 최초의 철도 개통. 인디언강제이주법 제정
1831 냇 터너의 반란
1832 A. 잭슨, 합중국은행의 기한연장을 거부
1836 텍사스, 멕시코에서 독립을 선언
1837 최초의 주기적 공황 일어남
1843 오리건으로 대량이주 개시
1845 텍사스 병합
1846 멕시코전쟁 시작됨(~48). 오리건협정
1847 모르몬교도, 솔트레이크시티를 건설
1848 캘리포니아에서 금광 발견. 멕시코에서 캘리포니아에 이르는 지역 획득
1849 캘리포니아에서 골드러시
1850 도망노예단속법 제정
1854 캔자스-네브래스카법 성립. 공화당 결성
1857 드레드스콧사건의 판결 내림
1859 J. 브라운의 봉기
1860 A. 링컨, 대통령 당선. 사우스캐롤라이나, 연방을 탈퇴
1861 탈퇴한 여러 주, 남부연합을 결성. 남북전쟁 시작됨(~65)
1862 자영농지법 제정
1863 노예해방 선언. 게티즈버그의 전투
1865 해방흑인국 설치. 헌법 수정 13조, 노예제 폐지
1866 대서양횡단 해저전신 완성. KKK결성
1867 남부재건법 제정.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매입. 그레인저운동 일어남
1869 최초로 대륙횡단철도 완성. 노동기사단 결성. 전국여성참정권협회 설립
1871 한국에 통상 요구
1873 경제공황 발발
1877 <재건시대> 종료. 철도 대파업. 사회주의노동당 결성
1879 T. 에디슨, 백열등 발명
1881 타스키기학교 설립
1882 스탠더스석유트러스트 설립. 중국인 노동자입국금지법 제정. 한·미수호조약 체결
1886 헤이마케트 사건. 아파치전쟁 종료. 미국노동총동맹 결성
1887 진주만 조차(租惜). 주간(州間)통상법 제정. 한국의 박정양 주미(駐美) 공사 부임
1889 제 1 회 범(汎)미국회의 개최
1890 셔먼 반(反)트러스트법 성립
1892 인민당 결성
1893 경제공황 발발. F.J. 터너, <프런티어의 소멸>을 지적
1894 풀먼파업 일어남
1896 최고재판소, 인종차별에 합법 판결
1898 미국-에스파냐전쟁 발발. 하와이 병합. 에스파냐로부터 필리핀·푸에르토리코 등 획득
1899 중국에 관한 문호개방 선언. 사모아를 분할 영유
1900 금본위제를 채용
1901 U.S. 스틸회사 설립. 사회당 결성. 플래트수정조항 가결. 헤이-폰스포트조약 체결
1903 파나마운하지대를 영구 조차
1904 T. 루스벨트, 라틴아메리카의 간섭권 주장
1905 가쓰라-태프트밀약, 일본의 침략정책 묵인
1909 전국흑인향상협회 결성
1911 최고재판소, 스탠더드석유회사 해체 판결
1912 T.W. 윌슨, <뉴프리덤>을 제창
1913 연방준비제도 설립
1914 제 1 차세계대전에 중립 선언. 파나마운하 개통. 클레이튼 반트러스트법 제정
1916 연방농장금융법 제정. 멕시코혁명에 무력 개입
1917 제 1 차세계대전에 참전. 방첩법 제정
1918 T.W. 윌슨, <14개조항> 발표. 시베리아 출병
1919 공산당 결성. 철강파업
1920 베르사유조약 비준 부결. 여성참정권 인정
1921 워싱턴회의 개최(~22), N. 사코와 B. 밴제티에 유죄 판결
1924 도즈안(案)성립, 일본인 이민배척법 제정
1927 C. 린드버그, 대서양횡단 비행 성공
1928 F.B. 켈로그, 부전조약 제창
1929 뉴욕주식시장의 주가폭락. 대공황 발발
1930 런던해군군축회의
1931 H.C. 후버, 모라토리엄 제안. 워싱턴에서 실업자의 기아(飢餓)행진
1932 스팀슨독트린 선언. 부흥금융공사 설립
1933 F.D. 루스벨트, 뉴딜정책에 착수. 금본위제 정지. 소련 승인. <선린외교> 성명 발표
1934 호혜통상법 제정
1935 와그너법·사회보장법 제정. 중립법 제정
1937 F.D. 루스벨트, <격리연설>을 행함
1938 해군확장법 성립. 비미활동위원회 설치. 산업별조합회의 정식으로 발족
1939 제 2 차세계대전에 중립 선언
1941 F.D. 루스벨트, <4가지 자유> 연설. 무기대여법 제정. 대서양헌장 선언. 제 2 차세계대전 참전
1942 연합국선언. 전시생산국 설립
1943 디트로이트인종폭동. 태헤란회의 개최
1944 브레턴우즈회담 개최
1945 얄타회담. 포츠담선언. 원자폭탄 투하. 제 2 차세계대전 승리. 국제연합(UN) 창설. 모스크바삼상회의, 한국신탁통치 결정
1946 고용법 제정. 원자력위원회 설립
1947 트루먼독트린 선언. 국가안전보장법 제정. 연방관리에 대한 충성심사 개시
1948 마셜플랜에 착수. 미주기구 설립
1949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설립. 대한민국 정식 승인
1950 매카시선풍(旋風). 6·25파병
1951 대일평화조약 조인
1952 매캐런법 제정. 수소폭탄실험 성공
1954 최고재판소, 공립학교의 인종차별에 위헌판결. 동남아시아조약기구 설립
1955 미국노동총동맹과 산업별조합회의의 연합
1957 중동에 관한 아이젠하워독트린 발표
1958 인공위성발사 성공. 미국항공우주국 설립
1959 미·소 양국 수뇌, 캠프데이비드에서 회담. 알래스카·하와이, 주로 승격. 50개 주 됨
1961 진보를 위한 동맹정책. 쿠바침공 실패
1962 유인우주선 발사 성공. 쿠바위기
1963 인종차별 반대 워싱턴대행진. 부분적 핵실험금지조약 조인. J.F. 케네디대통령 피살
1964 공민권법 성립. 인종차별철폐법 가결. 통킹만사건
1965 L.B. 존슨, <위대한 사회> 정책 표명. 베트남에 본격적 군사개입
1967 워싱턴에서 베트남반전집회. 뉴욕, 블랙파워 전국대회. 아메리칸 뉴 시네마, 미국영화의 새로운 경향(반전·반체제적)
1968 M.L. 킹목사 피살. 베트남평화회의 시작
1969 우주선 아폴로 11호 달착륙
1970 닉슨독트린 발표
1972 모스크바회담, 닉슨-브레즈네프 SALTI·AMM조약 조인. 상하이 코뮈니케, 닉슨-마오쩌둥 공동성명 발표. 워터게이트사건.
1973 베트남평화협정 체결. 소련과 핵전쟁방지협정 체결
1974 R.M. 닉슨, 대통령 사임. G.R. 포드대통령 취임. 정보공개법 의회 통과
1977 J.E. 카터, <인권외교> 전개
1978 신파나마운하조약 조인
1979 미·중 국교수립. SALT Ⅱ 조인
1980 중동에 관한 카터독트린 발표. 제22회 모스크바올림픽 보이콧
1981 R. 레이건, 대통령 취임
1982 유타대학 메디컬센터, 세계 최초로 영구인공심장 이식 성공
1983 R. 레이건, <전략방위구상(SDI)> 발표. 그라나다 침공, 점령
1985 통합우주군(統合宇宙軍) 창설. 공군우주군과 해군우주군 통합
1986 레이캬비크에서 미·소회담. 이란 콘트라사건, 노스 중령 의회청문회에서 레이건 관련부인 증언
1987 중거리핵전력(INF) 전폐조약 조인. <1987년 포괄무역법안> 의회 통과
1988 모스크바에서 미·소회담. <미국의 종합무역법> 의회 통과, 슈퍼 301조 발효. 아시아 NIES에 대한 특혜관세 폐지
1989 G. 부시, 대통령 취임. 몰타회담, 냉전 종식
1990 미국·서독 정상회담, 통일 독일의 NATO 잔류 합의
1991 G. 부시,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에 대이라크 선전포고. 42일 만에 종결
1992 B. 클린턴, 대통령 취임
1994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발효
1996 B. 클린턴, 대통령 재선
1997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 방미. 대이라크 외교제재안 UN안전보장이사회에 제출
1998 중간선거 실시. 영국과 함께 이라크에 대해 미사일공습
1999 세르비아공화국 공습. 콜로라도주 고교에서 총기난사로 15명 사망
2001 G. 부시, 대통령 취임. 뉴욕 세계무역센터·국방부(펜타곤)에 대한 항공기 납치 자살테러사건 발생
2003 미국, 영국 등과 대량살상무기 제지를 위해 이라크 전쟁 일으킴. 사담 후세인 8개월여 만에 체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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