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논산과 강경 이야기'에서 박범신의 소설속에 등장하는 시진(市津)에 대해서는
소개를 했었던것 같다. 소설가들은 자신의 소설속에 등장하는 지명이나 인물을 주위에서
많이 찾게 되는데 시진(市津)도 논산의 어느 지역의 옛이름 이었다.
역사를 조금 아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벌써 100년전의 지명이니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시진포라는 포구가 있었으니 강가에 위치하고 있을 것이며
강경에는 강경포가 있었으니 강경쪽은 아니고, 논산에는 논산포가 있었으니 거기도 아니고
그렀다고 논산포보다 상류쪽은 물이 부족해 배가 더이상 올라갈수 없었으니 더더욱 아니고!...
그렇다면 과연 어디가 시진(市津)이며, 얼마나 많은 배들이 돛을 달고 돌아오는 모습이
보기 좋았기에 시진귀범(市津歸帆)을 논산8경의 2경으로 쳤을까?
먼저 이 설계도를 봐야 답이 풀리기 시작한다.
본인이 공주소재 충청남도역사박물관에 직접 가서 찍어온 사진이다.(글씨가 작아 봐도 소용 없겠지만?)
쉽게 설명 하자면 구불구불한 자연 하천을 빨간선 안으로 몰아 인공 하천을 만드는 계획이다.
이 대대적 하천정비(제방)공사로 인해 해상로의 역사가 바뀌게 되는데
마을의 유래 조차조 사라져 버리게 만드는 경우도 있었다.
비근한 예로 산이 있는 동네 산동리(山洞里)는 산이 없는 동네가 되어 버렸다.
시진포도 물길이 바뀌면서 쇠락의 길로 들어서게 되며
백여년이 지난 지금에는 아무도 그 '시진귀범'을 기억해 주지 않는다.
지금 여기(등화동)가 백여년전 논산의 제2경 이었다는 사실을!...
마을이 낮은 산등성이에 있다하여 등말 또는 등리라고도 하는 등자와
황화산(성)의 화자를 따서 만든 등화동이라는 곳이 현재 논산에 존재하고
강경(포)와 논산(포) 사이 시진(포)라는 곳이 옛날에 있었는데
돛단배들이 돌아오는 풍경이 장관이어서 논산8경중의 2경이었다는것이
조선환여승람에 기록되어 있다,
그 옛날의 화려했던 모습을 재현해 보려 했던지 아니면 잊혀지지 않기를 바랬던지
범선하나 만들어져 칼국수를 만드는 사람들이 살더니만 문을 닫아 버렸고
(시진귀범처럼 잊혀져 가고)
그 범선 옆에 있던 기차길옆 오막살이는
살림이 펴서 이젠 더 이상 오막살이는 아닌듯 한것이
해상운송이 쇠하고 육상운송이 성하게 되는 운송 역사의 변화처럼
어쩌면 그렇게 잘 맞아 떨어지는지! ...
바람이 몹시 심하게 불던 4월 어느날!
나는 등화동 황화산(성)에 올라
시진귀범 대신
오막살이(?) 옆을 지나가는 기차를 보았다.
첫댓글 김시인은 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