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월 5일 주일 예배
본문; <마>12;9~21
제목;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는 주님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는 주님이라는 제목이
참으로 은혜가 되는 것은
제가 바로 상한 갈대였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 오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는 그 주님을
말씀을 통해
만나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상한 갈대입니까? 싱싱한 갈대입니까?
여러분...사람들이 사는 세상에는
상한 갈대가 더 많을까요 싱싱한 갈대가 더 많을까요
상한 갈대가 더 많다는 것이 정답이 될 것입니다
싱싱해도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도
벌레 먹어 상하고 병이 들어 쇠하고 상처로 인해 힘들면
이 모두가 다
상한 갈대가 되기 때문입니다
망하고 부도나고 자존감이 무너지고 은둔과 대인 기피증에
우울증과 각종 중독으로
정상적인 삶을 살아 내지 못하면 다 상한 갈대입니다
문제와 사건으로 욱여쌈을 당하고 그 상처의 쓴뿌리로
불균형의 성격
불완전한 삶을 살아 갈 수밖에 없다면 이 또한 상한 갈대입니다
그러니까 상한 갈대가 싱싱한 갈대보다
더 많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상한 갈대입니까? 싱싱한 갈대입니까?
여러분은 상한 갈대이기를 소망해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를 만나고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는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제목인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는 주님의 뜻은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손을 써서 치료하시고 회복시키셨다는 의미]라는 사실로 기억해야 합니다.
마16: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는 이 말씀을 하심으로
천하를 주고도 온갖 부귀영화와도 맡 바꿀 수 없는 것이
생명이요
구원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상한 갈대인 우리도 또 다른 상한 갈대를
천하보다 귀한
반드시 구원받아야 할 소중한 영혼으로 보아야 합니다
사람의 유전자는 본래 최상의 상품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이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담이후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에
아담의 형상
즉 사람의 형상들이 이 땅에 많아지는 바람에
인간이 지닌 악도..죄도..함께 자라 상한 갈대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이를 치유하시고
구속과 함께 구원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9절입니다. [거기에서 떠나 그들의 회당에 들어가시니]
여러분 성경을 잘 읽어야 합니다
본문은 지금 예수님이 거기에서 따났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거기는 어디입니까? 그렇습니다..밀밭 사이에서 바리새인들과
안식일 논쟁하던 거기입니다
거기에서 떠나 그들의 회당에 들어갔다고 기록합니다
왜요..왜 주님은
그들의 회당에 들어가셨을까요...
그리고 이 말씀은 모든 사역의 중심은 회당이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사역의 중심은 교회가 되어야 하며
어떠한 강력한 은사가 있다고 하더라도 말씀이
그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회당에서 병자를 고치려고 들어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주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치유 사역을 하셨습니다.
주님의 일은 교회가 그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늘 주님은 회당을 찾으셨습니다.
그곳에는 바리새인들, 율법주의자들도 있었지만
거기에는 상한 갈대들로 즐비했기에
예수님은 늘 항상 언제나 그곳에 들르시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회에도 이런 자들로 많아져야 하고
이런 자들이 다
교회에 와서 내적치유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이곳에서 율법으로 안식일을 지켰지만
예수님은 이 율법과
안식일의 주인이시기에 늘 회당에서 사역하십니다
그래서 오늘의 교회에도 교회의 머리 되신 주님의
임재하심과
진리의 말씀이 생수의 강으로 넘쳐나야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시온성이 그런 교회입니다
비록 작지만 강한 교회요
예전에도 지금도 많은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는 교회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상한 갈대인 저와 여러분을 치유하십니다
말씀으로 만나주십니다
이것을 믿고 아멘하는 이들에게 치료의 복이 따를 지어다
예수님을 만나고 병을 고치려면 회당에 가야 하는 것처럼
주님을 만나려면
교회에 나와야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10절입니다.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물어 이르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한쪽 손 마른 사람은 상한 갈대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이를 치료하려는 예수님을 고발합니다.
병원에서 할 일을 왜 교회가 하느냐고 시비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성경을 잘 모르는 사람들의 고발입니다
육적인 병은 병원에 가야 하지만 영육이 병든 자는
교회를 와야 합니다
세상과 병원에서 포기한 자도 교회에 오면 살 소망이 생깁니다
교회에는 영적으로 손 마른 사람들이
와야 합니다.
그런데 왔더니 안식일에 병을 고쳐 준다고 시비합니다
율법과 율법 주의자들이 주님의 일을 훼방하며
손 마른 자에게
깊은 상처를 준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 상처를 받았다는 말이 가장 안타까운 일입니다
치유 받으러 와서는
오히려 상처만 덧입혀 보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도 직분자들도 교회 구성원들도
삼가 조심해야 합니다
손 마른 사람은 손으로 하는 일을 못함으로 생계가 막막합니다.
발도 마를 수 있습니다.
발이 마르면 내가 원하는 곳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도 갈 수가 없습니다.
머리도 마를 수 있습니다.
머리가 마르면
머리로 써야 하는 모든 일을 못하게 되는 데
특히 자기 영혼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하는 자가
머리 마른 사람입니다.
구속과 구원에 대한 관심보다는 복만을 소망하며
오로지 복 받기를 원하는 자들이 다 머리가 마른 자에 해당합니다
입도 마를 수가 있습니다.
또 기도도 못하고 전도도 못하면 입이 마른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들 모두가 상한 갈대인데
이들도 예수님을 만나면 내적 치유와 함께 주님이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런데 13절은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
예수님께 손을 내밀면 회복되어 온전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내밀어야 치유되고 회복됩니다,
내 질병의 문제와 내 환부를 주님 앞에 오픈하고
보여 드려야 합니다
그러니까..숨기지 마시고 내 아픈 곳
내 문제, 내 사건을 다 아뢰어 해결 받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주님께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주님의 손을 붙들어야 합니다...그리하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질병도 치유 받습니다
10절에서 사람들이‘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물어 이르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저들은 이렇게 주님의 사역에 시비를 걸고
논쟁하자고 덤비며 도전합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예수님은 11,12절입니다.
1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12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할렐루야..오늘 본문에서 모든 생명을 귀히 여기시는 주님을 만납니다
생명이 위독한 경우에는
안식일일지라도 목숨을 구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 유대교의 율법 해석이었는데
예수님은 모든 생명은 다 귀한 것이요
사람의 생명은
천하보다 귀한 것이니 반드시 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당시 율법주의 자들의 안식법은 달랐습니다
어린 양은 재산상의 유익이니
반드시 구해야 하고 사람의 병은 치료 행위라 노동이니
안식일에 고치면 안식법에 위배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안식법을
자기들 입맛대로 바꾼 것입니다
여러분 본래 안식법의 취지는 사람의 생명을 존중하며
귀히 여기는 법입니다
그런데 안식법을 해석한 장로들의 유전은 사람을
양, 개, 염소 돼지와 같이
물질의 유익을 주는 가축들보다 못한 대상으로 취급한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런 일들을 말하여 [안식일에 행하는
악한 일]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은 구원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선한 법인데
생명을 구하고 영혼 구원에 힘쓰지 않는 것은
악한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제가 요즘..양산 신문에 기고문을 냈는데
그 제목이
사람이 주인인가..개가 주인인가라는 제목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애완견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반발이 예상되지만
그것을 각오하고 기고문을 냈는데 내일 모레 수요일에
그 기고문이 나갑니다
양산 신문을 구해 읽어보기를 권면합니다
그리고 그 글에서 강조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천하의 모든 사물보다
사람의 생명이 제일 귀하다는 취지입니다
여러분 교회는 생명을 전해야 합니다..또 전해야할
사명이 있습니다
무엇을 위한 율법이어야 합니까..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시고
생명을 귀히 여기시어
사람이 살 근원을 좋게 하기 위해 제정하신 것이 율법이고
율법의 산 정신은 사랑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바른 말을 하고
생명을 존귀히 여기며 행하시는 일에 세상의 반응은 다릅니다
14절입니다.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거늘]
바리새인들은 서기관들과 함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하는 일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 아닌 죽이는 일을 모의합니다
여러분은 모여 앉아 무엇을 이야기합니까?
험담을 주로 합니까?
아니면 칭찬을 많이 하고 있습니까?
만일에 험담을 주로 한다면 바리새인들을 닮은 것입니다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험담하고
정죄하며 판다는 하는 일은 죽이는 일이요
칭찬의 언어는 살리는 일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구원에 모든 초점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을 영혼을 실리는 일에 모든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12절에서 구원을 위한 모든 일들은 선한 일이라
옳은 일이라 말씀했기 때문입니다.
15절입니다. [예수께서 아시고 거기를 떠나가시니 많은 사람이 따르는지라
예수께서 그들의 병을 다 고치시고 ]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자길르 죽이려는 모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 아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살인 모의에 겁을 먹고
떠나신 것이 아니라
주님은 주님의 사역이 있어서 떠나가셨는데
많은 사람이 따랐고
주님도 이 많은 사람들의 병을 다 고치셨다고 기록합니다
그 어떠한 방해가 있어도 주님의 사역의 여정은
멈추지 않으십니다
자기를 죽일 것을 아시면서도 그들의 병을 다 고치시고
떠나가시는 예수님입니다.
그러나 떠나신 것은 두렵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더 큰 구원이 있기 때문에 떠나가십니다.
그래서 나도
여러분도 끝까지 따라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사람들이 싫어하고 죽이려
모의까지 하는데도
왜 저들의 질병을 다 고치셨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상한 갈대를 꺽지 않으시는 주님의
사랑이요
구속이요 구원의 사명 때문입니다
어떠한 위협을 무릅쓰고라도 주님께 나아오면
주님이 끝까지 고쳐주심을 믿고
끝까지 주님을 따르는 저와 여러분이 되었을 때
상한 갈대였던 우리가 꺾이지 않고 치유 받아 회복되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18절의 나의 택한 종은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완성키 위해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신’
예수님을 말하며
빌2;7은 이 분을 고난의 종으로 묘사하며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다고 증거합니다
그리고 18절은
내가 내 성령을 주어 이방에 알리게 하라 하시어
이방인 우리에게도 복음이 전해진 것을 시사합니다
그리고 이방 땅에까지
주의 복음, 생명의 복음이 전해 진 것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는 주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꺾지 않을 상한 갈대는 이스라엘 사람만이 아니었습니다
이방 사람도 포함되었습니다
천하 만민 모두가 다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병이 들어 상한 갈대가 되었습니까? 질병이 오래 되어
꺼져가는 심지가 되었습니까?
문제 때문에..사건 때문에 어찌할 바를 몰라
방황하는 상한 갈대입니까? 숨조차 쉬기 어려울 정도로
꺼져가는 심지가 되었습니까?
여러분...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시는 주님의 치유 사역은
이길 때까지, 회복될 때까지 지속될 것이라 하십니다
20절 21절입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또한 이방들이 그의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저와 여러분..우리는 끝까지 주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끝까지 주님만 의지하고 따라야 합니다
20절의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의 말씀과
21절의
[또한 이방들이 그의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하신 말씀은
끝까지 복음을 위하여 일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이제 마무리합니다...교회에서도 손 마른 사람하고
놀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누구를 절대로 죽이는 일이 없으십니다.
손 마른 사람, 상한 갈대,
꺼져 가는 심지와 함께 윈윈하는 것이 초대 교회의 모습입니다.
시온성 교회가 그런 교회로 거듭나야 합니다
주님은 나에게
큐티로 녹여낸 강해 설교를 하게 하시면서
주로 내적 치유에 관한 말씀을 더 많이 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이 치유사역을
병행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곧 시작하려 합니다...우리가 그 동안 십년의 세월을 돌아보면
많은 사람들이
치유 받고 회복하고는 돌아갔음을 기억합니다
그 중에는 중증환자가 있었고 늘 자살 중동에 사로잡힌
우울증 환자도 있었으며
특히 최근에는 우리 사모가 치유되고 회복 중에 있으며
박경순 집사
3개월이라는 시한부 진단이 나왔으나 지금 9개월 째입니다
우리 교회는 능력이 있는 교회입니다...응답이 떨어지는 교회입니다
꼬인 문제가
기도함으로 풀리고 뚫리며 열어지는 교회입니다
교회에 와서 힐링해야 하고
교회에 와서
윈윈하는 것이 초대교회임을 알아야 합니다.
주일에 수많은 회의를 하면서
나는 살리고
예수님은 죽이는 일을 의논하지 말아야 합니다.
바리새인들, 율법주의자들이 한 일이 바로 그런 일이었습니다.
교회는 구원에 관한 일만 해야 합니다.
힘든 사람이 와서 쉼을 얻어야 하고 만신창이 되어
상한 갈대로 온 사람...
또 꺼져 가는 심지로 좌절과 절망가운데 온 사람이 와서 손을 내밀면
예수님처럼 그 사람의 손을 잡아 주어야 합니다.
진짜 부흥은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고 나의 죄를 보는 일입니다.
숨어야 될 때와 떠나고 피해야 될 때
교회에 오게 하고
복음을 듣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영혼을 살리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나 외에도 우리 주변에는 상한 갈대가 많이 있습니다
꺼져 가는 심지와 같은 영혼들도 상당수 있습니다
이들에게 우리가 할 일은
예수를 전하고 복음의 씨앗을 뿌리며
교회를 알려 주어야 합니다..이 일이 바로
생명을 전하는 일이요
예수를 따르는 일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상한 갈대인 저와 여러분..여러분이 어떤 질병 어떤 고난
뜻하지 않은 환난 가운데 있다할지라도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그 분 손에만 의지하고 끝까지
믿음을 지켜 내면 해결되고 고침 받으며 순적한 길이 열릴 것으로
믿고 돌아가
말씀대로 살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