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었으면 책을 써라. 독서의 끝은 책 쓰기다. 읽는 것에 그치지 말고, 읽었으면 써라. 책이 아니라도 좋다. 독후감이 아니라도 좋다. 간략한 메모라도 괜찮다.”
생뚱맞은 제목에 눈길이 가서 별 생각 없이 집어 들었다. 그런데 읽다보니 재미있다.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책을 읽어라, 그리고 독후감을 써라. 그리고 그 독후감을 판매 사이트에 올려서 팔아라. 그게 전부다.
독후감은 책읽기가 그 출발이다. 그래서 2장의 어떻게 하는가? 초짜편은 독후감을 쓰는 간단한 방법, 쓴 독후감을 판매 사이트에 올리는 법 등을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그의 독후감 쓰기가 조금 독특하다.
학창 시절에 제일 하기 싫었던 과제 중의 하나가 독후감 쓰기였다. 아마도 다들 그랬지 않을까 싶다. 우선은 책을 읽는 것이 많은 시간을 요하는 일이고, 다 읽은 후에 그것을 요약해서 자기 의견이나 느낌을 늘어놓는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의중을 훤히 꿰뚫고 있다는 듯 저자는 천연덕스럽게 독후감을 잘 쓰려하지 말고 그냥 쓰란다. 문법이 틀리는 것은 컴퓨터가 알아서 고쳐주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곁들이면서 말이다. 아주 세련된 글이 아니므로 가급적 단문으로 쓰라는 조언은 그럴듯해 보인다.
나도 최상의 글은 단문이라고 여기고 있으니 통했다고나 할까. 단문은 메시지가 분명하다. 중문이나 복문처럼 의도를 은근슬쩍 숨길 수도 없다. 중세 유럽의 글은 가급적 한 문장의 길이가 긴 것이 잘 쓴 것이라고 했었다. 그래서 한 두 세기 이전의 글들은 문장이 길다.
문장이 길면 그 뜻을 명확히 하기가 어려워진다. 물론 글쓰기 고수들은 문장이 길어도 자기 생각을 분명히 드러낸다. 그러나 초짜들은 그것이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단문으로 글을 쓰라는 것이다.
그리고 문장이 어설퍼 보인다면 이것 역시 꾸준히 쓰다보면 솜씨가 점차 는다는 것이다. 당연한 말인데도 이를 실천에 옮기는 사람은 적다. 아마도 세상에 성공하는 사람의 숫자가 적은 것도 이와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저자는 스스로 고백하기를 원래 책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어떤 기회에 독후감이 돈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직장에 목을 매고 있던 터라 다른 뾰족한 재주도 없었던 터라 부업 삼아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일은 시간만 투자하면 된다. 말하자면 다른 일과 달리 돈이 들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사업 식으로 말하자면 초기 배용이 들지 않는 것이다. 그러 틈나는 대로 읽고 읽은 후에는 글의 내용 중 특별히 와 닿는 부분을 옮겨 놓는다.
그리고 그렇게 옮겨 놓은 글을 인용삼아 거기에 살을 붙이는 것이 그의 독후감의 전부였다. 그의 글은 작은 꼭지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꼭지가 강조하는 것은 모두 동일하다. 책을 읽어라. 독후감을 써라. 판매 사이트에 올려라. 그러면 그것이 어느 날부터 돈을 물고 온다.
그 돈은 내가 일을 하건 하지 않건 놀건, 잠자고 있건 시도 때도 없이 들어온다. 그러니 안 쓰면 바보 아인가? 하는 식이다. 그러면서 자기의 사례를 양념처럼 곁들이고 있다. 그런 연후에 글쓰기를 확장시켜 책 출간까지 생각을 이어간다.
4장의 어떻게 하는가? : 고수편이 바로 그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이미 몇 권의 책을 출간하고 있다. 말하자면 나름의 작가인 셈이다. 그가 지금까지 쓴 글은 전문 서적은 아니다. 장르가 불분명보이기는 하나 굳이 영역을 짓는다면 자기계발서라고 할 수 있겠다.
여기서도 오로지 핵심은 돈이다. 판매 사이트에 올린 독후감이 푼돈벌이라면 책을 출판하는 것은 목돈 벌이라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 책 쓰는 나름의 요령을 일러준다. 전문서가 아니므로 처음부터 특정한 주제를 정하고 쓸 필요도 없다.
그저 생각나는대로 무엇인가를 끄적여 놓다보면 생각이 정리되는 순간이 온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그는 1000여 권의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왔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글쓰기 근력이 상당한 셈이라고 할 것이다.
물론 책을 읽으면 얻어지는 것이 많은 것이다. 그러니 예로부터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저자는 마음의 양식일 뿐만 아니라 책을 실제로도 양식 구실을 충분히 한다고 주장한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는 말은 마음이 풍요로워진다는 말이다. 저자는 이를 직설적으로 표현한다.
“책을 매일 읽었더니 덤으로 똑똑해지더라.”
무엇엔가 궁금증이 생기면 그와 관련된 책을 읽는 것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책을 읽었으면 무엇이든 쓰라는 것이다.
“책을 읽었으면 책을 써라. 독서의 끝은 책 쓰기다. 읽는 것에 그치지 말고, 읽었으면 써라. 책이 아니라도 좋다. 독후감이 아니라도 좋다. 간략한 메모라도 괜찮다.”
그래야 내용에 대한 기억이 잔상으로 남는다. 그리고 그렇게 기록해 놓은 것들 중 마음에 드는 문장은 자산으로 남는다. 그리고 언젠가는 써먹을 날이 온다. 여행을 가면 사진을 찍는 것도 마찬가지다. 한참이 지나도 사진을 보면 그때의 여행이 오롯이 떠오른다.
책에 대한 저자의 장밋빛 환상을 끝도 없다. 책을 출판하면 인세가 들어온다. 팔리는 족족 들어 올테니 평생 가만히 있어도 들어온다. 어디 그뿐인가 사후 70년까지 판권이 유효하므로 그때까지 자손들이 덕을 볼 수 있다.
인세를 10퍼센트로 생각해서, 10,000권을 쓰면 1,000권의 값이 고스란히 내 몫이 된다. 한권에 만 원짜리 책이라면 1,000만원이 들어오는 셈이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도 말이다. 만약 책이 잘 팔려 100만권이 팔렸다면 1억을 가만히 앉아서 버는 셈이다.
이쯤되면 병아리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병아리 한 마리를 사서 잘 키워서 어미닭이 되면 달걀을 낳기 시작할 것이다. 그 달걀을 모아 팔면 몇 마리의 병아리를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 병아리들이 자라서 다시 많은 알을 낳을 것이다.
그러면 그 알을 다시 팔아 더 많은 병아리를 살 것이다. 그러면 부자가 되는 일은 식은 죽 먹기가 아닌가. 그런데 정말 그럴까? 세상이 그렇게만 된다면 가난한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적어도 모두가 병아리를 사러 갈 것이다.
물론 저자가 독서와 글쓰기를 권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책 쓰기가지 이야기를 확장한 것이겠지만 생각해볼 일이다. 내 경험으로 보면 책은 베스트셀라나 스터디 셀라가 아닌 이상 출간 후 얼마간 반짝 할 뿐이다. 그저 책에 이름 석 자를 남기는 것이다.
저자도 그걸 의식했는지 아님 말고 식이다. 그래도 이름 석 자는 남기는 것이 아니냐 하고 슬쩍 발뺌을 한다. 이런 저자도 베스트셀라나 스터디 셀라를 꿈 군다. 거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 외국에서까지 출판을 꿈꾼다.
저자의 용기가 참으로 대단하다. 물론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저자는 그 일을 위해 자기 최면을 거는지도 모른다. 자청의 ‘역행자’에서는 그런 경우 자의식의 변화와 정체성 만들기라는 멋진 말로 표현하고 있다. 저자의 꿈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