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의 고향 코르시카섬 포에니 전쟁 후인 기원전 237년 로마 공화국이 이섬을 차지하게 되었다. 비잔틴 제국의 통치가 막을 내리면서 코르시카 섬은 아랍 제국, 롬바르드 등 여러 다양한 세력의 지배를 받았다. 한때 아라곤 왕국(1296년 ~ 1434년)과 프랑스(1553년 ~ 1559년)에 점령되기도 했으나, 섬은 1768년 프랑스에 팔릴때까지 제노바의 영토였다. 변호사였던 카를로 보나파르테와 레티치아 라몰리노 사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둘째 아들로 그의 형제는 8남매였다.
나폴레옹은 프랑스를 증오하고 자신을 코르시카인으로 여겼다. 파울리가 망명하자 프랑스 측으로 전향하여, 가문의 명칭을 프랑스식인 보나파르트로 개명하고 귀족 자격을 얻었다. 그는 여러과목들 중 수학에 뛰어났다고 한다.
집안 살림이 어려워 형 조제프와 함께 학비를 내지 않고 다닐 수 있는 수도원부속학교에 들어갔지만, 곧바로 그만두고 10세 때인 1779년아버지를 따라 프랑스로 건너가 브리엔느 유년 육군 사관학교에 입학했고, 1784년에는 파리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 1785년에 아버지를 여의고 같은 해 16세의 어린 나이로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그는 라 페르 연대 포병 소위로 임관하였다. 1789년 바스티유 감옥 함락 소식을 듣고 나폴레옹 자신도 프랑스 혁명에 참가하여 공화주의자인 자코뱅 파를 지지하는 소책자를 썼다가 체포되고 만다. 1792년에 코르시카로 귀향하여, 아작시오의 국민위병대 중령이 되지만, 그로 인해 프랑스 왕당파와 연줄이 있는 파울리와 균열이 생겨 일가족과 함께 마르세유로 도피행에 가까운 이주를 하였다. 형 조제프는 클라리 가의 마리 줄리와 혼인하였고, 나폴레옹은 마리 줄리의 여동생 데지레 클라리와 연인 사이가 되어 약혼식을 올렸다. 3년후인, 1796년, 데지레와 파혼하고, 귀족의 미망인으로 정계 유력자인 바라스의 애인이기도 한 조제핀 드 보아르네와 결혼한다.
일찍이 모파상은 이곳을 "사치스런 신의 뜻으로 석화된 밤의 동물원"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코르시카 섬에는 타임, 라벤더, 세이지등 허브들이 무성하여 "향기나는 섬"이라는 별명이 있다. 세계문화유산 등록된 섬 참고 출처 : 위키백과, 히스토리 채널, 인터네피아,세계의 여행 마당 책자 |
출처: 따스한 햇살,수지야의 사랑방 원문보기 글쓴이: susyy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