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성의 부름'이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은 인간 문명에 익숙해져 있던 '벅'이라는 개가 누군가에게
납치되어 알래스카라는 혹독한 자연환경 속에서 진정한 야생의 개가 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이 책의 주인공 '벅'은 원래 밀러판사네 개였다. 따뜻한 집에서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었던 어느날
판사집의 정원사가 벅을 납치해 누군가에 팔아넘긴다. 그로부터 벅은 썰매 끄는 일을 하게 되는데
아무 것도 몰라서 처음에는 두렵기만 했던 벅이 차츰 환경에 재빨리 적응하면서 썰매를 끄는 개들속에서
친구를 사귀기도 하고 대장자리를 두고 다른 개와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벅'은 다른 개들과 달리 자신에게 습득된 문명세계의 산물인 이성과 핏속에 흐르는 야수성을
드러내면서 썰매개들 중에서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그런 벅도 주인을 잘못 만나 죽을 뻔한 위기를 만나지만 존 손튼이라는 사람이 그의 목숨을 구해주고
이 일로 벅은 손튼에게 충성을 다하고 손튼의 목숨을 여러번 구해주며 영웅이 된다.
그러던 어느날 벅이 야성의 부름을 따라 숲을 헤매다 돌아와보니 손튼을 비롯한 그의 모든 동료들이
인디언들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한 장면을 보게 된다.
이성을 잃어버린 벅은 주위에 있던 모든 인디언들을 죽인다. 그리고 숲에서 들려오는 '야성의 부름'을
따라 늑대들의 무리속으로 들어가 그들 속의 우두머리가 된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벅이 혹독한 자연환경인 알래스카에서도 잘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른 개들이
가지지 못한 이성과 생존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벅은 문명세계에 살때는 몰랐던 자신의
핏속에 흐르는 야수성이 거친 자연환경속에서 자연스럽게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고 마지막 문명의 굴레를
스스로 끊어버리고 야성의 세계를 선택한다.
벅이라는 개를 통해 본 야성의 세계와 알래스카에서 금을 찾아 헤매는 많은 인간들을 통해 본 세계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었다. 벅에게 알래스카는 자신의 야수성을 되찾아 준 곳이지만 인간에게는
미지의 위험과 탐욕으로 점철되어 있는 곳이었다. 만약 알래스카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갈 자격
을 누군가에게 부여한다면 나는 '벅'과 같은 야성의 동물들이 그 주인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을 통해 모든 대상을 '인간의 눈'으로만 바라본다는 것이 얼마나 잘못되고 오만한 것인지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