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지난 9일 날은
아내의 생일인데
선물도 없이
그냥 넘기려는
마음이 든 탓인지
어느 때보다
일찍 일어나게 되었다.
중학교 동창 하나가
장남(長男) 결혼식이 있어
대구에 가기위해서이다.
안방 욕실에서
면도를 하다가
실수를 한 탓에
왼쪽 구렛 나루 쪽이
피가 흐르게 된 것은
생일날 선물도 없이
그냥 넘긴다고
죄(罪)를 받았는지 모른다.
그날 일찍 집을
나선다고 아내를 깨우기
면목이 없어
커피 한잔만 끓여먹고
집을 나서게 되었다.
오랜만의 이른 시간에
전철역에 오니
매서운 바람도 마다않고
삶의 일터로 나가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신도림역에서
친구들을 만나
사당역으로 오는
지하철 속엔
등산을 하기위해
배낭을 짊어진 등산객들이
많이 보인다.
아침 햇살에 안개가 살며시
사라지듯 날이 밝아지려는
시간에 대형 버스에 오르고 보니
친구들이 사정이 있는지 많이
오지를 않아 아쉬웠지만
열 명 정도가 내려가게
되었다. 고속도로 버스여행이란
20여년 만에 처음이라 차창 밖의
풍경은 열차보다 색다른 느낌이 든다.
일요일 아침이라 그런지 차량들이
밀리지 않고 시원하게 달리는 속에
햇살이 비치는 겨울날의 풍경은
하나의 진면목(眞面目)을 보여준다.
내려가는 도중에 어느 휴게소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가다
황간(黃澗) 휴게소에서 쉬었다
가는데 처음 들리는 것도 그렇지만
규모가 다른 곳보다 작은 편이다.
황간 IC를 빠져나와 버스에서
소재지를 바라본 풍경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지만 도로가
사통팔달로 너무나 좋아
시원한 기분이 든 다
황간에서 세 명을 태우고서 황간 IC로 다시 돌아 들어가는데 추억이 생각난다.
예전의 학창시절 귀가하는 도중에 고속버스를 보고 너무나 좋아 고갯길로 넘어가는
순간까지 10여대의 차량을 보고 가던 생각이 떠오른다. 그 당시 지형(地形)에 따라
도로를 만들다보니 곡선이 많이 생겼지만 지금은 세상이 달라져 터널로 만들어
직선으로 만든 것이 다르다. 어찌 보면 직선보다 곡선의 아름다움이 운치가 있어
보이지만 세월 따라 편리하고 빠른 세상에 따라가는 현실이다. 황 간을 지난 지
불과 얼마 안 되어 구미(龜尾)에 도착하게 되었는데 머릿속에 남는 것은 중학교 때
금오산 수학여행 온 것이 이곳이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 수학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생님에게 매달 백 원씩 저축을 해도 먼 곳으로 못가고 금오산을 택한 이곳이다.
그 후 처음으로 찾은 구미는 색다른 느낌으로 드는데 공업단지로 부상해 도시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에 즉흥시(卽興詩)하나 올려본다
끝이 보이지않아
마치 수평선(水平腺)같은
비포장 신작로
간혹 차량이 지나가면 먼지는
초가지붕 굴뚝에서 뿜는
연기와 같았네
걷고 걸어
구불구불한 신작로 길
겨울엔 추웠고
여름엔 매우 무더웠네
학교 늦을세라
가방 보따리 어깨에 둘러매고
청 보리밭 사이를
숨이 찬지도 모른 채 뛰어가던 시절
교실에서
가방을 풀고 보면
도시락에 김칫국물과
시퍼런 잉크가 스며든 보리밥
그래도 점심시간이
채 오기도 전에
빈 도시락으로 남던 그 시절
도시락 속의
잉크가 스며든 한쪽은
젓가락으로 갈라 버리고
김칫국물이 스며든
보리밥은 먹었네
하지만 바지에 스며든
잉크 자국이
지워지지도 않는 것은
학창시절을
소중하게 기억하라고 그랬겠지
대구를 지나 경산(慶山)으로
접어들며 학창시절엔
포도(葡萄)로 유명한
고장으로 배웠는데
지금은 하나의 시(市)로
승격 되었으니 세월이 말해준다.
중학교 동창 하나가
어느 듯 자식을 키워
자부(子婦)를 맞이하는
뜻 깊고 좋은 날이다.
예식 시간이 되고 보니
졸업 후 저마다 내일을
바라보고 열심히 살아가기
위해 동서남북으로
흩어진 男女 동창(同窓)들이
속속 모이는데
얼굴도 제대로 모를뿐더러
이름도 가물가물한 기분이다.
짧은 순간의 학창시절을 마치고
장고의 세월 속에 만난 탓에 모두들
육체도 많이도 변했다.
뷔페에서 점심과 소주 한잔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옛 이름이 떠오르니 가는 세월 누가
막을 수는 없는 게 우리들이다.
우리가 현재 사회에서 만족스럽게 일하는 것은 오로지 학창시절에 좋은 부모님 밑에서
공부한 것이 뿌리의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하나의 대(代)를 이어주며 자식들에게
장래를 위해 교육과 나아가 결혼을 시켜야하는 중요한 위치에 있는 부모님 세대에 살아가고 있다.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학창시절 친구들이 결혼식장에서 만나게 된 것이 너무나 영광으로 생각하고
싶다. 늦가을 날 추억의 앨범 속에 고이 간직해 둔 은행잎처럼 그대들의 얼굴과 이름 모두 영원토록
머릿속에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중학교 3학년인 여름철 어느 날 귀가하는 도중 소낙비가 내려
어느 친구네 집에가서 하룻밤을 자고 등교했던 생각이 난다. 그때 부엌에서 도시락에 보리밥과 무 단무지를
싸주시던 그 할머니의 손길과 또 어느 날 귀가하다가 비가 내려 택시를 타고가라고 2백 원을 주었던
그 여학생 잊을 수가 없다 그 당시에 2백 원이면 버스를 열 번 타는 금액인데 지금은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모르지만 그날 결혼식엔 참석 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혜택만 받고 학창시절을 보내다보니
중학교라는 그 자체를 잊을 수가 없게 만든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좋은 음식을 먹고
친구들과 헤어진 후 귀경(歸京)을 해야 했다.
물론 수도권 지역에서 몇 명 안 되지만
나름대로 버스에서 담소(談笑)를 나누며
오다보니 결코 지루한 여행은 아니었던
것은 오로지 고향 학창시절 친구
때문이라고 본다.
중학교때 270영 정도가 졸업한 것으로
기억되는데 삭발머리 남학생들
그리고 단발머리 여학생들 모두가
내후년이면 어느듯 40년이 되니
인생의 절반의 숫자와 비슷하다.
동서로 흩어져 저마다 사회생활
열심히 할수있는 것은
어려운 시절에 좋은 부모님의 덕분에
공부하여 졸업을 하게 만들어주신 것이다.
물론 나도 아내의 생일을 뒤로한채
오랜만에 많은 친구들의
얼굴을 보고싶어 대구로 향한 것이 잘했다고 본다.
기나긴 서너시간의 여정끝에 종점인
서울 사당역에서
그냥 발길을 돌리기 아쉬워 생맥주 집에 들러
한잔을 하며 한시간 정도 시간을 보내고
헤어졌다
끝으로 장남(長男) 결혼 시킨다고 고생한
혼주(婚主)에게 감사를 하고 싶고 바쁜 시간에
참석을 하여 얼굴을 보게 해준 학창시절 친구들에게 인사를 하고 싶다.
올 한해도 늘 건강하고 만사형통한 그대들이 되길 바란다.
그 다음 월요일 아침 식탁에서 밥을 먹으며 내가 어제가 생일이었는데
말끝을 흐리니 아내는 아무런 말은 없고 김치 씹는 소리만 들린다.
시간이 주어질때 아내의 선물을 하나 사주면 죄(罪)를 받은 얼굴
구렛 나루의 핏자국은 자연히 없어지겠지 .... 南 周 熙
첫댓글 주희가 어려운 발걸음을 했구먼....
아내에게 벌 받아야겠어~ 좋은 선물해주렴
그런데 택시 200원준 여학생이 누구냐?
수도권은 아닌 것 같고 어딘가 지방에서 살고 있을듯 ..
댓글에 감사드리며
늘 하는 일이 잘 되시길
음악처럼 잔잔한 글 잘 읽고 가네.그리고,아내의 생일 축하 드리고,사당에서 생맥주 잘 먹었다.일찍 들어가서 아내와 해야 할 시간이엿는데 쓸데 없이 시간을 빼앗은 꼴이 되었군.그것도 모르고 우리만 즐거웠으니...
오늘이라도 화장품 세트하나
사줄까 생각드는데
하필이면 날씨가 추워 다음으로 미루어야할듯 ...
댓글에 감사드리며
좋은 하루가 되소서
어차피할선물이면 빨리하세요 늧긴했지만 앙금이 조금이라도 빨리 걷혔으면 좋겠네 내게 진작말했더라면
말렸을텐데 미안하게 됐구나
날씨가 풀리면 외식이라도 할까
아니면
선물이라도 할까 고민중
댓글에 감사드리며 엊그제 대구여행시
수고했네
주희야 반가웠고 고맙다 !!
남주희친구의 이런재능이 있다는걸 미쳐몰랐었구나
새삼 놀랍고 나의 친구중 이런문인이 있다는것을 자랑하고싶구나
우리 영원한 친구가 되자꾸나
엊그제 친구한테 휴대폰 문자를 받고
전화를 했어야 하는데 못했네
아무튼 그날 좋은 음식먹고
많은 친구들 오랫만에 만나니
학창시절이란 이렇게 좋은것을
실감나게 만들었지
子婦님 예쁘더라
며느리한테 사랑받기위해
많은 노력을 하시길
댓글에 감사드리며
늘 건강하고 행복한 한해가
되시길 바라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