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 준희의 5월 연휴(자율휴업일)를 맞아 여러날 캠핑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어린이날인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내리 5일이 연휴였지만, 마침 주말이 어버이날인 관계로 준희 할머니, 할아버지댁에 들러서 이틀을 함께 보내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무려 3박4일을 캠핑할 수 있었으니 마치 갈천으로 여름휴가를 떠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휴일인 것과 달리 어른은 휴일이 아니었습니다. 평일이 이틀이나 되므로 마냥 놀 수만은 없었기에 캠핑장 선정의 첫째 조건은 "인터넷이 가능한 곳"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캠핑장에서 일을 하겠다는 생각이었지요. 사실 큰 맘 먹고 남도를 가고 싶었는데 인터넷이 가능한 곳은 몇 군데 있으나 문제는 거리였습니다. 게다가 어린이날 준희 외삼촌네 집들이를 마치고 오후에나 출발해야 했으므로 다섯 시간 가까이 달려간다는 건 무리였습니다. 덕유대 찍고 고성 당항포에 들렀다가 대구 가산산성으로 들어가겠다는 처음 계획을 급수정하여 그냥 봉평 솔섬으로 방향을 바꿨습니다.
솔섬은 삭막했던 겨울 풍경과 달리 여름 성수기를 앞두고 살짝 들떠있는 느낌이었습니다. 평일 캠핑이어서 아무도 없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솔섬에는 우리집 외에도 대여섯 팀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준희네처럼 임시 휴업을 하는 학교가 적지않았다고 하더군요. 대부분 물가에 몰려있어서 호젓함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무척 여유로운 풍경이었습니다. 우리도 물가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어두운 밤이어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다음 날 아침 텐트 밖으로 나왔을 때 펼쳐질 멋진 풍경을 상상하면서 말이지요.
전날은 마치 여름밤처럼 따뜻했는데 새벽부터 내린 비로 다소 한기가 느껴졌습니다.
비 그친 후에는 바람까지 불어서 더욱 쌀쌀했답니다. 이 바람은 철수할 때까지 그치지를 않았습니다.
결국 준비해간 윈드 스크린을 설치했답니다. 솔섬, 특히 솔밭에서는 타프보다 윈드스크린이 더 유용합니다.
그네와 더불어 가장 인기 있는 솔섬의 놀거리입니다. 함께 놀 또래가 없어서 심심했던 준희는 틈날 때마다 보트에 올라 시간을 보냈습니다. 울집 강아지 핀이도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무척 신이 났습니다.
보트는 뒤로 나아가야 한다고 가르쳐줬는데도 몇 번 해보더니 다시 원래대로 거꾸로 노를 젓습니다. 앞을 보며 나아가는게 더 재미있나봅니다.
이웃집 꼬마를 태우고 물놀이를 합니다. 강아지를 보러왔다가 제집처럼 우리 사이트를 들락거린 친구입니다. 붙임성이 좋은게 꼭 누구를 생각나게 합니다. 실수로 우리집 어항을 잃어버렸다가 준희의 원망을 듣기도 했답니다. 미안했던지 나중에 과자 한 봉지를 들고왔던데 준희가 그 마음만 받고 다시 되돌려주었습니다. 꼬마 친구가 많이 속상하지 않았나 모르겠습니다.
해먹이라도 없었으면 어쩔 뻔 했을까요. 노트북은 일하는 엄마에게 뺏기고 하루종일 심심해 죽으려고 합니다.
아직은 또래 친구들과 어울려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노는 게 좋을 나이입니다.
이렇게 커버렸는데도 그렇습니다. 아이에서 청소년으로 옮겨가는 과도기니까 이해를 해줘야죠.
요즘은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느낌이 들 정도로 변화가 빠른 준희입니다.
심심해하는 준희를 데리고 30분을 달려 봉평 무이예술관을 찾았습니다. 몇해 전 메밀 축제할 때 한 번 들른 바 있는 곳인데 철이 아니어서인지 무척이나 삭막한 느낌입니다. 조각상들 대부분도 정비 중이고 실내 전시물은 예전 그대로여서 새로울 게 없는데다가 결정적으로 제일 기대했던 체험활동 또한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입장료가 아깝다고 준희가 많이 투덜댔습니다. 한 30분 휙 돌아보고는 나왔습니다.
볼거리 놀거리가 없으니 이런 거라도 타야지요.
뒤뜰에 놓여진 말 형상입니다. 연극 에쿠우스가 생각납니다.
캠핑장으로 돌아오니 어느덧 다시 밤입니다. 날이 개었지만 바람은 여전합니다. 아니, 점점 더 심해지는 듯 합니다.
읍내에서 사간 고기를 구워먹고 한가로운 시간을 보냅니다. 가족끼리만 캠핑을 다니면 무척 여유롭습니다.
먹을 거리 준비에도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고 과음할 이유도 없습니다.
가끔은 심심한 것이 싫긴 하지만 이처럼 오붓한 시간을 갖는 것도 좋습니다.
약속만 아니면 며칠 더 머무르고 싶을 정도로 좋았던 솔섬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말을 맞아 붐빌 조짐이 보이더군요. 아침부터 한 집 두 집 늘어가더니 급기야 "철수하시는 거예요?"하며 뒷 사람이 대기를 합니다. 주인장 말씀으로는 80팀이 들어온다는데... 이틀간 느꼈던 한적함은 물 건너간 셈이지요. 솔섬에서의 2박을 마치고 떠나기 전에 가족 사진을 찍었습니다. 아이 사진만 찍었지 좀처럼 함께 하기가 힘든데 햇살이 너무 좋아서 그냥 갈 수가 없었답니다.
3시간여를 달려 대구 가산산성 야영장에 다시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미 일주일 전에 대구 사시는 갈천도사 님과 만날 약속을 했기 때문입니다. 대구는 준희 할머니, 할아버지댁과도 한 시간 거리에 불과하기 때문에 들렀다 가기 좋은 곳이었습니다. 지난 크리스마스 캠핑 이후 반년 만에 만난 갈천도사 님 가족, 늘 반갑습니다. 갈천에서의 첫만남 이후 좋은 인연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 기쁘고 고맙습니다
비록 기대했던 벚꽃의 향연은 이미 끝났지만 가산산성의 봄은 아름다웠습니다. 특히 잔디 가득 피어난 노란 민들레가 참 예뻤습니다. 우리가 자리잡은 사이트는 다소 외진 곳에 위치한 곳으로 다른 사이트에서는 이런 여유를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분들이 오셨더군요. 특히 토요일에는 야유회 및 나들이 나온 가족 및 단체가 많아서 마치 유원지에 자리잡은 느낌이었답니다. 중도야영장처럼 가산산성야영장도 여유를 느끼기 위해서는 밤이 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었다는 갈천도사 님의 말씀이 구라가 아님을 증명하는 흔적입니다. 지난 어린이날 벚꽃이 모두 비오듯 떨어졌다는데 그 광경이 어땠을지 짐작코도 남습니다.
어버이날이라며 아이들이 설겆이를 도맡아 하는 중입니다. 이미 중학생인 고우리 언니와 준희가 야무지게 설겆이를 해냅니다. 참 대견스럽더군요. 사실 준희는 이 설겆이가 공식적으로는 태어나서 처음하는 것입니다.
내친 김에 가족을 위해 요리에 도전해봅니다. 치즈달걀말이에 이어 오늘의 점심 요리는 부추전...
정말 맛있었습니다. 아이들 실력이 오히려 더 나은 것 같습니다. 제 손으로 만드니 아이들도 잘 먹더군요.
하는 사람도 기쁘고 기다리는 사람도 즐겁고...
구수한 부추전 냄새만큼이나 맛있는 대화가 오고갑니다. 짧은 시간 머물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아쉽기는 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알차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첫댓글 8일에 배웅을 못해드려 마음이 아팠답니다.. 전승을 하고 돌아와 보니 왠지 허전하고 슬퍼서 애꿎은 술만 퍼 마셔.. 다음날 시합은 엉망 이었답니다..
사진이 완벽하게 명성 값을하며 자리메김 하고있구.. 내공이 장난이 아닌듯..^^*
저야말로 저질 체력 탓에 흉한 모습만 보여드려 송구스럽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전화 드린다는게 또 잊어버렸습니다. 담에 또 함께 하시지요.
멋있기도하고 많이 부럽기도 하네요~~~~
감사합니다. 사진발도 포함된 후기니 참조하세요^^;
호젓한 분위기...부럽습니다. 준희가 많이 컸네요...^^
재혁이 상혁이도 많이 컸겠죠? 애들 크는 것때문에 세월을 느낍니다.
솔섬에서 저희 옆에 계셨군요. 어쩐지 따님 얼굴을 어디서 많이 봤다고 생각했는데..
(다리옆에 캐슬치고 있던 사람입니다^^)
미처 인사 나누지 못했던 게 아쉽군요.
화로 펴놓고 즐겁게 지내시는 모습, 오며가며 보았습니다.
나는 저때 머했떠라..머했떠라..머했더라....
아드님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면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