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뚝뚝한 삼형제가 있었다.
셋은 각자 장사꾼, 나무꾼, 약초꾼으로 장성하여 홀어머니를 모셔왔는데,
어느 겨울날 갑자기 어머니가 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게 되었다.
셋은 말없이 번갈아가며 어머니를 밤새 간호하였는데,
유독 약초꾼인 셋째만은 한 번 나가면 며칠씩 집에 돌아오지 않곤 했다.
그럴 때마다 첫째와 둘째가 며칠씩 잠도 못 자가며 어머니를 간호해야 했기에,
이 둘은 셋째가 집을 비우는 기간이 늘수록 점점 지쳐가기 시작했다.
그 날도 셋째가 말없이 집을 나가 첫째와 둘째만 남게 되었다.
첫째는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둘째에게 말했다.
"지만 힘드나! 셋째 놈은 어째 우리 생각은 않고 자기만 나가 놀 생각을 하는 거야.
나도 더 이상은 못 참는다. 이번에 셋째가 돌아오면 단단히 경을 칠 생각이니 그리 알아라!"
갑작스런 형의 말에 어리둥절한 둘째가 반문했다.
"뭔 소리요 형, 셋째가 나가 놀다니.
셋째는 당연히 어머니한테 먹일 약초를 캐러 나가는 것 아니었소?"
뭔 소린가 싶은 형이 둘째에게 물었다.
"셋째가 너에게 그리 이야기하든?"
"우리 형제가 언제 서로 자기가 뭐하고 지내는지 이야기한 적 있었소?
당연히 집을 나가길래 약초 캐느라 정신없구나 싶은 거지."
어이가 없어진 첫째가 콧방귀를 끼며 둘째에게 말했다.
"그 놈이 뭐 캐온 거라도 있었나?
그리고 이 추운 날 며칠씩 밤새 약초를 어떻게 찾아다닌다는 거야 이 멍청한 놈아.
여하튼 셋째 놈이 돌아오면 나도 시내에 며칠 다녀 올 테니 그런 줄 알아!"
다음 날 아침 셋째가 돌아왔다.
보자기에는 겨울산에서 찾기 힘든 삼이 한뿌리 있었다.
잔뜩 화를 내려다 머쓱해진 첫째가 셋째에게 소리쳤다.
"이 놈아, 약초를 캐러 다녔으면 그렇다고 이야기를 할 일이지,
나는 네 놈이 이제껏 뭐하러 돌아다니나 싶었다."
어리둥절한 셋째가 첫째형에게 반문했다.
"무슨 소리요, 첫째형
약초꾼인 내가 나가서 집에 안 돌아오면 어련히 약초나 캐고 있겠지라 생각하면 되는 것 아니겄소?"
그 말을 들은 첫째는 심히 부끄러웠다.
'나는 왜 둘째처럼 셋째를 믿지 못하고, 한심한 생각이나 하고 있었을까?"
내면의 소리
똑똑한 사람들일수록 타인의 거짓말을 더 잘 알아챌까?
한 재밌는 연구를 소개하자면,
마리아 하르트비그(Maria Hartwig) 등의 2004년도 연구에서,
(Suspicious Minds: Criminals' Ability to Detect Deception)
교도소 수감자들이 대학생들보다 거짓 판별을 더 잘했다는 결과가 보고된 바 있습니다.
흥미로운 건,
교도소 수감자들이 진실을 알아보는 안목이 더 뛰어났던 게 아니라는 겁니다.
단지, 상대방이 거짓말을 하고 있을 거라는 "거짓말 의심 편향(lie Bias)"이 높았기 때문에,
애매한 상황에서 상대의 말을 거짓일 거라 단정짓는 빈도가 더 높았던 거죠.
즉, 거짓 판별을 잘했다기보다는 더 많이 했기 때문에 거짓말쟁이들을 더 많이 가려낸 것.
저 사람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어.
왜냐구?
나라면 저 상황에서 거짓말을 했을 테니까.
인간이 판단을 할 때는 무의식적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을 고려하게 됩니다.
①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
② "내"가 실제로 했던 행동들
③ "내"가 몸소 겪어봤던 경험들
모호한 사건일수록 빈칸이 많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그 빈칸을 자기 안에 있는 것으로 채우려는 경향이 있어요.
첫째가 셋째를 의심했던 이유는
① 나라면 분명 그랬을 거라고 생각했거나,
② 비슷한 상황에서 과거 그렇게 했던 경험이 있었거나,
③ 아니면 전에 그렇게 행동했던 누군가를 봤었기 때문일 겁니다.
둘째는 왜 셋째를 의심하지 않았을까?
요령을 피워야겠다는 생각도, 실제로 요령을 피웠던 경험도 없었기 때문이겠죠.
인간의 말과 행동은 자신의 내면을 담고 있기 마련입니다.
말과 행동은 비유하자면, 내면이라는 밑그림에 더해진 채색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대화를 해 보면 상대방의 내면을 어렴풋이 알 수 있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몰랐던 나의 모습까지도 더불어 알 수 있게 되죠.
대화를 해 보니 상대방이 썩 마음에 든다, 나와 잘 통하는 것 같다라고 한다면,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서, 괜찮은 사람이라서 라기보다는,
나의 내면과 상대방의 내면이 그만큼 겹치는 면이 많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대화를 해 보니 굉장히 흡족하고 나랑 잘 맞는다고 생각될 경우,
상대방을 통해서 역으로 나의 내면을 추정하는 일 또한 가능해집니다.
이것은 한편으로
초록은 동색이다.
끼리끼리 어울린다.
친하게 지내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있다.
등등의 말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타인에 대한 지적과 평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누군가를 평가하며 그 사람의 문제에 대해 왈가왈부하지만,
그 말 속에는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문제가 담겨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뭐뭐 한 거 아냐?
사실은 이런 거 아냐??
분명 이러이러했을 거야.
상상이나 추정, 판단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이 표면화된 것일 뿐.
가십거리에 올라있는 사람을 보며 악의적인 추정을 퍼붓는다면,
그건 자신이 다음과 같은 사람이라는 반증일 지도 몰라요.
① 나라면 그렇게 했을 거라고 생각하거나
② 실제로 그렇게 행동했던 경험이 있거나
③ 주변에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거나
말과 행동은 사람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습니다.
그 거울을 통해 타인의 내면을 미루어 짐작하는 것도 기술이라면 기술이요,
내 거울을 단속함으로써 타인으로 하여금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지 못하게 하는 것도 기술이라면 기술이겠죠.
또한 말을 꾸밈으로써 누군가에게 나의 내면을 포장해 점수를 따는 것도 하나의 기술일 겁니다.
그만큼 중요한 이 말을 평소에 우리가 어떻게 쓰고 있었는지는 한번씩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 무명자 블로그 : https://blog.naver.com/ahsune
첫댓글 다들 알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렇게 글을 읽으니 새삼 예전에 나눈 대화 내용이 떠오르네요. 근데 엄청 황당하고 열 받는 대화 내용을 쫙 썼다가 다 지웠습니다. 멋있지가 않아서요.ㅎㅎ 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저부터 멋진 생각 품고 멋진 말과 행동 보여줘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