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명숙 누나(웅상노동상담소 상담실장)와 나, 그리고 안건모 선생님
양산노동민원상담소에 일하는 이은아누나의 문자를 받고 웅상글쓰기 모임에 안건모 선생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노포동에서 여자친구를 배웅하고 가기엔 시간이 빠듯해서 전화를 했더니 안건모 선생님이 좀 늦으신다고 했다. 월간 <작은책>의 차를 직접 보니까 신기해서 선생님 가시기전에 한장 찍었다(위). 세상을 바꾸는 따뜻한 이야기, 월간 <작은책>의 발행인 안건모 선생님. 솔직히 말하면 글쓰기 모임보다 안건모 선생님을 실제로 뵙고 싶어서 웅상노동상담소를 찾아갔다. 아무도 모르는 관계로 컴퓨터를 하면서 선생님을 기다렸다.
상담소 가운데 탁자를 설치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안건모 선생님과 보리출판사 유이분실장님이 오셨다. 근데, 허걱. 왠 할아버지가 들어오시는줄 알았다.(안건모 선생님 읽으시면 화내시겠다.^^a) 15년이상을 버스노동자로 강단있게 살아오셔서 그럴까? 처음에는 58년개띠치고 선생님이 나이가 들어보였다. 그러나 글쓰기 모임을 하며 대화를 나누다 보니 따뜻하기도 하시고 장난끼도 있으시고 카랑카랑한 면도 있으셨다. 계속 대화를 나누다 보니까 다시 점점 58년개띠의 나이로 보였다고 할까? ㅎㅎ 내가 맞춤법과 뛰어쓰기를 너무 몰라서 어떻게 해야하냐고 여쭤보니 '국립국어원'홈페이지에서 글을 검색하며 쓴다고 하셨다. 집에와서 '국립국어원'에 들어가봤는데, 뛰어쓰기나 맞춤법을 어떻게 확인하는지 한참을 뒤적거려도 모르겠더라. 이주 여성이 두분 계셨는데, 몽골에서 온 우네르씨의 '몽골어 통역을 하면서'라는 글이 너무 좋았다. 가슴이 찡했다. 한국온지 5년 밖에 안되셨는데, 글을 어떻게 이렇게 솔직하고 진실되게 잘 썼는지 놀랐다.
식사겸 뒤풀이로 전라도 음식이라는 홍어를 먹으러갔다. 김치에 싸서 먹는데, 갑자기 속에서 쏴~ 하는 역겨움이 밀려오는데 왠만하면 삼켜보려 했으나 토할것 같아서 결국 가게 문밖에 나가 뱉어버렸다. 안건모 선생님과 유이분실장님은 웅상의 글쓰기 모임때문에 차를 타고 이렇게 멀리까지 오셨다. 또 한밤중에 운전하며 올라가셔야 했다. 평일도 아닌 일요일에 몇시간 수업하러 오신 것이 왠지 미안하고 고마웠다. 웅상에서 양산신도시까지는 교통편이 불편한지라 범어에 사는 명숙이 누나차를 타고 오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평일에는 노동상담, 일요일에는 이주노동자한글교실, 일요일 저녁엔 글쓰기까지, 거기다 집에가면 주부.와~ 어떻게 저렇게 생활할수 있을까 놀랍기도 하고 지치지 않으실까 걱정도 들었다. 나는 타인을 위해 사는 삶에 관심이 없는 놈인데, 이렇게 노동자들의 글쓰기 교실을 위해서, 비정규직 실직자 노동상담을 위해서, 이주노동자를 위해서 밤늦게까지 수고하시는 분들을 보면 한편으로 미안하고 한편으로 고맙다. 영화보고 연극보고 책읽고 여자친구랑 오래오래 재미있께 연애하는게 목표인 녀석에겐 가깝고도 멀게 느껴지는 분들이었다. 그래도 일요일의 만남은 참 반가웠다.
첫댓글
나명숙 선생님께를
나명숙누나가 교주시군요.
박조건형님, 우리 함께 열심히 일하시는 분들을 위하여 용기와 함께 힘찬 격려를 보냅시다
무슨 칭찬에 말씀이 지나치시는군요^*^ 우리사무실 식구들에 비하면 하는일이 없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