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법판서 박공 신도비명(典法判書朴公神道碑銘)
밀산군이며 봉순대부 판 전교시사 전법판서를 역임한 박공은 휘(諱)가 밀양(密陽)이니 고려때 훌륭한 신하이고 보문각 대제학 밀성군 윤문(允文)의 아들이라 정포은 몽주(鄭圃隱 夢珠)와 이목은 색(李牧殷 穡)등과 도의로서 교류 하였으며 세상에서 말하는 훌륭한 육형제중 제일 큰 형이다.
육백여년을 지나는동안 여러번 전쟁을 만나서 묘소를 실전하였으므로 배위와 같이 충청도 옥천군 천산면 판수리 갑좌 언덕에 설단(設壇)을 하여놓고 해마다 시향을 올리니 자손들의 근본을 찾고 먼 원대를 추모하는 의리가 지극히 다한 것이라 공은 영특한 자질로서 학문에 힘을 썼고 태어날 때부터 훌륭함이 있어 덕행(德行)을 채워 나갔고 사공(事功 : 성공)이 나타났다.
양친(兩親)을 봉양함에 있어 살아서는 효도하고 돌아가서는 슬퍼하고 제사에는 엄숙히 하며 반드시 예와 절차를 따랐고 다섯 아우들과 우애로서 책상을 맞대고 공부를 하여 과거에 급제하였고 서로 사랑하고 화목하기가 다른 사람과 견줄 수가 없었다.
높은 벼슬자리에 있어도 처신을 뛰어나게 하였고 임금을 섬김에 있어 위급하고 화난중에도 충성을 다하였으며 입은 옷이 누추하나 고관대작 앞에서도 부끄러워 하지 아니하고 집안이 월래 가난하였어도 분수밖에 행동을 하지아니하고 성인의 글을 밤낮으로 읽고 외우며 세상 걱정 근심을 잊고 친구와는 신의로 사귀고 갈고 닦아서(공부를 말함) 필법(筆法 : 글씨)이 아름답고 신속하야 진신(搢紳 : 벼슬한자)들의 모범이 되었고 학문은 임금을 도울만치 훌륭하여 시회(詩會)에서 항상 일등을 하였고 언행(言行)을 조심하기를 시종여일 하였으며 의리를 살펴 바르게 판별하야 착한 것을 좋아하며 청백함을 같이하고 악한 것을 미워하며 더러운 것을 제거하고 가만히 있을 때는 마음을 비우고 움직일 때는 정직하여 안팎이 한결같이 융합하여 밝음은 섬세한 것까지 살피고 넓음은 광대함을 이루어 사회의 일에 임하고 물질에 접하여는 궁함이 없고 가만히 잇을 때 변을 당하고 위험함을 만나도 행동과 마음을 바꾸지 아니하니 이것이 타고난 품이 두터우며 교양이 심원하야 넓이 취해 순수하게 이룩한 것이라 비록 문헌의 증거는 없다하나 공의 집안에 대대로 전해온 말을 이같이 적고 또 포은과 목은이 보내온 시를 본즉 공의 사람됨을 대략 상상할 수 있고 또 공의 세덕(世德)의 아름다움과 학문의 고명함과 훌륭한 친구의 사귐과 벼슬의 현달함과 형제의 성대함을 쫓아서 믿을 수 있으니 산을 보면 나무의 아름다움을 알 수 있는 것이라 ! 훌륭하도다.
신라 시조왕에서부터 성(姓)이 시작되었고 밀성대군 언침(彦忱)이 관향을 받았으며 내부시승 순충동덕 찬화공신 삼중대광 벼슬을 하고 밀성군에 피봉되었으며 특별히 금자광록대부 벼슬을 더하고 충헌공(忠憲公)의 시호를 받은 척(陟)은 옥천 원덕사에 배향하였으니 공의 고조이시다.
증조는 성진(成進)이니 정룡장군(精勇將軍)이었는데 명나라 황제는 문하평리승(門下評理丞)을 증직하였고 충렬왕이 군사를 거느려 일본을 정벌하라는 명령을 받아 싸움에서 돌아오지 아니하였다.이 사실은 고려사에 나타나 있다. 할아버지는 원(原)이니 판전교시사이며 어머니는 해양군부인(海陽郡夫人)이고 광산김씨이며 첨의정승 쾌헌문정공 태현(僉議政承快軒文正公 台鉉)의 女로 여중군자의 행실이 있었다.
배는 문화류씨이니 첨의정승 찬성시녕군 장경공 돈(僉議政承贊成 始寧君 章敬公 墩)의 女로 훌륭한 공의 배필이었다. 二男 四女를 낳았으니 맏이는 경의(敬義)이다.중낭장으로 시호가 충민공(忠敏公)이고 다음은 경인(敬仁)이니 전서(典書)벼슬을 하였다.
사위는 별장구희(別將具禧)와 전서 박침(朴忱)과 관찰사 장연(張縯)과 전서 권집중(權執中)이며 증손이 너무 많아서 기록하지 아니하나 지금까지 잘 이어나가서 후손이 이만여인에 이른다하니 공이 다 누리지 못한 복이 마땅히 나타난 것이라 공의 19대손 충보(忠輔)가 나와같이 우리 아버지인 고암선생에게 글을 배웠으니 인정과 뜻이 서로 맞고 즐거움과 걱정을 같이 하였는데 항상 공의 신도비문을 부탁하니 나는 실지로 덕망도 없고 글도 잘 못하나 어찌 감히 충보가 누차 부탁하는 청을 안들어줄 수가 없고 정의상 사양할 수 없을 뿐만아니라 더욱이 충보(忠輔)가 위선하는데 정성을 다하고 있으며 이 지방에서 명망이 있는 선비이다.
이일을 하는데 처음부터 끝가지 마음을 바친다는 준희(俊羲).연호(淵浩).철희(喆羲).홍희(鴻羲) 인희(仁羲) 완남(完南) 이고 좌우에서 주선하여 성정을 기우린자는 도희(道羲)이고 물질로 심혈을 경주한자는 병규(炳奎)이니 이 모두 근원이 있는 샘물같고 뿌리가 있는 지초(芝草)와 같은 것이라 후손들에게 말하노니 드디어 명을 짓노라.
명에 이르기를
아버지는 밀성군이고 아우는 밀천군이로다.
가정교육을 잘 받아 명망과 벼슬이 갖추었네.
나라의 큰 예우를 받음은 세상에서 비교할 수 없도다.
오직 충성이여 효도를 근본했도다.
공의 직분을 다함이여 수신을 게을리 아니하였다.
성품이 독실함이여 지조가 떳떳하도다.
충성을 펼침이여 무엇을 못하리.
국가에 마땅함이여 말세에 모범이되도다.
오랜세월 알 수 없는 것은 공의 행적이로다.
덕을 쌓아서 후손의 복을 드리웠도다.
내가 명을 지어서 천억년 전하노라.
신라기원 2031년(서기 1974) 갑인(甲寅) 3월 16일
外裔 송재욱(宋在郁) 謹撰
後孫 도희(道羲) 謹書
▲전법판서 박밀양 신도비 / 충청북도 옥천군 청산면 백운리 추원재(追遠齋) 앞
▲추원재(追遠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