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 4천만 년 전에 출현하여 살다가 1만 년 전에 끝난 빙하기에 대부분 멸종된 식물이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평화, 축복, 풍요, 다산의 상징 식물이기도 하다.
《태조실록》에 태조 이성계가 몸이 아파 먹고 싶었는데 신하가 9월에 이것을 바쳐 쌀 10석을 받게 된 식물, 바로 포도이다.
포도는 고대신화, 종교, 문학과 예술, 농업기술의 발달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과일이다. 그 만큼 역사와 더불어 우리와 친숙했다는 것이다.
신라시대 기와 문양에 포도가 그려져 있어 당시 포도가 도입되었을 것으로 추정하나 경제적 목적으로 과원을 조성하고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다른 과일들과 마찬가지로 20세기 초부터 이다. 1901년 프랑스 출신의 안토니오 콩베르 신부가 안성에 교회를 지으면서 미사용 포도주 제조를 위해 머스캇 품종을 심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전에는 머루와 같은 토종 동아시아종의 포도를 채취하여 이용했다.
《성종실록》에는 ‘세종이 가슴 속이 답답하였는데 신하가 바친 수정포도(수정처럼 맑아 청포도로 추정)를 먹고 상쾌하게 되었다.’고 하였고 《연산군일기》에는 임금이 마유포도(말 젖처럼 긴 모양) 한 가지를 승정원에 내리면서 ‘맛을 보고 시를 지어 바치라.’고 하였는데 신하들이 이전에 맛보지 못하던 것이라서 난처해하였다고 하였다.《정조실록》에는 청나라에서 마유포도와 쇄쇄포도(작은 포도 알이 송이송이 달린 모양)를 보내와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하였다. 또한 역대 왕들의 위패를 모신 종묘에 제철에 생산된 과일을 바쳤는데 여기에 포도가 포함되어 있었으나 일반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접하지 못하고 왕실이나 일부 양반계층에서나 맛볼 수 있는 귀한 과일이었다. 수정포도, 마유포도, 쇄쇄포도 모두가 외국에서 도입된 품종이었다.
우리나라에 서양의 개량된 포도가 1900년대 초에 도입되긴 했지만 사실 1960년대 후반부터 농가에서 본격적인 재배가 이루어 졌으니 우리 입맛에 최근 길들여진 과일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세계에서 보유하고 있는 포도 품종은 1만종이 넘고 우리나라나 일본에서는 주로 생과일을 먹기 위한 포도를 재배하지만 전 세계 포도 생산량의 80% 이상이 포도주 생산에 쓰이고 있다.
19C 유럽 열강은 포도주 생산을 늘리기 위해 미국에 포도나무를 심었는데
포도나무뿌리에 기생하는 진드기인 ‘필록셀라’ 때문에 말라 죽게 되었고 묘목을 다시 유럽으로 가져와 심는 과정에서 유럽의 포도밭이 초토화 되었다. 당시 미국종 포도는 수천 년 동안 이 벌레에 저항력이 생겨 온전한 반면 유럽종 포도는 황폐화 될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유럽의 와인 생산량은 2% 정도로 감소하였고 심지어 가짜 와인 까지도 유행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고 포도주 대체제로 위스키와 맥주의 소비가 증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유럽의 와인 생산자들이 미국으로 이주하여 신대륙 와인산업의 원동력이 되었다. 네델란드의 화가 반 고흐가 그린 그림 중에서 생전에 팔린 유일한 그림인 「아를의 붉은 포도밭」은 ‘필록셀라’에 감염되어 시들어 가고 있는 포도밭을 그린 것이라고 한다.
‘필록셀라’의 사례는 국가간 동식물의 검역과 생물학적 관리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하는 대목으로 외국을 드나들 때 공항이나 항구에서 실시하는 동식물 검역을 귀찮아 할 일이 아닌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포도 알을 입에 넣기 전까지 포도가 잘 익었는지 달거나 시큼한지 알지 못했다고 한다. 최근 씨 없는 포도가 소비자들을 찾아 가고 있다. 사실 씨 없는 포도가 나타난 것은 약 20년 전부터이다. 씨 없는 포도는 다른 품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달고 고유의 향도 덜 한 느낌이 있다. 영양소가 적은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무엇인가 부족한 감이 있다. 외국에서는 가처분 소득이 발생하면 제일 먼저 구매하는 상품으로 포도는 번영의 상징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국내산과 수입산 구별 없이 다양한 품종들이 소비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불과 30여년 전만해도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소비량은 1kg이 조금 넘는 수준이었으나 지금은 5kg 정도로 5배 정도 늘어났다.
무더운 여름 피로에 지친 체력회복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선택했기 때문이다. 보통 포도의 당도는 송이의 위쪽이 높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신맛이 강하기 때문에 구입할 때는 아래쪽을 맛보고 사도록 한다.
특히 검은색 포도는 알맹이 표면에 가루를 뿌린 것 같은 흰가루가 있는데 이는 당분이 밖으로 나와 굳은 것으로 당분이 많이 나와 있는 것이 달며 사람의 접촉이 적었다는 것으로 신선하다는 의미도 된다.
포도는 영양성분을 고르게 갖추고 있는 여름 과일이다.
안토시아닌, 라스베라트롤, 탄닌 등 노화방지와 암 예방에 좋은 기능성 성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
포도 씨 기름은 발연점이 220℃로 높고 산패속도가 느린 불포화지방산으로 혈관건강에 이롭다고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로부터 약재로 쓰이기도 하였다.
식초의 황제라고 하는 발사믹 식초의 재료가 포도이다.
또 한 가지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와인이다.
국민소득 증가와 함께 최근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된 술이지만 건강기능성도 인정되고 있다. 물론 지나친 음주를 제외하고 말이다.
우리나라는 포도 생산량이 계속 감소하고 있고 자유무역의 영향으로 외국산 포도와 경쟁도 심해지고 있다. 한해에 5만 톤 정도가 수입되어 팔리고 있다.
이육사 시인의 「청포도」는 꿈꾸며 바라는 세상의 기다림과 평화로운 삶에 대한 소망을 담은 저항시이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
지금도 농부는 뙤약볕 아래서 한 송이 포도를 만들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청포 입고 찾아오는 ‘그들’이 많았으면 좋겠다.